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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18

본인방 살인사건 - 우치다 야스오 / 이희성 : 별점 2.5점

 

본인방 살인사건 - 6점
내전강부/범조사(이루파)

<<아래 리뷰에는 진상, 진범, 그리고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바둑 기전의 하나인 '천기위' 타이틀을 놓고 본인방이기도 한 노장 다카무라 9단과 젊은 피 우라카미 8단이 격돌을 벌이게 되었다. 나루코 온천 호텔에서 펼쳐진 1박 2일의 대국에서 결국 우라카미 8단이 승리했지만, 다카무라 9단은 수를 놓는 고려시간을 의도적으로 조절하는 행동으로 패배를 자초했던 덕분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사라진 다카무라 9단이 아라오 호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현지 경찰의 수사는 난관에 봉착했지만, 고노에 기자는 우라카미 8단의 도움을 얻어 다카무라 9단의 고려시간이 일종의 암호였다는걸 밝혀내는데....


명탐정 아사미 미츠히코 시리즈로 유명한 여정 미스터리의 대가 우치다 야스오의 작품입니다. 하지만 아사미 미츠히코 시리즈는 아닙니다. 바둑 기사인 8단 우라카미와 바둑 전문 기자 고노에가 탐정역으로 활약합니다. 우연찮게, 십 수년만에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십 수년 전에는 간략하게 감상 중심으로 리뷰를 남겼었는데, 이번에는 조금 더 길게 리뷰를 남겨볼까 합니다.

고노에 기자와 천기위 우라카미 8단이 탐정으로 활약하는데, 기사라는 직업의 특성을 잘 살리고 있습니다. 세가와 9단이 몰래 고쳐놓은 기보의 고려시간을 우라카미 8단이 밝혀내는 식으로요. 기사만의 굉장한 기억력을 발휘했던 겁니다. 이런 기억력은 다카무라 본인방과 살해된 사립탐정 와타나베를 연결시키는데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본인방 유품 중 하나였던 라이터가 원래 와타나베의 것이었다는걸 기억해 낸 덕분이니까요.
핵심 트릭인 본인방이 대국 중 고려시간을 이용하여 발신한 모르스 부호도 다시 읽어보니 제 기억보다도 잘 짜여져 있더군요. 유별날 정도로 길게 고려시간을 사용한 뒤 메시지 전달이 시작된다는 점, 그리고 메시지 전달을 위해 세 가지 타입 (장, 단부호와 스페이스)의 기호가 필요했는데 세 종류의 시간을 이용한다는 발상이 고려시간과 잘 어울렸거든요. 아주 디테일하게 숫자를 맞추기 힘든 대국 중 고려시간 특성에도 딱 맞아 떨어집니다.
그 외에도 추리적으로 볼 만한 부분은 또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본인방과 와타나베 탐정을 연결하는 고리가 된 '라이터'의 주인을 추적하는 수사 과정의 디테일이 대표적입니다. 과정도 설득력이 높지만 독특한 디자인의 라이터라서 제조사를 쉽게 찾을 수 있었고, 마침 제조사 영업 담당이 바둑 애호가라 우라카미 8단을 도와주기 위해 나선다는 식으로 현실적으로 그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본인방이 살해당했던 상황에 대한 진상도 기발했습니다. 수사 결과, 본인방은 어딘가를 차를 타고 이동하다가 내려서 다시 호텔로 걸어 돌아오던 중이었다는게 밝혀집니다. 그렇다면 범인은 본인방을 그 곳에 내려준 뒤 한참 뒤에 다시 돌아가서 본인방을 살해했다는건데, 그 이유를 알 수 없었지요. 어차피 인적도 없는 곳이었는데 왜 그 곳에서 바로 살해하지 않았을까요? 고노에와 우라카미는 범인이 사람을 잘못 태웠고, 본인방이 살인범의 차를 타고 있다는걸 깨닫고 중간에 내렸다고 추리합니다. 본인방은 세가와 9단으로부터 와타나베 탐정이 살해당했다고 이미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차에서 와타나베 탐정이 가지고 있었던 독특한 라이터를 발견해서, 이상함을 눈치챘다는 것이지요. 원래 차를 타기로 했던 세가와 9단은 본인방과 동년배 친구였고, 본인방과 마찬가지로 하오리 정장을 입고 있어서 범인이 착각했을거라는 설정 등 이를 뒷받침하는 정교한 장치들도 일품입니다.
모르스 부호를 역시 잘 알고 있었던 세가와 9단이 기보를 몰래 고치면서, 고친 부호가 범인 '아네시마'의 이름을 나타내도록 고쳤다는 결말도 아주 마음에 들었고요.
여러 지방의 풍광 묘사도 여정 미스터리의 달인답습니다. 초반 본인방 살해의 무대가 되는 나루코 지역의 상세한 묘사는 물론, 마지막 세가와 9단이 진상을 밝히고 자살하는 한시로오토시 절벽은 대단원의 무대로 나무랄데 없었습니다.

하지만 국회의원 마키노가 세가와 9단을 협박해서 천기위 기전 개최 권한을 대동신문사로부터 빼앗아 J 일보로 넘기려고 했다는게 무려 5명이라는 사람이 죽은 사건의 동기라는건 설득력이 떨어졌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천기위 기전이 넘어가는 과정에서의 불법적 요소는 전무하기 때문입니다. 본인방이 고용한 와타나베 탐정이 검은 뒷돈 거래 정도를 알아냈더라면 모르지만, 그런 언급은 아예 없어요. 이런 상황에서 사건이 확대될 위험을 무릎쓰고 살인을 저지를리 없습니다. 결국 마키노 의원 조직에 갓 합류한 운전사 아네시마가 과하게 충성심을 발휘하여 와타나베 탐정을 살해한 것이 진상이었는데, 많이 허무했어요. 그 뒤에 본인방을 살해한건 억지스럽기까지 했습니다. 드러난 동기가 없거든요. 본인방을 세가와 9단으로 착각하고 잘못 태웠다는걸 나중에 알았다손 치더라도, 그게 사람을 죽일만한 이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와타나베 탐정이 그 차에 탔었다는 (그리고 살해당했다는) 중요한 단서인 라이터를 잃어버렸다는걸 알게되었다면 모르지만, 그렇다면 살해 후 라이터를 회수하지 않은건 이상합니다. 니미야 3단이 기보가 수정된걸 알아챘다한들, 이 역시 살해할만한 이유로 보이지는 않았어요. 수정하지 않았다고 딱 잡아 떼더라도 증거가 없으니까요. 세가와 9단의 인망이라면 충분히 그냥 넘어갈 수 있었을겁니다.
그리고 그리고 어쨌건 본인방도 일본기원 소속입니다. 천기위 기전을 어느 신문사가 주관하는지가 기사 입장에서 그렇게 중요할까요? 정해진 수익만 전달되면 기사 입장에서는 마찬가지일텐데 말이지요.

무엇보다도 최악은 세가와 9단이 범인 아네시마와 함께 자살한다는 결말이었습니다. 딸 레이코에게 씌워질 수 있는 오명을 차단하기 위해 사고사로 위장하고 자살한다는 거지요. 진상을 묻어버렸기에 마키노 국회의원은 처벌받지 않는다는 결말인데, 아무리 산 사람이 더 중요하다지만 황당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우라카미와 레이코의 행복을 위해 진상을 묻어두겠다는 고노에 기자의 행동도 별로였어요. 사람이 네 명이나 죽었는데 이걸 묻어둔다는게 말이나 되나요?
세가와 9단의 딸 레이코는 사실 마키노 의원의 딸이었고, 그 사실을 밝히겠다는 협박 때문에 범행에 가담했다는 설명은 바둑 기사들을 악역으로 만들지 않기 위한 고육지책이었겠지만, 구차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 프로 바둑 기사를 주인공으로, 기전을 동기로, 바둑 대국을 주요 무대 및 핵심 트릭의 장으로 활용한건 독특했지만, 이야기의 설득력 측면에서는 다소 아쉬움이 남네요. 평작 수준은 충분하나, 딱히 찾아 읽어봐야 할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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