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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06

식스웨이크 - 무르 래퍼티 / 신해경 : 별점 2.5점

식스웨이크 - 6점
무르 래퍼티 지음, 신해경 옮김/아작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서기 2493년, 4백 년 항해 예정의 항성 간 이민 우주선 승무원인 마리아 아레나는 마른 피로 얼룩진 클론 재생 탱크에서 깨어난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한 기억이 없다. 이런 상황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곧 마리아는 새로 깨어난 클론이 자기뿐만 아니라 여섯 명 승무원 전원임을 깨닫게 되고, 클론 재생실에는 칼에 찔려 죽은 승무원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다. 외로운 밀실 우주선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게다가 모든 승무원이 죽었다면 살인자는 누구란 말인가….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인용)

책 소갯글에 혹해서 읽게 된 SF 미스터리 장편. 우주선에 탑승한 여섯 명의 승무원이 서로 죽고 죽여서 전멸한 뒤, 사건 당시의 기억을 잃어버린 채 클론으로 재생된다는 설정이 아주 매력적이라 읽게 되었습니다. 누가 살인자인지, 동기가 무엇인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는 상황이 이보다 더 잘 맞아 떨어질 수는 없을 테니까요.

그러나 기대와는 많이 달랐습니다. 사건에 대한 추리적인 내용보다는, SF 소설로서의 비중이 훨씬 높거든요. 물론 나쁜건 아니에요. 아니, 오히려 SF 적인 부분은 아주 좋았습니다. 무엇보다도 클론에 대한 세세한 설정은 아주 돋보여요. 이 세계의 클론은 여러가지 시행착오를 거쳐 철저한 법률에 근거하여 관리되고 있다는 것이 탄탄한 묘사를 통해 설득력있게 설명되고 있거든요. 우선 클론의 존재에 대해 거대한 다툼과 많은 죽음이 발생한 후 이를 허용하는 법안이 통과됩니다. 이를 통해 복수의 클론은 금지되어 있으며, 복수의 클론이 적발될 경우 가장 나중에 복제된 클론 외에는 모두 폐기힌다는 것과 마인드맵을 저장한 뒤 클론에 그대로 이식하여 기억을 이어나갈 수 있지만 마인드맵을 수정하는 마인드해킹 행위는 엄금한다, 그리고 클론은 생식능력을 제거하며 재산은 그 자신에게 상속된다는 등의 세세한 법안이 제정되죠. 단지 설정으로 끝나지도 않습니다. 이러한 클론에 대한 설정은 승무원들의 과거와 직, 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을 뿐 아니라, 우주선 내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의 동기가 되거든요. 클론을 증오하는 엔지니어 폴이 모두를 살해한게 진상이니까요.
또 이 사실이 밝혀지는 승무원들의 과거 이야기도 아주 흥미롭습니다. 특히 클론에게 영혼이 없다고 주장하던 오르만 신부가 반대파에게 납치된 후 클론으로 재생되었다는 이야기는 이 작품 속 등장인물의 과거 에피소드로만 놓기 아깝다 싶을 정도였습니다. 과연 클론에게 영혼이 있을까? 부터가 흥미로울 뿐 아니라, 해커들이 마인드맵을 해킹하여 대상자의 성격을 비롯하여 모든걸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건, 영혼이 숫자로 치환되어 프로그래밍할 수 있다는 이야기와 다를게 없어서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클론에게 가족을 잃었다고 생각하여 복수심을 불태우는 엔지니어 폴이 복수를 완성한 뒤, 정작 그 자신이 클론으로 복제되어 재생되었다는 이야기도 아주 괜찮았어요.
이외에도 현재 시점에서 아직 선장은 죽지 않고 혼수상태로 발견되었기 때문에, 새로 만들어진 클론이 이전 선장을 폐기해야만 하는 딜레마라던가, AI 이안은알고보니 원래 인간이었는데 마리야가 마인드맵을 해킹하여 만들어낸 인공지능으로 약간의 조작을 통해 다시 인간으로 클론 복제할 수 있었다라는 반전 등 재미난 디테일이 많습니다. 클론 복제를 음식을 만들어내는 음식 인쇄기를 통해 진행한다는 결말도 복선을 통해 잘 설명되고 있고요.
주인공들이 탄 우주선 도르미레 호의 설정도 그럴듯합니다. 도르미래호는 아르테미스라는 머나먼 별로 떠난 일종의 이민선입니다. 여섯명의 승무원들은 수천명의 냉동 클론을 무사히 아르테미스까지 운송하는 대신, 그들이 지은 중죄를 사면받는 조건으로 승선한 범죄자들이죠. 이렇게 범죄자들이 사면을 조건으로 거대 계획에 종사한다는 이야기는 굉장히 오래된 이야기이긴 하나, 이를 SF로 변주한 아이디어는 좋았습니다.

그러나 앞서 말씀드린대로 추리적으로는 그다지 정교하지 못합니다. 사건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지구의 실력자 샐리 미뇽이 거대 이민선을 비롯하여 승무원들, 심지어 인공 두뇌까지 관계자들을 투입한 이유부터가 제대로 설명되고 있지 않거든요 '복수' 때문이라고 설명되기는 하는데, 샐리 미뇽은 워낙에 실력자라서 구태여 이런 식으로 복수를 할 필요는 없었죠. 일종의 악취미로 단지 승무원들이 서로 미워하고 싸우고, 붕괴하기를 바랬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서 사건이 일어나는데 무려 2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으니 그닥 효율적이지는 못했습니다.
아울러 협박과 고문 탓이지만 마리아가 볼프강, 히로를 해킹하여 엉망으로 만든건 사실입니다. 이는 충분히 살해 동기가 될 수 있고요. 그래서 볼프강과 히로가 마리아에게 살의를 품는건 말이 됩니다. 그러나 마리아를 원수로 알고 있는 폴이 마리아 외 다른 사람들도 모두 죽인다는 진상은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클론이라서 다 죽일거였다면 20년 동안 참을 이유도 없고요. 게다가 폴은 볼프강에게 대적할 수 없는 체형과 체력의 소유자라는게 이미 설명되기도 했거든요. 그 외에도 어차피 죽일거라면 마리아만 왜 독미나리로 중독시켰는지, 히로는 대체 왜 자살했는지도 그렇게 납득이 가게 설명되지 않습니다. 다중 인격이 된 히로가 폭주하는 이유도 마찬가지고요. 결론적으로 처음에 여섯 명 모두가 죽게된건 단지 우연이었을 뿐이며, 그들이 클론으로 되살아난 것 역시 즉사하지 않은 마리아가 재생 버튼을 눌렀을 뿐이라는 작위적인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마리아가 펼치는 추리쇼 형태 느낌의 마지막 클라이막스도 딱히 단서가 탄탄하게 뒷받침된게 아니라 여러모로 아쉬웠습니다. 복선을 좀 더 치밀하게 짜 두었더라면 좋았을텐데 말이죠. 폴이 작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작아서 공정하게 단서를 얻는것 자체가 힘들었던 것도 나쁜 추리물의 전형이고요. 이야기에 거의 등장하지도 않는 사람이 알고보니 범인! 이라니, 이건 좀 너무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 흥미로운 도입부와 여러가지 설정 덕분에 몰입해서 읽을 수는 있지만, 추리적으로는 약간은 용두사미 느낌이라 아쉬웠습니다. SF로는 완벽하나 추리적으로는 더 탄탄한 구성이 필요했습니다.
그래도 재미만큼은 확실하니, 이런 류의 장르 문학을 좋아하시는 분들께서는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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