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탐식가들 - 김정호 지음/따비 |
조선에서 음식을 좋아했던 유명인들과 그들이 좋아했던 음식들, 관련된 다양한 일화들을 모아 정리한 음식, 미식, 미시사 서적.
조선 시대 선비들이 음식을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선비에게는 소박하고 정갈한 밥상이면 충분하다는 이덕무, 이익, 정약용 부류, 그리고 지금도 미식가로 유명하며 미식과 탐식을 즐겼다는 허균, 서거정 부류가 있습니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탐식가' 중심의 이야기들을 주로 풀어내고 있죠. 9장에 후기까지 3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으로 이런저런 이야기가 많이 실려있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앞부분, 1장에서 3장까지는 소고기 관련 이야기인데 이 중에서는 소고기는 금령이 내려졌지만 사대부들은 쉬쉬하면서 찾아먹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귀하고 맛있다고 알려진 '우심적' 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소의 염통을 양념 간장을 발라 구워 먹는 것인데 왕희지에게 대접했다는 고사 때문에 귀한 사람에게 대접하는 음식으로 널리 알려져 많이 먹었다고 하네요. 유래도 그럴듯하지만 맛도 괜찮을 듯 한데 왜 지금은 먹지 않는건지 궁금해집니다.
조선 시대에는 돼지고기보다 소고기가 비싼 음식이었다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초식동물인 소와는 다르게 잡식성인 돼지는 먹이 문제로 보편적인 육류로 자리잡지 못한 탓으로 돼지고기가 한 근에 1전 2푼, 소고기는 한 근에 7, 8 푼이었다고 합니다. 1푼을 대충 만원이라고 치면 소고기 600g에 7~8만원 선이니 괜찮은 가격이군요.
또 이렇게 소고기가 나름 널리 퍼졌기 때문인지 음력 10월 초하룻날은 소고기를 구워먹는 날이었다고 합니다. 초콜릿이나 사탕을 주는 날도 좋지만 이런 우리의 전통도 계속 이어 가면 좋을 것 같아요. 소고기로 유명한 횡성군에서 시작하면 딱이지 않을까요?
4장에서 알 수 있는 당시의 개고기 사랑도 아주 인상적입니다. 정약용이 개고기 애호가로 몸소 레시피를 편지에 써 보낼 정도였다네요. '채소밭에 파가 있고 방에 식초가 있으면 이제 개를 잡을 차례입니다.'로 편지가 마무리되는데 정말 좋아한다는게 절절히 느껴집니다. 심지어 왕실 연회에도 올랐다니 말 다했죠.
그리고 9장에서의 왜관의 승기악탕을 좋아했던 조선 사대부들과 이것이 현재의 스키야키로 이어지는 역사도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줍니다. 저는 여태까지 이게 "스키야키"인 줄 알았는데 원래 삼나무 상자에 끓여먹는 '스기야키' 라고 하니 상당히 의외였어요.
원래 조선에서 '승기악탕'은 맛이 뛰어난 음식을 나타내는 별칭으로 '도미면' 이 그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관 연회에서 스기야키가 조선 관리들에게 대접된 후, 빙허각 이씨의 책 <<규합총서>> 에서 왜관음식으로 닭찜 '승기악탕'이 소개되며, 한글학회의 '큰사전'에서 '승기악탕'은 도미면과 스기야키의 조리법이 합쳐진 새로운 요리로 정의되기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최근 '편백찜' 이라고 편백나무 상자에 숙주를 깔고 그 위에 얇게 썬 소고기를 얹어 쪄 먹는 음식이 유행하는데 이왕 프랜차이즈 사업을 벌일거라면 조선 최고의 음식이었던 '승기악탕' 을 현대식으로 만들었다! 고 하면서 홍보하는게 어땠을까 싶습니다. 레시피를 조금 바꾸던가, 도미면같이 생선을 재료로 쓰는 메뉴를 추가해 보아도 좋았을테고요. 괜찮아 보이지 않나요?
이렇게 좋은 내용이 많지만 글이 좀 정리가 안된 느낌이 강해서 담고있는 내용만큼이나 재미있게 읽히지 않는다는 문제는 있습니다. 조금 더 깔끔하게 정리했더라면 좋았을텐데 아쉬워요.
그래도 별점은 3점. 재미도 있고 자료적 가치도 높습니다. 조선 시대 식문화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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