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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15

고독한 늑대의 피 - 유즈키 유코 / 이윤정 : 별점 2.5점

고독한 늑대의 피 - 6점
유즈키 유코 지음, 이윤정 옮김/작가정신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988년, 구레하라 동부서 2과 폭력반계 오가미반에 신참 형사 히오카가 배속되었다. 그는 반장 오가미 슈고와 짝을 이루어 사금융 업체 구레하라 금융 경리 담당이었던 우에사와 지로 실종 사건 수사에 나섰다. 한편 시내에서 가코무라 구미와 적대적인 오다니구미 조직원들끼리 다투다가 오다니구미 조직원이 살해된 뒤, 대규모 항쟁으로 비화될 조짐이 보이고 있었다. 구레하라시를 장악하려는 가코무라 구미, 그리고 그들의 우방 조직 이라코카이의 음모였다.

오가미는 수사를 통해 우에사와는 가코무라 구미 조직원들에게 납치되었다는걸 알아내었다. 가코무라 구미 조직원들이 구레하라 금융에서 소액 대출 후 유흥비로 탕진한걸 들킬 위기에 처하자 우에사와에게 죄를 뒤집어 씌운 뒤 납치 살해했던 것이었다. 이게 사실로 증명된다면, 가코무라 구미의 두목과 주요 간부 모두를 체포하여 장기간 징역에 처할 수 있어서, 가코무라 구미는 와해되고 항쟁은 자연스럽게 끝나게 될 터였다.
하지만 가코무라구미 상위 조직인 이라코구미가 오다니구미와의 항쟁에 불을 붙였고, 결국 감찰 때문에 자택 근신 중이던 오가미가 중재를 위해 나섰지만 살해되고 마는데....


1988년의 히로시마 근방 소도시 구레하라 시를 무대로 한 하드보일드 범죄 드라마. 야쿠자와 강력반 형사들이 뒤엉킨 거칠고 수컷 냄새나는 범죄와 인간 관계가 그려지는 작품입니다.

제목의 '늑대'가 가리키는건 형사반장 오가미 슈조입니다. 이름부터 오오가미 (늑대)에서 따 왔으니까요. 한 마리 늑대와 같은 형사가 홀로 안팎의 적대 조직과 맞서 싸운다는 이야기는 일본 하드보일드 작품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신주쿠 상어>>가 좋은 예겠지요. 그러나 오가미 반장은 항상 아들과 같은 부하 히오카와 함께 하며, 자신이 이끄는 오가미 반 부하들의 신뢰도 두텁고, 강력한 야쿠자 조직인 오다니구미와 다키이구미 두목급들과 두터운 친분을 맺고 있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아무리 봐도 고독한 늑대는 아니에요.

이야기에서도 야쿠자와의 관계, 친분이 핵심 동기 및 수단으로 사용됩니다. 우에사와 실종 사건 수사가 특히 그러해요. 오가미가 사건을 빨리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동기는 구레하라 시에서 야쿠자들간 항쟁이 일어나는걸 막기 위해서, 또 자신이 밀고 있는 오다니구미 부두목 이치노세 모리타카가 구레하라시를 장악하도록 하기 위함이니까요.
사건 수사도 야쿠자와의 연줄과 그들이 저질렀던 과거 범죄를 기반으로 온갖 불법적인 수단을 총동원하여 진행됩니다. 가코무라 구미 조직원 요시다 시게루를 몰래 불러내어 포박한 뒤, 식칼로 뺨을 긋는 등 협박을 가하다가 당근 (오다니구미로부터 확보한 500만엔)을 제시해서 우에사와가 납치된 뒤 살해되었다는 진술을 확보하는 장면처럼요. 그밖의 증언들도 대부분 증인들을 협박해서 이끌어내는건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불법에 가깝지만, 수사는 합리적이며 범죄 묘사도 그럴듯해서 범죄 수사물로도 손색 없습니다. 우에사와의 목을 베어 죽인 뒤, 어선을 빌려 무인도에 유기하는 과정, 사체를 찾아내는 과정, 이를 위한 심문 등 범행과 수사에 대한 묘사들 모두 손에 잡힐 듯 생생한 덕분입니다.

범죄 수사와 함께 펼쳐지는 야쿠자 조직 간 항쟁 이야기도 흥미롭습니다. 뒷골목 사람들끼리 나누는 의리와 우정에 대한, 사뭇 마초스러우면서도 왠지모르게 낭만적인 이야기는 항상 기본은 해 주지요. 오래전, 80~90년대 유행했던 홍콩 느와르 분위기랄까요.
여기에 특정 지역을 장악하기 위한 세력 다툼과 전쟁, 음모는 군웅물스러운 재미도 느껴지고, 오가미가 자신의 연줄로 주도권을 잡아나가는 모습은 악을 더 큰 악, 안티 히어로가 응징하는 쾌감을 불러 일으키기도 합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약점도 명확합니다. 야쿠자, 그리고 야쿠자와 결탁한 문제 형사를 미화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담배가게 노파 가쓰, 술집 '시노' 주인 아키코의 입을 빌어 오가미가 불쌍한 사람을 돕는 히어로였다는걸 부각시키고는 있습니다만, 그가 야쿠자에게서 돈 상납을 받는, 야쿠자와 유착되어 있는 불량 형사라는건 명백한 사실이니까요. 고독한 늑대가 아니라 하이에나 패거리 중 한마리에 불과한 거지요.
그나마 상납받은 돈은 사건 수사에 썼다고 치더라도, 자기와 친한 조직이 구레하라시를 장악하도록 노력한다는건 도저히 용납이 안됩니다. 가코무라 구미는 우에하라 살인 사건 수사를 통해 자연스럽게 와해될 예정이었지만, 이후 벌어진 이라코카이와 오다니구미간 다툼에서 오다니구미에게 유리하게 중재한다는건 정도가 지나쳤어요. 오가미가 목숨까지 걸 이유도 없었고요. 이를 포장하려고 다키이와 이치노세를 인의를 아는, 야쿠자이지만 남자답고 괜찮은 인물이라고 묘사한 것도 볼썽사나왔습니다. 그렇다고 야쿠자가 서민들 등골을 빼먹고 사는 인간 쓰레기라는게 바뀌는건 아니잖아요? 협객이니, 사나이니 하는 미사여구를 아무리 가져다 붙여봤자, 쓰레기는 쓰레기입니다. 차라리 쓰레기답게 오다니구미가 오가미를 죽이고, 이를 이라코카이에게 뒤집어 씌웠다게 진상이었다면 더 볼만한 작품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이후 수사 일지를 보면, 오가미가 죽은 뒤 대형 항쟁은 결국 일어났고, 이치노세가 구레하라시를 장악했다는걸 알 수 있으니까요. 애초에 오가미가 중재에 나섰던 항쟁도 알고보면 오다니구미가 일으킨 것이기도 하고요.
아울러 오가미가 살해당했다는 전개도 아쉬웠습니다. 이렇게 쉽게 죽어버리면 그동안 온갖 수라장을 헤치고 나왔다는게 말이 안되잖아요? 오가미가 버틸 수 있었던건 주요 인물들의 비밀을 쥐고 있었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은 왜 진작에 오가미를 죽이지 않았을까요?

설정, 묘사, 전개도 너무 뻔하며 작위적입니다. 오가미 반장에 대한 설정과 묘사부터 그러합니다. 조직과 잘 섞이지 못하는 형사라면 누구나 떠올릴법한 스테레오 타입 묘사에 그치며, 캐릭터를 형상화하는 쇼트피스 담배와 파나마 모자, 늑대가 새겨진 지포 라이터는 만화적이며 유치했기 때문입니다.
모든걸 잘 알고 있고, 통제까지 가능하지만 신참에게 속내를 잘 비추지 않는 고참 형사와 그의 수사 방식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지시에 따르다가 어느새 감복하여 존경하게 되는 신참 형사 캐릭터 구도도 식상하고 뻔하기 그지 없습니다. 예컨데 <<연쇄살인마 개구리 남자>>와 똑같죠. 다키이나 이치노세, 아키코 마담 등 다른 주요 등장인물들도 어딘가에서 본듯한, 만화적인 캐릭터들이라 영 마음에 들지 않네요.
애초에 오가미가 반장인 이상 신참과 파트너가 되어 현장을 발로 뛸 이유도 없습니다. 전형적인 캐릭터 구도를 만들기 위한 억지에 불과해요. 오가미가 히오카에게 히로시마 경찰 내부의 추문을 담은 노트와 거액의 돈을 남긴 것도 억지스러운건 마찬가지입니다. 함께 일한지 한 달 밖에 되지 않은 히오카보다는 믿고 신뢰할만한, 오래도록 함께 일한 믿음직한 부하들에게 넘기는게 당연하잖아요? 히오카의 이름이 죽은 아들 이름과 같아서, 진짜 아들처럼 여겼다는 설명이 추가되어 있기는 하지만, 작위적이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들로 여겼다면 이런 무거운 짐을 남기면 안될 것 같은데 말이지요. 히오카가 감찰의 끄나풀이었다는 약간의 반전, 그리고 나름의 유산을 남긴게 그 때문이었다는 암시도 별로 와 닿지 않았어요.

이렇게 단점도 많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렸던대로 재미만큼은 괜찮았습니다. 홍콩 느와르 영화나 무협지스러운 재미는 충분하니까요. 킬링 타임용 펄프 픽션으로는 나무랄데 없는 작품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더운 여름, 잠이 오지 않는 긴 밤을 보내기에 적당하리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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