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의 시효 -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김성기 옮김/노블마인 |
요코야마 히데오의 연작 단편집으로 만화 "강력1반"의 원작이기도 합니다. 작품은 F현 경찰청 강력반의 이야기로 총 6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1편은 1반, 2편은 2반, 3편은 3반, 4편은 3반 모두의 이야기이며 5편은 1반의 신참형사, 마지막 6편은 1반과 3반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반의 이야기가 좀 많긴 한데 나름 균형은 잘 맞추고 있는 편입니다.
전부 3개의 반으로 구성되어 있는 조직에서 각 반마다 지나칠 정도로 치열한 경쟁의식을 품고 있다는 설정도 특이하지만 각 반마다 특색있는 반장들이 그려지는데 이 반장들 캐릭터가 굉장히 잘 살아 있습니다. 1반의 절대 웃지 않는 "파란 귀신" 구치키와 2반의 전 공안 출신의 엘리트이자 감정없는 냉혈한인 구스미, 3반의 절대 육감의 소유자인 무라세라는 캐릭터들이 각각의 별명과 설정에 잘 어울리는 수사방법, 즉 구치키의 끈질기고 합리적으로 물고 늘어지는 정공법 스타일과 구스미의 용의자를 함정에 빠트리는 지능형 스타일, 그리고 구스미의 육감을 이용하여 범인을 그려내는 수사방법들이 작품에 잘 드러나고 있거든요.
경찰들이 주인공인 경찰 소설이기에 본격 추리의 맛을 느끼기는 좀 어렵지만 대부분의 작품에서 상당한 수준의 트릭이나 두뇌게임이 등장해서 추리 애호가로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던 것은 덤이라 생각됩니다. 별점을 준다면 3점은 충분한 작품으로 보이네요. 아울러 개인적인 베스트를 꼽자면 제일 마지막 작품인 "흑백의 반전"을 꼽겠습니다. 다른 작품들도 좋지만 만화로 이미 접한 작품은 신선함이 조금 떨어지긴 했으니까요.
만화화 된 것은 1편에서 4편까지이며 나머지 2편은 처음 접한 작품인데 원작을 읽고나니 만화쪽도 비록 복사본을 많이 사용해서 쉽게 만든 작품이기는 하지만 캐릭터도 잘 구현하고 스토리도 매끄럽게끔 잘 극화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화도 다시 읽어봐야겠습니다.
1. 침묵의 알리바이
구스미의 1반이 맡은 사건은 현금차량 탈취 살인 강도 사건으로 용의자 유모토를 체포하는데 성공하나 유모토는 법정에서 범행을 전면 부인한다. 알리바이를 제시함에 따라 조사를 맡았던 시마즈의 미숙함과 더불어 찾아온 위기에 1반 반장 "파란 귀신" 구치키가 직접 나서게 된다.
추리물로 보기에는 단서가 부족하고 법정물로 보기에도 애매하지만 구치키의 캐릭터와 함께 몇가지 사소한 단서에서 풀어내는 진상이 인상적인 단편입니다. 조금 더 길게 가져가서 정통 수사물로 만드는 것이 더 좋았을 것 같은 생각은 들지만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2. 제 3의 시효
부녀자 강간 후 남편 살해사건을 저지르고 도망중인 용의자 다케우치의 공소시효를 앞두고 2반은 다케우치의 범행 피해자의 집으로 출동한다. 다케우치가 1주일 간 대만으로 도피했던 것으로 공소시효가 연장된 것을 모를 것이라 여기고 과거의 인연으로 다케우치가 연락할 것을 기다린 것.
냉혈한 구스미와 1반 소속 형사로 2반에 지원나온 모리 형사가 주축이 되는 이야기입니다. 공소시효 연장에 따른 긴장감도 넘치지만 구스미의 치밀한 계략에 따른 "제 3의 시효"와 진범에 대한 추리가 아주 좋았습니다. 단서도 비교적 공정한 편이라 추리 애호가로서 즐겁게 읽은 작품입니다.
3. 죄수의 딜레마
형사과장 다하타는 자신의 휘하 3반 소속 반장들의 실력은 인정하지만 서로의 경쟁 때문에 고민이 많다. 마침 진행되는 사건은 3건. 1반의 주부 살인사건과 2반의 조리사 살인사건, 3반의 증권맨 살인사건.
3건의 사건이 해결되는 과정을 형사과장 시점에서 그린 이색작입니다. 2반의 사건은 제목의 "죄수의 딜레마"를 끄집어 내기 위한 장치일 뿐이지만 구스미의 심리 조작이 빛났고 1반, 3반의 사건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사건이라 보다 흥미진진 했습니다. 나름 형사들의 인정이나 인간관계를 보여주는 에피소드라 훈훈함이 남다르기도 했고요. 추리적으로도 눈여겨 볼 부분이 많은 작품이었습니다.
4. 밀실의 탈출구
무라세 반장이 뇌경색으로 쓰러진 후 3반의 히가시데가 반장 대리를 맡는다. 마침 백골로 발견된 여성 사체 사건의 용의자를 알아낸 히가시데는 용의자의 맨션을 덮치지만 용의자는 깜쪽같이 사라져버리고, 이 사건을 위한 대책회의가 열리는데..
3반이 주역이지만 주역은 무라세 반장이라기 보다는 반장 대리 히가시데 입니다. 반장 대리의 역할을 맡았지만 동기인 이시가미와의 경쟁으로 날카로운 심리 상태와 용의자가 사라진 것에 대한 의심 등 다양한 심리를 디테일하게 그리고 있어서 읽는 재미가 느껴지더군요. 흡사 본격물의 느낌을 주는 제목만큼의 대단한 트릭이 나오지는 않지만 비교적 합리적인 트릭이기도 하고, 정보의 제공이 공정하며 추리의 과정도 설득력이 높다는 점 역시 만족스러운 작품이었습니다.
5. 페르소나의 미소
청산가리를 이용한 노숙자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과거의 트라우마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신참 형사 야시로가 수사를 맡게된다.
1반의 신참 형사 야시로가 주인공인 단편입니다. 야시로의 과거의 트라우마 (어렸을 때 유괴사건 범행에 연루된 것) 가 자세하게 설명되는 등 추리와 수사보다는 한 개인에 대한 소품같은 느낌을 많이 가져다 준 작품입니다. 등장인물도 굉장히 적어서 더욱 그런 느낌을 받은 것 같기도 하네요. 과거의 사건들과 연결되는 트릭은 괜찮았지만 이 단편집에서는 제일 처지는 작품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6. 흑백의 반전
일가족 세 명이 칼에 찔려 살해된 사건이 발생한다. 다하타 과장은 3반이 맡은 이 사건에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며 1반을 보조로 투입시키지만 두 반은 경쟁의식으로 과열되어 과장의 생각과는 다른 방향으로 수사가 전개된다.
2반이 등장하지 않고 1반과 3반이 경쟁하는 작품입니다. 두 반의 반장 캐릭터와 유사한 각각의 수사방법이 잘 묘사되어 있기도 하지만 트릭이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모처럼 "본격" 스러운 작품이라 굉장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결국 과장이 의도한 대로 시너지(?) 효과를 불러 일으키며 사건이 종료되는 것 역시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결말이기도 했고요. 사건의 동기와 범인, 트릭, 수사과정 모두 합리적이고 잘 짜여진 완성도 높은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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