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 더블 - 엘러리 퀸 지음, 이제중 옮김/검은숲 |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4월 1일, 만우절에 엘러리 퀸에게 신문기사가 담긴 편지가 발송되었다. 신문기사 내용은 라이츠빌에서 일어났던 루크 매캐비의 죽음, 루크의 유산 4백만 달러가 주치의 세바스티안 도드에게 상속된 것, 유산에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던 하트 방적 공장 사장 존 스펜서 하트가 자신이 유용한 루크의 돈 때문에 자살했다는 기사가 실려 있었다.
그리고 4월 7일, 두 번째 편지가 발송되었다. 마을에서 구걸을 했던 술꾼 톰 앤더슨이 실종되었다는 기사였다. 그리고 엘러리 퀸에게 톰 앤더슨의 딸 리마가 찾아와 아버지는 죽었을 거라며 사건 해결을 의뢰하고, 엘러리 퀸은 리마와 함께 십여년 만에 다시 라이츠빌로 향한다.
엘러리 퀸 장편 중에서는 수작들이 많이 모여있는 '라이츠빌 시리즈'입니다.
고전 본격 추리물이었던 국명 시리즈에 반해, 라이츠빌 시리즈는 범죄 드라마 성격이 강하다는게 특징이지만, 이 작품은 기존 라이츠빌 시리즈와는 조금 다르더군요. 작위적으로 만들어진 범죄라는 느낌을 강하게 전해주거든요. '부자, 가난뱅이, 거지, 도둑, 의사, 변호사가 차례로 죽는다'는 마더 구스 동요 중 한 편의 내용대로 살인 사건이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확실히 라이츠빌 시리즈는 라이츠빌 시리즈에요. 이야기 자체는 전혀 본격물처럼 흘러가지는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건은 우발적인 사고로 여겨진 탓에 제대로 수사가 이루어지지도 않기 때문이에요. 경찰은 방관하는 동안, 탐정인 엘러리 퀸 역시 현장에서 단서를 찾아낸다던가 하는 최소한의 노력도 보이지 않습니다. 라이츠빌 시리즈답게 인간 관계와 동기에 집중하고 있으며, 덕분에 왜 동요가 사건과 연결되는지? 왜 범인이 엘러리에게 편지를 보냈는지?에 대한, 와이더닛물로는 꽤 흥미로운 편입니다.
특히 동요와 사건과 연결되는 이유가 참신했어요. 범인 케네스는 죽음에 대한 강박증이 있어서 유언장 쓰기를 미루던 도드 의사가 죽음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으면 순순히 유언장을 쓸 것이라 생각하고 모든 사건을 꾸민 것입니다. 그래서 두 건의 사망 사고의 피해자 직업에서 착안하여 톰 앤더슨을 죽이고, 니콜 자카르도 사고를 위장하여 살해한 뒤 이 모든게 마더구스 동요 법칙에 따른 죽음으로 다음 차례가 도드 의사인걸 명심하게 만든거지요. 도드 의사가 오래 앓아온 신경증 탓에 죽음을 지나치게 두려워한다는게 전개와 묘사에서 계속 드러나서 설득력도 넘칩니다. 우발적인 죽음이 목표한 살인의 연결고리로 이용된다는 트릭은 제법 많이 보아 왔지만, 이 작품에서의 동기만큼은 신선하면서 설득력 높다는 점에서 좋게 평가하고 싶습니다.
허나 후더닛물로는 좋은 작품은 못됩니다. 범인은 케네스 아니면 리마일게 너무 뻔했으니까요. 그런데 리마의 경우, 어린 시절에는 몰랐던 바깥 생활에 대한 동경 때문에 아버지를 죽였을 수는 있습니다. 속박에서 풀려나기 위해서요.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을 죽일 동기는 없습니다. 때문에 범인은 케네스인 거지요. 도드 박사의 유산 4백만 달러는 동기로 차고 넘치잖아요. 세 번째 사건인 니콜 자카르 사살 사건은 어쨌건 케네스가 총으로 쏘아 죽이기도 했고요.
물론 도드 박사의 유언장이 공개된 뒤, 거의 모든 유산은 종합 병원에 기부되기 때문에 케네스의 동기는 사라져 버리고 맙니다. 도드 박사 뒤에 살해된 변호사 홀더필드, 양복장이 월더 형제 사건에서는 동기가 아예 없어 보이기도 해서, 여기서부터는 조금 흥미롭기는 했습니다. 저는 도드 박사 살해까지는 케네스가, 그 뒤 범행은 리마가 저지르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둘은 도드 박사가 죽은 뒤 결혼했으니, 뭔가 동기를 공유했기 때문에요. 사실 뒷 부분은 여러모로 리마인게 더 자연스러웠습니다. 동요 순서대로 '대장'이 마지막에 죽는다면, 이는 앞서 엘러리가 리마에게 말했듯 엘러리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결말은 결국 케네스가 진범이라서 조금 맥이 빠졌습니다. 케네스의 자백 외에 아무런 증거가 없다는 점, 그리고 그가 엘러리가 꾸민 리마 체포 쇼를 보고 자백했다는 결말도 좋은 후더닛 본격물로 보기 어렵게 만들고요.
국명 시리즈로 대표되는 엘러리 퀸 본격물처럼 지나치게 작위적이라는 단점도 큽니다. 동요와 사건을 무리하게 엮은 탓입니다. 동요 순서대로 변호사와 장사꾼 (양복장이)가 죽는 상황은 순전히 우연이니까요. 도드 박사가 유언장을 두 번 남겼다는 것도 우연이고, 이를 진작에 데이비드 월도가 밝히지 않은 이유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변호사 비서 플로스가 때마침 라이츠빌을 떠났다는 것도 동요에 끼워 맟추기 위한 편의적인 발상에 불과합니다. 비서 플로스는 아예 등장하지 않는게 그나마 말이 되었을 겁니다.
엘러리 퀸에게 케네스가 편지를 보냈다는 설정은 억지의 정점입니다. 엘러리 퀸의 입으로 도드 박사에게 '죽음을 선고'하기 위해서라는데 이게 말이나 됩니까... 케네스는 그냥 신문에 투고만 했어도 원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살인범이 탐정을 불러서 피해자가 죽는걸 예언하게 만들다니, 억지도 정도껏 해야죠.
캐릭터들도 현실적이지 않은, 만화같은 캐릭터들 뿐이에요. 아버지와 함께 산 속 움막에 살던 청순한 소녀 리마가 대표적입니다. 도드 의사가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신경증 증상을 보인다는건 사건 동기 설명을 위해 필요했던 묘사지만,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다양한 점치기를 시도한다는 설정 등 다른 캐릭터들도 억지스럽기는 마찬가지고요.
엘러리와 알콩달콩한 모습을 보이던 리마가 케네스와 첫 눈에 사랑에 빠진다는 것도 영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묵직한 라이츠빌 시리즈라면 아예 리마와 알콩달콩 사랑 이야기는 등장하지 않는게 맞았을테고, 이왕 등장한거라면 팬들에게는 리마가 엘러리와 연결되는 결말이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나이 차이가 나기는 하지만,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예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별점은 2점. 라이츠빌 시리즈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라이츠빌 시리즈의 장점보다는 기존 엘러리 퀸 시리즈의 단점이 더 불거진 망작이었습니다. 역시나, 유명하지 않은 작품은 다 이유가 있는 법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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