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대전 Z - 맥스 브룩스 지음, 박산호 옮김/황금가지 |
브래드 피트의 영화 <월드워 Z>의 원작소설. 좀비관련 소설은 딱히 관심이 없었지만 나름 유니크한 책이었던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의 저자가 쓰기도 했고 평도 좋아서 읽게 되었습니다. 무려 5년전인 2008년에 출간되었으니 좀 늦은 감은 있습니다만...
이 책의 장점이라면 무엇보다도 단순한 크리처물이 아니라 일종의 재앙물로 접근하고 있는 점, 그리고 "논픽션" 스타일의 인터뷰 중심 전개로 큰 현실감을 가져다 준다는 것입니다. "대공포"라고 불리우는 좀비의 창궐과 그 이후 벌어진 극심한 혼란, 그리고 마지막 정복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장대한 과정을 거의 전세계를 무대로 다양한 인터뷰어를 등장시켜 전개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극적인 효과가 더 크게 느껴지는 부분도 많습니다. 피난 행렬이 엄청난 교통 체증을 유발한 고속도로를 좀비들이 덥치는 과정에 대한 증언, 캐나다의 겨울을 이용하여 피난하려는 생존자들이 인육을 먹게되는 과정에 대한 증언, 인도 히말라야의 교통로 차단작전과 작전의 성공으로 끊긴 도로로 좀비들이 몰려와 절벽 밑으로 떨어지면서 물소리같은 - 뚝뚝뚝 - 소리가 들린다는 증언 등이 그러하죠. 인터뷰어의 증언이 아니라 일반적인 소설의 묘사 방식이었더라면 이렇게까지 와 닿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또 작가가 나름 크리처를 상대로 한 위대한 전쟁이라는 주제를 시니컬한 유머로 변주하고 있는 것도 인상적이에요. 대표적인 것은 미국 대통령이 UN본부 회의에서 좀비에 대한 공격을 천명하며 감동적인 연설 - 인류로 돌아가는 길고 힘든 길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지구 상에서 한때 자부심에 넘쳤던 영장류의 퇴행성 권태를 택할 것인가? 그게 우리가 선택해야 할 것이고, 지금 당장 해야하는 선택이다 - 을 하지만 그것을 들은 인터뷰어가 "전형적인 백인들의 헛소리. 궁둥이는 진흙탕에 빠져 허우적거리면서 별을 잡아 보겠다고 용을 쓰는 꼴. 이게 만약 백인 영화였다면 얼간이 몇 놈이 일어나서 천천히 박수를 치고, 거기에 화답해서 나머지 관객들이 기립박수를 쳐 대고, 누군가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식의 인위적인 개지랄을 보겠지만 침묵이 흘렀다. 아무도 움직이지도 않았다" 라고 말하는 장면입니다. (그간 제가 느껴왔던 감동이 백인 중심의 인위적인 개지랄이었다니 입맛이 좀 쓰네요.)
그 외에도 다양한 국가가 등장하여 전체적인 세계 정세를 가상 역사 SF 처럼 펼쳐나가는 것도 꽤 흥미를 돋구는 부분이에요. 미국 중심이기는 하나 그래도 다른 국가들에 대한 안배도 공평한 편이거든요. 관련 자료는 인터넷에도 많이 등장하기에 구태여 소개드리지는 않습니다만 한국이 등장한다는 점, 그 중에서도 북한은 인구마저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잠잠한, 이른바 "땅굴도시" 속 좀비국가가 되었으리라 하는 부분은 좀 오싹했어요. 쿠바가 지형적 잇점을 활용하여 완벽하게 좀비와 격리되어 최고의 부국으로 성장한다는 것도 재미있는 점이었고요.
마지막으로 인터뷰어들이 비교적 평범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아주 이색적이면서도 작품의 현실성을 높여주는 장치였던 것 같습니다. 한 생존자가 동네청년 총각파티를 해 주기 위해 유일하게 동작하는 DVD 플레이어와 포르노를 몇편 구했는데 러스티 캐넌이 회백색 BMW Z4위에서 벌이는 정사장면을 보고 "와우, 이런 차는 더 이상 안 만들겠지"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 장면은 정말 최고였어요!
그러나 단점도 존재합니다. 가장 큰 단점은 뭐니뭐니해도 좀비의 위험을 너무 과장되게 그렸다는 점이죠. 과거 그 어떤 전투와 전쟁에서도 압도적인 무기의 존재는 병력수를 무의미하게 만든다는 것이 증명되었는데 무기와 전술이 "없다시피" 한 좀비와 초현대식 무기로 맞서싸운 모든 전투에서 패배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고립된 건물이나 지하와 같은 특수장소도 아니고 평원에서의 전투에서 그러한 결과는 사실 말도 안돼죠. 이 점은 엔위하키 미러의 6.1 현대 무기의 과소평가와 일치하니 참고하세요.
아울러 좀비가 사람 뿐 아니라 거의 모든 생명체에게 달려드는데 다른 생명체 (쥐라던가 개라던가..)는 왜 좀비가 되지 않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는 것도 의아한 부분입니다. 생명체 전부에게 좀비 바이러스가 전염되었더라면 인류가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은 없었을텐데 너무 대충 넘어간 것 같아요. 좀비의 목적이 사람을 잡아먹는 것이라면 결국 어느 정도 이상 좀비가 불어나면 더 좀비가 되는 사람은 없지 않나? 라는 의문도 마찬가지고요. 왜냐하면 살점은 다 뜯어먹힐테니....
또 무의미하달까... 늘어지는 분량도 제법 되는 것 같습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레데커 플랜같은 경우 꽤나 비중있게 등장하지만 잔인하고 이기적인 생존본능을 드러내기 위한 목적 외에는 등장하나 안하나 별 차이는 사실 없어요. 전쟁에서 이런 이야기가 드문것도 아니잖아요? 당장 우리만 해도 6.25 때의 한강 인도교 폭파와 같은 좋은 사례도 있고 말이죠. 뭐 최악은 뭐니뭐니해도 일본의 "방패회" 관련 서술이지만요.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추천작. 단점이 없는건 아니지만 재미 하나만큼은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작품임에는 분명하니까요. 별점은 3점입니다. 킬링타임용 독서로는 이만한 선택도 드물 것 같기에 아직 읽지 않으신 모든 분들, 특히나 좀비에 대해 관심있으신 모든 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와 함께 읽으면 더욱 큰 재미를 느끼실겁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