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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15

눈보라 체이스 - 히가시노 게이고 / 양윤옥 : 별점 2점

눈보라 체이스 - 4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소미미디어

스노보드 마니아 다쓰미는 취업 전 마지막 겨울을 원없이 불태우려 니가타의 스키장으로 향한다. 출입 금지 구역에서의 짜릿한 스노보딩도 잠시, 도쿄로 돌아오니 갑자기 살인 용의자가 되어 경찰이 집을 에워싸고 있다. 다쓰미는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기지만, 법학도 친구 나미카와는 상황의 법리적 심각성을 알리며 당장 무죄를 입증할 증거를 찾아야 한다고 재촉한다. 다쓰미는 자신의 알리바이를 증명해줄 유일한 사람은 살인사건 발생일 새벽, 스키장에서 우연히 만난 미인 스노보더 한 명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두 사람은 다른 동아리 부원의 차를 빌려, 그녀가 '홈그라운드'라고 언급한 전국 최대 사토자와 온천 스키장으로 무작정 떠난다.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인용>>

히가시노 게이고의 '설산 시리즈' 3부작의 마지막 작품. 시리즈물답게 네즈와 치아키 등 전편의 주요 인물들, 그리고 주요 무대였던 산게쓰 고원 스키장과 사토자와 온천 스키장이 다시 등장합니다. 다카노 세이야가 가이드로 등장하고, 세이야 부모님이 운영하는 전편의 주요 무대였던 카페 <뻐꾸기>와 세이야의 동생 유키의 재등장도 반가왔습니다. '뻐꾸기' 명물 프랑크푸르트 소세지도 빼 놓을 수 없겠지요.

그러나 전작들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입니다. 가장 큰 차이는 주인공이 다르다는 점입니다. 패트롤 네즈가 아니라 대학생 다쓰미가 친구 나미카와거든요. 이 둘이 함께 자신의 결백을 증명해 줄 증인인 '여신'을 찾아 경찰을 피해가며 스키장을 누비는게 핵심입니다. 덕분에 전작들과 같은 거대한 위협에 맞서는 모험이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전작과 다르기에 이 작품만이 가지는 장점도 분명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다쓰미와 나미카와를 추격하는 고스기 형사가 아주 마음에 들었어요. 부하의 요청과 반론에는 귀 기울이지 않고 무리한 명령만 남발하는 무능력한 관리자의 표상인 난바라 계장과 와와다 형사과장의 등쌀에 치이는 전형적인 소심남으로 보이지만, 뒤로 가면 갈 수록 멋지고 중후한 인물로 거듭나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계기는 오랫만에 스키를 타면서 열정이 되살아났기 때문으로 묘사되는데, 이 부분도 시리즈 핵심 소재와 일맥상통하는 맛이 있어서 좋았어요. 스키장의 실력자 유키코와의 장년의 로맨스도 잘 그려져 있습니다. 묵직하면서도 은근하고, 또 스키를 타면서 느껴지는 활기도 넘치고, 여러모로 마음에 드네요.
또 사토자와 온천 스키장이라는 무대를 전작인 <<질풍론도>>보다 더 잘 활용하고 있다는 점도 돋보입니다. 이는 드넓은 스키장에서 '여신'을 찾기 위한 다쓰미와 나미카와의 고민과 행동에서 잘 드러납니다. 그냥은 도저히 찾을 수 없으니, 이런저런 핑계를 대서 스키장 패트롤 대장 네즈, 백컨트리 투어 가이드 다카노 등의 도움으로 그녀가 나타날만한 이런저런 포인트를 짚어 조사하고 기다리는 과정이 나름 합리적이며, 정말로 스키장에 대해 엄청나게 많이 조사했구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상세하거든요. 

대단한 추리가 등장하는건 아니고, 추격 모험 활극에 가깝기는 하지만, 추리적으로 눈여겨 볼 만한 부분이 있다는 점도 전작들과 비교했을 때 돋보입니다. 대표적인건 현장의 기묘한 상황을 눈치채고 진범이 누군지를 추리해 내는 과정입니다. 주인공 일행은 피해자 후쿠마루씨가 섹시 탤런트 DVD를 보는게 취미였는데, 그걸 볼 때마다 죽은 아내에게 미안해서 불단을 닫았지만 범행 현장 사진의 불단은 열려 있었다는 것을 알아냅니다. 이를 통해 현장에서 DVD를 재생시킨건 후쿠마루 씨가 아니며, 범인은 DVD를 바꾸어 재생해야 했고 이유는 원래 DVD가 범인에게 불리한 것이었다고 추리하게 되지요. 추리를 통해 결국 범인을 체포하는데 성공하고요 원래 보던 DVD가 무엇이었는지 알아내기는 쉽지 않았을테고, 사전에 이런 정보를 독자에게 제대로 제공해 주지 않은건 공정하다고 느껴지지는 않지만 추리 자체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나름 정통 추리물 느낌도 전해줄 정도거든요. 비교적 초반에 다쓰미에게 증인을 찾아 나설것을 조언하는 법대생 나미카와의 조언, 그리고 다쓰미의 알리바이가 나름 밝혀진 뒤 나미카와마저도 공범으로 몰리는 전개 역시 추리물 느낌이 물씬 나고요. 다쓰미의 알리바이를 나미카와가 조작해 주었다는 논리인데 둘의 도주와 맞물러 설득력이 높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애써 찾은 증인인 '여신'이 임신 탓에 스노보드를 마음껏 탈 수 없다는 설정도 괜찮았어요. 둘이서 백방으로 노력해도 찾기 힘들었던 이유로 설득력이 높았기 때문입니다. 이 임신 설정을 마지막 결혼식 연출과 네즈와 치아키 커플이 연결되는 결말로 이어가는 전개도 나쁘지 않았고요.

그러나 아주 좋은 작품이다라고 이야기하기는 아쉽게도 무리입니다. 일단 독자는 다쓰미가 범인이 아니라는걸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스키장을 배경으로 청춘들의 사랑과 고민이 함께 그려지는 탓에 서스펜스를 느끼기 어려운 탓이 큽니다. 사형 선고를 받은 절박한 상황에서 증인을 찾아 나선다는 <<환상의 여인>> 만큼의 절박함이 보였어야 하는데, 두 대학생은 그런 마음이 별로 없어 보이거든요. 어떻게 보면 추리물, 스릴러라기 보다는 청춘 로맨스로 보이기까지 합니다.
전개 면에서 편의적인 부분이 많다는 점도 단점입니다. 네즈도 그렇고, 스키장의 유력자 유키코도 그렇고, 심지어 고스기 형사마저도 다쓰미가 결백하다고 생각한다는건 특히나 터무니 없어요. 아무리 관상이 좋고, 말주변이 좋아도 그렇지 경찰이 유력 참고인의 말을 믿고 시간을 준다는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죠. 증인을 찾기 어렵게 꼬아놓은 캐릭터 설정도 오버스러웠고요. 네즈에다가 경찰까지 도움을 준다면, 차라리 방송이라도 하는게 낫잖아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취미 생활처럼 힘을 빼고 가볍게 쓴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아주 뛰어나지는 않지만, 킬링 타임용 읽을거리로는 나쁘지 않은 수준입니다. 읽으실 분들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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