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부부인 컴퓨터 전문기사 혼다 이찌로오는 평일에 도쿄에서 가명으로 여자들을 헌팅하여 시간을 보내는 일상을 보내며, 자신의 헌팅 이야기를 "사냥꾼의 일기"라는 노트에 자세히 기록해 놓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가 사냥한 여성들이 연쇄적으로 살해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수사망이 좁혀오자 혼다는 자신의 알리바이를 증명해 줄 수 있는 마지막 사냥 여성을 찾아갔지만, 그 여성마저 살해된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 주요 용의자로 수사선상에 오른 혼다는 여러가지 단서를 통해 정체가 드러나 경찰에 체포되고 말았다.
변호사 하다나까와 신지는 혼다의 변호를 맡아 그의 무죄를 증명해 주기 위해 여러가지 조사에 착수하는데...
원제는 "사냥꾼의 일기"입니다. 도가와 마사코는 국내에 많이 소개된 작가는 아닙니다. 번역된 장편은 아마 이 작품이 유일할거에요. 단편은 몇편 더 있지만, 단편들과 이 작품은 분위기 자체가 많이 다릅니다. 단편은 일종의 괴기 환상 소설같은 작품들이 많이 소개되었고 완성도도 아주 별로거든요.
그런데 단편들에 비해 이 작품은 제대로 된 추리물의 구조를 잘 따라가고 있어서 무척 의외였습니다. 일단 위에 간략하게 적어놓은 줄거리만 보아도 알 수 있지만 분위기가 이색적입니다. 법정물도 아니고 사회파 수사물도 아니고, 누명을 뒤집어 씌우는 완전범죄물도 아닌 중간 정도에 걸치는 중립성을 잘 유지하고 있는 덕분입니다. 각 쟝르의 재미있는 부분만 잘 따다가 만든 느낌이 들 정도에요.
전개도 나름 독특합니다. 전반부인 "사냥과 사냥감" 편에서는 "사냥꾼의 일기"의 저자(?) 인 혼다 이찌로오의 엽색 행각, 그리고 그가 서서히 함정에 빠지는 이야기를 상세하게 그리며, 후반부인 "증거의 채집" 편에서는 변호사 신지를 중심으로 혼다 이찌로우의 무죄를 밝혀내기 위한 수사 및 추리의 과정이 묘사됩니다. 1963년 작품 치고는 굉장히 신선한 아이디어라 할 수 있겠네요. 어떻게 보면 얼마전 읽었던 "이와 손톱"과 좀 유사한 전개인데, 아예 두가지 이야기를 확 나눠 버린 과감함(?) 은 이 작품이 조금 더 돋보인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추리적으로는 부족한 부분도 많습니다. 치밀한 완전범죄 공작을 깨트리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불꽃튀는 두뇌대결과 사소한 단서에서 밝혀지는 진상 등이 정교하게 묘사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탓입니다. 변호사 하다나까와 신지가 벌이는 약간의 조사로 중요한 단서들이 연달아 밝혀지고 있어서 경찰 수사의 헛점만 드러날 뿐이에요. 물론 1부에서 혼다가 너무나 명백하게 죄를 뒤집어 쓰는 바람에 경찰이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지만... 그래도 조사가 어설퍼 보이는 것은 추리물에서는 큰 약점이라 생각됩니다.
마지막 반전 및 진상이 결과적으로는 범인의 "자백"에 의존한다는 것과 동기에 대한 설득력이 약간 떨어져 보이는 것 역시 단점입니다. 아무리 작품이 "헌팅" 에 뒤이은 붕가를 주요 소재로 삼고 있다지만 지나칠 정도로 묘사가 자주 등장한다는 점도 부담스러웠고요. 솔직히 저는 이런 묘사 굉장히, 아주아주 싫어합니다.
그래도 마지막 반전, 범인의 고백과 "사냥꾼의 일기"를 통해 밝혀지는 반전, 사건의 진상은 괜찮습니다. 어설프고 부족해 보이는 부분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괜찮다고 기억하게 만들어 주지요. 그만큼 반전 하나는 아주 좋았습니다. 엄마 친구 아들같은 혼다가 수렁에 빠지는 내용도 디테일하면서도 참 감정이입하기 좋았고요.
그래서 결론적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한번 읽어볼 가치는 있습니다.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한 작가의 대표작인 "거대한 환영"도 꼭 한번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뭐, 취향은 좀 탈 것 같긴 하지만...
PS : 헌팅의 대상자 중에 작가를 희회한 듯한 "도다 마사꼬" 라는 인물이 나오는 것은 특이했습니다. 샹송가수였던 이력을 티내고 싶었나봐요^^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