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실살인게임 2.0 - 우타노 쇼고 지음, 김은모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채팅으로 대화를 나누는 동호인 다섯명. 반도젠교수, 두광인, aXe, 쟌가, 044APD. 이 커뮤니티는 실제로 살인을 저지르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이 추리하는 '리얼탐정놀이' 커뮤니티였다.
저는 추리소설도 좋아하지만 야구도 무척 좋아합니다. 그리고 두 분야 모두 정통파를 좋아하지요. 추리는 정통파 본격 미스터리, 야구는 정통파 강속구 완투형 에이스 투수라는 식으로 말이죠. 그러고보니 멸종해가고 있다는 공통점도 있네요.
어쨌건 이러한 야구감각으로 보면 우타노 쇼고라는 작가는 정통파 강속구 투수라기 보다는 제구력과 다양한 변화구로 승부하는 기교파 투수라 생각됩니다. 잘 짜여진 플롯과 동기, 복잡한 인간관계가 씨줄과 날줄처럼 얽힌 와중에 트릭을 통한 두뇌게임이 펼쳐지는 고전적인 본격물보다는 기발한 트릭과 트릭에 따르는 전개에 더 치중하는 작품이 많았다 싶거든요. 최소한 제가 읽은 작가의 다른 작품은 트릭이 중심인 기교파 소품들이었습니다.
물론 이게 나쁜건 아니에요. 이러한 방식으로도 역대급 작품이 된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 하네> 같은 강력한 결정구가 있고 다른 구질로도 충분히 제 몫을 할 뿐더러 팬들에게도 항상 기쁨을 주는 유형이잖아요. 실제 야구에서도 이런 투수가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만큼 꾸준하고 성실한 활약을 보여주는 선수들이죠. 팔색조 조계현 선수같은.
이 작품 역시 이러한 비유에 딱 맞는 작품입니다. 트릭이 풍성하고 설정을 독특하게 가져가며 등장인물 캐릭터에도 트릭이 숨어 있는 등 특유의 화려한 퍼즐러, 트리커 스타일이이라는 점에서요. 그러나 기교파로서의 단점이 도드라지는 작품이었다는게 안타깝습니다....
트릭, 즉 변화구의 각도와 위력은 좋았지만 동기와 설득력, 이야기 전개라 할 수 있는 제구가 영 꽝이었어요. 온전히 트릭을 위해 짜맞춰진 작위적인 설정과 전개이기에 트릭이 없다면 작품으로 성립이 힘들 정도니 이래서야 소설보다는 추리퀴즈에 더 어울리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에요.
또한 실제 범행 과정에 소요되는 돈과 노력, 리스크를 감안한다면 아무리 사회부적응 잉여 오타쿠들이더라도 살인을 저지르면서까지 얼굴도 모르는 인물들과 어울리는 것에 대한 당위성을 부여하는 것 역시도 불가능해 보이고요.
이럴 바에야 차라리 첫번째 에피소드처럼 미디어에 보도된 미궁에 빠진 사건을 아마추어 추리 애호가들이 모여 추리한다거나, 각자 생각한 트릭을 문제로 낸 뒤 서로 해결하기위해 머리를 짜내는 이야기 쪽이 훨~씬 좋았을거에요. 이편이 보다 스트라이크에 가까웠겠죠.
한마디로 말하자면 트릭을 풀어나가는 면에서는 재미, 헛스윙을 기대할 수는 있지만 결론은 볼이었다는 뜻입니다...
때문에 별점은 2.5점입니다. 트릭이 비록 추리소설에서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나 전개면에서 현실성과 합리성을 지녀야 완성도를 인정받을테니 당연한 결과겠죠. 볼의 위력이 좋아도 도망다니는 투수보다는 일단 스트라이크를 던질 줄 아는 투수가 진짜 투수인 처럼요. 그래도 트릭만큼은 괜찮은 부분이 있었던만큼 다음 투구에서는 보다 제구력이 동반된 피칭을 기대해 봅니다.
<이하 에피소드 상세 소개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Q1. 다음은 누가 죽입니까?
이야기의 시작. 다섯명의 멤버가 접한 살인 사건 보도. 그들은 사건이 살인게임이라는 것을 직감한 뒤 진상을 추리하기 시작한다...
살인게임 동호인이 많다는 설정 자체도 넌센스에다가 아무리 오타쿠 추리 매니아들이더라도 추리를 하는 과정의 정도가 너무 심해서 단편집의 시작임에도 불구하고 그닥 마음에는 들지 않았던 에피소드입니다. 트릭도 별다른 것은 없고 순수한 수사와 추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독자의 공정한 참여가 차단되는 측면이 강해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딱 한가지, 달력에 예고를 남기는 것이 단지 날짜와 술래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범행장소인 맨션의 형태와 관련이 있다는 아이디어는 괜찮았지만 전체적으로 작위적이라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더군요. 달력처럼 구성된 맨션의 체크된 날짜와 호수를 일치시켜 범행을 저지른다는게 솔직히 말이나 되는 설정입니까....
그 외에도 애시당초 일반인에 가까운 커뮤니티 멤버가 도출 가능했던 연관된 살인사건에 대한 정보를 경찰이 모르고 넘겼을 가능성도 높아보이지 않네요. 문제는 이 에피소드가 멤버들의 범행이 아닌 조사와 추리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그나마 가장 현실적인 에피소드라는 것이겠죠... 별점은 2점입니다.
Q2. 밀실 따위는 없다.
Q1에서 반도젠 교수가 낸 수수께끼와 그것을 응용한 두광인의 수수께끼에 대해 다루는 간단한 소품.
수수께끼 수준이라 딱히 언급할 것은 없습니다. 밀실살인은 현실에 대한 안티테제로 성립한 것으로 밀실을 만드는 것 자체가 목적이라 열변을 토하는 aXe의 발언이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추리애호가로서 공감하기도 했고요. 별점은 2점입니다.
Q3. 살인마 잭 더 리퍼, 삼십 분의 고독
Q2에서 범행을 예고한 쟌가가 토막살인으로 밀실을 만든 뒤 그것을 모두가 추리하는 이야기.
다리 두개를 문에 놓아둔 것만으로 밀실이라고 한다는 설정이 좀 어이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다리 두쪽이 문에 기대어져 있다 한들 문을 여는 정도는 어렵지 않았을 것 같거든요.
그래도 핵심 트릭은 충분히 한번 정도는 써 봄직한 괜찮은 아이디어이긴 했습니다. 시체를 훼손한 이유도 연관되어 있으니까요. 또다른 작품 속 트릭이라 할 수 있는 온도계를 이용한 미끄럼틀 아이디어도 나쁘지는 않았고 말이죠. 물론 트릭대로 잘 됐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런데 시체 속에 숨어 있었다는 트릭을 이용할 것이면 더 교묘한 밀실을 만들 수도 있었을텐데 조금 아쉽긴하네요. 피해자와 딸만 가지고 있는 열쇠를 이용한다던가 하는 식으로 충분히 완전범죄를 저지를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조금은 급하게 마무리지은 느낌이 듭니다. 그래도 트릭이 괜찮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Q4. 상당한 악마
Q3에서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두광인의 귀축 단두살인사건 예고에 이어지는 이야기로 핵심트릭은 두광인이 화상채팅으로 커뮤니티 멤버들에게 특정 장소를 보여주고 알리바이를 만드는 것입니다. 두광인의 알리바이가 완벽하다는 것을 커뮤니티 멤버가 일종의 증인이 된다는 발상의 전환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핵심트릭이 그닥 와닿지는 않았습니다. 과연 잘 됐을까 하는 의문도 들고요. 피해자 루카가 통화 중 실수 한번만 하더라도 모든게 틀어질테잖아요. 또 두광인의 정체가 밝혀지는 마지막 반전은 괜찮았지만 이 커뮤니티처럼 위험한 인간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공개한다는 것은 전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트릭과 반전이 합리적 전개보다 우선한 나쁜 사례죠. 별점은 2점입니다.
Q5. 세개의 빗장
aXe군이 공들여 준비하고 있다는 트릭을 이용하여 구현한 눈속의 밀실살인이 수수께끼로 던져지는 에피소드.
눈이 그친 이후에도 피해자가 살아있다는 증거가 제시되나 시체가 발견된 곳은 발자국 하나 없는 쓰레기장 한 가운데의 전화박스 형태의 박스. 박스에는 세개의 빗장이 걸려있는 이중밀실이었다는 트릭으로 aXe군이 계속 이야기하듯 정교한 장치 트릭이 선보입니다.
이런 류의 트릭은 극중 aXe의 입을 통해 말해지듯 시간과 노력이 너무 들어서 실효성이 없기에 설득력이 없기는 하나 이 작품처럼 순수하게 트릭을 위해서만 존재한다는 설정에는 제법 잘 어울린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장소와 도구가 잘 맞아떨어진 괜찮은 트릭이라 생각됩니다.
장치의 정교함에 대한 묘사와 함께 숨은그림 찾기와 같은 단서제공이 필요하기에 만화에 더 잘 어울리기는 했겠지만 평작 수준은 되는 에피소드라 별점은 2.5점입니다. 덧붙이자면 경찰 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졌다면 추리 게임의 필요도 없이 진상은 이미 밝혀졌을텐데, 경찰을 너무 우습게 보는게 아닌가 싶긴 했습니다.
Q6. 밀실이여. 잘 있거라
멤버 중 명탐정 역할을 담당한 044APD 가 낸 수수께끼. 관리인과 현관 자물쇠로 잠긴 이중밀실에서 아무런 관계가 없는 남녀가 살해된 시체로 발견된다는 내용입니다.
트릭은 범인이 피해자이며 탐정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신데렐라의 함정>을 생각나게 합니다. 핵심트릭인 밀실살인 외에도 별로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암호트릭까지 등장하는 등 추리적으로 확실히 풍성한 편이에요.
그러나 네명이나 되는 사람들과 채팅을 하면서 자신의 죽음을 숨기고 일반적인 대화를 나누다는 것은 말도 안되죠. 거기에다가 044APD 와 마미야가 동일인물이라는 진상은 정말 트릭을 위한 것일 뿐 동기 측면에서는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왜 자기 자신을 배달해서 죽일 필요가 있었을까요? 트릭은 화려하지만 그 외의 것은 뭐 하나 합리적인 것이 없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이런 식으로 마무리할 트릭은 아닌데, 트릭이 아깝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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