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 - 이시모치 아사미 지음, 박지현 옮김/살림 |
대학 경음악부 '알코올중독분과회'의 멤버로 술을 좋아해서 친하게 된 대학 동창들이 오랫만에 동창 중 한명인 안도의 가족이 운영하던 초고급 펜션에서 동창회를 갖는다. 그리고 저녁식사 직전 동창회의 리더이기도 한 후시미 료스케는 후배 니이야마를 죽이고 완벽한 밀실 살인을 만들어낸다. 저녁식사 이후까지 모두들 니이야마가 피곤하여 쉬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서서히 의심이 쌓여가고, 후배인 우스이 유카가 합리적인 추리를 통해 서서히 범행을 재현해 나가기 시작하는데...
"네이버 일본 미스터리 즐기기 카페에서 뽑은 2009년 미스터리"에서 17위를 차지한 작품입니다. 사실 이 작가는 예전에 "귀를 막고 밤을 달리다"라는 작품에서 너무 실망이 컸기에 다시 작품을 구해볼 생각은 없었는데 블로그 지인이신 kisnelis님 의 평도 좋고 마침 도서관에도 비치되어 있어서 읽게 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두 가지 독특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주인공 후시미가 완벽한 밀실 트릭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에서 시작하는 도서 추리물이면서도, 뒷 부분에서 밝혀지는 이유 때문에 시간까지 철저히 계산된 계획에 따라 밀실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완벽한 밀실 트릭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그것이 곧바로 밝혀지면 안 되는 상황을 일정 시간, 즉 10시간 동안 유지해야만 하는 것이죠.
두 번째는 이 시간 동안 밀실을 앞에 두고, 제목 그대로 '문이 아직 닫혀 있는 동안' 탐정역인 유카와 후시미가 불꽃 튀는 두뇌 대결을 펼쳐 나간다는 점입니다. 유카는 "현상"을 지속적으로 관찰하며 방 안과 니이야마의 상태를 추리하고, 후시미는 이러한 추리를 다른 방향으로 돌리면서 첫 번째의 이유, 즉 '밀실 상태를 일정 시간 유지해야 하는 이유'로 인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여론을 조성하려고 애쓰는 대결 구도가 이루어집니다.
도서 추리물에서 탐정과 범인이 두뇌 싸움을 벌이는 작품이 흔하지만, 특정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벌이는 배틀은 자주 접하지 못한 설정이라 굉장히 신선했습니다. 추리 배틀 자체도 완성도가 높고요. 특히 탐정과 범인의 지력이 대등한 수준이라 서로 주고받는 심리전이 흥미진진했습니다. 주로 유카가 먼저 논리적인 펀치를 날리는데, 예를 들어 방을 밀실로 만든 이유가 무엇인지, 도어스토퍼를 사용한 이유는 무엇인지, 창밖에서 내부를 확인할 방법은 없는지 등, 합리적이면서도 이야기 전개에 걸맞은 단계별 논리를 선보입니다. 앞부분에 제공되는 단서들, 예컨대 위스키 병이나 니이야마의 시력 등은 독자에게 공정하게 제공되어 독자도 추리에 참여할 수 있게끔 배려된 점도 좋았습니다. 이런 면에서는 "마사토끼"의 만화를 떠올리게 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유카와 다른 동창생들의 발언과 추리가 촉발시키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오는 서스펜스도 상당히 뛰어났습니다.
그러나 단점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이전 작품과 마찬가지로 '동기' 부분에서의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점입니다. 이 작품에서의 동기를 쉽게 설명하자면,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부상 위험이 있는 선수가 월드컵 대표팀에 선발되어 팀에 피해를 주지 못하게 하려고 그 선수를 죽인다'는 이야기와 다름없습니다. 이런 설정은 작가 미쓰하라 유리가 책 뒤에서 해명하고 있지만, 쉽게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우연과 운에 의존하는 전개가 많다는 점도 아쉬웠습니다. 니이야마가 약에 의해 수면 상태에 빠지는 것이 대표적이며, 다른 동창생들의 심리가 후시미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 것 역시 운에 의지한 억지 설정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거든요. 작 중에서 이런 우연을 작가가 스스로 해명하기도 했지만, 차라리 작가가 책 뒤에서 설명한 대로 '심야에 범행을 저지르는 설정'이 훨씬 설득력이 높았을 겁니다. 물론 그런 방식이었다면 소설로서의 재미가 크게 줄어들었겠지만요.
이렇게 단점이 없지는 않으나, 정통 본격 추리소설의 매력을 잘 살려 재미있게 몰입해 읽을 수 있었으며, 번역도 훌륭하고 책의 디자인도 마음에 듭니다.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무엇보다도 이 작품을 통해 이시모치 아사미라는 작가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된게 좋았어요. 앞으로 작품 한두 개만으로 작가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지 말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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