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크를 생각하다 - 비 윌슨 지음, 김명남 옮김/까치 |
포크를 비롯한 여러가지 주방 기구, 조리 도구들을 통해 식탁과 조리의 역사를 돌아보는 문화사 서적. 냄비와 팬, 칼, 불, 계량, 갈기, 먹기, 얼음, 부엌의 8개 주제로 나뉩니다. 주제별로 조금 다르기는 하나, 큰 맥락을 살펴보면 지금의 부엌은 급격한 기술의 발전이 가져온, 고작해야 반세기 남짓한 상황의 결과물일 뿐이다, 세상에 완벽한 기술은 없다, 그렇지만 기술의 발전이 꼭 요리의 발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명제를 이런저런 기구와 도구들을 통해 설명해 줍니다.
당연하겠지만 기술의 혁신을 폄하하지는 않습니다. 고대 로마의 '모르타리아'에 대한 이야기가 좋은 예입니다. 모르타리아는 다양한 허브와 양념을 절구로 섞어 만든 혼합물로 노예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요리인데, 지금은 이 요리는 몇 초 안에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맛은 대단하지 않습니다. 고된 노동이라는 양념이 맛의 가장 중요한 요소였던 것이지요. 이런 식으로 무의미하고 불필요한 노동과 노력을 없앤 혁신에 대해서는 저자도 높이 평가합니다. 이러한 기술 혁신 과정에 있었던 온갖 시행 착오를 읽는 재미도 좋고요.
또 주물팬, 알루미늄팬 등 수많은 팬들 중에서 가장 완벽한 팬이 무엇인지를 여러가지 측정을 통해 밝혀낸다던가, 계량을 위한 가장 완벽한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해 고찰하는 등 기술 발전을 통해 증명할 수 있는 여러가지 호기심에 대한 답들, 그리고 중세에는 조리 시간 측정을 '주기도문을 세 번 외우는 동안'처럼 기도 시간으로 명시했으며, 온도는 오븐 안에 손을 넣어 느껴지는 아픔으로 측정했다는 등의 도구 발전의 역사 속에 있었던 이런저런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잔뜩 소개됩니다.
여러가지 도구의 역사를 함께 설명하고 있어서, 그동안 몰랐던 디테일을 알게되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예를 들면 프랑스에서 샐러드 채소를 나이프로 자르지 않는 이유는, 오래전 나이프는 강철제였던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네요. 비네그레트 소스와 강철날이 만나면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이랍니다.
우리에게 친숙한 형태의 자동 토스터는 찰스 스트라이트의 발명품으로, 1921년 수직으로 튀어오르는 용수철과 조절 가능한 타이머에 대한 특허를 냈다고 하고요. 직장 카페테리아에서 번번이 탄 토스트를 내놓는데 질려서 내 놓은 발명이라는데 <<오므라이스 잼잼>>에 써 먹음직한 이야기네요.
개인적으로는 냉장고 이야기에서 건네는 화두가 의미심장했습니다. 베이컨이나 훈제 요리 등은 냉장 기법이 등장했더라면 등장하지 않았을 요리들인데, 왜 이런 요리를 우리는 지금도 먹고 있는 걸까요? 건강을 생각한다며 '저염 베이컨'이 등장한지도 오래 되었는데, 따지고 보면 '저염' 이라는건 보존에는 걸맞지 않으니 애초에 베이컨에 적절치 않은 방식이지요. 이러느니 그냥 고기를 사다가 조리해 먹는게 더 낫고요. 익숙한 요리법, 요리가 한번 실생활에 침투하면 변하기가 정말로 쉽지 않다는걸 잘 증명할 뿐 아니라, 기술이 발전한다고 요리가 따라서 발전하지도 않는다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배달 문화가 급격하게 발달하고 있지만, 배달에 최적화된 음식이 등장하고 있지는 못한 최근 트렌드와도 비슷해 보입니다.
그런데 "요구르트"는 또 이와는 정확하게 반대입니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영국인들이 먹던 유제품 디저트는 우유에 쌀, 타피오카 등을 넣어 미지근하게 먹는 우유 푸딩이었는데, 1950년대 이후 우유 푸딩은 거의 사라지고 요구르트가 수십억 달러의 시장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요구르트가 냉장고 문 선반에 놓아두면 보기가 좋다는 이유 때문에요. 기술의 발전이 전통 요리를 없애고, 새로운 요리의 유행을 만든 예인 셈이지요. 좋은 방향은 아닌 듯 하지만요.
그 외에도 생각할 거리는 많습니다. 예를 들어 요사이 부드러운 음식을 많이 먹는 탓에 어린 아이들의 턱 뼈와 근육 발달이 더뎌진다는 기사를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나이프와 포크로 음식을 작게 잘라 먹기 시작한 250여년 전 부터 피개교합 (위 앞니가 아래 앞니보다 살짝 튀어나온 상태)이 등장하였으며, 지금은 대세가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단지 농업 도입 시기가 아니라 서유럽에서는 18세기 말에 들어서야 지위가 높은 사람들부터 피개교합으로 바뀌었다고 하네요. 이는 식탁에 나이프와 포크가 도입된 시기와 일치하고요. 즉, 이전에는 입에 음식을 넣고 입으로 끊어내었지만, 나이프를 이용하여 이런 방식이 종말을 고했으며, 나이프가 무뎌지면서 음식은 더 부드러워졌기 때문에 더더욱 씹을 필요가 줄어들게 된 것입니다. 큰 칼로 모든 음식을 잘게 잘라 만드는 중국에서는 피개교합이 800~1,000년 일찍 나타났다는 점에서도 이 이론은 설득력이 높습니다.
또 불을 이용한 조리가 인간을 인간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리처드 랭엄의 <<요리 본능>>을 통해 저도 접했던 내용입니다. 하지만 이 책은 불이 어떻게 부엌 안으로 들어와 가두어지게 되었는지, 그리고 나라마다의 조리 환경 차이가 생긴 이유를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영국이 '로스팅' 강국이 된 이유는 땔나무가 풍부했기 때문이라는 식이지요. 로스팅 기술이 워낙 빼어나 영국의 로스트 비프는 최고였지만, 로스팅 기술이 한물 간 뒤 영국 요리사들은 뒤쳐지게 되었다고 하네요. 지금의 영국 요리가 나쁜 이미지가 생긴 원인이 아닌가 싶군요. 불, 즉 열원에 대한 이야기의 끝 마무리가 '전자 레인지'라는 것도 의미심장하고요. 불에 대한 통제가 핵심이었던 역사가, 결국 불 없는 요리로 귀결되었다는 뜻인데 무언가 의미심장하게 느껴지네요. 내연 기관이 결국 전기 모터로 바뀐다는 이야기와도 같은 이야기겠죠?
이렇게 흥미로우면서도, 깊이있는 글들이 많지만 단점도 있습니다. 우선 저자의 개인 의견이 강하게 개입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단점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조금은 더 객관적인 시각이었다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약간 에세이 느낌도 들거든요. 또 도판이 거의 없는데 이건 분명한 약점이에요. 도구의 변천사를 그림으로 설명해주는 페이지가 있었더라면 아주 완벽했을텐데 아쉽습니다.않았을까 싶거든요.
그래도 재미와 교양 양쪽을 만족시키는 좋은 책임에는 분명합니다. 제 별점은 3.5점입니다. 식문화에 대해 관심이 있으시다면 한 번 쯤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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