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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25

명탐정의 저주 - 히가시노 게이고 / 이혁재 : 별점 3점

명탐정의 저주 - 6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혁재 옮김/재인

이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약간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존 본격 추리물을 비웃는 블랙코미디였던 시리즈 전작과는 다르게, 작가인 주인공이 일종의 유체이탈을 통해 자신이 구상한 작품 속 세계에서 활약한다는 동화 같은 설정의 독특한 연작 단편집입니다. 

전작과의 공통분모는 제목, 주인공의 이름을 제외하면 거의 없습니다. 본격 추리에 대한 비꼼이 약간 등장하기는 하지만, 본격 추리에 대한 따뜻한 애정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요. 동화 같은 설정은 "시미가의 붕괴"가 연상되기도 했는데, 확실하게 차별화되는 점은 비교적 진지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작품은 동화적인 설정임에도 동기와 전개, 트릭 모두 확실한 본격 추리소설의 모양새를 갖추고 있거든요.

개인적으로는 무차별한 비난이 즐거웠던 전작이 더 취향에 맞았지만, 본격 추리물이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이번 작품도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어느 정도 이쪽 장르에 대한 지식이 있는 사람이 읽어야 진짜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은 여전하지만, 전작보다는 더 일반적인 추리소설에 가깝다는 것도 확실한 장점이라 생각됩니다. 별점은 전체적으로 평균하여 3점입니다.

수록작 간단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기념관

주인공이 덴카이치가 되어 이상한 마을로 소환된 뒤, 의뢰받은 사건을 수사하기 시작하는 이야기입니다. 주인공과 여러 등장인물들, 사건의 무대가 되는 기이한 마을에 대해 소개하는 도입부 역할이 강한 에피소드입니다. 짧은 분량 안에서 많은 것을 설명하려다 보니, 추리적으로 특별히 눈여겨볼 점은 없습니다. 덴카이치가 기념관 수위의 팔뚝에 난 자국을 보고 그가 낮잠을 자고 있었으리라 추리하는 부분 정도가 유일할 정도죠.

그러나 동화 같은 마을에 대한 묘사와 더불어, 마을의 크리에이터라는 미이라, 미이라 발굴 직후 도난당한 30cm 정도 되는 직사각형의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건, "Who done it?"이라는 문구 등 상상력을 자극하는 볼거리가 많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자산가

기념관 보존 위원회 멤버이자 마을 제일의 자산가 미즈시마 유이치로를 찾아갔다가, 그가 밀실 속에서 시체로 발견되는 이야기입니다. 전형적인 밀실 추리극이 펼쳐지는데, "명탐정의 저주"라는 제목에 어울리는 덴카이치 시리즈 특유의 추리소설 비꼬기가 다수 등장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피해자의 아들 아키오가 "먼저 타살이라고 결론을 내린 뒤, 출입이 불가능한 상황에 대해 의심해 보라고 한다"는 밀실 트릭의 문제를 비판하는 부분이겠죠. 당연한 이야기지만, 밀실에서 발견된 시체는 자살한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니까요. 걸작 추리만화 "nervous breakdown"에서도 언급된 내용이라 반가웠습니다.

이렇듯 밀실을 비꼬고는 있지만, 트릭 자체는 합리적이기에 추리적으로는 나무랄 데 없는 작품입니다. 간단한 트릭이지만, 사건의 무대가 효과적으로 설정되어 있어서 완성도가 높습니다. 또한, 밀실의 일곱 가지 종류라는 덴카이치의 이론도 추리 애호가로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 에피소드에서부터 이 마을이 '본격 추리'라는 개념을 전혀 모른다는 것과, 마을 자체가 짜여진 무대장치 같은 설정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보다 효과를 극대화하는 점도 재미있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소설가

덴카이치 탐정이 기념관 보존 위원회 멤버인 소설가 히다를 방문한 직후, 히다가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는 이야기입니다. 범인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인간 소실' 트릭이 펼쳐집니다.

본격 추리물에 대한 나름의 작가론이 담겨 있는 점은 인상적이지만, 트릭이 너무 쉽다는 점과 "자산가" 에피소드와 유사한 느낌이 강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네요. 그냥저냥 평작 수준으로 별점은 2.5점입니다.

위원회

남은 기념관 보존 위원회 멤버들이 시장의 별장에 모인 뒤, 벼락으로 인해 고립된 후 한 명씩 살해되기 시작하는 전형적인 클로즈드 서클 연쇄살인극입니다. 고립된 별장, 요일에 해당하는 이름을 가진 참석자들, 살인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이를 예언한 듯한 살인마의 장치 등, 설정만 봐도 작가의 의도가 뻔히 보입니다. 마치 "이게 왕도다!"라고 선언하는 듯한 패기마저 느껴집니다.

물론 작가가 이러한 작위성을 의도적으로 설정한 것이기에 단점은 아니며, 오히려 진부하고 뻔한 클리셰를 동화적인 설정과 결합해 효과적으로 구현한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트릭 역시 예측 가능하지만, 작품과 잘 어우러져 나쁘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도 본격 추리에 대한 작가의 향수와 애정이 잘 느껴지는 점이 좋았습니다. 아무리 낡고 오래된 장르라 하더라도, 추리물의 원류는 본격 추리물이기 마련이고, 이 장르에 대한 애정은 추리 애호가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테니까요. 별점은 3.5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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