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황소연 옮김/북로드 |
전직 미식축구 선수였던 에이머스 데커는 시합 중 큰 충격을 받고 죽다 살아난 후, 모든 것을 기억하게 되는 특별한 능력을 지니게 된다. 그 뒤 경찰로 변신하여 이 능력을 이용해 많은 범죄를 해결해 나가지만 아내와 딸, 처남이 처참하게 살해당한 후 거의 폐인이 되어 버린다. 하지만 가족이 살해당하고 15개월 후, 그는 범인이 자수했다는 이야기를 옛 파트너로부터 전해 듣는데...
최근 잘 나간다는 작가 데이비드 발다치의 작품. 소문만 들었지 읽어본 건 처음이네요.
천재 탐정과 천재 범죄자의 대결을 그린 작품은 쎄고 쎘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이 특이한 건 탐정과 범죄자가 천재인 이유는 후천적인 서번트 증후군 능력이며, 이는 20년 전 둘에게 닥쳤던 커다란 충격과 관련이 있다는 점입니다. 이 능력을 이용하여 범죄자 와이트를 추적해 나가는 에이머스 데커의 추리 과정이 재미의 핵심 요소고요. '모든 것을 기억하는' 데커의 두뇌가 여러가지 상황과 단서를 토대로 범인이 내 건 수수께끼를 하나씩 해결해 가며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과정이 적절한 복선과 함께 설득력으로 묘사되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 범인의 이상한 행동을 분석하고, 여러가지 수사를 통해 범인의 탈출구와 이동경로를 발견하는 장면이 대표적이에요. 또 이를 뒷받침하는 CCTV 및 각종 감식, 과학 수사와 같은 설정들과 현실을 색깔, 숫자와 함께 기억하고 인지하는 데커의 능력에 대한 묘사도 훌륭합니다.
그러나 복선이 잘 짜여져 있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작위적인 내용도 많아요. 예를 들어 데비의 할아버지가 방공호에 대해 데비에게 알려주었다는건 완전히 우연에 불과합니다. 차라리 오래된 설계 도면을 뒤져서 알아냈다는게 나았을 거에요. 그리고 냉장고 안에 숨어 있을 수 있다가 철조망 구멍으로 빠져나갔다는 처음의 추리도 가능한데 비밀 통로를 통해 빠져나갔다는 수수께끼를 배치한 이유도 잘 모르겠습니다. 데비에게 수사가 쏠리게끔 하려는 의도였다면 사물함 속 노트의 그림으로 충분한데 말이죠.
또 데커의 처남과 아내, 딸을 잔혹하게 살해한 뒤 1년 이상 지난, 15개월 후 시점에 맨스필드 고등학교에서 총기 난사 사건을 일으킨 이유도 설명되지 않아서 답답했어요. 데커와 게임을 하려고 했다면 첫 살인 시점에서부터 게임이 시작되었어야죠. 이 사이에 데커가 도시를 뜨거나, 자살이라도 했으면 어쩔 셈이었을까요? 게다가 레오폴드가 구태여 자수를 하여 존재를 드러낸 이유도 이해불가에요. 범행의 동기를 직접 드러냈고 세븐 일레븐이라는 단서를 남긴 것 외에는 레오폴드의 자수, 석방과 실종과 이 게임은 무관하기 때문입니다. 동기와 단서는 게임을 위해 필요했지만 직접 모습을 드러낼 필요는 없었죠. 다른 단서들처럼 메시지로 남겨도 충분하니까요. 또 처음에 세븐 일레븐이 편의점이 아니라 과거 인지연구소 주소를 의미한다는 걸 미리 깨닫지 못한 것도 어설퍼 보였고요. 레오폴드의 존재는 마지막 대결에서 내분을 일으켜 자멸하게 만들기 위한 장치로 밖에는 여겨지지 않는데 이 마지막 장면은 굉장히 작위적이고 뻔해서 실망스러웠습니다.
아울러 범인 와이트를 너무 전능한 것으로 묘사한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기억을 잘 한다고 해서 천재 범죄자가 되는건 아닌데 말이죠. 게다가 변장의 천재라는건 너무 억지스러웠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큰 문제는 동기에요. 범인이 에이머스 데커의 일가족을 죽이고, 고등학교에서도 여러명을 죽이고 데커와 게임을 벌이는 과정만 보면 데커를 뼈저르게 증오하고 있다는걸 잘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증오의 원인이 둘이 함께 지냈던 연구소에서의 사소한 행동 -
와이트는 경찰관과 미식축구 선수들이 포함된 그룹에게 폭행과 강간을 당했는데, 미식 축구 선수 출신인 에이머스 데커가 장래 경찰관이 되겠다고 해서 그를 증오하게 되었다 - 때문이었다? 아내 성폭행 사건에서 범인들이 아니라 신고하지 않았던 목격자들을 죽여나간다는 희대의 쓰레기 <<살인 곱하기 다섯>> 급으로 어처구니가 없더라고요. 증오심을 품어야 하는 대상의 번지수가 틀려도 너무 많이 틀렸잖아요. 이렇게 잔인하고 방대한 범행을 저지를 만한 일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공감이 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아주 빼어나지는 않고 단점도 많아서 감점합니다. 허나 책장을 넘기게 만드는 재미는 괜찮았던만큼 더운 여름날 한가롭게 읽기 적당한 킬링타임용 소설을 원하신다면 추천해 드리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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