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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21

문학을 홀린 음식들 - 카라 니콜레티 / 정은지 : 별점 2.5점

문학을 홀린 음식들 - 6점
카라 니콜레티 지음, 매리언 볼로네시 그림, 정은지 옮김/뮤진트리

푸주한이자 전직 페이스트리 요리사이자, 뉴욕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한 저자가 자신의 유년시절, 청소년기, 성인 시절에 읽었던 문학 작품들 속에서 인상적인 요리들을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 본 레시피와 함께 소개하는 책. 저자의 경력에 딱 맞는 책이네요.

그동안 소설이나 영화 속 요리들에 대해 소개하는 책은 제법 많이 읽어보았습니다. 제가 블로그에서 소개한 비슷한 책만 해도 <<죽이는 요리책>><<문학의 맛, 소설 속 요리들>><<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레시피>>가 있죠. 그 외에도 무라카미 하루키, 헤밍웨이의 작품 속 요리에 대해 다루는 등의 많은 책이 출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책들이 그동안 불만스러웠었습니다. 그냥 등장한 요리의 나열일 뿐, 그 요리가 작품 속에서 어떠한 역할을 차지하는지를 제대로 설명해주는 책은 한 권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또 레시피 소개와 재현에 치중할 뿐 그 요리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는 책도 거의 없었고요.
그래서 저 스스로 이 시장에 뛰어들어 추리 소설 속 주요 등장 요리들을 주제로 레시피와 함께 소개하는 <<콘 비프 샌드위치를 먹는 밤>>이라는 졸저를 출간한 바 있습니다. 제 원칙은 작품 속에서 인상적으로 등장한 요리라 하더라도, 중요하게 사용되지 않았다면 주제로 삼아 글을 쓰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또 그 요리들에 대한 단순 레시피 뿐 아니라 그 요리에 대해 제가 구할 수 있는 정보를 모두 정리하여 해당 요리에 대해 설명하려고 노력했고요.

이 책은 제가 추구한 방향과 어느정도 비슷합니다. 주제로 선정된 요리들이 작품이나 주인공에 대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는 점에서 말이죠. <<오만과 편견>>에서 "니콜스가 화이트 수프를 흡족하게 만드는 대로" 초대장을 발송하겠다고 한 뜻을 설명해 주는 부분이 좋은 예입니다. 저자 조사 결과에 따르면, 화이트 수프는 역사가 깊은 요리로 부유한 가정에서만 먹을 수 있다고 합니다. 미스터 다아시나 미스터 허스트 등 프랑스 요리에 정통한 까다로운 손님들을 초대하려면, 화이트 소스를 만들 준비가 되어야 한다는거죠. 이야기에서 중요한 부분은 아니지만, <<오만과 편견>> 속 세계관을 이해하는 데에는 아주 좋은 정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레베카>>에서 주인공의 사회적 위치를 음식이 서빙되는 순서로 드러내는 장면이라던가, <<안나 카레리나>>에서 오블론스키가 굴을 탐식하는 장면을 그의 끝없는 성욕과 연결시키는 부분 등도 마찬가지에요.
그리고 정말 핵심 소재라서 등장하는 요리들도 많습니다. 저도 딸 아이가 어렸을 때 읽어주었던 모리스 샌닥의 <<깊은 밤 부엌에서>>에 등장하는 핫 케이크 반죽이 그러하죠. <<위대한 유산>>의 유산을 받게 된 계기가 된 음식 중 하나인 '동그란 돼지고기 파이'도 비중만 놓고 보면 충분히 소개해 줄 만 할 겁니다.

아울러 해당 요리의 역사 등에 대한 자료는 부족하지만 요리사이기도 한 저자의 직업 덕분에, 저자 스스로 만들어 본 레시피들이 상세하게 수록된 건 제 책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부분입니다. 저도 제가 주제로 삼은 요리를 실제로 재현해 봤어야 하지만, 전문 요리사도 아니고 재료와 장비의 수급이 어려워 이런 부분에 힘을 쏟지 못한게 너무나 아쉽거든요. 이 차이는 <<오만과 편견>> 속 화이트 수프 레시피를 당시 요리책에서 찾아보고 직접 만들어 본 결과를 소개해주는 부분에서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18세기 레시피는 모두 끔찍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자는 현대의 '화이트 갈릭 수프'를 제안하지요.
그 외에도 남부식 비스킷을 만드는데는 라프 라드가 꼭 필요하다는 팁 등의 유용한 정보도 많아요. 곁들여진 일러스트들도 최고 수준이고요.

그러나 소개되는 모든 요리들이 그러한건 아닙니다.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처럼, 작품이 아니라 저자의 인생과 관련된 요리가 소개된기도 하고, 또 해당 작품을 읽었을 때의 저자의 경험에 관련된 요리가 소개되는 등 개인적인 경험이 담뿍 담긴, 개인 에세이에 가까운 글들도 많습니다. 원래 개인 블로그에서 시작되어 책이 출간되었다니 어떻게보면 당연한 일이겠죠. 문제는 뒤로 가면 갈 수록 이런 개인적인 글들이 많아진다는 점입니다.

결론내리자면 제 별점은 2.5점. 나쁘지는 않은데 큰 틀과 가면 갈 수록 제 방향성과 좀 맞지 않아 감점합니다. 그래도 요리에 대한 전문성만큼은 아주 돋보였습니다. 이런 분과 손잡고 추리 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요 요리에 대해 합작하면 참 좋겠다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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