살인해드립니다 - 로런스 블록 지음, 이수현 옮김/엘릭시르 |
감성 킬러 켈러를 주인공으로 하는 로런스 블록 (로렌스 블록)의 연작 단편집. 원제는 <<Hit Man>>. 모두 10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참고로 두번째 이야기는 <<미스테리아 1호>>에서 읽었던 작품이기도 하고요.
이 작품처럼 살인 청부업자가 의뢰를 받고 특정 지역에 잠입하여 타겟을 제거한다는 이야기는 많습니다. 하지만 이 책에 수록된 작품들은 다른 킬러물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입니다. 가장 큰 차이점은 사람을 죽이는 작전이 내용의 핵심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켈러가 작전을 위해 방문한 지역과 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빚어지는 다양한 상황이 더 디테일하게 그려지거든요. 켈러의 심리 묘사 역시도 발군이고요. 이러한 묘사들과 전편에 흐르는 감수성은 확실히 로런스 블록의 작품답다는 느낌을 전해줍니다.
물론 작전도 허투루 소화된 것만은 아닙니다. 치밀한 준비와 범행을 하는 순간의 묘사가 빼어난 작품도 있거든요. 특히나 자신이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다고 여겨 경호를 철저히 하는 타겟을 살해하기 위해 소금통에 독약을 넣는 <<개를 산책시키고 화분에 물을 줍니다>> 라던가, 의뢰인이 누군가를 알아낸다는 <<현장의 켈러>>는 작전과 일상이 잘 조화되어 있는 작품들이었어요. 켈러가 속아넘어간다는 내용의 <<빛나는 갑옷을 입은 켈러>>와 <<켈러의 마지막 피난처>>도 독특한 맛이 좋았고요.
또 작품들의 설정과 시점이 모두 이어져 있어서 긴 호흡의 장편을 읽는 느낌을 준다는 것도 특이합니다. 특히 켈러가 점점 인간성을 회복해간다는 전개가 인상적이에요. 흐름으로 본다면, 우선 첫 단편 <<솔저라고 부르면 대답함>>에서는 목표물과 대화하는 정도로, 본인이 그 지역에 대해 흥미를 잃자 바로 냉정하게 바로 살해해 버립니다. 하지만 두번째 단편 <<말을 탄 사나이 켈러>>에서는 타겟에 대해 알게된 뒤 오히려 의뢰인을 살해하게 되죠. 세번째 단편 <<켈러의 상담 치료>>에서는 정신과 의사와 상담을 하다가 우연찮게 개를 맡아 키우게 됩니다. 그리고 개 넬슨에게 마음을 털어놓는 식으로 감정을 드러내며 (<<개를 산책시키고 화분에 물을 줍니다>>), 작전때문에 부재 시 넬슨을 돌봐주기 위해 고용한 앤드리아와 동거는 물론이고 자신의 정체까지 밝히게 됩니다. (<<켈러의 카르마>>.) 그리고 앤드리아가 넬슨과 함께 떠난 후 켈러는 은퇴를 결심하고, 우표 수집이라는 취미를 갖게되지만 취미에 돈이 너무 많이 들자 복귀하게 된다는 이야기로 마무리됩니다.
이러한 전개는 작품에 일상성을 부여하며, 묘하게 현실적인 느낌을 가져다 주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켈러라는 캐릭터를 극적으로 드러내는데 큰 역할을 하지요. '옆집 아저씨가 킬러더라'라는 느낌을 현실적으로 구현했달까요? 여튼 이러한 캐릭터 설정과 묘사 만으로도 충분히 읽을만 합니다.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시리즈의 한권으로 만든 모양새, 크기 모두 좋다는 것도 마음에 든 점이고요.
하지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가장 큰 문제는 켈러의 정체를 너무 많은 사람들이 쉽게 알아챈다는 것입니다. 10편의 작품 중 첫번째의 잉글먼, 세번째의 브린, 앤드리아, 여덟번째의 월리까지 네명이 알아내죠. 그것도 그냥 알아내는 것이 아니라 켈러가 치밀하지 못한 탓에 정체가 드러나는 이야기가 많아서 답답합니다. 첫번째 작품 <<솔저라고 부르면 대답함>>에서 타겟이 운영하는 '퀵 프린트'에 잃어버린 개를 찾는다는 전단 복사를 의뢰하지만, 전단지에 쓰여진 번호가 실존하지 않는 다는 것을 타겟이 전화를 직접 걸어보고 눈치챈다는 것부터 그러합니다. <<켈러의 상담 치료>>에서는 정신과 의사에게 미행당하고요.
게다가 앞서 말씀드렸듯 <<빛나는 갑옷을 입은 켈러>>와 <<켈러의 마지막 피난처>>에서는 사기까지 당합니다. 그나마 도트에 의해 의뢰받은 <<빛나는 갑옷...>>이야 그렇다쳐도 <<켈러의 마지막 피난처>>는 아마추어에게 농락당하는 수준이라 많이 실망스러워요. 이래서야 진작에 체포되지 않는게 신기할 정도죠.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나름 인간적이고 감성적인 킬러를 등장시킨 색다름은 좋았지만 정교함이 부족하여 감점합니다. 드라마로서는 충분히 재미있지만 범죄물로 보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하거든요. 한마디로 로런스 블록의 장점, 단점을 그대로 갖춘 작품집입니다. 로런스 블록의 팬이 아니시라면 구태여 읽어보실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