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와트 - 후지하라 사다오 지음, 임경택 옮김/동아시아 |
주석, 인용, 참고 문헌 포함하여 7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책.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앙코르와트의 '발견', '발굴', 그리고 '연구와 관리' 에 대한 역사를 다루고 있는 미시사 서적.
방대한 분량만큼 담고 있는 정보는 알찹니다. 책은 19세기 후반, 앙코르와트의 문물을 프랑스에 소개한 들라포르트의 이야기에서 시작합니다. 그는 일종의 보물 탐사와 같은 느낌으로 유적의 문물을 반출한 인물입니다. 식민지의 주인인 프랑스가 유적을 보호할 수 밖에 없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한 약탈꾼에 불과하지만, 앙코르 유적의 미적 가치가 높다는걸 서구 사회에 알린 공적은 있습니다. 직접 쓴 저서와 삽화는 물론, 평면도 등을 바탕으로 유적의 조화로운 구조를 잘 알리고 있거든요. 또 발굴되거나 발견된 조각을 가지고 상상하여 그가 그려낸 바이욘 사원의 복원도는 공상에 불과하지만, 당시 고고학 수준으로는 최고 수준의 연구였다는 점에서 노력만큼은 인정해 줄 만 해요. 만국 박람회에서 유적의 복제품을 전시하는 등 이 유적을 알리는데 온갖 수단과 방법을 전부 동원했다는 것도 그의 노력을 증명하는 사례이고요.
들라포르트 사후 소개되는 내용은 주로 '극동학원'의 활약상입니다. 앙코르 유적의 연구를 주도적으로 행한 단체로, 유적의 총 책임자가 프랑스의 인도차이나 총독이 된 시기와도 일치합니다. 이는 프랑스는 인도차이나 반도의 과거를 소생시키고, 중국과의 정치적 교섭에 활용하기 위해서 고고학을 활용하기 위한 목적 때문이기도 했다는군요.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 지배할 때, 한반도와 중국 북부에 걸쳐 대규모의 고고학 조사를 진행한 것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극동학원 초기 프랑스인의 태반은 고고학자도, 미술사가도, 학자도 아니었다고 합니다. 오히려 군인이나 관리와 건축가가 식민지 고고학에 매료되어 경력을 쌓아나갔다고 하는게 정확한 표현이라고 하네요. 이 뒤로부터 세데스, 골루베프 등 주요 인물들과 반테아이 스레이 유적 등에 대한 연구 결과 등 극동 학원에 관련된 대한 수백페이지 분량의 방대한 설명이 이어지며 프랑스의 인도차이나 지배 이후, 일본이 잠시 인도차이나 지역을 지배했을 때의 이야기가 짤막하게 이어지며 책은 마무리됩니다.
이 책에 따르면 극동학원의 연구는 묻혔던 유적을 새로이 발굴하고, 폐허를 보수하는 등 유적 보존 등에 나름 기여한 긍정적 결과가 없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앙코르 유적에서 나온 유물을 관광객 등에게 공공연하게 판매하는 등의 도굴과 노략질을 일삼기도 했다는 점에서 도저히 좋은 평가를 할 수 없네요. 정치적 목적에 따른 상납이라던가, 일본과의 고미술품 교환을 통한 미술품 확보까지 행하였고, 심지어 유명 작가인 앙드레 말로조차도 1923년 23세의 나이로 인도차이나를 방문하여 유적에서 몰래 부조물을 잘라내어 밀반출하려다 실패했다는 일화에 이르러서는, 그들의 몰염치와 야만에 치가 떨릴 뿐입니다. 말로가 체포되어 재판에서 패소한 이유는 극동 학원의 독점적 지위를 훼손했기 때문일 뿐, 그 행위 자체가 비난받은건 아니라는 점에서 말이죠. 이런 비판적인 시각을 조선 등을 식민지로 지배하여 비슷한 원죄가 있는 일본의 학자가 견지하여 책을 썼다는게 조금은 신기했습니다.
이렇게 발견과 발굴, 연구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는데도 불구하고 쉽게 읽히는 편입니다. 들라포르트 이야기는 모험과 탐험 이야기와 별 다를게 없고, 연구를 거듭해가며 새로이 정체를 드러내는 앙코르 유적의 여러가지 정보들과 새롭게 발견된 멋진 유물들, 이들을 활용한 다양한 전시 등 볼거리가 많은 덕분이지요. 사료와 도판 역시 최고 수준이고요.
허나 제목만 보고 '앙코르와트'에 대한 역사서겠구나 싶어서 읽기 시작했는데, 솔직히 기대와는 너무나 다른 책이었습니다. 저는 앙코르와트라는 유적 자체의 역사가 궁금해서 구입했지, 앙코르 유적의 연구사가 궁금해서 구입한건 아니란 말이죠. 35,000원에 육박하는 가격도 부담스럽고요. 그래서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앙코르와트 연구사에 관심이 있으실 분들 외 저같이 앙코르와트 유적 자체에 관심 가지신 분들은 실망하실 가능성이 높다는 점 양지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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