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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08

질풍론도 - 히가시노 게이고 / 권남희 : 별점 2점

질풍론도 - 4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남희 옮김/박하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탄저균을 활용한 생물병기 'K-55'를 비밀리에 개발한 구즈하라는 부당 해고당한 뒤 연구소장 도고에 대한 원한으로 K-55를 훔쳐낸 뒤, 스키장으로 향한다. 코스 밖의 너도밤나무 밑에 세균이 담긴 용기를 묻고, 장소를 알아낼 수 있는 표식으로 너도밤나무에 발신기가 넣어진 테디 베어를 걸어 둔 구즈하라는 설산과 테디 베어가 찍힌 사진 두 장과 함께 3억 엔을 요구하는 메일을 도고 소장에게 보낸다. 돈을 보내지 않으면, 세균은 방치될테고, 이후 계절이 바뀌어 섭씨 10도 이상이 되면 보관 용기는 깨져서 탄저균에 의한 재앙이 시작될 것이라는 협박과 함께.
그러나 구즈라하는 급작스러운 자동차 사고로 사망하고, 도고 소장은 K-55를 경찰에 알리지 않고 은밀히 찾아낼 것을 선임 연구원인 구리바야시 가즈유키에게 명령한다. 구리바야시는 스노보드 마니아인 중학생 아들 슈토와 함께 구즈하라의 사진으로 알아낸 유력 후보지인 사토자와 온천 스키장으로 향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설산 3부작' 중 두 번째 작품. 설산 3부작 시리즈답게 <<백은의 잭>>의 주인공 중 한 명이었던 네즈가 사토자와 온천 스키장의 패트롤로, 치아키는 슬럼프에 빠진 프로 선수로 등장하며, 스키, 스노보드와 스키장에 대해 깊은 이해가 동반된 묘사로 가득차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K-55 묻혀있는 스키장을 사진 하나로 찾아낸다던가, 스키장으로 이동하는 방법, 스키 종류에 대해 풀어놓는 이야기 등이 그러하죠. 특히 활주에 대한 매력을 풀어내는 장면은 실제로 그런 멋진 경험을 하지 않았다면 도저히 쓸 수 없었으리라 생각되네요.
의도는 불순하더라도 구리바야시가 아들 슈토와 스키장에 온 후, 점차 부자 관계가 회복되어 가는 묘사도 뻔하지만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설득력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죠. 이는 전작의 이리에 부자 이야기와도 어느정도 겹쳐서, 역시 시리즈구나 싶은 생각도 듭니다.

또 K-55가 묻혀있는 나무를 나타내는 테디 베어를 찾는 후반부 박진감도 괜찮습니다. 오리구치가 협박으로 병원균이 담긴 용기를 손에 넣지만, 치아키와의 추격전 끝에 네즈에게 빼앗기고, 그러나 카페에서 용기가 실수로 깨진 뒤 바꿔치기 되었다는 걸 깨닫고, 다시 세균을 가졌을 유키를 쫓고, 또 바꿔치기하고... 하는 과정이 결말까지 이어지는데 숨돌릴 틈이 없을 정도에요. 이런저런 등장인물들이 총 출동해서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리는, '무슨무슨 대소동'같은 오래전 활극 느낌도 좋았고요.
아울러 이 후반부가 제목을 잘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되네요. 질풍은 말 그대로 세게 부는 바람처럼 휘몰아치는 추격전을, A-B-A-C-A 처럼 어떤 주제로 넘어가더라도 다시 A로 돌아오는 형식의 악곡인 론도는 어떤 의외의 상황, 곁가지 이야기가 펼쳐져도 결국 '탄저균 용기'로 귀결되는 전개를 의미하는게 아닌가 싶거든요.

그러나 여러모로 전작보다는 못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이 작품은 정교한 맛을 찾아보기 힘든, 그냥 모험물에 불과하다는 점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스키장을 찾아내는 정도만 약간의 추리가 있을 뿐, 테디베어를 찾는건 순전히 발품파는 것 밖에는 없으니까요. 별다른 단서도 없고, 그냥 열심히 찾다보면 발견할 수 있다는건 결국 어린아이들 소풍 중의 '보물 찾기'와 다를 바 없는 이야기인 셈이죠.

이는 작품 속 악역의 우두머리인 도고 소장이 무식하고 무능력한 탓도 큽니다. <<백은의 잭>>의 신게쓰 고원 스키장 임원들은 악당이기는 했지만 나름 계획도 세우고, 음모를 꾸미는 정도의 두뇌는 갖췄던 것에 반해 도고 소장은 무리한 지시만 늘어놓는 재수없는 상사에 불과하거든요. 그래서 독자가 두뇌 게임을 즐길 여지와 정교한 맛 모두 전무합니다.
도고 소장에 비하면 차라리 죽은 구즈하라, 그리고 소장 뒤에서 암약한 악녀 오리구치 마나미가 더 낫기는 합니다. 특히 마나미는 '독수리는 발톱을 숨긴다'는 명제를 따라 몸을 숨기며 한 탕을 노리는 캐릭터인데 은밀한 흑막에 참 잘 어울린다 싶더라고요. 그녀가 학생일 때 '백 점을 맞을 수도 있지만, 그래봤자 질투를 받거나, 학급임원 일을 떠맡을 뿐'이라며 일부러 몇 개 틀린다는 에피소드가 특히 마음에 들었어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큰 돈은 한탕 승부를 걸 수 밖에 없다, 그 때가 올 때 까지는 느려터지고 둔해보이도록 위장하여 기회를 기다려야한다, 그리고 기회가 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면 안된다'는 생각도 그녀에게 정말 잘 어울렸고요. 인상적인 캐릭터에 비하면 활약과 결말에서의 퇴장도 미약한 편인데, 도고 소장보다는 차라리 마나미를 전면에 내세워 이야기를 끌고나가는게 어땠을까 싶네요. 도고 소장 옆에서 구리바야시를 도와주는 듯 했지만, 마지막에 구리바야시 뒷통수를 치는 식으로요.

또 은백색의 스키장에서 펼쳐지는 스키와 보드 활주가 너무 매력적으로 그려지고, 슈토의 풋사랑, 네즈와 치아키의 사랑과 고민에 대한 비중이 높은 탓에 위험한 생물병기 탄저균 K-55의 위험이 전혀 와 닿지 않는 전개도 단점입니다. 그냥 보물 찾기에 대한 청춘 모험물로 밖에는 보이지 않더라고요.

전작과 마찬가지로 지나치게 작위적인 전개도 거슬렸습니다. 테디 베어를 아무 상관도 없는 중학생들이 먼저 발견한다는 전개도 그렇고, 처음 네즈가 겨우 입수했던 K-55가 중학생 유키에 의해 후추로 바꿔치기 되었었는데, 결국 찾아낸 진짜 K-55마저도 구리바야시의 아들 슈토에 의해 소시지로 바꿔치기 당햔다는 결말은 좀 지나쳤어요. 이런 요소까지 오래전 '대소동' 류의 이야기를 따를 필요는 없었을텐데, 여러모로 아쉽네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쑥쑥 읽히는 맛은 있기는 한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팬이 아니시라면 꼭 구해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소설로 읽기보다는 한바탕 신나는 액션이 신나게 펼쳐지는 코믹 액션 영화로 감상하는게 훨씬 나을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일본에서는 아베 히로시 주연의 코믹 액션 영화로 이미 발표되었던데, 사람들 생각은 다 똑같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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