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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14

기도의 막이 내릴 때 - 히가시노 게이고 / 김난주 : 별점 3점

기도의 막이 내릴 때 (저자 사인 인쇄본) - 6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재인

도쿄의 한 아파트에서 교살된 사체가, 아파트 근처 노숙자 오두막에서는 불에 탄 남자의 사체가 발견된다. 아파트 교살 피해자 오시타니 미치코가 도쿄에서 만났던 중학교 동창인 연극 연출가 아사이 히로미도 경찰 수사 선상에 오르고, 아파트에서 발견된 달력 속 '니혼바시 12개 다리' 메모 때문에 가가 형사도 사건에 참여하게 된다. 가가 형사 어머니 유리코의 유품 속에 동일한 메모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코로나 사태로 독서에 더욱 빠져들게 된 요즈음입니다.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아무래도 쉽게 읽을 수 있고, 고민거리를 머리에서 지울 수 있는 추리 소설을 많이 읽게 되네요.

이번에 읽은 이 작품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가가 형사 시리즈 10번째 작품입니다. 최종편이라고 소개되고 있네요. 가가 형사 시리즈인지는 모르고 대여해서 읽었는데, 마지막 작품이라니 왠지 모르게 감개무량합니다. 어쩌다보니 딱 한 편 빼고는 전부 읽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말씀드렸듯, 회사 도서관 사서분께서 가가 형사 시리즈의 팬이신지 다른 작품들에 비하면 유독 이 시리즈만 거의 전 권이 갖추어져 있었던 덕분이지요.

하여튼, 이야기는 가가의 어머니인 유리코 씨가 사망하고 10여년 뒤, 두 구의 살해된 시체가 발견되며 시작됩니다. 주요 관계자인 고시카와 무쓰오 달력에 기입된 메모가 가가의 어머니 유리코 씨 유품 속 메모 내용과 일치한 탓에, 유리코 씨와 교체하던 와타베라는 인물이 사건의 주요 인물로 부상하게 되고요.
이야기 중반부까지 고시카와 무쓰오는 와타베 슌이치이며, 과거에는 히로미의 중학교 교사 나에무라일 것이라는 방향으로 끌고갑니다. 그러나 이를 뒤집고, 와타베 슌이치는 아사이 히로미의 부친 다다오라는걸 밝히는 가가의 추리는 그럴듯합니다. 히로미의 중학교 동창들을 만나 들었던 이야기가 단서가 된다는 점도 돋보여요. 별 것 아닌 이야기들로 묘사되지만, 여기서 "왜 아사이 다다오의 투신 자살이 고향에서 전혀 회자되지 않았는지?"라는 수수께끼가 "아사이 다다오는 죽기 전 이미 야반도주를 해서 고향에서는 잊혀진 상태였다"로 이어지는 추리가 자연스럽고 합리적이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오시타니 미치코가 아시이 히로미를 30년 만에 만났을 때, 히로미가 미치코에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으로 말해주는 장면도 이 추리의 근거가 되고요. 아사이 히로미는 유명인으로 과거가 모두 공개되어 있을텐데, 그 사실을 미치코가 몰랐다는건 조금 납득은 안 됩니다만, 아무튼간에 아사이 다다오는 당시 죽지 않았고, 숨어서 살다가 이번에 죽었다고 추리한 뒤, 아사이 히로미의 모발을 입수하여 DNA 분석을 통해 그 추리를 입증해 냅니다. 신용 불량, 빚 등으로 자신을 지우고 다른 사람으로 위장하는 이야기는 미야베 미유키의 걸작 <<화차>> 외에도 흔하기에 새로운 발상은 아니지만, 이 추리에 이르는 과정은 공정하고 합리적이었습니다.

아사이 히로미가 사건에 관계되어 있다는걸 밝혀나가는 경찰의 우직한 수사도 인상적입니다. 12개의 다리에 관련된 행사 사진을 관계자를 통해 모두 수집한 뒤, 수천장의 사진 속 등장인물을 분석하여 사건 관계자를 찾아낸다던가, 와타베 슌이치가 가가의 주소를 어떻게 손에 넣었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유일한 자료인 잡지 인터뷰 기사와 관련된 관계자를 찾아다닌다던가, 꾸준한 관계자 조사를 통해 고시카와 무쓰오, 즉 와타베 슌이치의 과거 행적을 추적하는 등의 수사가 펼쳐지는데, 그야말로 작중 가가의 아버지 말 그대로 "헛걸음을 얼마나 하느냐에 따라 수사의 결과가 달라진다"는걸 잘 보여줍니다.
게다가 무려 30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는 조사인 덕분에 시간, 그리고 도쿄와 시가현, 센다이를 오가는 지역의 스케일도 광대합니다. 시가현은 피해자 오시타니 미치코의 거주지이자 30년 전, 중학교 시절 히로미와 담임 교사였던 나에무라가 살았지요. 센다이는 가가의 모친이 죽기 전 까지 살던 곳으로, 와타베 슌이치와 만난 곳이고요. 중요한 증인인 미야모토 야스오가 살고 있기도 합니다. 도쿄는 사건이 일어난 곳이자, 핵심 수수께끼 중 하나인 '니혼바시 12다리'가 있는 장소입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강원도 속초, 서울, 경상도 통영 쯤 되는 거리랄까요? 형사들이 수사를 위해 이 세 곳을 발이 닳도록 돌아다니는 와중에 등장하는 기차 경로라던가, 주요 도시의 묘사에서는 여정 미스터리 느낌도 들더군요. 특별한 지역 명물이 등장하는건 아니지만요. 원자력 발전소 하청 근무자들의 비참한 삶을 드러내는건 약간 사회파스럽기도 했고요.

그러나 이러한 추리와 수사에 비해, 사건의 동기는 석연치 않아요. 우선 오시타니 미치코가 30년 동안 한 번도 못 봤던 아사이 히로미의 모친과 부친의 얼굴을 바로 알아보았다는건 현실적이지 못합니다. 히로미와 미치코가 좀 친하기는 했어도 이건 무리죠. 설령 알아보았다 하더라도, 이 사실이 그녀의 살해까지 이어지는 것도 납득하기는 어려워요. 무려 30년 전의 사건이라 공소시효도 지났을 뿐 아니라, 말만 잘 하면 충분히 설득하고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되거든요.
사건 해결의 결정적 역할을 한 가가의 어머니 유리코 씨 유품 속 메모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나친 우연이라는 점은 둘째치고서라도, 왜 그 메모를 유리코 씨가 가지고 있었는지는 전혀 설명되지 않습니다. 또 메모를 통해 와타베 슌이치라는 인물이 드러나지 않았어도 결과에 큰 차이는 없었을거에요. 당연히 진행했을 히로미의 중학교 동창들을 만나 증언은 들었을테고, 그렇다면 아사이 다다오의 죽음이 석연치 않다는건 충분히 추리할 수 있었으니까요. 12개 다리에 관련된 사진, 그리고 와타베 슌이치가 가가의 주소를 손에 넣은 방법을 알아내기 위한 수사를 통해 아사이 히로미가 사건과 강하게 연류되어 있다는걸 드러내는건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운에 의지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갈 필요는 없었어요.

물론 가가 형사가 니혼바시에서 살아가는 이유는 어머니 유품 속 메모에 기록된 니혼바시 12개 다리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서였으며, 가가가 마음의 짐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거라는걸 알리기 위해서는 와타베 슌이치의 존재가 반드시 필요하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이 두가지 요소는 가가 형사 시리즈 전체를 위한 부분이고, 이 작품만을 위해서는 불필요했다는 점에서 조금은 아쉬움이 남네요.

그래도 시리즈의 대단원을 장식하기에는 충분한, 재미있는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이렇게 또 하나의 시리즈가 끝난다는게, 아쉽기만 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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