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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6

미스터리 클락 - 기시 유스케 / 이선희 : 별점 1.5점

 

미스터리 클락 - 4점
기시 유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창해

<<아래 리뷰에는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시 유스케의 에노모토 케이 시리즈 단편집. 모두 4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철저하게 '밀실'을 테마로 삼고 있는, 제대로 된 정통 본격 추리 단편들입니다.

그러나 재미도 없고, 대체로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본격 추리물임에도 독자가 추리할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다는 단점이 가장 큽니다. 그 중에서도 최악은 첫 번째 수록작인 <<완만한 자살>>입니다. 꽁꽁 잠긴 밀실 안에서 총을 입에 대고 쏘아 죽은 시체가 발견됩니다. 에노모토 케이가 밝혀낸 진상은 범인이 실제 총과 똑같이 생긴 물총 안에 위스키를 넣고 입 안에 쏘아 넣는 모습을 보여준 뒤, 진짜 총으로 바꿔치기 해서 일종의 자살을 유도했다는 거지요. 일단 공정성 면에서는 빵점입니다. 독자에게 제공되는 단서는 피해자가 알코올 중독이었다는 것, 그리고 방 안에 감돌았던 위스키 향기밖에는 없거든요. 이 정도로 저 진상을 추리해는건 불가능합니다. 게다가 아무리 소설이라고 해도 그렇지, 진짜 총과 똑같이 생긴 물총이라는 트릭은 너무 했어요. 아주 오래 전 "거꾸로 들고 쏘면 되는 총"이 등장하는 이현세의 망작이 있었는데, 이 트릭은 그보다도 엉망입니다.
<<거울 나라의 살인>>에서는 미로의 여러 장치들과 편광 유리를 활용하여 CCTV를 속이는 트릭, <<미스터리 클락>>에서는 정교하게 시계에 덧대어 붙인 장치 트릭이 등장하는데, 이 작품들 역시 정보 제공이 공정하지 않습니다. <<거울 나라의 살인>>에서 미로의 인형 얼굴이 볼록한지, 오목한지라던가 CCTV의 위치와 거울과의 관계, 그리고 <<미스터리 클락>>에서 시계에 덧붙인 장치는 글로는 트릭을 알아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시각 정보가 핵심인 탓입니다. 소설보다는 영상물이나 만화에 사용되었어야 할 트릭이에요. 독자가 추리할 수 있는 여지는 없습니다. 이런 장치 트릭들은 너무 정교해서 범인 의도대로 잘 동작했을 것으로 보기도 힘들고요.

또 트릭에만 집중한 탓에 이야기들의 설득력도 턱없이 부족하다는 문제도 큽니다. 예를 들어 <<거울 나라의 살인>>에서는 미술관 관장이 살해당한건 완벽한 밀실로 보였지만, 경찰은 에노모토 케이가 밀실을 뚫고 잠입했다는걸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경찰은 "계획살인이었다면, 이 세상 어느 바보가 자기 외에 범행이 불가능한 상황을 만들고 사람을 죽이겠나?"라며 에노모토 케이 대신 다른 범인을 찾습니다! 하지만 이건 말도 안되는 주장입니다. 범인 에노모토 케이가 CCTV가 숨겨져 있어서 자기가 찍히는 줄 모르고 불가능 범죄를 저질렀다고 보는게 당연합니다. 당장 에노모토 케이를 체포해야 했어요.
<<미스터리 클락>>은 범인 도키자네가 직접 범인을 잡겠다며 참석자들을 협박한다는 전개 자체는 그럴싸했습니다만, 동기를 도무지 알 수 없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부유하고 성공한 아내를 남편이 살해하는건 보통 돈과 다른 여자 때문이지요. 그러나 이 이야기 속에서 도키자네는 다른 여자가 있다거나, 돈에 그렇게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아내 레이코는 도키자네를 깊이 사랑하는 것으로 묘사되고요. 사건이 일어날 개연성, 즉 와이더닛 측면에서의 설명이 전무하고 하우더닛후더닛에만 집중했는데 완성도 측면에서 썩 좋은 결과물이라고 보기는 어렵네요.
만화적인 설정과 묘사들이 많은 점도 영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미스터리 클락>에서의 휴대폰 통화도 되지 않는 오지의 저택에서 고가의 시계 순서 맞추기 게임을 한다는 식으로 말이지요. 캐릭터 묘사 역시 문제가 많은 편이에요. <<거울 나라의 살인>>에서의 안면 인식 장애가 있는 앨리스 전문가처럼요. 준코 변호사가 살인 사건이 벌어진 심각한 상황에서 본인의 억지 추리를 말했다가 놀림거리가 되는 역할로만 묘사되는 것도 마찬가지겠지요. 안티 히어로같은 존재인 에노모토 케이의 매력도 제대로 발휘되지 못합니다.

그나마 마지막 수록작 <<콜로서스의 갈고리 발톱>>은 괜찮았습니다. 특히 바다 한 가운데 떠 있는 보트가 일종의 밀실과 같다는 독특한 설정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살해했던 근처 어디에서도 접근하는 사람이나 배는 없었다는게 소나 관측으로 증명되었거든요. 하지만 바닷 속에서 올라오는 것 까지는 탐지할 수 없었던 소나 관측의 헛점과 기압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한 상황을 역이용했던 트릭도 나쁘지 않았어요. 과거 나기사를 동갈치에 찔려 죽였던 것으로 위장했던 사건의 트릭까지 함께 밝혀지는 등 추리적으로 풍성하다는 것도 장점이고요.
하지만 굉장히 특수한 장치 (잠수복)가 필요했다는 점에서 좋은 트릭이었는지는 고개를 갸웃하게 됩니다. 이런 전문적인 장치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면 독자가 풀어낼래야 풀어낼 수 없었던 트릭이니까요. 즉, 독자가 추리할 수 있는 여지가 많지 않다는건 다른 작품들 단점과 비슷합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입니다. 트릭에만 매몰되어 이야기 완성도가 떨어지는데, 그 트릭마저도 별로라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이제 이 시리즈도 그만 읽어봐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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