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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14

검정고양이의 산책 혹은 미학강의 - 모리 아키마로 / 이기웅 : 별점 2점

검정고양이의 산책 혹은 미학강의 - 4점
모리 아키마로 지음, 이기웅 옮김/포레


"내가 하려는 건 미적 추리이고, 그에 따라 나타난 진상이 미적이지 않으면 내 관심은 그 시점에서 소멸될 거야."

미학이 주요 테마인 독특한 일상계 추리연작 단편집. 제 1회 애거서 크리스티 상을 수상하였다고 하네요. 사실 이런 책이 있는지도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이번에 국내 최고의 추리애호가 사이트인 "하우미스터리"에서 진행 중인 "2013년 올해의 추리소설" 이벤트에서 몇몇 분들이 언급하였길래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미학전공자인 탐정이 등장하여 "미학 강의"를 이야기의 뼈대로 삼고 있다는 점이죠. 이야기를 다른 무언가와 절묘하게 겹쳐서 진행하는 작품은 일상계 연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태이지만 (예를 들어 "고서"가 주제인 <비블리아 고서당>시리즈, "호텔"과 손님들이 중심인 <매스커레이드 호텔>등등등...) "미학"이라는 주제는 정말 처음 봤습니다.
단지 독특한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미학이론을 일상계 추리물 속에 결합하여 녹여낸 솜씨도 아주 돋보였어요. 화자인 "나"의 박사학위 논문 주제가 에드거 앨런 포라는 설정이기에 포의 작품을 중심으로한 여러가지 미학적 분석과 이론이 등장하는데 실제 사건이 이러한 이론들과 엮여 나가는 과정이 제법 괜찮거든요. 아! 이렇게 쓸 수도 있구나 싶은 기막한 부분이 분명히 있는 작품이에요. 실제 통하는 이론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책에 등장하는 검정고양이의 미학 이론과 논리 역시 읽으면 고개를 끄덕거리게 만들 정도로 그럴싸해서 미학이론에 대한 현학적인 재미도 충분히 충족시켜 주고요.
그 외에도 "검정고양이"라는 별명 외에 탐정역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고 화자역의 이름 역시 등장하지 않는 것도 특이했습니다. 추후 서술트릭에 써먹으려는 장치일까요?
아울러 특이한 탐정, 천재탐정은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지만 "미학"을 전문으로 하는 교수 탐정 역시 이 작품이 처음이었어요. 뭐... 미학전공이라는 것을 빼면 탐정 자체의 캐릭터는 천재 학자이자 잘난척 덩어리로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것, 그리고 시니컬한 대사로 똘똘 뭉쳐있는 점에서는 임상 범죄 학자 히무라 히데오나 갈릴레오 유가와가 바로 연상되는 캐릭터라 별로 차별화되지는 않습니다만...

그러나 단점도 명확합니다. 첫 두편 이외의 나머지 네편은 추리적으로나 이야기 전개가 모두 미흡하다는 점이죠. 미학이론과 추리가 제대로 조합되지 않은 탓으로 솔직히 이후의 시리즈가 기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형편없었습니다. 독특한 설정을 지속적으로 끌어나가기에는 힘이 딸리는 느낌이었어요.

때문에 전체 별점은 평균해서 2점... 앞의 두편은 미학이론과 추리의 결합이 잘 이루어진 좋은 작품들로 별점 3점 이상은 충분한 작품들입니다만 뒤의 네편이 점수를 모두 깎아먹네요. 그래도 앞의 두편만큼은 꼭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독특한 일상계 추리물을 찾으신다면 정답일 수도 있겠습니다. e-book으로 팔던데 이 작품만큼은 각 단편별로 별도 구매할 수 있도록 하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도 드는군요. 그나저나 이거 다음권을 읽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달과 나의 거리>
"나"가 어머니의 정장에서 우연히 발견한 기이한 지도에 대한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내용으로 시리즈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
<다케토리 이야기>의 원제는 <다케토리옹 이야기> 였는데 이야기 자체가 달과 인간 모두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제목이 바뀌었다던가, 나폴레옹 3세가 고용한 오스만 남작이 파리에 가스등을 전면으로 도입하며 "예술의 학살자"임을 자처한 이유는 달을 대체하여 달의 주민을 파리에 살게 하기 위함이었다던가하는 눈이 휭휭 돌아가절 정도의 현학적인 이야기가 끝없이 이어집니다. 거의 강의에 가깝게 말이죠.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러한 미학 강의가 저에게는 아주 재미있었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더해 지도의 수수께끼가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지도에 관계된 두 학자의 전공분야가 앞서 자세하게 설명한 이론과 딱 들어맞고 진상 역시도 합리적으로 설명된다는 점에서 마음에 들었고요. 암호로서의 가치도 없는 기이한 지도가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의 징표가 된다는 것은 와닿지 않았습니다만...
그래도 전체적인 짜임새와 완성도는 좋았고 무엇보다도 미학이론과 일상계 추리의 결합이라는 독특한 아이디어가 잘 구현된 작품으로 새로운 시리즈의 도입부로는 충분했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벽과 모방>
3년전 "나"와 검은고양이가 처음 만나게 되었던 세미나 팀에서 여름 휴가를 계획한다. 장소는 팀원 중 한명인 세키마타의 가루이자와 별장. 그러나 세키마타는 팀원들이 방문한 날 기이한 행동을 보인 뒤 자살한 시체로 발견된다.

세키마타의 자살 원인을 분석하는 추리와 작품을 관통하는 바그너와 니체의 "벽" 이론이 절묘하게 결합된 작품. 일본에서는 일반적이지만 서양에서는 말하는 벽은 공포의 대상일 수 밖에 없다 - 기본 개념의 붕괴- 는 것, <검은 고양이>에서의 벽을 해석하는 이론, "모방"과 "카피"의 차이 - 모방은 정신과 행위에 관한 개념이지만 카피는 완성된 결과만을 지향하는 것 - 를 설명해 주면서 이 개념이 이 사건에 깊게 얽혀있는 것을 간단하게 설명해 주는 것 등이 아주 좋았습니다.
세키마타의 모방 행위는 분명히 비정상적인 것이라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단점이 있긴 하나 미학과 추리를 절묘하게 엮어나가는 내용이 기존에 알고있던 추리소설의 상식을 깨는 멋진 작품이었어요. 강의가 지나치게 장황하지 않아서 이해하기 쉬우며 적절한 길이로 마무리된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고요. 별점은 4점입니다.

<물의 레토릭>
연인이 동반자살로 의심되는데 여자가 사용한 향수의 향기가 이후에도 떠돈다는 괴담(?)의 진상을 밝혀낸다는 내용인데 일단 <마리 로제의 수수께끼>와 사건을 엮는 것 자체가 무리수였습니다. 물 - 여성의 시체라는 모티브 외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거든요. 미학강의와 일상계 추리를 엮는다는 설정에 지나치게 지배된 느낌이에요. 사건도 오해와 잘못된 증언이 결합된 것일 뿐 사건성이 전혀 없는 내용이었고요. 또 우연과 작위에 의한 전개가 많다는 것도 감점요인입니다.
모든 면에서 점수를 주기 어렵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숨기면 꽃>
검은 고양이가 이전에 알고 있던 여류학자 이구스가 실종되어 그녀의 행방을 쫓는 이야기.
작중에서 <도둑맞은 편지>와 말라르메의 <주사위 던지기>를 주로 강의하고 있지만 내용에 비하면 거창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알맹이는 별거 없는데 포장만 요란한 종합선물세트같은 작품이었달까요. 진상도 딱히 설득력이 없어서 전혀 와닿지 않았어요. 머리를 깎았다고 해서 딸을 못 알아볼 부모가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요? 눈이 안 좋다고 해도 저같으면 목소리로 알아볼 수 있을거라 자신합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두개골 속에서>
5년전 혜성처럼 데뷰했으나 데뷰작 이후 사라져 버린 천재시인 시조 도미아키의 데뷰 5주년 기념 파티에서 그의 신작이 낭독된다. 그리고 그와 동일인물임을 의심받던 영화감독 에즈미가 자살하는데...

<황금충>을 리그랜드와 황금충이 서로에게 침입했다고 설명하는 미학강의만큼은 재미도 있고 괜찮았지만 문제는 위의 이야기들과 동일합니다. 그것은 바로 미학강의가 시조 도미아키와 에즈미 감독의 죽음을 설명하는데 그다지 적절해 보이지 않고 억지스럽기만 했다는 것이죠. 사디즘 - 마조히즘의 관계처럼 에즈미는 관능 속에서 생을 긍정하는 반면 시조는 그로테스크한 모티브 속에서 유머러스하게 죽음을 긍정한다는 정 반대의 작품세계를 가지고 있다는 부연 설명만으로 이야기 전개는 충분히 가능하거든요. 검은 고양이의 누나 레이카가 제대로 설명만 해 주면 애시당초 사건이 될 수도 없는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역시나 설정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무리수를 둔 작품이랄까요... 별점은 1.5점. 내용보다는 미학강의가 더 좋아서 완벽하게 주객전도된 느낌입니다.

<달과 왕>
한 노교수의 죽음, 그리고 그와 젊은 여류학자와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단편.
포의 <까마귀>가 그리스 음악적인 시라는 것, 여기서 까마귀의 "Nevermore"는 악기를 의미할 수 있다는 등의 현란한 미학 강의만큼은 볼거리이며 작중 등장하는 그리스 연극 <쫓는 왕>과 작중 사건을 긴밀하게 연결하는 설정도 꽤 괜찮았던 작품입니다.
그러나 추리적으로 전혀 건질게 없다는건 문제죠. 아무리 눈치가 없어도 그렇지 바로 앞의 사람이 소리를 내는데 그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전혀 납득이 되지 않거든요. "골전도"를 응용한 발성법이라는 불필요한 설정 역시 불필요한 사족으로 보였습니다. 어치피 말도 안되는 것, 선하나 더 긋는다고 뭐가 달라지는건 아니죠. 선글라스를 끼면 신호등이 푸른달로 보인다는 마지막 이야기도 만화적이라 별로였습니다.
그래도 이전의 막장 작품들보다는 내용면에서 설득력도 있고 결말부분에서 나와 검정고양이 관계의 진전을 암시하는 달달한 전개도 나쁘지는 않아서 별점은 2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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