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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12

밀크의 지구사 - 해나 벨튼 / 강경이 : 별점 2.5점

밀크의 지구사 - 6점
해나 벨튼 지음, 강경이 옮김, 주영하 감수/휴머니스트

휴머니스트 출판사의 <의 지구사>> 시리즈 중 한 권. 책이 워낙 예뻐서 눈에 뜨이는 대로 한 권씩 구입했지만, 처음에 읽었던 몇 권이 기대에 미치지 못해 그냥 바라만 보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일본 카레왕의 추천으로 읽은 <<커리의 지구사>>가 아주 좋아서, 나머지도 계속 읽어 보려 합니다. 이번에 읽은 책은 우유에 대해 다룬 <<밀크의 지구사>>입니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밀크, 즉 우유가 우리 식문화에 자리잡은 역사에 대해 알려주고 있습니다. 제일 첫 단락은 왜 인류가 동물의 젖을 먹어야 했으며, 언제부터 젖을 먹기 시작했는지입니다. 동물의 젖을 먹게 된 이유는, 가축을 키우면 그 젖을 식량으로 쓰는건 타당한 이치라고 설명됩니다. 쥐와 고양이, 돼지 젖을 먹지 않은 이유는 먹을 만큼 젖을 짜는게 불가능했기 때문이고요. 이후 알려주는건 인류가 언제부터, 어디서 우유를 먹기 시작했는지에 대해서입니다. 최근 연구결과로는 기원전 7,000년 또는 그 이전에 현재의 터키 지역 쪽에서 먹기 시작했다고 하네요. 그 이후 각종 문명, 문화권에서 젖을 어떻게 짜서 먹었는지 등을 다양한 사료를 통해 알려주고 있습니다. 각 문화권에 있었던 독특한 레시피, 유제품에 대한 소개도 함께 합니다. 예를 들어 우유를 끓여먹으면 소화하기가 훨씬 숴워져서 고대 인도에서는 뭉근하게 끓인 뒤 강황가루나 후춧가루, 계피 조각, 생강 가루를 넣어서 먹었다는군요. 몽골의 말젖 발효주 아이락 만드는 법, 베두인의 낙타젖은 물과 1대 3의 비율로 희석하면 맛이 좋다는 대 플리니우스의 레시피 등입니다.
동물의 젖을 요리의 재료로 쓴 역사도 당연히 오래 되었습니다. 기원전 1750년 경 바빌로니아 설형 문자 기록에 따르면 밀크나 신 밀크를 새끼 염소 스튜 등에 사용했다고 하니까요. 그러나 모세의 율법을 따르는 유대인들은 고기와 밀크를 함께 먹지 않았습니다. 새끼 염소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아서는 안된다는 이유라는데, 나름 타당하네요. 이러한 고대 문명에서의 우유 먹는 방법에 대한 설명은 고대 로마까지 이어집니다. 여기까지가 서두라고 할 수 있어요.

이 뒤에서부터는 근대 이후부터의 시기가 핵심으로 다루어집니다. 우유 수요가 증가하여 현대적인 우유 산업이 생성된 역사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기 위함이지요. 우선 17세기 이후부터 시골 동네에서 우유를 꾸준히 먹고, 도시에서도 우유 수요가 증가하는 과정이 소개됩니다. 이는 인구 증가와 시장 활성화 덕분입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우유 시장이 커진 19세기의 우유는 위험한 식품이었다고 하네요. 지저분한 낙농장에서 비위생적인 운송 과정을 거쳐 냉장도 하지 않은 채 저장되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우유의 양을 늘리고 색깔, 맛, 향을 위해 온갖 첨가물을 넣어 더욱 위험했어요. 이후 19세기 후반 저온 살균법이 보균되면서 겨우 현대적인 우유 보급의 시대로 접어들게 됩니다.
그러나 미국에서 지속적으로 성장하던 우유 시장은 1970년대를 기점으로 점차 줄어듭니다. 탄산음료 시장이 성장했고, 우유가 사실은 해롭다는 이야기도 계속 확산된 탓이지요. 우유의 유해성에 대한 담론은 우유가 여러가지 처리 과정을 거치기에 불거진 이야기로, 처리 전의 생유를 마시자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긴 하나 당장은 여러가지 문제가 있다는군요. 여기서 <<은수저>>에서 하치겐이 생유를 먹고 맛있음에 전율하는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저도 기회가 되면 꼭 한 번 먹어보고 싶네요.
그리고 책은 아직까지 세계적으로 우유 수요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으며, 야쿠르트, 밀크티 등 각종 음료 시장도 성장하고 있지만 낙농업은 환경에 문제를 일으키므로 우유 소비를 줄이는 방법도 고민해 봐야 한다는 이야기로 마무리됩니다. 흔하게 먹는 우유 한 잔에 얼마나 오래된 역사와 문화, 그리고 고민이 담겨 있는지 새삼 느낄 수 있었네요. 앞으로의 고민까지 말이죠.

뒤에는 언제나처럼 부록으로 주영하가 쓴 한국에서의 우유 문화사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조금 놀랐던 점은, 한국 우유 산업은 일제 강점기 때인 1911년에 이미 생산과 판매 모두 법령으로 확립되었다는 점입니다. 일본 열도의 우유업이 한반도에 그대로 투입되었기 때문이죠. 일본에 우유 산업이 발전한건 일찌기 산업화된 유럽과 미국의 우유 기술을 도입하여 홋카이도 개척 당시 낙농 사업을 펼쳤으며, 19세기 후반에 서구화를 위한 서구 추종 분위기에 육식과 함께 편승한 탓이었고요. 심지어 조선총독부에서 젖소를 직접 도입할 정도로 우유 공급을 권장했다고 합니다. 조선 국민들을 전쟁에 써먹기 위한 육체 개조 목적이었지요. 하여튼 이렇게 근대적인 우유 산업은 이미 20세기 초반에 확립되었습니다. 지금의 서울우유협동조합부터가 1937년 경성우유동업조합으로 시작했다고 하니까요. 우유에 대한 식문화 만큼은 다른 서방 선진국에 비해 그다지 뒤지지 않은 셈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우유 소비량은 1997년 이후 더 이상 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에서의 이유와 마찬가지겠죠. 젊은 층 인구 감소를 보면, 앞으로는 더 줄지 않을까 생각되고요. 애초에 근대화, 서구화를 위해 도입되었다는 목적을 돌이켜 보면, 이미 서구 문화권과 다름없는 현재 시점에서 우유 소비량이 더 증가한다는건 어려운 일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합니다.
그 뒤 마지막은 우유에 대한 몇 가지 레시피가 실려있는데 수 페이지에 불과하고, 내용도 별다를건 없네요.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우유에 대해 여러가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 것 같아서 만족스럽습니다. 대단한 깊이는 없지만, 가볍게 읽기도 좋았고요. 충실한 도판과 함께 해당 음식의 역사에 대해 한 번 훝어준다는 이 시리즈 컨셉에 충실하거든요. 이런 류의 책을 좋아하신다면, 한 번 읽어보셔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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