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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26

[번역] A 사이즈 살인사건 (3) - 아토다 다카시


[번역] A 사이즈 살인사건 (2) - 아토다 다카시

다음날 오후 1시 정각, 사무라 에이스케는 다시 묘법사를 찾았다.
대낮에는 어딘가 근처 건설 현장에서 콘크리트 기둥을 치는 공사를 하는 듯한 쿵쿵, 쿵쿵거리는 무거운 소리와 거리의 호객꾼 소리, 관광버스가 울리는 경적까지 들려왔다.
이 정도라면 역시 '세외승경'이라고 할 수는 없겠다고 사무라는 생각했지만, 스님은 창문이 흔들릴 정도의 공사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불가에는 '심두멸각(心頭滅却)', 즉 마음을 비우면 불조차도 시원하다는 고사도 있는 만큼 이 정도 소음은 예사로이 여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여어, 한 판 두자고."
오늘도 2층 방에는 이미 바둑판이 준비되어 있었다. 이곳에서는 바둑을 두는 것이 차를 대신하는 셈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내어놓은 차 역시 차대로 제대로 고급품이었다.
"어땠나?"
스님은 돌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오전 중에 물어보신 모두는 완벽하게 조사했습니다."
"그렇군, 그렇군."
사건 수사 중에 고급스러운 차를 마시며 스님을 상대로 바둑을 둔다. 어찌 보면 이것이야말로 '세외승경'의 경지일지도 모른다.
"우선, 브래지어 건입니다만...."
"응."
"A 사이즈였습니다. 정확하게는 A컵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만.... 시체를 본 형사 말로는 A컵도 필요 없을 절벽이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이게 사건과 무슨 관계가 있나요?"
"자네, 이 빅 어쩌고저쩌고하는 악단은 남자는 덩치가 크고, 여자는 작다고 했었잖아."
"네"
"에토 준코도 작았지?"
"맞아요. 150 cm도 안 될 정도예요."
"거기에 A 사이즈의 절벽이라니, 굉장히 왜소했겠는걸. 비쩍 마르고 깡말라서 체중도 37, 38kg 정도밖에는 안 됐을 거야."
"뭐, 비슷할 겁니다. 사진으로만 봤을 뿐이지만요."
"그런 체형의 여자가 의외로 밝히는 사람이 많다고. 실제로 그녀는 남자관계도 꽤 화려한 듯하고."
"그건 맞습니다. 하지만 그게 사건과 무슨 관계가..."
"그렇게 당황해하지 말라고. 자네 차례야."
사무라는 당황해하며 검은 돌을 반상에 내려놓았다. 사실 바둑을 둘 상황은 아니다. 그러나 스님은 사무라와 바둑을 두는 게 중요한 즐거움 중 하나이니, 적당히, 가볍게 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야시로 외삼촌 집에 심어진 정원수에 대한 것인데요."
"그래, 그래"
"말씀대로 대문에서 현관까지는 등대꽃, 칠엽수, 동백, 철쭉들이 다 심겨 있었어요. 우라와의 파출소에 전화해서 조사해 본 결과에 따르면요. 정원에는 그 밖에도 나무가 많아서 울창했는데......"
"아니, 아니, 이제 나무는 됐어. 문에서 현관까지는 콘크리트가 깔려 있었나?"
"그게, 담벼락에 쓰는 돌을 두 줄로 사십 개 정도 연결해서......"
"제일 매력적인 아가씨는 누구였지?"
"와카이입니다."
"역시 그렇군. 그리고 또 하나, 마작 쪽은 어땠나?"
"마작이요?"
" 잊었는가? 마작은 바둑 같은 것에 비하면 훨씬 운이 작용하기 쉬운 게임이지만, 그래도 서른 시간이나 하면 어떻게 되었겠냐고......."
"아, 그것도 일단 알아봤어요. 두 학생에게 전화를 걸어......"
"그래서, 결과는?"
스님의 뇌는 여전히 이중구조다. 보고를 들으면서도 바둑에 대한 판단은 조금도 어긋나지 않는다. 오히려 뜻밖의 묘수가 많아졌다.
"오랜 시간 하면 보통 마작도 잘하는 사람이 이긴다고 해요"
"그런데 얼마 전에는 그렇지도 않았다......"
스님의 말에 사무라는 어안이 벙벙해서 스님의 얼굴을 쳐다 보았다.
"그렇습니다. 이런, 스님. 스님도 학생한테 물어보신 건가요?"
"아니, 난 그런 거 안 해. 하지만 아마 그렇지 않을까 싶어서 자네에게 물어 봤던 거지. 그래서……. 멤버 중 가장 강한 사람은 누구였지?"
"야시로입니다"
팟! 스님이 기세 좋게 내려놓은 흰 돌로 반상의 바둑돌들이 튀어 올랐다.
"응......?"
몰리고 있던 흰 돌의 형세가 갑자기 좋아졌다. 교묘히 도망치면서 오히려 사무라의 흑돌을 거꾸로 노리게 되었다.
"그 남자가 범인이야."
스님은 거침없이 내뱉었다.

"그런데 동기가 뭐죠? 게다가...... 야시로와 멤버들은 모두 호텔에서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마작을 하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죽일 수 있었던 거죠?
"우선 동기부터. 살해당한 에토 준코는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이었다지? 집이 계모 가정이라서. 그렇다면 겉으로 별로 불편해 보이지는 않았더라도, 빨리 집을 나가고 싶었던건 당연해. 흔한 일이지. 그래서 여러 남자를 유혹한 거야. 즐기기 위해서만은 아니라고."
"하긴, 집이 그다지 편하지는 않았다죠."
"관계를 맺고 나서는 결혼을 은연중에 내비치기도 했을거야. 하지만 남자들 모두 아직 어린 학생이니 그런 거에는 진절머리가 났을테고. 결국 그녀는 남자들에게 차례로 버려진 거지. 야시로의 경우 역시...."
"그렇다면 야시로와 에토 준코가 깊은 관계였다는 말인가요?"
"틀림없어. 이미 악단 멤버 세 명과 관계를 맺었는데, 네 명째가 있다고 해도 이상할 리 없지. 게다가 자네는 분명 콘트라베이스 같은 악기는 그렇게 쉽게 교체할 수 없다고 했어. 결원이 생겼을 때는 굉장히 난감해서, 급히 충원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이야. 맞지? 악단 단원 사이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왔다는 건, 최근 콘트라베이스가 충원되었다는 뜻이야. 즉 야시로는 비교적 새로운 멤버이고, 준코도 새로운 남자에게 달라붙은 거지. 남자는 그냥 불장난이었겠지만, 지금까지 계속 버려져 왔던 여자는 더 필사적이었을 테고. 남자는 여자가 방해돼서……. 뭐, 그런 게 동기가 아니었을까 싶네."
"그렇다 하더라도 야시로는 어떻게 죽인 거죠?"
"대낮에 호텔 주변에서 그렇게 쉽게 사람을 죽일 수는 없어. 나의 추리도 거기서부터 시작했지."
"그렇다면..."
"에토 준코는 야시로의 집에 가 있던 거야."
"어떻게 아셨어요?"
"멤버 중에서 가장 매력적인, 와카이가 마작 견학을 하러 가니까. 야시로는 그걸 준코에게 미리 이야기했을 거야. 전화 같은 거로....... 멤버 중 가장 매력적인 아이가 야시로의 집에 가고 있다고 하면, 쥰코가 과연 태연히, 잠자코 집에 있을 수 있었을까? 야시로가 '1시쯤 온다고'라고 했다면, 분명 그녀도 그 시간에 갈 수밖에 없었을거야. 무엇보다도, 그녀가 다른 누군가, 관계없는 사람과 만날 약속이 있었다면 지금까지 그 상대의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게 더 이상해."
"하지만 마작을 하던 사람들은 아무도 에토 준코가 왔다고는 말하지 않았는데요..."
"그래. 문밖에 초인종 버튼이 있으면, 그걸 누르면 누구나 벨이 울릴 것으로 생각하겠지. 그렇지만, 조금 손을 댄다면 램프만 깜빡이게 만들 수 있어. 준코는 1시 조금 지나면 오기로 했으니, 마작을 제일 잘하는 야시로는 그때 쯤 일부러 꼴등이 되어 빠진 거야. 그렇지 않았더라도 집주인이니 차를 대접한다고 하면서 자리를 빠져나가는 건 어렵지 않았을 테지."
"그렇군요"
"준코가 와서 문밖의 벨을 누른다. 소리는 나지 않지만, 램프가 켜지고, 야시로만 이를 알아채고 현관으로 나갔지. 이를 위해서는 야시로의 외삼촌 집은 문에서 현관까지 상당히 거리가 있는, 나름 훌륭한 저택이어야만 해. 정원수나 포석의 종류는 문제가 아니야. 내가 알고 싶었던 것은 문에서 현관까지가 어떤 모습으로, 얼마나 거리가 있었는가 하는 것이었어."
"……"
"정원수 종류도 많고 울창했지. 현관까지는 두 줄의 포석이 40개 정도라니 20~30m 쯤 되는 셈이고. 야시로는 여기서 준코를 목 졸라 죽인 뒤, 울창하다는 정원수 덤불 숲 속에 시체를 숨긴 거야. 그녀는 가냘프고 약했으니 죽이는 게 그렇게 어렵지 않았겠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그리고 모른 체하며, 그는 모두 마작을 하는 곳으로 돌아온 거지. 그 상황에서 마작을 잘 못한건 당연하고."
"하지만 스님. 씨, 모두가 야시로 외삼촌 집에서 출발할 때는 다 함께 승합차를 타고 출발했어요. 시체는 어떻게 된 거예요?
"소모산 (作麼生)!"
갑자기 스님이 바둑판 위에서 고개를 들고 큰소리로 외쳤다.
소모산 (作麼生)은 말할 것도 없이 선가의 말로 "자, 어때?"라는 뜻이다.
"야시로의 짐은 무엇이었지?"
여기까지 말하면 사무라도 짐작할 수 있다.
"설파 (説破)!"
사무라도 소리쳤다.
이건 '소모산'에 대해 답하는 선문답의 상투어다. 몇 번인가 스님과 이야기하고 있는 사이에 사무라도 외우고 말았다.
* 作麼生, 説破 : 자 어때, (이만하면) 알겠지. 라는 뜻
"그렇지, 설파. 콘트라베이스. 부처님은 그 안에 있었어. 덩치 큰 여자라면 어려웠겠지만 쥰코는 굉장히 왜소했으니까. 야시로의 콘트라베이스는 아마 사전에 호텔의 보관함이나 어딘가에 옮겨 놓았을 거야. 콘트라베이스의 케이스 안에 부처님을 넣고 호텔에 도착하면, 그는 차를 주차하고 와야 하니 일행보다 뒤처질 수밖에 없지. 그때 부처님을 저수조 안에 던져 넣은 거야. 돌덩어리를 매달은 건 그때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그때였다면 아마 그것도 미리 저수조 근처에 마련해 두었을걸세."
스님은 말하면서도 손은 바둑판 위를 꾸준히 움직이고 있었다. 사무라는 응수했지만, 스님의 공격이 확실히 이득을 얻고 있는 것에 비하면 그의 응수는 건성에 불과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바둑은 이미 완전히 끝나 버린 상태였다.
"졌네요. 던질게요."
"아쉽지만, 오늘은 한 판이면 끝이야. 자네도 바쁠 테고......"
사무라는 허겁지겁 돌을 치우고 자리를 떴다. 어차피 더 바둑을 둘 수는 없었다. 스님의 추리에 따라 하나하나 증거를 모아 진실을 밝혀내는 일이 사무라에게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실례하겠습니다."
"아이고, 사건이 또 진정되면 오라고."

헤어질 무렵, 사무라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물었다.
"스님, 그 추리, 정말 맞을까요?"
"모르겠어, 선방의 억지라고 할 수도 있겠지. 그래도 뭐, 사물의 이치로는 그렇지 않을까 싶네만."
스님의 추리는 옳았다.

* 재미있으셨어요? 평, 반응이 좋다면 이 단편집의 다른 작품인 '2LDK 살인사건' 번역에도 도전해 볼까 하는데... 잘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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