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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8

UN-GO : 별점 2점

 

정말 오랫만에 애니메이션 한 시즌을 다 봤네요. 추리 애니메이션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감상하게 되었습니다.

전전 - 전후의 유명 일본 소설가 사카구치 안고의 오래된 단편집을 원작으로 배경을 근미래로 각색하여 선보인 작품으로 전 11화 완결입니다. 일단은 단편 옴니버스 구성이나 매 애피소드를 거치면서 세계관 및 주인공들의 관계나 정체를 서서히 드러내는 긴 호흡의 이야기가 함께 전개됩니다.

근미래가 무대이기는 하나 워낙에 오래된 작품을 원작으로 삼은 탓에 사건수사는 모두 탐정이라는 작자들의 추리에 의존할 뿐이니 답답한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만 전후 일본의 모습을 공권력 및 공권력과 손을 잡은 거대 자본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으로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나름 잘 각색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거대 자본이 인터넷 기업이라는 점에서 더더욱 그러하죠. 인터넷 기업의 수장이자 자본과 공권력을 모두 상징하는 인물인 카이쇼 린로쿠의 사상을 비교적 디테일하게 보여주는 것도 나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실제로 전쟁 후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했어야만 했을 것이다... 라는 느낌이 묻어져 나오거든요. 아쉽게도 원작을 읽지 못해 자세한 비교는 어렵지만요.

그러나 문제는 추리 애니메이션을 표방했음에도 한 에피소드의 길이가 고작 20여분 분량 밖에 안돼서 정교한 구조를 만들 수 없다는 것, 때문에 이야기들이 추리라고 하기에는 얄팍한 것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입니다. 20여분은 등장인물과 사건 소개에도 벅찬 시간이더군요... 그래서인지 초반부는 각 에피소드 완결 형태로 진행되지만 뒤로 가면 갈수록 에피소드들이 이어지는 긴 호흡의 이야기로 바뀌더군요. 이럴바에야 차라리 전체를 긴 장편으로 그려가는게 더 좋았을것 같기도 합니다. 가장 길었던 마지막 3편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이야기가 가장 좋았거든요.
또 탐정 신쥬로의 파트너 인과의 능력이 '그가 물어본 질문에 인간은 꼭 답을 하게 되어 있다'는 것인데 이런 능력이 있다면 용의자들 각각에게 너가 범인이야? 라고 묻는게 더 낫겠죠. 그나마의 능력도 에피소드 초중반 이후에는 거의 쓰이지가 않는 등 이야기 전개에 그닥 필요없는 판타지스러운 설정에 불과하기에 차라리 빼는게 좋았을 것 같아요. RAI 카자모리 수준 정도의 조력자였다면 좋았을텐데 말이죠.

한마디로 추리물이라고 홍보한다면 문제가 있는 수준입니다. 내놓은 떡밥을 제대로 회수하지도 않고 끝마친다는 것과 연출, 작화가 왠지 싼티가 났다는 것도 감점요소고요.
그래도 딱 한가지! 세간에는 백전백패의 패전탐정으로 알려진 주인공 신쥬로의 추리가 사실 옳은 것이고 명탐정으로 알려진 IT거물이자 공권력의 흑막이기도 한 카이쇼 린로쿠의 추리가 틀린 것이라는 것, 하지만 권력집단의 의도로 카이쇼의 추리가 옳은 것으로 매번 발표된다는 설정은 정말 괜찮았습니다. 다른 작품에 주요한 반전 요소로 써먹어도 될 괜찮은 설정인데 1화에서 너무 쉽게 낭비한 것 같아 아까울 정도에요. 
요 설정 하나 때문에 감점요소를 감안해도 별점 2점입니다만 확실히 추리적으로는 기대 이하였으니만큼 혹 다음 시즌이 이어진다면 보다 추리쪽에 진지하게 접근해 주었으면 합니다.


1화
"당신에게 있어 남편은 뭐야?"

파티장에서 살해당한 부도덕한 기업회장 사건.
캐릭터 소개와 세계관 등을 설명하는 것이 주요 내용으로 카이쇼 리에 - 카이쇼 린로쿠 - 유우키 신쥬로라는 주요 탐정역들의 추리를 연달아 보여주며 사건을 해결하는 전개입니다. 그런데 짧은 시간 탓에 추리가 그냥 순서대로 이루어지는 일방적인 구조인 탓에 추리적인 내용은 그닥이었습니다. 트릭도 고전적이라 신선함이 떨어졌고요.
숨은 그림 찾기 같은 재미는 있었지만 작품의 기본 설정 소개 이외의 가치는 별반 없는 에피소드였습니다.

2화
"정말 네번째 요나가히메는 누구야?"

아이돌 요나가히메의 프로듀서 살해사건을 다룬 에피소드. 요나가히메의 죽었다는 네번째 멤버에 얽힌 동기는 그럴싸했는데 범인이 딱히 변장까지 해 가면서 다른 멤버들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려는 이유가 잘 설명되지 않은 것이 옥의 티였습니다. 그래도 작품 설정과 이야기가 잘 맞아 떨어진다는 점에서 평작 수준은 되는 듯 싶네요.

3화
"사사 카자모리는 누구?"

사사가문의 당주 카자모리 살인사건을 조사하는 이야기. 전개는 깔끔하나 7년 전 폭사한 전당주 사사 코마모리가 인공지능의 권위자였다는 것에서 카자모리의 정체가 쉽게 예상되었으며 무엇보다도 동기가 부실하다는, 아니 아예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약점입니다. 부유하지만 기괴한 콩가루 집안이라는 일본 본격물의 전통적 설정을 근미래 배경에 걸맞게 각색하고 나름의 트릭으로 구현했다는 것은 좋았는데 추리적으로는 그닥이어서 아쉽네요.

4화
"그 시체는 누구?"

3화에서 이어지는 에피소드. 사사 카자모리의 정체가 밝혀진 이후 시체는 그럼 누구였는지를 밝혀내는 내용입니다. 이 에피소드에서부터 인과의 질문이 효과가 없고 신쥬로의 추리에 의해 사건이 밝혀지는 비중이 높아집니다.
그래도 추리 자체가 워낙에 별볼일 없고 (경찰 공조수사였다면 단박에 결판났겠죠) 인간의 욕망에 더해 정의가 무엇인지를 세계관과 믹스하여 보여주는 부분은 지나친 훈계조라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덧붙이자면 작화도 이 에피소드부터 뭔가 미묘하게 변해서 그닥 마음에 들지 않더군요.

5화
"어젯밤 너는 여기에 돌아왔었지. 거기서 뭘 봤지?"

'일륜의회'라는 우익단체(로 보이는) 리더 시마다 하쿠로우 저택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시마다 하쿠로우의 아들 시마다 지로가 배우라는 것은 뭔가 고이즈미를 연상케도 하지만 내용은 풍자와는 별 관계는 일종의 보물찾기 이야기였습니다.
신쥬로의 최초 추리가 실패하고 인과와 신쥬로의 인연이 살짝 드러나며 인과의 다른 능력 (파워)이 드러나는 등 설정면에서 특이한 부분이 많이 보여지는 에피소드이긴 하나 추리적으로는 정말로 심각할 정도로 별 내용이 없더군요... 외려 카이쇼의 추리가 더 그럴듯했을 정도이니 말 다했죠. 희생자와 살아남은 자에 대한 정의 이외에는 건질게 없었던 수준 이하의 에피소드였습니다. 덧붙이자면 작화도 여전히 별로였고요.

6화
카이쇼의 옛친구 야지마가 신쥬로에게 카니쇼의 장서 중 한권인 책 속에서 발견된 암호에 대해 의뢰하는 내용으로 야지마가 아내의 잠자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 같은 일상계적인 요소가 괜찮았던 소품입니다. 야지마의 아내와 카이쇼간의 불륜을 암시하는 전개에서 의외의 진상이 드러나는 결말도 좋았고요. 마지막 카이쇼의 "진실은... 언제나 하나인 걸까" 라는 모 유명작품 명대사를 비트는 센스도 좋았습니다.
그 외에도 인과의 기묘한 능력을 통한 활약이 등장하지 않는 것도 설득력 측면에서 점수를 줘야하는 부분이라 생각되네요. 이렇게 판타지스러운 설정 없이도 잘 만들 수 있었는데 대관절 왜 인과라는 캐릭터를 등장시켰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7화
신쥬로가 6화 사건의 흑막인 야지마의 동료 죄수인 소설가를 면회하던 중 그의 현실을 바탕으로 한 소설 이야기를 듣고나서 전쟁 전 영화 촬영현장으로 빠져들게 된다는 이야기. 전쟁에 대한 나름의 시각은 있으나 여러 수수께끼같은 설정을 가지고 장난친 느낌만 드는 알 수 없는 에피소드였어요. 뭘 이야기하려는지도 모르겠고 사건도, 추리도 없지만 무엇보다도 재미가 없어요. 물론 다음 에피소드와 이어지기에 이 에피소드만 놓고 평가하기는 좀 무리이긴 합니다.

8화
전편 마지막에 벌어진 영화 촬영 현장에서의 감독 살인사건과 주요 용의자로 몰린 신쥬로가 추리를 통해 진범을 밝혀내는 이야기.
교도소라는 무대에서 모니터 가능한 수감자 번호를 이용하여 만든 트릭은 작품에 꽤 잘 어울렸고 마지막 추리쇼에서 결정적 단서로 내민 상자에 가린 범인에 대한 피해자의 대사도 제법 디테일이 살아있는 부분이었어요.
그러나 전편에서 부터 이어지는 다양한 설정들의 떡밥이 해결되지 못하고 범죄 자체가 우발적이기에 아주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무엇보다도 소설가와 별천왕 (벳텐오우)의 관계라는 핵심 요소가 전혀 설명되지 않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네요.

9화
카이쇼 린로쿠가 적들을 모아놓은 TV토론회에 참석했다가 폭발사고에 휘말리고 그들을 살해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다는 이야기로 전편에 등장한 별천왕의 최면술을 주요 트릭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서로의 기억 디테일이 어긋나는 사소한 장치는 돋보이지만 완결되는 에피소드가 아니라서 에피소드만의 평가는 어렵습니다.

10화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데 숨겨야만 하는 것은?"
9화의 사건으로 용의선상에 오른 카이쇼가 TV 청문회로 결백을 증명하려하나 인과에 의해 심복인 코야마 검사가 카이쇼의 비밀인 정보조작을 고백하여 더욱 궁지에 몰리게 되고 이후 자동차 폭발사고로 사망하게 된다는 이야기.
추리는 신쥬로가 별천왕의 존재를 알고 카이쇼의 죽음을 의심하는 것이 전부지만 간만에 등장한 인과의 활약(?)과 함께 주요 인물들의 극적인 행동 등에서 서스펜스가 제법 느껴지기에 재미있게 볼 수 있었습니다.
"단지 하나의 진실에 만족하는 것은 거기서 사고를 멈추는 것에 지나지 않아"라고 카이쇼 린로쿠가 대중이 쉽사리 빠지게 되는 음모론에 대해 설명하며 내뱉는 대사도 인상적이었어요. 이 친구 "하나의 진실" 이라는 말을 꽤 좋아하는 듯 싶군요.

11화
"너의 바람은 뭐지?"
9, 10화에서부터 이어져 카이쇼 린로쿠 죽음과 별천왕 존재에 대한 진상을 밝히는 에피소드로 대망의 최종회입니다. 3화에 걸친 장편 에피소드답게 복선도 확실하고 단서도 풍부할 뿐 아니라 반전도 괜찮았습니다. 확실히 장편답게 디테일했어요. 무엇보다도 별천왕 능력에 대한 설명을 보여줘서 일종의 두뇌게임을 보여주는 것이 마음에 들더군요.

그러나 하야미가 별천왕을 어떻게 손에 넣었는지, 후루써클이라는 조직과 함께 어떻게 인과까지 조종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등 시청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고 설득력도 함께 놓친 점은 아쉬운 부분이었어요. 정통 추리물이 되기 위해서라면 이러한 부분을 좀 더 신경썼어야 했을텐데 말이죠.

아울러 몇몇 설정을 끝까지 밝히지 않는 것은 요사이 유행인 듯 한데 별로 취향은 아니었습니다. 혹 시즌 2를 염두에 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정도로 인기를 끈 작품같지는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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