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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31

살해하는 운명카드 - 윤현승 : 별점 3.5점

살해하는 운명카드 - 8점 윤현승 지음/새파란상상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종민은 30대 초반에 이미 십억가까운 빚을 지고 주유소 알바로 살아가는 루저. 그러한 그의 앞에 정체불명의 인물이 나타나 모종의 게임을 제안하며, 게임의 승자가 되면 거액을 준다고 유혹한다. 게임에 참가한 종민과 알 수 없는 다른 4명의 참가자들은 각각 잭 - 킹 - 조커 - 에이스 - 퀸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한장씩의 운명카드를 받아든다. 게임에서 이기려면 운명카드에 있는 운명을 거스르면 된다. 잭 종민의 운명은 "누군가를 살해할 운명!"

이 작품은 불특정한 일련의 사람들을 특정 장소에 모아놓고 펼치는 일종의 "게임" 을 다루고 있는 "폐쇄형 게임 미스터리" 쟝르의 작품입니다. 제가 접해보았던 이런 류의 작품만 해도 한손으로 세기 힘들 정도로 흔한 설정이기도 하죠. 이바닥 고전인<큐브>에서부터 시작해서 <극한추리 콜로세움>, <인사이트 밀>, <크림슨의 미궁>, <페르마의 밀실>, <24시간 7일>, <쏘우 1>, <다우트>, <누가 울새를 죽였나>, <라이어 게임> 등.... 

저는 이런 류의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나 게임이 합리적이고 재미있게 구성되었느냐라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현실적인 설득력은 갖추지 못한 설정인 만큼 게임 쪽에서 확실히 눈길을 사로잡아야 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또 어려우면 안된다... 라는 조건도 충족시켜야 한다는 것이 점에서 어려움이 있습니다. 독자도 같이 게임을 즐기도록 만들어야 하는데 어려운 수학 공식이 난무한다면 일반인이라면 도저히 즐길 방법이 없을테니까요.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이 작품은 충분히 합격점을 줄 만 합니다. 굉장히 간단한 게임이지만 나름의 규칙이 공정하게 잘 짜여져 있다는 점에서 말이죠. 아울러 게임의 규칙을 설명할 때 중요해 보였던 것들 - 언제든 나갈 수 있음 / 상대방에 대해 묻지 말 것 / 운명 카드를 보여주거나 강제로 보지 말 것 - 보다 별반 중요하지 않게 느껴졌던 것들 - 식사 시간을 반드시 지킬 것 / 반드시 포커 게임에 참가할 것 / 돈을 어떻게 받아갈지에 정할 것 - 이 더 중요한 규칙이었다는 의외성도 돋보습니다.
게임의 규칙이 중간 중간에 탈락하거나 살해당하는 사람들과 함께 정교하게 엮이는 전개도 빼어나며, 굉장한 서스펜스와 스릴을 가져다 준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네요. 너무 재미있어서 다 읽는데 2시간도 안 걸린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다 읽고나서 생각해보면 곳곳에 구멍이 많기는 합니다. 에이스의 무리한, 합리성을 잃은 배팅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점, 킹은 본인이 조심만 했어도 "살해당한다"는 운명을 거스르기 가장 쉬운 존재였다는 점 등이 그러하죠.
무엇보다도 퀸이 다른 사람들을 살해해서 돈을 모두 자기 것으로 만드려는 시도는 다시 생각해보면 정말 말이 안되더군요. 20억이면 충분했을텐데 100억이라니? 거기에 에이스가 종민의 운명카드 내용을 우연히 보게 된 뒤 퀸이 그 정보를 입수했다는 전제가 너무 크게 작용하고 있을 뿐더러 (숟가락을 이용한 공작이 대표적입니다) 누구 한명 죽으면 조심하는게 당연하기에 하루만에 이루어져야 의미가 있었다는 것 등 여러모로 많이 어설펐어요. 조커를 구태여 자살로 위장한다는 것도 논리적으로 설명 불가능하고 말이죠. 아울러 마지막 종민의 상황은 충분히 정당방위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스토리 전개를 하기 위한 억지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름 신경쓴 게임에 비하면 캐릭터와 이야기 전개에서는 그러한 고려가 느껴지지 않은 것도 아쉬운 부분이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다른 사람들에게 말도 제대로 못하고 어렸을 적 저지른 약간의 실수에 좀스럽게 집착하는 전형적인 루저로 묘사된 종민은 아무리 생각해도 주인공감은 아니었거든요. 그러다보니 뒤로 갈 수록 의외의 행동력을 발휘한다는 전개가 전혀 와닿지 않았습니다. 게임 참가자들이 과거에 뭔가의 인연으로 얽혀있었을지 모른다는 분위기 역시도 불필요했다 생각되고요.

그래도 제가 접해왔던 "폐쇄형 게임 미스터리" 장르물에서도 재미 하나만 놓고 본다면 손에 꼽을만한 작품입니다. 미스터리, 추리의 요소가 적다는 단점은 있지만 에이스의 광기어린 행동과 종민의 심리묘사 등에서 호러물 느낌이 들 정도로 오싹한 맛이 잘 살아있는 등 심리 서스펜스 스릴러로서의 가치가 워낙 높거든요. 때문에 별점은 3.5점입니다. 현실적이지 못한 설정과 앞서 말한 단점 탓에 최고점을 주기는 힘드나 충분히 인상적이었어요. 앞으로도 작가님의 건투를 빕니다.

덧 : 좋은 추리소설 소개로 자주 찾아가는 카구라님 블로그에서 리뷰를 접하고 읽게 된 책인데 카구라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소개가 없었다면 읽어보지 않았을 것 같거든요. 앞으로도 좋은 리뷰 많이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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