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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06

흑백합 - 다지마 도시유키 / 김영주 : 별점 2점

흑백합 - 4점
다지마 도시유키 지음, 김영주 옮김/모모

<<아래 리뷰에는 반전, 진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952년, 여름방학 동안 롯코산에 있는 아버지 친구의 별장에 놀러 간 열네 살 소년 스스무는 동갑내기인 가즈히코와 함께 햇살이 눈부신 연못가에서 자신을 연못의 요정이라 칭하는 소녀 가오루를 만났다. 방학을 함께 보내며 세 아이의 첫사랑이 시작된다.
1935년, 독일 베를린에서 고시바 회장의 해외 시찰 일행은 아이다 마치코라는 수수께끼 같은 여성과 만났다.
1941년, 호큐전철의 차장과 히토미라는 여학생이 고베를 중심으로 비밀스러운 교제를 이어나간다.


순문학과 추리 문학이 절묘하게 만난 최고의 걸작이며, 온갖 상을 휩쓸었다는 광고 문구에 혹해서 읽기 시작한 작품.
중학생 아이들의 만남과 설렘, 첫사랑 묘사는 무난했습니다. 50년대 오사카와 전전의 베를린을 돌아다니는, 시대를 교차하며 전개되는 와중의 풍광 묘사도 좋았고요.

그러나 추리 소설 측면으로는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단서가 부족하고 공정하지 못해서 추리의 여지가 거의 없는 탓입니다.
가오루의 고모인 히토미의 첫사랑이었던 호큐 전철 차장이 교제를 반대하는 히토미의 오빠를 살해한 사건이 핵심인데, 이후 전개를 통해 호큐 전철에서 차장으로도 일했던 데릴사위인 히토미 고모의 남편을 범인처럼 그려나갑니다. 1935년의 아이다 마치코는 오사카에서 찻집을 하는 '롯코의 여왕' 인 듯 하고요. 하지만 마지막에 가즈히코의 엄마가 살인을 저지렀던 호큐 전철 차장이자, 베를린에서 만났던 아이다 미치코였다는게 드러납니다. 가즈히코에게는 새엄마였던 거지요. 그런데 이 반전은 독자가 추리하는건 불가능합니다. 그 어떤 단서도 사전에 제공되지 않거든요. 유일한 단서는 제목 뿐이에요. 과거 도쿄의 불량 서클 흑백합파의 리더 '흑백합치' 였던 아이다 미치코가 범인이다!라는 뜻이니까요.
그런데 이 제목 단서도 이상했습니다. 아이다 미치코가 1935년 베를린에 갔던 이유는, 결혼을 약속했던 가오루 아빠의 농간 때문이었어요. 그는 집안의 반대를 이기지 못해 아이다 미치코를 속여 베를린으로 보내버렸던 거지요. 그렇다면 가오루의 아빠이자 히토미 고모의 오빠는 이미 아이다 미치코가 누구인지 보면 알아챘어야 합니다 (전 연인이니까). 그런데 히토미와의 교제를 반대하며 만나러 갔을 때의 장면을 보면 전혀 그런 것 같지 않게 그려집니다. 그를 똑바로 쳐다보았던 아이다 미치코 역시 마찬가지였고요. 단연코 공정치 못한 묘사였습니다. 애초에 아이다 미치코가 베를린으로 갔을 때 들고 있었던, 히토미 고모의 오빠가 쓴 쪽지에 기입된 서명을 독자에게 공개하지 않은 것 역시 공정하지 못했습니다. '쿠라사와'라는 성이 드러났다면, 원한 관계 정도는 독자가 알 수 있었을테고, 히토미 오빠의 죽음에 또다른 동기가 있을 수 있다는 추측이 가능했을 수도 있었으니까요.

두 번째 사건인 가오루의 삼촌이자 히토미 고모 동생 키요지를 살인 사건은 사건 자체가 억지스러웠습니다. 가오루의 아빠 키쿠요가 살해된건 1945년 공습 와중이었습니다. 공습 탓에 죽었다는걸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고요. 그런데 1952년에 사실은 살해되었다고 주장한다면, 그 주장을 누가 믿어 줄까요? 심지어 주장을 한게 야쿠자에게 도박 빚으로 협박을 당하고 있었던 키요지였다면, 단순한 협박으로 치부될 공산이 높았을 겁니다.

이 작품을 서술 트릭물로 만드는 핵심 요소인, 여학생이 여자 차장을 흠모했다는 발상도 작품이 발표된게 2008년이라는걸 감안하면 그리 기발한 아이디어라고 보기 어렵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 세 아이의 풋풋하면서도 향수를 자극하는 이야기로는 무난했지만, 추리 소설로는 그냥 저냥이었습니다. 딱히 권해드리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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