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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7

인간증발 - 레나 모제, 스테판 르멜 / 이주영 : 별점 2점

인간증발 - 4점
레나 모제 지음, 스테판 르멜 사진, 이주영 옮김/책세상

1990년대 중반 이후 일본에서는 매년 10만명이 실종되고, 이 중 85000명이 스스로 사라진 사람들이라는 충격적 전제로부터 시작된 프랑스 작가의 논픽션. 다양한 사람들과의 인터뷰 및 현장 취재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책 소개가 아주 흥미로왔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여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기대와는 좀 많이 달라요. 우선 "인간 증발"에 대해 다루고는 있지만 직접 인터뷰나 취재가 가능했던 특정 사례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소문이나 저자의 추측에 의지하지 않는 것은 좋아요. 허나 큰 빚, 야쿠자의 협박 같은 것도 아니고 그냥 회사나 학교에서 실수를 저질러서 혹은 오래전부터 짝사랑했다는 남편 직장 사장의 고백을 받아서 라는 식으로 증발 이유가 뜬금없고 황당한 것이 많아서 당황스러웠어요. 그나마 이 정도면 드라마라도 있지만... 정말 뜬금없이 갑작스럽게 사라진 사례의 경우는 정말이지 와 닿지 않았습니다.
또 스스로 증발을 택한 것이 아니라 어쩌다 보니 낙오자가 된 경우는 같은 레벨로 설명하면 안될텐데 좀 의아했습니다. <<마키오의 고백, 증발 65년>>은 가난과 학대로 집을 나와 떠돌던 마키오의 이야기인데 이건 스스로 택한 증발이라고 보기는 어려우니까요. 마찬가지로 "부락민"이 차별받는다는 언급은 그 차별 때문에 증발한 것이 아니므로 사족에 불과했고요.
그 외 자살자에 대한 이야기나, 실종자를 찾는 탐정들 인터뷰, 사라진 가족이 북한에 갔을 것이라 믿는 어떤 가족의 이야기들도 주제에 적합한 이야기로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의 핵심은 인간 증발이 아닙니다. 모든 취재와 인터뷰는 결국 "일본인은 체면이 중요하며 조직 내에서의 관계가 중요하다. 체면을 잃고 수치심을 느끼게 되면 다른 해결책이 없다."는 일본만의 특이성을 설명하기 위한 목적이 더 크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저자의 주장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책 안에서 딱히 설득력 있게 설명되지 않습니다. 나름 근거로 삼기 위하여 독특한 일본만의 사회, 문화를 보여주기 위한 이야기에 적지 않은 분량이 할애되고 있는데 - <<지옥의 캠프>>, <<오타쿠의 성지>>, <<토요타 시, 떠나거나 병들거나 미치거나>> 등 - 너무 억지스러웠어요. 일본 사람들은 이상하다! 그런데? 그 다음이 없는거죠. 
정말 저자의 주장이 맞다고 이야기하려면 이러한 일본만의 특수한 문화 소개 후 이것 때문에 증발한 사람의 사례를 연결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도 못했고, 증발의 원인이 저자의 주장 때문이 맞는지도 이 책에 실린 내용으로 파악하기는 어려워요. 여러모로 프랑스인이 통역을 써 가며 취재한 한계가 느껴졌습니다.

물론 기대에 값하는 부분이 없지는 않습니다. 증발이라는 말이 몸과 함께 과거를 씻어내고자 했던 도망자들이 온천을 찾은 것에서 유래했다는 것은 처음 알았네요. 흔하게 이런저런 작품에서 많이 보아왔던, 회사에서 잘렸지만 출근하는 척을 하다가 결국 증발한 이야기가 상당히 많아서 놀라왔으며 탐정에게 의뢰하여 증발자를 찾았지만 가족이 재회를 거부한다던가, 인생 낙오자들이 후쿠시마에서 쓰레기 치우는 일을 하게 된다던가 하는 등의 이야기는 상당히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인간의 밑바닥을 볼 수 있는 기회라 물론 생각했는데 여러모로 실망스럽네요. 개인적인 문제로 야반 도주나 증발을 기도하는 사람들의 처절한 모습을 보려면 차라리 <<사채꾼 우시지마>> 를 보는게 나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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