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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23

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 - 이시모치 아사미 / 박지현 : 별점 3점

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 - 6점
이시모치 아사미 지음, 박지현 옮김/살림

대학 경음악부 '알코올중독분과회'의 멤버로 술을 좋아해서 친하게 된 대학 동창들이 오랫만에 동창 중 한명인 안도의 가족이 운영하던 초고급 펜션에서 동창회를 갖는다. 그리고 저녁식사 직전 동창회의 리더이기도 한 후시미 료스케는 후배 니이야마를 죽이고 완벽한 밀실 살인을 만들어낸다. 저녁식사 이후까지 모두들 니이야마가 피곤하여 쉬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서서히 의심이 쌓여가고, 후배인 우스이 유카가 합리적인 추리를 통해 서서히 범행을 재현해 나가기 시작하는데...

"네이버 일본 미스터리 즐기기 카페에서 뽑은 2009년 미스터리"에서 17위를 차지한 작품입니다. 사실 이 작가는 예전에 <귀를 막고 밤을 달리다>라는 작품에서 너무 실망이 컸기에 다시 작품을 구해볼 생각은 없었는데 블로그 지인이신 kisnelis님 의 평도 좋고 마침 도서관에도 비치되어 있어서 읽게 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두가지 특이한 포인트가 있는데 첫번째는 주인공 후시미가 완벽한 밀실 트릭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에서 시작하는 도서추리물이면서도, 뒷부분에서 밝혀지는 이유 때문에 시간까지 꽉 짜여진 철저한 계획에 따라 밀실의 상태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완벽한 밀실 트릭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그것이 곧바로 밝혀지면 안되는 상황을 일정시간동안 - 10시간 동안 - 유지해야만 하는거죠.
그리고 두번째는 이 시간 동안 밀실을 앞에 두고 - 제목 그대로 문이 아직 닫혀있는 동안 - 탐정역의 유카와 후시미가 불꽃튀는 두뇌대결을 펼쳐나가는 것입니다. 유카는 "현상"을 지속적으로 관찰하며 방 안과 니이야마의 상태를 추리하고 후시미는 이러한 추리를 다른 쪽으로 돌리면서 첫번째의 - "밀실 상태를 일정시간 유지해야 하는" 이유때문에 - 자신이 생각한 방향으로 여론을 돌리려 노력하는 대결구도가 이루어지는 것이죠.

일단 도서 추리물에서 탐정과 범인이 두뇌싸움을 벌이는 작품이야 널렸지만 특정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벌이는 배틀은 많이 접해보지 못해서 굉장히 신선했어요. 추리 배틀 자체도 완성도가 높고요. 또 탐정과 범인의 지력이 동일한 수준이라 서로 펀치를 주고받는 과정도 흥미진진했습니다. 주로 유카가 먼저 펀치를 날리는 식인데 예를 들어 방을 밀실로 만든 이유가 무엇인지? 도어스토퍼를 사용한 이유는 무엇인지? 창 밖으로 내부를 확인할 수 없는지? 하는 식으로 합리적이면서도 이야기 전개에 합당하게끔 단계별로 펀치를 날려줍니다. 앞부분의 여러가지 단서들, 위스키 병이라던가 니이야마의 시력 등 단서를 공정하게 전해주기 때문에 독자도 같이 참여할 수 있다는 것도 좋았고 말이죠. 이런 부분은 "마사토끼"의 만화가 연상되기도 했어요. 또 유카와 다른 동창생들의 추리와 발언으로 촉발되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 따르는 서스펜스도 제법이었습니다.

하지만 단점도 있는데 가장 큰 단점은 이전 작품과 동일하게 "동기"부분에서의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점입니다. 이 작품에서의 동기를 이해하기 쉽게 바꿔서 소개한다면 "몸을 막 굴려서 부상위험이 있는 선수가 월드컵 대표팀에 선발되어 팀에 피해를 주는 것을 막기위해 그 선수를 죽인다"는 것하고 똑같은 이야기거든요. 이래서야 책 뒤 해설에서 작가 미쓰하라 유리의 변호가 있긴 하지만 쉽사리 납득하기는 어렵죠.
그리고 우연, 그리고 운에 의한 전개가 많다는 것도 거슬립니다. 니이야마의 약에 의한 수면상태가 대표적일테고 다른 동창생들의 심리가 후시미가 원하는대로 흘러간다는 것도 너무 운이 따르는 억지가 아니었나 싶네요. 작중에서 작가 스스로 해명해놓기는 했지만 몇가지 우연과 운에 의지하느니 차라리 책 뒤 해설에서처럼 "심야"에 범행을 저지르는 것이 훨씬 설득력이 높았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물론 그렇다면 소설로서 성립은 쉽지 않았겠지만요.

정통 본격 추리소설다운 맛이 잘 살아있어서 재미있게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고 번역도 좋았으며 책도 이쁘게 나와서 마음에 들지만 추리소설로서 단점도 명확하다 생각되어 별점은 3점입니다. 무엇보다도 이시모치 아사미라는 작가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이 반가왔습니다. 앞으로 작품 한두개 가지고 작가에 대해 선입견은 가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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