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전력 OL 살인사건 - 사노 신이치 지음, 류순미 옮김/글항아리 |
1997년 3월 19일 살해 된 시체로 발견된 도쿄 전력 여직원 야스코 살인 사건의 배경과 재판 과정, 후일담까지를 거의 500여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으로 꼼꼼하게 기록한 논픽션.
이 사건은 발생 당시 굉장한 충격을 열도에 안겨다 주었고, 이런저런 컨텐츠에서 인용되었던 유명 사건입니다. 대표적인 예는 <<여자 친구>>입니다. 작품 속 피해자인 마키코는 명문 대학 법대생으로 재학 중 이미 사법고시에 합격한 엘리트지만 전락하여 매춘을 반복했다는 설정인데, 이 사건과 굉장히 흡사하죠.
그래서 평소 관심있던 차에 국내 출간이 되었길래 기쁜 마음으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사실 크리스마스 직전에 완독했지만, 크리스마스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아 리뷰를 조금 늦췄습니다.
특징이라면 살인 사건 재판을 다루고 있지만, 진범이 누구냐?를 탐구하는 법정 미스터리 속성은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네팔인 불법 체류자 고빈다를 범인으로 모는 경찰과 검찰의 비상식적이고 비정한 태도와 주장, 그리고 그 주장을 뒤짚으려는 화자인 취재 기자의 취재와 추리를 3년 여에 걸친 1심 공판 과정과 후일담이 내용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검, 경 합동 환장의 누명 씌우기는 볼 만 합니다. 일단 검찰은 고빈다가 피해자 야스코와 만난 시간부터 제대로 증명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고빈다가 근무지인 식당에서 퇴근 후 10시 7분 열차를 타서 시부야 역에 11시 20분에 도착했을 거라고 주장하지만, 취재 결과로는 10시 22분 열차를 타당하다고 증명되거든요, 설령 검찰의 주장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어차피 객관적인 증거가 없는건 마찬가지고요.
검찰이 유력한 증거라고 내민 범행 장소에서 발견된 피해자의 정액이 들어있는 콘돔 역시 살인의 증거로 볼 수는 없습니다. 고빈다가 매춘을 하던 피해자의 손님으로 범행 장소에서 이전에 관계를 가졌던 건 사실이거든요. 게다가 현장에서 피해자와 고빈다의 것이 아닌 음모 등 다른 증거도 발견되었고, 범인이 돈을 빼앗기 위해 강제로 빼앗으려다 피해자의 숄더백에 묻힌 피부 조각 역시 고빈다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 외의 세세한 억지 주장에 대한 반론은 셀 수도 없으며, 고빈다의 무죄를 강하게 짐작케하는 증언과 증거가 마지막까지 드러나서 손에 땀을 쥐게 만듭니다.
이렇게 검찰과 경찰이 네팔인을 범인으로 몰려는 의도도 여러가지 증거를 통해 분명히 드러납니다. 사체가 발견된 3월 19일 이후, 고빈다를 출입국 위반으로 취조할 때 이미 타액을 체취했으며 고빈다는 물론, 그의 룸메이트 들에게 고문과 강압 수사로 억지 자백을 받아내는 등 온갖 비인간적 행각이 폭로되고 있거든요. 오히려 이렇게까지 조작했는데도 불구하고, 결정적 증거를 제대로 선보이지 못해 억지 주장만 되풀이한 검찰의 무능함도 돋보이고요.
또 고빈다가 1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는 장면에서 끝나지만, 에필로그에서 검찰 항소로 열린 2심 재판에서 무기 징역을 선고받아 십 수년의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는 후일담은 기가 막힐 정도에요. 1심 판사가 좌천되기까지 했다니 어디까지 썩어 문드러진건지 감도 잡히지 않습니다. 다행히 재심으로 누명을 벗고 무죄 선고를 받았다지만 십 수년의 세월은 보상 받기 어렵죠. 게다가 이 사건을 진두지휘했던 전 경시청 간부 히라다가 '무죄 판결은 사법부가 여론을 의식한 결과이며 고빈다가 진범'이라고 우기며 극우 단체 회장으로 선출되었다는 내용에 이르러서는 정말이지 남의 나라 이야기같지 않았습니다.
화자인 취재 기자 사노 신이치의 꼼꼼한 취재도 돋보입니다. 고빈다의 고향을 방문하여 가족과 추방된 당시 룸메이트 들의 결정적 증언을 확보하는 것은 물론이고, 재판에 출두한 거의 모든 증인들을 후속 취재하여 피해자 야스코가 살해되기까지의 동선을 자세하게 그려주고 있습니다. 각종 증거들도 상세한 보충 설명을 통해 독자의 이해를 도와 주고요.
사노 신이치의 추리력이 빛나는 장면도 여러 군데 있습니다. 대표적인게 야스코의 지갑에서 발견된 이오카드 (선불카드)의 존재에 대한 추리입니다. 검찰은 이 카드의 잔액으로 야스코가 특정 장소 (정기권을 버리기 위한) 로 이동했을 거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엄청난 구두쇠였던 그녀가 돈을 써 가며 정기권을 버릴 이유는 없죠. 사노 신이치는 그래서 야스코가 이 이오카드를 주웠을 것으로 추리합니다. 비용이 남아있다고 쓰여있지만 사실은 현금을 보태 표를 구입하였기에 잔액이 0원이었는데, 잔액을 몰랐던 야스코는 뒤의 잔액 기록만 보고 나중에 쓸 요량으로 챙겼다는 것이죠. 아주 합리적이에요.
야스코의 정기권을 아무런 접점이 없는 스가모 주택가에 버린 범인의 심리에 대한 변호인단의 추리도 볼만합니다. 시체가 몇일동안 발견되지 않자 범인의 의심이 커져 범행을 드러낼 요량으로 대낮 주택가에 정기권을 버렸다는데 이 역시 그럴듯했어요.
무엇보다도 가장 궁금했던, "왜 게이오 대학교를 나와 대기업 도쿄 전력의 간부로 근무하며 연봉이 천만엔이 넘었던 야스코가 수년간 밑바닥에서 매춘을 했는지?"에 대한 나름의 답이 등장해서 속이 다 후련하더군요.
도화선은 그녀가 성스러운 존재로까지 여겼던 아버지가 사망한 것입니다. 그 뒤 공무원 시험에 떨어지고 도쿄 전력 내 라이벌과의 승부에서도 패배하며 스스로 좌천당했다고 여긴 인사발령을 받고 아버지가 '징벌적 초자아'에 빙의하여 그녀에게 벌을 내립니다. 아버지보다 못한 나를 못나게, 더럽게 만들어야 된다는 이유로요. 그래서 그녀는 스스로를 사회의 밑바닥, 구렁텅이로 떨어트리고 만 것입니다. 그 수준은 가히 참혹해서 2천엔에도 여러명의 외국인에게 길거리에서 몸을 팔고, 노상 방뇨 등을 서슴없이 저지를 정도였죠. 아, 무섭습니다. 확실히 현실이 픽션보다도 더 끔찍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렇게 자극적인 사건과 극적인 재판 과정을 다루고 있기에 아주 흥미로운 독서였습니다. 여러모로 별점 4점을 주었었던 <<살인범은 그곳에 있다>>와 비교됩니다. 핵심 용의자가 유죄를 선고받지만 각고의 노력 끝에 무죄로 풀려난다는 재판 과정도 동일할 뿐 아니라, 잘못된 경찰, 검찰의 주장을 밝혀내기 위한 상세하면서도 방대한 취재가 이야기의 핵심이라는 점은 같으니까요.
그러나 이 책은 별점 4점을 주기는 어렵습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 번째는 저자인 사노 신이치가 이 사건을 사카구치 안고의 <<타락론>>이라던가, 일본 사회의 어둠 등과 엮어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문학적으로 묘사했기 때문입니다. 네팔에서의 여정을 장황하게 소개하는 부분이라던가 야스코의 무덤을 찾은 감상 등이 그러한데 전부 쓰잘데 없을 뿐더러 그 양도 너무 많았어요. 그냥 사카구치 안고의 <<타락론>>과 연계하여 작금의 일본 사회를 드러내는 정도에 그쳤다면 좋았을 겁니다. 게다가 이러한 개인적 감상을 무리하게 사건 취재와 엮은 부분은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에요. 대표적인게 사건 당일 야스코를 목격한 증인 중 한명인 샌드위치맨 하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의 험난했던 인생사와 야스코 사건을 엮고, 이를 내면의 어둠 운운하면서 비극적으로 포장하는데 솔직히 전혀 와 닿지 않았습니다. 하토는 16년간 행복한 결혼 생활을 했지만 아내의 사망 이후 스스로 술독에 빠져 인생이 망가진거라 이를 딱히 내면의 어둠이나 운명의 장난으로 포장할 이유는 없죠.
또 <<살인범은 그곳에 있다>>는 저자 스스로 진범이 누구인지에 대해 여러가지 취재를 통해 범인상을 그려내지만, 이 책에서는 그냥 뜨내기 손님이었을 거라는 일반적인 예상 외의 그 어떤 정보도 추가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도 아쉬웠습니다. 현실만 취재해서 문제만 드러냈을 뿐, 그 이상의 진실은 담아내지 못했다는 이야기니까요. 같은 이유로 법정 미스터리를 방불케하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기대했었는데 그러한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했다는 것도 감점 요소입니다.
마지막으로 이야기의 배분도 적절하지 못합니다. 지금은 고빈다의 억울한 재판이 9, 야스코의 삶과 죽음이 1 정도의 비중인데, 이 책을 구입한 독자라면 사야카의 삶에 대한 관심도 높은건 당연합니다. 왜 그녀가 밑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의사 한 명과의 인터뷰가 전부라 취재의 양과 깊이 모두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의사의 견해도 증명되지 않고요.
또 고빈다 재판에서 사건 당일 사야카와 고빈다의 행적도 너무 많이 반복됩니다. 이런 부분의 정리만 해 주었더라도 분량은 대폭 줄일 수 있었을걸로 생각됩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 새롭게 알게 된 사실도 많고, 내용도 흥미롭지만 말씀드린 단점으로 감점합니다. 지금보다 군살을 드러내고 더 논픽션같이 썼더라면 별점 3점 이상은 충분했을겁니다. '오컴의 면도날'이 떠오르는 그런 책이네요.
특징이라면 살인 사건 재판을 다루고 있지만, 진범이 누구냐?를 탐구하는 법정 미스터리 속성은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네팔인 불법 체류자 고빈다를 범인으로 모는 경찰과 검찰의 비상식적이고 비정한 태도와 주장, 그리고 그 주장을 뒤짚으려는 화자인 취재 기자의 취재와 추리를 3년 여에 걸친 1심 공판 과정과 후일담이 내용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검, 경 합동 환장의 누명 씌우기는 볼 만 합니다. 일단 검찰은 고빈다가 피해자 야스코와 만난 시간부터 제대로 증명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고빈다가 근무지인 식당에서 퇴근 후 10시 7분 열차를 타서 시부야 역에 11시 20분에 도착했을 거라고 주장하지만, 취재 결과로는 10시 22분 열차를 타당하다고 증명되거든요, 설령 검찰의 주장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어차피 객관적인 증거가 없는건 마찬가지고요.
검찰이 유력한 증거라고 내민 범행 장소에서 발견된 피해자의 정액이 들어있는 콘돔 역시 살인의 증거로 볼 수는 없습니다. 고빈다가 매춘을 하던 피해자의 손님으로 범행 장소에서 이전에 관계를 가졌던 건 사실이거든요. 게다가 현장에서 피해자와 고빈다의 것이 아닌 음모 등 다른 증거도 발견되었고, 범인이 돈을 빼앗기 위해 강제로 빼앗으려다 피해자의 숄더백에 묻힌 피부 조각 역시 고빈다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 외의 세세한 억지 주장에 대한 반론은 셀 수도 없으며, 고빈다의 무죄를 강하게 짐작케하는 증언과 증거가 마지막까지 드러나서 손에 땀을 쥐게 만듭니다.
이렇게 검찰과 경찰이 네팔인을 범인으로 몰려는 의도도 여러가지 증거를 통해 분명히 드러납니다. 사체가 발견된 3월 19일 이후, 고빈다를 출입국 위반으로 취조할 때 이미 타액을 체취했으며 고빈다는 물론, 그의 룸메이트 들에게 고문과 강압 수사로 억지 자백을 받아내는 등 온갖 비인간적 행각이 폭로되고 있거든요. 오히려 이렇게까지 조작했는데도 불구하고, 결정적 증거를 제대로 선보이지 못해 억지 주장만 되풀이한 검찰의 무능함도 돋보이고요.
또 고빈다가 1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는 장면에서 끝나지만, 에필로그에서 검찰 항소로 열린 2심 재판에서 무기 징역을 선고받아 십 수년의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는 후일담은 기가 막힐 정도에요. 1심 판사가 좌천되기까지 했다니 어디까지 썩어 문드러진건지 감도 잡히지 않습니다. 다행히 재심으로 누명을 벗고 무죄 선고를 받았다지만 십 수년의 세월은 보상 받기 어렵죠. 게다가 이 사건을 진두지휘했던 전 경시청 간부 히라다가 '무죄 판결은 사법부가 여론을 의식한 결과이며 고빈다가 진범'이라고 우기며 극우 단체 회장으로 선출되었다는 내용에 이르러서는 정말이지 남의 나라 이야기같지 않았습니다.
화자인 취재 기자 사노 신이치의 꼼꼼한 취재도 돋보입니다. 고빈다의 고향을 방문하여 가족과 추방된 당시 룸메이트 들의 결정적 증언을 확보하는 것은 물론이고, 재판에 출두한 거의 모든 증인들을 후속 취재하여 피해자 야스코가 살해되기까지의 동선을 자세하게 그려주고 있습니다. 각종 증거들도 상세한 보충 설명을 통해 독자의 이해를 도와 주고요.
사노 신이치의 추리력이 빛나는 장면도 여러 군데 있습니다. 대표적인게 야스코의 지갑에서 발견된 이오카드 (선불카드)의 존재에 대한 추리입니다. 검찰은 이 카드의 잔액으로 야스코가 특정 장소 (정기권을 버리기 위한) 로 이동했을 거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엄청난 구두쇠였던 그녀가 돈을 써 가며 정기권을 버릴 이유는 없죠. 사노 신이치는 그래서 야스코가 이 이오카드를 주웠을 것으로 추리합니다. 비용이 남아있다고 쓰여있지만 사실은 현금을 보태 표를 구입하였기에 잔액이 0원이었는데, 잔액을 몰랐던 야스코는 뒤의 잔액 기록만 보고 나중에 쓸 요량으로 챙겼다는 것이죠. 아주 합리적이에요.
야스코의 정기권을 아무런 접점이 없는 스가모 주택가에 버린 범인의 심리에 대한 변호인단의 추리도 볼만합니다. 시체가 몇일동안 발견되지 않자 범인의 의심이 커져 범행을 드러낼 요량으로 대낮 주택가에 정기권을 버렸다는데 이 역시 그럴듯했어요.
무엇보다도 가장 궁금했던, "왜 게이오 대학교를 나와 대기업 도쿄 전력의 간부로 근무하며 연봉이 천만엔이 넘었던 야스코가 수년간 밑바닥에서 매춘을 했는지?"에 대한 나름의 답이 등장해서 속이 다 후련하더군요.
도화선은 그녀가 성스러운 존재로까지 여겼던 아버지가 사망한 것입니다. 그 뒤 공무원 시험에 떨어지고 도쿄 전력 내 라이벌과의 승부에서도 패배하며 스스로 좌천당했다고 여긴 인사발령을 받고 아버지가 '징벌적 초자아'에 빙의하여 그녀에게 벌을 내립니다. 아버지보다 못한 나를 못나게, 더럽게 만들어야 된다는 이유로요. 그래서 그녀는 스스로를 사회의 밑바닥, 구렁텅이로 떨어트리고 만 것입니다. 그 수준은 가히 참혹해서 2천엔에도 여러명의 외국인에게 길거리에서 몸을 팔고, 노상 방뇨 등을 서슴없이 저지를 정도였죠. 아, 무섭습니다. 확실히 현실이 픽션보다도 더 끔찍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렇게 자극적인 사건과 극적인 재판 과정을 다루고 있기에 아주 흥미로운 독서였습니다. 여러모로 별점 4점을 주었었던 <<살인범은 그곳에 있다>>와 비교됩니다. 핵심 용의자가 유죄를 선고받지만 각고의 노력 끝에 무죄로 풀려난다는 재판 과정도 동일할 뿐 아니라, 잘못된 경찰, 검찰의 주장을 밝혀내기 위한 상세하면서도 방대한 취재가 이야기의 핵심이라는 점은 같으니까요.
그러나 이 책은 별점 4점을 주기는 어렵습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 번째는 저자인 사노 신이치가 이 사건을 사카구치 안고의 <<타락론>>이라던가, 일본 사회의 어둠 등과 엮어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문학적으로 묘사했기 때문입니다. 네팔에서의 여정을 장황하게 소개하는 부분이라던가 야스코의 무덤을 찾은 감상 등이 그러한데 전부 쓰잘데 없을 뿐더러 그 양도 너무 많았어요. 그냥 사카구치 안고의 <<타락론>>과 연계하여 작금의 일본 사회를 드러내는 정도에 그쳤다면 좋았을 겁니다. 게다가 이러한 개인적 감상을 무리하게 사건 취재와 엮은 부분은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에요. 대표적인게 사건 당일 야스코를 목격한 증인 중 한명인 샌드위치맨 하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의 험난했던 인생사와 야스코 사건을 엮고, 이를 내면의 어둠 운운하면서 비극적으로 포장하는데 솔직히 전혀 와 닿지 않았습니다. 하토는 16년간 행복한 결혼 생활을 했지만 아내의 사망 이후 스스로 술독에 빠져 인생이 망가진거라 이를 딱히 내면의 어둠이나 운명의 장난으로 포장할 이유는 없죠.
또 <<살인범은 그곳에 있다>>는 저자 스스로 진범이 누구인지에 대해 여러가지 취재를 통해 범인상을 그려내지만, 이 책에서는 그냥 뜨내기 손님이었을 거라는 일반적인 예상 외의 그 어떤 정보도 추가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도 아쉬웠습니다. 현실만 취재해서 문제만 드러냈을 뿐, 그 이상의 진실은 담아내지 못했다는 이야기니까요. 같은 이유로 법정 미스터리를 방불케하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기대했었는데 그러한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했다는 것도 감점 요소입니다.
마지막으로 이야기의 배분도 적절하지 못합니다. 지금은 고빈다의 억울한 재판이 9, 야스코의 삶과 죽음이 1 정도의 비중인데, 이 책을 구입한 독자라면 사야카의 삶에 대한 관심도 높은건 당연합니다. 왜 그녀가 밑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의사 한 명과의 인터뷰가 전부라 취재의 양과 깊이 모두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의사의 견해도 증명되지 않고요.
또 고빈다 재판에서 사건 당일 사야카와 고빈다의 행적도 너무 많이 반복됩니다. 이런 부분의 정리만 해 주었더라도 분량은 대폭 줄일 수 있었을걸로 생각됩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 새롭게 알게 된 사실도 많고, 내용도 흥미롭지만 말씀드린 단점으로 감점합니다. 지금보다 군살을 드러내고 더 논픽션같이 썼더라면 별점 3점 이상은 충분했을겁니다. '오컴의 면도날'이 떠오르는 그런 책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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