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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21

n분의 1의 함정 - 하임 샤피라 / 이재경 : 별점 4점

n분의 1의 함정 - 8점
하임 샤피라 지음, 이재경 옮김/반니

여러가지 상황과 게임을 예로 들어 게임 이론을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해 주는 교양서. 게임 이론은 참가한 선수들간에서 누군가의 결정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상호작용 상황에서, 전략적으로 어떤 결정을 할지 예측하는 학문입니다. 선수들의 목표는 본인의 이득 최대화이고요.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 보여서 책 소개만 보고 흥미가 동했었는데, 읽다보니 의외로 수학 이론 책 치고는 재미까지 있어서 놀랐습니다.

재미있는 이유는 게임 이론에 대해 여러가지 실제 게임의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는 덕분입니다. 익히 잘 알려져 있는 '죄수의 딜레마'를 비롯하여 '공갈협박범 딜레마' '최후통첩 게임', '남의 떡 역설' 등 제목만 보아도 어떤 게임인지, 어떤 전략을 쓰는지 두근두근하게 만들거든요.
'최후통첩 게임'은 두 사람이 정해진 돈을 나누는 게임입니다. A가 B에게 얼마를 주겠다고 제안한 뒤, B가 수락하면 각자 제안대로 돈을 나눠 갖고, B가 거부하면 둘 다 한 푼도 못 받는 룰입니다. 여기서 재미있었던건, 남자는 상대 여자가 미인이라고 해서 딱히 더 후하지 않았지만 여자는 매력적인 남자에게 훨씬 후한 제안을 했다는 실험 결과였습니다. 저자는 여자들은 1회성 게임을 시리즈 게임으로 발전시키려는 의도가 다분했다고 해석합니다. 그래서 현실세계에서는 여성이 이런 성향 때문에 남성보다 전략적이고 창의적인 우위를 점한다고 하네요. 자신의 행동과 대처가 상대에게 장기적 영향을 미치기를 바라는 성향은 의사결정 프로세스에서 매우 중요하고 각장 환영받는 자질이기 때문이랍니다. 한 번 만남에서 최선을 다하는 일기일회 정신은 이미 낡아버려 시대에 맞지 않는 걸까요? 또 이른바 '뒷끝을 남기지 않는' 남자들 성향이 오히려 장기적 전략에는 해가 되는게 아닌가 생각도 해 봅니다.

'추측 게임'을 통해 예상과 다른, 황당한 결과가 초래되는다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여러 명의 사람들에게 0부터 100까지 숫자를 고르라고 한 뒤, 이 숫자의 평균을 내고 0.6을 곱한 결과에 가장 근접한 숫자를 고른 사람이 이기는 게임입니다. 여기서 수학적으로, 전략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은 '0' 입니다! 사람들이 무작위로 숫자를 고른다고 한다면, 평균은 50이니 50에 0.6을 곱한 30이 정답이지요. 하지만 모두 똑같은 생각을 해서 30을 고른다면? 18을 선택해야 합니다. 모두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렇게 계속 진행되어 정답이 0이 되는 거지요. 하지만 결과는 당연히 그렇지 않습니다. 게임 참가자들이 모두 현명하고 합리적이지도 않으며, 현명하고 합리적이라 하더라도 감정에 휩쓸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감정이야말로 예측하기 힘들다는 뜻이지요.

'내시 균형'에 대한 상세하고 다양한 설명도 흥미로왓씁니다. 내시 균형은 상대의 전략에 대응하는 나의 최적 전략과, 나의 전략에 대응하는 상대의 최적 전략이 일치하는 경우를 뜻합니다. 몇 명의 간수가 대량의 포로를 이송하는게 가능한 이유도 바로 내시 균형 덕분이라네요. 포로들이 단체로 탈추하거나 폭동을 일으켜 공격하면, 성공할 가능성은 높지만 시도한 누군가는 죽거나 다치게 되겠지요. 즉, 내 입장에서 내시 균형은 탈주나 폭동이 일어날 경우,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죄수의 딜레마'야 말로 내시 균형의 가장 좋은 예입니다. 상황 종료 후 자신의 선택과 결과를 후회하지 않으려면 배신을 선택하는게 최적의 전략이기 때문이에요. 상대가 침묵하거나 배신하거나, 배신한 쪽만 후회할 일이 없으니 당연합니다.

'내시 균형'을 만들기 위해서는 '목표'를 명확히 세워야 한다는 내용은 굉장히 와 닿았습니다. 사랑의 작대기와 같은 룰의 '쌍쌍 파티'를 통해 이를 잘 설명해주고 있지요. "나는 누가 봐도 최고인 A와 파트너가 되어야겠다!"라는게 목표면 무조건 A에게 표를 주어야 합니다. 대안은 없으니까요. 반대로 "나는 최악인 Z만 피하면 된다!"라는게 목표면 Z 바로 위의 Y에게 표를 주는게 최적의 전략이고요. 각자 무엇을 먹던, n분의 1로 식대를 지불하는 상황도 마찬가지에요. 목표가 "나는 절대 손해를 보지 않겠다!"인지, "나는 A를 꼭 먹겠다!"인지, 아니면 "나는 무조건 돈을 적게 내겠다!"인지에 따라 주문하는 메뉴가 달라지게 되겠죠.

하지만 내시 균형 전략이 적용될 수 없는 상황도 있습니다. '자원자 딜레마'가 그러합니다. 이는 n명의 사람들이 한 방에 모여 있을 때, 최소 한 명이 자원자로 나서면 전원이 두둑한 상금을 받지만 자원자는 상금에서 위험 비용을 제한 금액을 받는 상황 속 딜레마를 뜻합니다. 이 게임에서 내시 균형 전략에 따라 자원하지 않는다면 한 푼도 못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경우에는 여러가지 상황을 고려한 혼합 전략으로 대응해야 한다네요.
또 내시 균형 전략에 따른 해법이 오히려 최적의 해법과 상극인 상황도 존재합니다. '여행자의 딜레마'라고 부르는데, 두 명에게 5달러에서 100달러까지 원하는 대로 돈을 써 내라고 하고, 둘이 같은 금액을 쓰면 같은 금액을 주지만 금액이 다를 경우는 낮은 금액을 쓴 사람에게 5달러를 더 주고 높은 금액을 쓴 사람메게서 5달러를 공제하는 상황 속 딜레마입니다. 여기서 내시 균형에 따른 최적 전략은 5달러를 쓰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부를 극대화하는게 우선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99달러를 써야죠. 99+5달러가 최선이니까요. 하지만 상대도 바보가 아니라서 98달러를 쓰고... 이런 생각이 반복되어 결국 둘 다 5달러를 써 내는 선택만이 후회가 남지 않게 됩니다. 뭔가 익숙한 상황이 많이 떠오르네요.

죄수의 딜레마를 연장한 게임에서 필승 전략인 '팃포탯' 전략도 기억해 둘 만 합니다. 이 전략은 출발은 신사적으로, 두번째 게임부터 상대가 직전에 했던 행동을 따라하는 것입니다. 즉 내가 상대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 줄까가 아니라, 상대가 내게 먼저 어떻게 했는지를 생각해서 행동하라는건데, 실제 상황에서도 많이 통용될 수 있는 전략이라 생각됩니다.

이외에도 사슴 사냥 게임처럼 신뢰와 협력이라는, 그야말로 사회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게임 이야기라던가 통계 관련 이야기, 도박장에의 전략 등 눈여겨 볼 만 한 재미있는 내용이 가득합니다. 도박은 한 번에 과감하게 가는게 좋다네요. 내가 불리한 게임은 게임 횟수를 최대한 죽이는게 맞는 전략이라면서요. 나름대로 그럴듯합니다. 영국 정치가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가 했다는 말대로인 거지요. “절벽 사이를 두 번에 나누어 뛰는 것만큼 위험한 짓도 없다
단지 수학 이론서나 교양서가 아니라, 살아가면서 필요한 전략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는 점에서도 좋은 독서였고요. 목차가 잘 정리되지 못한 느낌이 드는건 아쉽지만, 그 외에 별로 흠잡을 부분은 없습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마지막 장에 요약되어 있는, 주옥과 같은 게임이론 가이드라인 중 몇가지를 공유하며 리뷰를 마칩니다.

- 협상에 임할 때 유념해야 할 세 가지
첫째, 아무런 합의 없이 회담이 결렬될 가능성을 참작해야 한다.
둘째, 게임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셋째, 자신의 노선과 마지노선에 깊은 믿음을 가지고 그것을 고수해야 한다.

- 게임의 수학적 해법을 너무 믿지 말 것. 수학적 해법은 질투심, 모욕감 같은 중요한 감정들과 그것들이 만드는 변수를 간과하기 일쑤임.

- 어떤 결정이 됐든 의사결정을 하기 전에, 만약 모두가 나처럼 생각한다면 일이 어떻게 될지 한 번쯤 자문해볼 것. 동시에 모두가 나처럼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사실 또한 기억할 것.

- 목표가 단순히 이기는 것이라면, 괜히 머리를 이리저리 돌리고 상황을 복잡하게 풀면서 곁길로 빠지지 말 것.

- 게임에서 내가 ‘불리한’ 입장에 있을 때는 되도록 게임의 횟수를 줄여야 함. 약자에게는 한판승이 가장 승산이 높다. 위험을 회피하려 애쓰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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