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서바이벌 가이드 - 맥스 브룩스 지음, 장성주 옮김/황금가지 |
가상의 존재인 좀비에 대해 상세한 설정을 부여한 뒤 좀비가 창궐하였을 때의 대처법을 설명하는 독특한 책.
따지고 보면 대체역사 소설과 비슷한 장르물이긴 하지만 "교본"이라는 형태로 구성하여 현실감을 높이고 독자로 하여금 디테일한 설정에 빠져들게 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정말이지 아이디어의 승리에요. 어렸을 때 좋아했었던 일본 괴수, 애니메이션 대백과 생각이 나기도 합니다. 터무니없는 설정을 진짜처럼 포장해서 풀어나가는 점 때문입니다.
실려 있는 내용도 꽤 상세합니다. 좀비에 대한 설명에서 시작하여 무기와 전투 기술, 방어요령, 피난요령, 공격요령, 좀비 천지에서 살아남기에 이어 기록에 남은 좀비 공격 사례라는 가상 역사로 마무리하고 있는데, 모든 내용이 가짜라는걸 알아도 읽고 나면 뿌듯해질 정도로 그럴듯합니다. 거의 전 지구를 포괄하는 가상 역사도 흥미진진하고요.
또 그동안 좀비물의 상식을 깨는 이론도 돋보였습니다. 예를 들면 쇼핑몰이 좀비 방어에는 최악의 장소라든가, 버스는 탈출 수단으로는 젬병이라는 것 등입니다. 전통적인 좀비 영화나 만화의 설정을 전면으로 부정하는 것들인데, 워낙에 합리적으로 설명해 주어서 감탄했습니다.
책을 읽고 나니 혹시 모르니 필수 상비품인 "배척 (빠루)"는 바로 구입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셰티"도 한 자루 챙겨 놔야겠고요. "월아산"을 어떻게 구해 놓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창의 안정성과 일본도의 살상력 겸비)
하지만 내용 대부분을 글로 떼우고 있다는 점에서 최고점을 주기에는 부족합니다. 좀 더 치밀한 도판과 자료 사진으로 도감 형태를 갖추었어야 합니다. 이 정도로는 좀비 세상에서 살아남는 가이드로는 부족해요. 그 밖에 농사짓는 법이라든가 피난처를 짓는 방법도 조금 더 자세하게 소개되었어야 합니다. 수박 겉핥기 식으로 슬쩍 짚고 넘어가는 수준이라서, 정작 위급한 상황에서 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습니다.
그래도 이런 소재로 이만큼이나 진지하게 접근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대단하고, 취미와 실용 (?)을 만족시키는 보기 드문 작품으로 장르물 애호가라면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 같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좀비물 팬이라면 놓치지 마시길.
이어지는 시리즈로 "북두신권 세상에서 살아남기"라든가 "연쇄살인극에서 살아남기" 등으로 시리즈가 이어지면 좋겠습니다. "연쇄살인극에서 살아남기"는 직접 써 봐야겠네요!
그런데, 좀비가 왜 이렇게 사랑받는 몬스터가 됐을까요? 제가 어릴 적에는 3대 몬스터 - 드라큘라, 프랑켄슈타인, 늑대인간 - 에 끼지도 못하는, 미이라보다 못한 마이너 몬스터였는데 말이죠(대관절 프랑켄슈타인이 저기 왜 끼어 있는지는 미스터리지만). 80년대 이후 피로 전염되는 AIDS라는 병에 대한 경각심 때문일까요? 어쨌든 80년대 이후, 기존의 귀족적인 스타일에 더하여 핸섬한 게이 혹은 엄친아로 진화한 흡혈귀에 비한다면야 몬스터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뚝심 하나만큼은 높이 사고 싶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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