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 - 사토 겐타로 지음, 서수지 옮김/사람과나무사이 |
제목 그대로, 세계사를 바꿨다고 할 수 있는 중요한 약 10가지를 소개하고 있는 일종의 미시사 서적. 제목만 보면 무슨 약이 대관절 세계를 바꿨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는데, 의외로 정말 그랬음직한 약들이 많아 조금 놀랐습니다.
근본적으로 세계사를 바꾼건 병원균 쪽 역할을 더 크기는 합니다. 말라리아가 훈족의 침략을 막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던가, 아테네가 스파르타에게 무릎을 꿇은 건 발진티푸스의 창궐 때문이었다는 등의 전쟁, 이민족의 침입 등에서 여러가지 전염병이 승패에 영향을 주었다는 역사적인 기록은 아주 많으니까요. 하지만 이 책에서는 이러한 큰 흐름 외에도 산모가 병원균에 감염되어 죽는 산욕열로 수많은 산모가 죽은 것도 여러가지 역사의 변곡점을 만들었다는 식으로 특정 인물에 관련된 세세한 소개가 많습니다. 석가모니의 어머니 마야 부인의 죽음은 석가모니의 수행과 깨달음에 큰 영향을 주었고, 카이사르의 딸이자 폼페이우스의 부인이었던 율리아가 출산 도중에 죽은건 두 영웅이 피할 수 없는 전쟁을 하게 만들었다죠.
당연히 '약'이 주인공이기에 약이 병을 퇴치하여 세계사를 바꾼 이야기도 소개되고 있습니다. 역시 상세한 실제 사례가 중심이에요. 예를 들어 강희제가 말라리아에 걸렸지만, 예수회 선교사가 진상한 특효약 퀴닌 덕분에 회복한게 역사의 큰 전환점이 되었다는건 충분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황태자가 강희제의 위독한 모습을 보고 자신이 곧 황위에 오를거라 생각해 기뻐했기 때문에 폐위되고, 옹정제가 다음 황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무능력한 소인배 황태자와 달리 명군으로 칭송받는 옹정제가 강희제와 건륭제의 가교 역할을 잘 수행하여 청이 전성기를 맞이할 수 있게 되었죠. 옹정제가 아닌 다른 황제가 황위에 올랐더라면 청이 그렇게까지 장수한 제국으로 성공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또 약이 발견, 개발되기까지의 과정도 상세합니다. 비타민 C가 발견될 때, 헝가리의 센트죄르지와 미국의 킹 사이에 벌어졌던 지저분한 다툼, 인공적으로 퀴닌을 합성하려다 보라색 염료를 발견하여 거부가 된 윌리엄 퍼킨, 마취약을 개발하려다 임상 실험 도중 어머니가 사망하고 아내는 실명하게 만든 일본의 하나오카 세슈 등 여러 인물들의 드라마틱한 이야기도 가득하고요.
마지막에 소개된 아스피린의 특수성도 아주 인상적입니다. 한 세기 전 발표된 약임에도 지금도 끊임없이 팔려나가는 이유를 고찰하고 있는데, 아주 흥미로왔거든요. 굉장히 작은데도 불구하고 강력한 진통 효과를 일으키는 이유가 과학적으로 잘 설명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아직 아스피린의 전체상은 다 밝혀진게 아니라는게 놀라왔어요. 항혈전 기능이 있고 심지어 치매 예방 효과까지 있다고 연구되는 중이라니 정말이지 대단한 약이네요.
그러나 문제가 없지는 않습니다. 우선 제목과는 조금 동떨어진 주제들이 있습니다. 재미는 있었지만 아스피린이 제목처럼 세계사를 바꿨다고 보기는 어렵죠.
또 일본인이 썼기 때문에 지나치게 일본적인 시각이 많은 것도 문제입니다. 매독이 전 세계에 맹위를 떨쳐 여러가지 역사적 변화를 이끌어 냈다는건 잘 알겠지만, 그 예로 오타니 요시쓰구를 들어 설명하는 부분 같은게 그러하죠. 요시쓰구는 히데요시 휘하의 맹장이었지만 매독에 걸린 탓에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분투하다 패배하여 자결하고, 그의 죽음이 서군 패배에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는데 그렇게 대단한 역사의 분수령이라 생각되지도 않을 뿐더러, 매독과 전쟁의 패배가 얼마나 관련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어서 와 닿지 않더라고요. 마찬가지로 쓰센산을 만들어낸 하나오카 세슈, 매독 치료약 살바르산 개발에 큰 도움을 준 일본인 시가 기요시와 하타 사하치로의 활약은 과장된 면이 없잖아 있어 보였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재미는 있지만 단점도 있기에 감점합니다. 전문적인 내용을 깊이있게 다룬다기 보다는, 청소년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적당한 그런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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