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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28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 - 미치오 슈스케 / 김윤수 : 별점 3점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 - 6점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윤수 옮김/들녘(코기토)

개와 고양이를 살육해서 다리를 부러뜨려 유기하는 범죄가 연속적으로 발생하던 무더운 여름날, 초등학교 4학년 미치오는 방학식에 등교하지 않은 S에게 준비물 등을 전해주러 S의 집을 찾아가고 S가 목매 죽은 시체를 발견한다. 그러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 앞에서 시체는 사라져 버리고, 거미로 환생한 S의 부탁으로 미치오는 동생 미카와 함께 S의 시체를 찾아내고 사건의 진상을 풀기 위해 나선다.

<주의 : 스포일러 있습니다>

친구 S의 자살사건과 더불어 여러가지 사건들이 독특한 상상력을 토대로 펼쳐지는 작품입니다. 작가의 전작 "섀도우"리뷰에서 tuppence님이 추천도 해 주셨고 네이버 일본 미스터리 즐기기 카페가 뽑은 2009년 미스터리에서 10위를 차지하는 등 다른 곳에서 본 리뷰들도 평이 괜찮았기에 바로 읽게 되었습니다.

작품은 소문대로 정말 무지하게 특이하네요. 초등학교 4학년생인 미치오의 혼란스러운 자아와 시각을 바탕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아이의 상상력이 전면에 배치되는 독특한 환상소설같은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거든요. 그리고 이러한 상상을 디테일한 묘사를 통해 결국 현실이 드러날 수 있도록 복선처럼 단서들을 곳곳에 삽입해 놓은 것도 좋았어요. 사건 없이 이러한 단서만으로도 추리소설적인 흥미를 자아내니까요.

추리적으로도 크게 2개의 사건 - S 자살 사건과 개, 고양이 연쇄 살육유기사건 - 이 펼쳐지며, 이 사건들이 다양한 추리를 통하여 다양한 가설이 계속해서 등장하기 때문에 굉장히 풍성한 느낌이었어요. 또한 가설들마다 단서는 물론 증거와 트릭들도 정교하게 배치해 놓고 있는게 이게 제법입니다. "비누"가 주요한 단서로 등장하는 이유라던가, 다이조 할아버지와 미치오의 관계를 드러내는 여러가지 장치들 등 사건에 관계된 단서들이 잘 짜여져 있거든요. 중간에 등장하는 다이조 할아버지의 과거 어머니의 죽음에 얽힌 이야기도 짤막한 하나의 추리호러물로 보아도 손색없는 완성도의 작품이기도 했고요.

그러나 "미치오"라는 주인공 소년 및 주변인물에 대한 설정은 설득력이 떨어져서 아쉬웠어요. 먼저 미치오부터 이야기하자면, 꼬마아이가 뇌내보정을 통하여 여러가지 곤충이나 동물, 사물과 대화하는 상상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있겠죠. 환생"에 대해 믿는다는 기이한 상상력도 그렇다 치고요. 그러나 초등학교 4학년으로 보기에는 어려울 정도로 머리가 좋다라는 것과 이렇게 머리가 좋은 아이가 자신만의 환상세계에 갖혀 산다는 것은 아무래도 모순으로 보였어요.
그리고 주변인물들도 억지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어머니의 광증과 아버지의 체념은 너무나 극단적인 설정이었고 담임선생, 다이조 할아버지 등 주요 인물들의 과거와 사연 이야기도 쉽게 납득하기는 어려운 내용들이니까요. 물론 저자이름과 주인공 이름이 같고 1인칭이라는 점에서 저자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풀어낸 것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극단적이고 자극적인 설정은 자전적 소설이 아니라면 소설에 맞춰 정리하는게 낫지 않았을까 싶어요.

무엇보다도 마지막 결말은 이해하기 힘드네요. 왜 미치오가 다이조 할아버지를 직접 살해하면서까지 사건의 진상을 왜곡하려 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거든요. 자신이 자살로 내 몬 S에 대한 죄책감? 과연 그것이 할아버지를 살해할 정도로, 그리고 다이키치까지 죽어가면서 실행했어야 할 큰 짐이었는지는 모르겠네요. 아울러 경찰이 백엽상에서의 격투 흔적과 살해된 시체의 상태를 보고도 자살로 판단했을 것이라는 결말은 무책임한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마지막 미치오의 각성과 방화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도 뜬금없어서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미치오 가족에 대한 극단적 설정이 없었다면 그냥 잘 마무리할 수 있었을텐데 이래서야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구나 싶기도 합니다.

주위 분들이 추천하실만한 재미있는 작품이기는 합니다. 추리적으로도 세련되고 잘 짜여진 구성이 마음에 들고요. 그러나 환상소설처럼 짜맞추려는 의도가 지나쳐서 오히려 작위적으로 보이는 부분과 극단적인 몇몇 설정들, 그리고 작품 전체적으로 풍기는 음울한 분위기는 취향이 아니었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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