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단어를 찾습니다 - 사사키 겐이치 지음, 송태욱 옮김/뮤진트리 |
일본의 국어 사전 산세이도와 신메이카이를 현재의 모습으로 이끌었던 편집 책임자 겐보와 야마다의 일생과 갈등에 촛점을 맞춘 논픽션. NHK의 다큐멘터리를 책으로 엮은 듯 하네요.
이전에 읽었었던 <<사전, 시대를 엮다>>처럼 사전의 역사를 그린 일종의 미시사 서적일걸로 생각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사전을 어떻게 만드는지 디테일을 알 수 있을 걸로 기대했고요. 하지만 생각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책의 핵심은 순수하게 '단어'에 집착하여 평생을 바친 겐보 선생과, 스스로의 생각과 주장이 더 중요했던 야마다 선생의 갈등이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읽다보면 야마다는 도무지 용서가 안되는 그런 사람이라서, 이걸 갈등이라고 표현할 수 있나 싶더군요. 겐보 선생은 '산세이도'와 '신메이카이' 두 권을 동시에 진행하기가 힘들어 부득이하게 조수 야마다에게 '신메이카이'를 맡겼을 뿐입니다. 그러나 야마다는 대뜸 그걸 가로채버리고 말았을 뿐 아니라, 심지어 겐보 선생이 '사고를 당했다'는 거짓 정보를 뿌려 자신이 사전을 빼앗은걸 정당화하고, 겐보 선생이 모았던 용례까지 멋대로 사용했던 인간말종이었으니까요.
실력면에서도 겐보 선생이 한수 위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야마다는 사전은 문명 비평이라는 신념을 지니고 있었다고 하는데, 본인 시각으로 당시 문명을 비평하는건 신문 사설이라면 모를까, 사전이라는 컨텐츠에는 절대로 맞지 않는 방식입니다. 현재 '신메이카이' 편집 책임자 구라모치 야스오 역시 "흔히 말하는 '사전은 공기(公器)'라는 생각과 '사전은 문명 비평'이라고 하며 주관적인 사상이나 비판을 말하는 것은 모순되지 않을까요?“라며 이 방침에 동조할 수 없었다니 말 다 했지요. 자기 후임조차 동조할 수 없었던, 그의 세대에서 수명이 끝나버린 신념이었던 셈입니다.
이보다는 사전은 말을 비추는 거울이고, 말을 바르게 하는 귀감이라는 겐보 선생의 '가가미론'이 더 사전에는 어울리는 신념이자 이론임에는 분명해 보였습니다. 이 이론을 관철하기 위해 평생 145만 개나 되는 용례를 모은 겐보 선생의 실천력 역시 임기응변과 재미있는 말을 지어내는데 그쳤던 야마다보다 훨씬 사전에 어울렸고요.
하지만 단지 '재미있는 해설이 있다' 며 신메이카이 사전 쪽이 더 인기를 끈다니 좀 억울한 느낌도 듭니다. 그 '재미있는 해설'도 아래와 같은 것들인데, 재미 측면에서는 나쁘지 않고 나름대로 문명 비판적인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저는 이렇게 주관적인 해설이 쓰인 사전을 구입하고 싶지는 않네요.
연애(愛) : 특정한 이성에게 특별한 애정을 품고 둘만이 함께 있고 싶으며 가능하다면 합체하고 싶은 생각을 갖지만 평소에는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아 마음이 몹시 괴로운 (가끔 이루어져 환희하는 상태. - 신메이카이 국어사전 제3판
공약(公約) : 정부정당 등 공적인 위치에 있는 자가 세상 사람들에게 약속하는 일. 또한 그 약속. [금방 깨지는 것에 비유된다]
정계(政界) : [불합리와 금권이 행세하는] 정치가들의 사회. - 신메이카이 국어사전 제3판
부락(部落) 여러 채의 농가. 어가 등이 한 덩어리로 뭉쳐 있는 곳. [협의로는 부당하게 차별당하고 박해받은 일부 사람들의 부락을 가리킨다. 이런 편견은 하루빨리 없애는 것이 바람직하다] - 신메이카이 국어사전 제2판
그래서 제 별점은 2점. 기대와 전혀 달랐을 뿐 아니라, 내용에 동조하기 힘들어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구태여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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