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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27

양심의 문제 - 제임스 블리시 / 안태민 : 별점 1.5점

양심의 문제 - 4점
제임스 블리시 지음, 안태민 옮김/불새

외계 행성 리티아에 파견온 과학자 4명. 그들은 파견 기간 마지막에 리티아를 어떻게 할 것인지 투표를 하게 된다. 과학자들은 각자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리티아를 처리하려 하나 그들 중 예수회 소속 성직자인 루이스-산체스 신부는 리티아의 근원 자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국내 유일의 SF 전문 출판사 불새의 "불새 과학소설 걸작선" 4번째 작품. 1959년 휴고상 장편부문 수상작이기도 합니다.
명성도 익히 들어왔을 뿐 아니라 <<SF 명예의 전당 1>>에 수록된 <<표면 장력>>이라는 작가의 작품을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기에 기대가 무척 컸습니다.

허나 기대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재미를 떠나서 이야기의 핵심 원칙을 이해할 수도, 동의할 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외계 행성 리티아의 원주민들은 거대 파충류로 지성을 갖춘 존재들이다, 그런데 그들의 공동체는 완벽한 수준 (전쟁, 범죄는 커녕 "갈등"을 뜻하는 말 조차 없다)이다.' 라는 것에 대한 루이스-산체스 신부의 주장이 그것인데 철저하게 지구의 카톨릭 종교관에 기인하고 있습니다. 외계 행성을 왜 카톨릭 신앙 체제로 해석해야 하죠? 과학은 과학으로 해석해야죠. 구태여 종교를 끌어들여 이상한 결론을 내리는 이유 자체를 모르겠습니다. 외계인들의 고도 문명을 보고 고작 하는 생각이 사탄이 만들었네, 이 행성이 교회를 부정하게 만들겠네라니 정말 어이가 없어요.
이에 비하면 차라리 호전적인 클리버가 주장하는 군수 공장 계획이 훨씬 논리적이에요. 세부 진행에 디테일한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최소한 과학적으로 설명은 되니까요.

뒤이어 이어지는 후반부는 더 힘이 빠집니다. 리티아인 슈트카에게서 선물로 받은 그의 아들 에그트베르치가 지구에서 성장한 후, 갈등과 혼란을 조장하는 주역이 된다는 내용인데 진부할 뿐더러 딱히 와 닿지도 않아요. 마지막에 에그트베르치가 리티아로 돌아가려 하는 것을 바라보는 시각 역시 종교적인데 굉장히 불쾌합니다. 에그트베르치가 지구에서는 위험 인물이었지만 리티아에서도 그러할 것이라는 확신부터 잘못된 것 아닌가요? 설령 그렇다치더라도 리티아인들이 모두 정신적으로 감염되어 위험하게 될 것이라는 것 역시 지나친 확대 해석으로 생각되고요. 오히려 지구의 안 좋은 것을 배운 에크트베르치가 리타이를 멋대로 개조하려는 지구에 대항하여 싸우는 영웅이 될 수 있다는 가정을 억지로 부정하려는 행동에 불과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혹 리티아인들이 지구와 적대적이 된다 하더라도 그들을 모두 지워버린다는 결말은 더 끔찍합니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에 버금가는 맹목적인 광신도들의 마인드와 다를게 없어요. 리티아 폭발의 도화선이 된 것이 신부의 엑소시즘 기도문이라는 것은 코미디에 가깝고요.

하긴 이 모든 것이 제국주의적 발상으로 보면 당연해 보이는 이야기이긴 합니다. 종교적 이유로 타 국가를 침략하여 그곳 사람들을 노예로 만들던 과거의 역사가 되풀이 되고 있는 것과 다를게 없거든요. 리티아를 지워버리는 행동도 제국주의 시대 종교, 혹은 기타 이유로 학살을 자행했던 과거와 명확히 겹치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러한 과거를 SF로 바꾸어 당당하게 써내려간 이유가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단순한 침략이나 정복이 아니라 진지한 수도사 시점의 이야기를 그리긴 했지만, 그렇다고 이 작품이 <<미션>>이 되는건 아니죠. 루이스-산체스는 철저하게 제국주의 세계관에 기반한 인물이니까요.
제목의 <<양심의 문제>>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양심이 이러한 제국주의와 종교에 기반하고 있다면 양심부터가 왜곡된 것이 아닌지 한번 의심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명성에 값하는 부분이 없지는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리타아에 대한 설정만큼은 압도적이에요. 리티아의 수도 코레데시치 스파아트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에서 시작되는 설명은 리티아인들의 행태와 문화, 기술과 과학 지식 전반을 아우르는 방대한 내용인데 창의적인데다가 설득력있게 쓰여져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리티아인들의 출생에서 성장까지에 대한 설명이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허나 이해도, 동의도 할 수 없는 이야기에 높은 점수를 줄 수는 없습니다. 책의 장정과 디자인 역시 익히 알고 있었던 대로 수준 이하고요. 퀄리티에 비하면 가격도 터무니 없다 생각될 정도입니다. 엄청난 미주가 붙어있는데 각주 처리를 하지 않은 이유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도무지 팔 수 없어 보이는 이런 작품을 출판한 용기가 가상하여 아무리 잘 봐주고 싶어도 양심상 제 점수는 이게 전부입니다.

덧붙이자면 카톨릭, 혹은 기독교 단체를 통해 판매했더라면 조금이나마 성적이 더 좋지 않았을까 싶군요. 과학으로 포장한 종교관 홍보물이라는 점에서는 과거 라엘리안에서 발표했던 일련의 소설들과 비슷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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