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4 - 미카미 엔 지음, 최고은 옮김/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고서 전문 헌책방 비블리아를 무대로 한 연작 옴니버스 추리 단편집의 네번째 권.
다른 시리즈와는 다르게 책 한권이 하나의 긴 호흡으로 이어지는 것이 특이했던 작품입니다. 프롤로그, 에필로그 및 크게 세개의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은 동일하지만 세개의 단락이 하나하나 독립적인 이야기가 아니거든요. 전부 에도가와 란포 매니아 가야마씨의 내연녀 기시로 게이코가 자신이 물려받은 소장품을 비블리아에 파는 대신, 그가 남긴 금고를 열어달라는 의뢰를 받아 해결해 주는 큰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는, 어떻게 보면 한권짜리 긴 장편같은 느낌이 드는 그런 이야기였습니다.
각 단락별로 짧게 소개해 드리자면, 첫번째 단락인 <외딴섬 악마>는 의뢰에 대해 소개되는 것이 주요한 내용입니다. 도입부 성격이라 당연히 추리적인 요소는 거의 없으며, 고작해야 의뢰인 기시로 게이코가 시오리코를 테스트하는 것이 전부에요. 셜록 홈즈 단편에서 서두에 홈즈가 의뢰인을 추리해내는 추리쇼를 보여주는 것과 같은 느낌이랄까요?
문제는 테스트가 커버를 씌워 놓은 란포의 작품 초판본을 맞춰보라는 것이라 일반 추리물로 보기 어렵다는 점이죠. 주어진 단서를 가지고 결론을 이끌어 낸다는 점에서는 추리물이지만 일반인은 작중 고우라의 반응 정도만 가능할 뿐,. 고서 전문가 외에는 해결이 불가능한 것이니까요. 당연히 시오리코는 쉽게 맞춰 버리기는 합니다만.
두번째 단락 <소년 탐정단>은 금고를 열기 위해 필요한 열쇠를 내연남인 가야마씨 본가에서 찾는 내용.
<소년 탐정단>의 이야기들과 흡사한 보물 찾기가 펼쳐진다는 점에서, 소개되는 책과 본편 내용이 비슷하게 일치하는 다른 <비블리아> 시리즈 단편과 유사합니다. 3권에서 시오리코와 문제가 있었던 고서당 히토리 서방의 주인과 가야마 나오미에 얽힌 소소한 이야기를 해결해 주는 일상계스러운 내용도 나쁘지 않았기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오리코씨가 활약하는 부분은 거의 없다는 것이 단점이네요. 가야마 나오미를 도발한 뒤 보물이 어디 있는지 찾게 만든다는, 홈즈 시리즈인 <보헤미아의 스캔들>과 동일한 트릭이 사용될 뿐 특별한 추리가 선보이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더 중요한 초판본이 따로 숨겨져 있었다는 반전이 있기는 한데 특별하다고 생각되지는 않은 정도고요.
마지막 단락인 <오시에와 여행하는 남자>는 금고를 여는 세가지 장벽 중 마지막 남은 하나인 히라가나 암호를 맞추는 트릭이 핵심입니다. 또 시오리코의 어머니 지에코가 전면에 등장하여 "과연 금고에 뭐가 들었을지?"를 주제로 시오리코의 승부를 벌이는 내용이라 여러모로 볼거리가 많았어요.
무엇보다도 가야마씨 부친의 과거 직업과 <오시에와 여행하는 남자> 원고에 얽혔던 사건을 엮어 이만큼이나 픽션을 짜 맞춘 것도 대단한 능력이라 생각되기도 합니다. 실제로 그랬다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은 추리 애호가로서 당연한 일이겠죠. 가야마씨가 어떻게 썼을지도 좀 궁금해지기도 하고요.
하지만 앞선 단락들 - 특히 첫 단락과 - 과 동일한 단점을 가지고 있는데 바로 일반 추리물로 보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란포의 데뷰작 <2전 동화>에 사용된 소품 및 암호, 그리고 란포가 초판 발행 시 범했던 실수까지 인용한 란포 매니아, 아니 란포광(狂)을 위한 트릭이거든요.
또 제가 싫어하는 시노카와 지에코가 실제로 등장해서 의도를 드러낸다는 내용은 역시나 마음에 들지 않네요. 시오리코를 자신의 길로 유혹하기 위한 의도는 충분히 설득력이 있기는 합니다. 문제는 완벽한 최종 보스로 그려진 것에 비하면 계획이 너무 즉흥적이고 치밀하지 못하다는 것이죠. 이럴 거였으면 본인이 금고를 연 뒤 원고를 갖고 도망치는게 시오리코를 더 자극하는 방법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란포 작품들과 함께 흘러가는 이야기는 추리소설 애호가로서 즐겁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 시리즈 최초로 주요 등장 작품을 다 읽은 것은 처음이라 더욱 반갑기도 했고요. 허나 추리적으로는 건질게 너무나 없기에 감점합니다. 비블리아 고서당 시리즈를 좋아하신다면 놓치지 말으셔야 겠지만 단품으로서의 완성도는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덧 1 : 제가 가지고 있는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1,2,3에 <오시에와 여행하는 남자>가 <누름꽃과 여행하는 남자>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네요. 읽을 당시에는 그렇게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었죠. 마침 시오리코씨가 극찬한만큼 다시 한번 읽어보았는데 역시나, 딱히 대단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네요. 지금 읽기에는 너무 뻔한게 아닌가 싶거든요. 어떤 점이 그렇게나 좋았을까요? 참으로 궁금해집니다.
덧 2 : 제가 가지고 있는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1,2,3 역시 절판되었네요.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겠죠?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