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장조의 살인 - 몰리 토고브 지음, 이순영 옮김/살림 |
어느 날 뒤셀도르프 경찰청의 헤르만 프라이스 경위에게 위대한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이 'A음이 계속 들려 견딜 수 없다'며 사건을 의뢰한다. 프라이스 경위의 고독한 수사의 와중에 슈만의 귀중한 악보가 도난당하며, 범인으로 의심되던 슈만의 일대기를 쓰던 음악평론가 게오르크 아델만이 살해된채 발견되어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위대한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과 그의 아내 클라라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팩션입니다. 슈만의 일생에서의 역사속 사실인 1854년 2월 라인강 투신 사건과 그 후 정신병원에 수용되는 실존하는 일화를 토대로 왜 위대한 작곡가 슈만이 정신병원에 수용되어야만 했는가? 와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일단 읽는 재미는 쏠쏠했습니다. 자세한 고증을 바탕으로 한 디테일한 묘사는 팩션이라는 쟝르명에 충분히 값하고 있을 뿐 아니라 당대 유명 음악인들이 차례로 등장하는 것은 왠지 모르게 친숙하게 느껴지기까지 했고요. 또한 나름의 복잡한 과거사와 자신만의 철학을 지닌 음악 애호가 탐정인 주인공 프라이스 경위의 캐릭터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비교하자면 "애덤 댈그리쉬" 경부 같은 캐릭터가 아닐까 싶더군요. 예술적인 감수성이나 젠틀맨적인 이미지, 그리고 공직자로서의 자세 같은 부분에서 유사함을 느꼈습니다. 독신이라는 것도 그러하고요. (물론 프라이스 경위는 여자친구? 가 있긴 합니다만)
그러나 추리적으로 크게 특기할 부분은 없습니다. 책의 홍보도 "미스터리 팩션"이라고 하는 것이 문제가 될 만큼 추리적인 부분은 많이많이 부족하거든요. 이 작품속에서 트릭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슈만에게만 들리는 A음" 밖에는 없는데 그나마도 솔직히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트릭대로라면 당대 유명 음악인들이 거쳐가던 슈만의 집에서 과연 그러한 장치적 트릭을 남모르게 지속하는 것이 가능했을까? 라는 의문이 생기거든요. 게다가 현실적으로 이 트릭을 "지속가능한" 수단이 없다는 점에서도 설득력이 부족했고요. 작가는 이 트릭을 슈만의 "절대음감" 에 딱 맞는 트릭이라고 주장하고는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좀 아니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음악평론가 아델만 살인사건의 경우는 추리소설이라고 부르기가 민망할 정도로 단서와 정보의 제공이 공정하지 않기에 더더욱 실망스러웠고요. 동기와 수법에 대한 설명은 충분한 편이지만 그 외에는 트릭도, 단서도 없습니다... 공연히 이야기를 복잡하게 만들기 위한 얽히고 섥힌 인간관계만 있을 뿐이죠. 덕분에 우리의 프라이스 경위만 좌충우돌 고생하고 애꿎은 독자만 지루하게 페이지를 넘기게 만듭니다.
게다가 결말도 사실 썩 개운치 않은 편입니다. 진범이 누구인가? 에 대한 모호함은 그렇다 치더라도, 진정한 악당은 그대로 남겨진채 결국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거든요. 결말이 참으로! 정말로! 시시했다는 것이 맞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네요. 예정대로 슈만은 정신병원으로 가고, 다른 사람들은 다 제 갈길을 가는 것으로 끝나버리니 이거 참... 어차피 애시당초 이야기의 소재 자체가 별로 드라마틱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겠지만 힘이 쫙 빠지는 기분이 들 정도였어요. 역사속 인물들에 대한 가공의 결말을 만들 수 없었던 작가의 고충은 이해할 수 있지만 이렇게 끝낼 것이었다면 역사를 소설로 끌어들이지 말고 차라리 역사속 인물들은 들러리로 등장하는 완전한 허구의 이야기를 창작하던가, 아니면 보다 대담한 결말 - 프라이스 경위와 클라라 슈만의 작당으로 병원으로 끌려간 슈만은 사실은 다른 사람이었다!(조율사라던가, 클라라의 아버지 비크라던가 뭐 그런 식으로요) 라는 전개 - 로 마무리하는 편이 더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결론내리자면, 제목에서 느껴지는 뉘앙스와 작품 초-중반의 분위기 덕분에 정통 팩션으로서의 기대를 한껏 갖게 만들지만 결국 제가 기대했던대로의 작품이 아니라 실망스러웠습니다. 별점은 2점으로, 천재 음악가에 대한 색다른 해석을 즐기고자 하는 분들에게는 좋은 선택이겠지만 저같은 추리 애호가에게는 좀 어울리지 않는 작품이라 생각되네요.
하우미스터리와 도서출판 살림의 공동 이벤트에 당첨되어 읽게 된 책이라 좀 죄송스럽긴 한데 뭐 리뷰는 공정해야 하니까요. 그래도 독서의 기회를 제공해 주신 하우미스터리와 도서출판 살림 관계자 여러분께는 이 자리를 빌어 다시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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