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2 - 미카미 엔 지음, 최고은 옮김/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고서 전문 헌책방 비블리아를 무대로 펼쳐지는 연작 옴니버스 추리 단편집.
세편의 이야기가 실려있는데, 두편은 중학생 소녀의 독후감이나 헌책 출장 감정과 같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일상적인 소재를 그리고 있는 전형적인 일상계입니다. 마지막 이야기도 과거의 시오리코씨 어머니와 수백만엔에 이르는 책의 도난 사건이 얽힌 이야기는 단순 일상계로 보기 어렵지만, 현재 시점의 이야기는 책을 팔려고 내 놓은 뒤 사라진 손님을 찾아 나서는 일상계 이야기라는 것은 동일합니다. 이 정도면 완벽한 일상계 추리물로 보아도 무방하겠죠.
개인적으로는 일상계 추리물을 좋아하고, 독서 역시 좋아하기 때문에 즐겁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전 리뷰에서 쓴 대로, 시오리코씨 어머니에 얽힌 이야기는 구태여 등장하지 않는 것이 훨씬 나았을겁니다. 악의 최종보스 느낌인데 작품과는 영 어울리지 않아 보이거든요. 책을 좋아하는 미녀 시오리코씨, 그녀를 흠모하는 근육 알바 고우라 다이스케의 순진무구한 사랑 이야기와 더불어 그들 주변, 동네의 소소한 책 관련 사건으로 가득한게 훨씬 좋을 것 같네요.
다른 시리즈에 비하면 추리적으로는 건질게 별로 없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첫번째 이야기는 시오리코씨가 당사자 중 한명이기에 추리라고 부르기에도 애매하고, 두번째 이야기는 시오리코씨가 책을 확인하지 못했다는 실수가 더 크게 다가오기 때문이에요. 마지막 이야기는 추리만 놓고보면 가장 괜찮기는 한데 앞서 이야기한대로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이야기였고 말이죠.
덧붙여, 시리즈 다른 편들과는 다르게 등장하는 책들 중 딱히 읽고싶은 마음이 든 책이 없다는 점, 그리고 책의 완성도는 좋지만 각 단락별로 추가된 일러스트는 전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책과 어울리는 것 같지 않은 점도 조금 실망한 부분이에요.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재미만 놓고 보면 나쁘지는 않지만 아주 좋지도 않은, 뭐 그런 느낌이랄까요. 그래도 "비블리아 고서당" 시리즈 중 한권으로는 충분히 읽을만 합니다.
각 에피소드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앤서니 버지스 <시계태엽 오렌지>
1권에서도 등장했었던 고스가 나오가 자신의 똑똑한 여동생 유이가 쓴 <시계태엽 오렌지> 독후감으로 생긴 문제를 고우라에게 의논하며 벌어지는 이야기. 독후감으로 생긴 문제라니! 책 관련 추리 소설 중 이 정도까지 사건성을 낮춘 일상계가 있었을까요? 여튼, 소재는 정말이지 참신했습니다.
<시계태엽 오렌지>가 영화로 잘 알려진 내용은 "불완전판"이며, 원래는 알렉스가 개과천선하여 과거의 삶과 결별하고 새롭게 시작하려 한다는 결말이 "완전판"으로 존재한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으며, 이 사실이 내용과 잘 어울리는 전개도 아주아주 좋았어요.
그러나 독후감은 상당히 잘 쓴 내용으로 큰 문제는 없어보이는데 외려 주위의 설레발이 너무 심한게 아닌가 싶더군요. 원칙적으로는 중학생이 <시계태엽 오렌지>를 읽은 것 부터가 문제가 아닌가 싶은데 왜 그런건 지적하지 않는지 잘 모르겠고 말이죠.
무엇보다도 사건의 진상을 밝혀나가는 과정이 치밀하고 괜찮기는 하나 결곡 원본은 시오리코씨가 썼다는 일종의 반전 때문에 추리적으로는 뭐라 이야기할 거리가 없어요. 결말을 알고 나서 단서를 짜맞추는 방식과 다를게 없으니 말이죠.
때문에 별점은 3점입니다. 일상계의 왕도를 걷는 점에서는 별점 4점도 충분하지만 추리적 요소가 약해 약간 감점합니다.
후쿠다 데이치 <명언수필 샐러리맨>
고우라 다이스케가 대학교 1학년때까지 사귀었던 옛 동창 아키호로부터, 그녀의 돌아가신 부친의 수집 도서 정리를 의뢰받은 뒤의 이야기.
고우라의 과거사, 그리고 현재 그의 마음이 잘 드러나는 푸근한 이야기로, 첫 시작에서 비블리아 고서당으로 팩스와 전화가 온 사실과 아키호가 출장 감정을 의뢰한 이유가 연결되는 치밀한 구성도 괜찮았던 작품입니다.
알 수 없는 가족간의 사랑이라는 주제와 그것을 드러내는 묘사들, 그리고 후쿠다 데이치가 유명작가 시바 료타로의 본명으로 <명언수필 샐러리맨>은 성공 전에 발표한 책이라는 책 관련 잡다구레한 지식도 좋았고요.
그러나 내용에는 여러모로 문제가 많아서 아쉽네요. 일단 아무리 엿듣는 사람이 많았고, 부녀가 만날 때마다 싸우는 등 복잡한 가정 사정이 있었다지만 귀중한 책을 몰래 물려주려 했다는 설정이 전혀 와닿지 않았거든요. 이렇게 물려줘봤자 받는 사람이 그 가치를 영원히 알 수 없다면 이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고요.
무엇보다도 이 에피소드가 사건으로 성립하게 된 결정적 이유가 출장 감정을 나선 시오리코가 귀중한 책을 놓쳤다는 것인데, 큰 문제입니다. 아팠다는 설정은 있지만 그래도 그간 보여주었던 책에 관련해서는 너무나 완벽한 캐릭터성이 무너져 버렸으니 말이죠. 감기로 인해 시오리코씨는 출장 감정을 나서지 않고 고우라에게 원격으로 지시했기 때문에 책을 놓쳤다... 라는 식으로 전개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군요. 때문에 별점은 2점입니다.
아시즈카 후지오
시오리코씨의 어머니 이야기가 첫 등장하는 에피소드.
일단은 시오리코씨의 어머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설명하기 위한 목적에는 충분히 부합하는 이야기입니다. 수상한 손님이 판매를 의뢰한 책만 가지고 주소를 짐작하여 찾아오는 부분에서 그녀의 뛰어난 추리력을 알려주며, 이후 깨우친 진상을 가지고 협박하여 손에 넣기 어려웠던 휘귀본을 입수한다는 부분에서는 사악함을 알려주기 때문이죠. 아울러 "선의의 제삼자"가 되기 위한 교묘한 장치, 즉 장물인 <최후의 세계대전>에 2,000엔이라는 가격표를 붙여 책을 판매, 구입한 것에 대해서는 법적 처벌이 없게끔 안배하는 "악마의 술책" 역시도 돋보였어요.
개인적으로는 후지코 후지오라는 만화가를 좋아하기에 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허나 앞서 이야기했듯이 시오리코 씨의 어머니가 이렇게 넘을 수 없는 산과 같은, 그야말로 최종보스로 등장해야 하는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긴장감을 높이기 위한 장치치고는 너무 거창하잖아요?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이 훨씬 마음에 들기도 하고요. 별점은 2.5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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