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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26

위작의 기술 - 노아 차니 / 오숙은 : 별점 4점

위작의 기술 - 8점
노아 차니 지음, 오숙은 옮김/학고재

역사적인 위조와 사기에 대한 논픽션
유명한 사건 위주로 나열했던 다른 책들과 다른 점이라면 위작을 만들고 위조하는 이유를 몇 가지로 분류하여 소개하고 있다는 점으로 자신이 천재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위조를 다룬 <<천재성>>, 작품을 감정하는 사람들의 자존심 때문에 사건이 벌어진 에피소드들이 수록된 <<자존심>>, 미술계와 전문가들에 대한 복수심으로 위조가 시작된 이야기들을 다룬 <<복수>>, 위조 경력이 밝혀진 후 오히려 부와 명성을 누린 사람들을 다룬 <<명성>>, 순수하게 범죄 목적이었던 사건들인 <<범죄>>, 여러 기회주의자들에게 이용된 딱한 위조꾼이 등장하는 <<기회주의>>, 가장 강력한 동기인 돈에 얽힌 사건들인 <<돈>>, 단순히 미술계가 아닌 정말로 큰 권력에 대한 이야기인 <<권력>> 순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단지 재미 위주가 아니라 미술계에 대한 나름의 시각을 담아 정성들여 쓴 글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특히 "감정" 이라는 행위에 대한 불신이 담겨있다는게 인상적이었어요. 사람에 의해 이루어지는 감정이 아니라 과학에 의한 판정도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충격적이기도 했고요. 우리나라의 가짜 반 고흐 그림 사건처럼 과학적인 조사로 손쉽게 범행이 밝혀지는 경우도 많지만 <<갤러리 페이크>>에서 위조품 제작 시 위조품과 같은 시기의 작품을 재료로 이용했던 것 처럼 요새 위조꾼들은 이마저도 이용한다고 하니까요. 
단순한 위조가 아니라 위조인지, 아닌지 모호한 달리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도 많은걸 생각하게 만듭니다. 피트쇼트라는 인물이 달리의 후반기 작품을 그렸다는건 거의 정설이지만 달리는 이 작품들을 자신이 그렸다고 주장했으며, 이는 달리가 끝까지 예술적 마력을 지녔다고 믿게 만드려는 "자존심" 때문이었다는 이야기인데 아무리 다른 사람이 그렸다고 하더라도 작가가 서명하고 자신이 그렸다고 주장한다면 이게 과연 위조, 위작일까? 라는 의문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작가가 공인하고 작품의 수준에 문제가 없다면 별 문제는 없지 않다고 생각되는 쪽인데, 실제로도 이는 가짜나 위작이라고 주장하기 쉽지 않다는군요.

당연히 위작을 만드는 방법, 출처를 위조하는 방법 등 위작에 대한 전문적인 내용도 많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갤러리 페이크>>를 읽었다면 친숙한 여러가지 방법, 기술이 등장하는데 실제로 그림을 그린다면 상당히 유용할 정보도 많아요. 과거 사용된 카본블랙 잉크는 숯검정에 기름이나 풀, 고무질같은 고착제를 섞어 간단히 만들 수 있다던가, 유명한 위조꾼 헵번이 추천하는 거장의 작품을 베끼기 위한 이상적인 '위조꾼의 팔레트 (연백, 옐로 오커, 크롬 옐로, 로 시에나, 레드 오커, 번트 시에나, 버밀리언, 로 엄버, 번트 엄버, 테르 베르데, 순수 울트라 마린, 아이보리 블랙의 12가지)' 같은 것이 그러합니다. 

사건 자체가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바스키아가 죽기 전 친하게 지내던 마약상 집 철문에 그림을 그리고 얼마 후 죽었는데 마약상이 작품의 가치를 알아보고 인증받으려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바스키아 유산 관리 위원회에서는 진품으로 인정하지 않았는데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약물 과다 복용으로 숨진 바스키아의 죽음에 한 몫 했을 마약상에게 큰 돈을 쥐어주고 싶지 않은 마음 탓이 컸을거라고 하네요. 그러나 저 개인적으로는 죽은 바스키아를 위해서는 공식 작품으로 인정하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긴 합니다. 한 작품이라도 더 알려지는게 작가에게는 좋은 일일테니까요.
미술계 이외의 유명한 위조, 위작에 대한 소개도 충실해서 하워드 휴즈 자서전 위조나 가짜 히틀러 일기나 토리노의 성 수의 등 다양한 위작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 중 콜럼버스 전 바이킹이 북아메리카에 도달했다는 증거인 "빈란트 지도"가 위조임이 판명되었다는건 처음 알았네요. 

물론 단점이 없지는 않아요. 페르메이르의 작품을 위조하여 괴링에게 팔아넘긴 반 메헤렌 이야기 같이 다른 유사한 책들에 등장했던 유명 범죄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거든요. 하지만 반 메헤렌이 재판에 회부된 후 오히려 괴링을 속였다는걸 실제로 새로운 그림을 그려 증명했으며, 덕분에 '나치 협력자'에서 '괴링에게 사기 친 남자'라는 평판을 얻어 대중의 영웅이 되었다던가, 괴링이 처형 직전에 이 사실을 알게되었다는 등의 후일담이 실려있는 식으로 디테일이 압도적이라는 차이는 분명합니다. 특히나 사건들에 관련된 도판은 정말이지 다른 유사 도서와는 엄청난 차이를 보이는 강력한 장점이고요.

이렇게 재미와 현학적인 지적 욕구 모두를 만족시키는 좋은 책입니다. 동서고금의 유명 위작, 위조 사건에 대해 통사적으로 훝어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유명 위작가들과 위조품에 대한 일람이 가능할 뿐 아니라 사실로 밝혀진 이야기는 후일담까지 충실하다는 점에서 위작, 위조에 대해 관심있으신 사람이라면 놓칠 수 없는 책이기도 하고요. 번역과 도판, 만들어진 책의 완성도도 최고 수준이기에 제 별점은 4점입니다. 
약간 감점한 이유는 앞서 말씀드렸던대로 타 도서에서 이미 소개되었던 이야기가 제법 있고, 분류도 아주 조금 억지스러운 부분이 있어서인데 (자존심이고 뭐고 솔직히 돈이 가장 중요한 목적이죠) 책의 가치를 훼손할 정도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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