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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9

토니와 수잔 - 오스틴 라이트 / 박산호 : 별점 2점

토니와 수잔 - 4점
오스틴 라이트 지음, 박산호 옮김/오픈하우스

<<아래 리뷰에는 아주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gt;

심장전문의 아놀드와 자식 세명과 함께 사는 수잔은 어느날 전 남편 에드워드로 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그가 쓴 소설을 읽고 평가해 달라는 것. 수락한 수잔에게 보내진 소설 <<녹터멀 애니멀스>>를 읽어내려가면서, 수잔은 소설의 전개와 함께 자신들의 인생을 반추하게 되는데...

어딘가에서 멋드러진 리뷰를 읽고 집어든 작품. 480페이지에 이르는 대장편으로 극단적인 "액자 소설" 형태를 지니고 있습니다. 에드워드의 <<녹터멀 애니멀스>>라는 작품을 작 중에서 그것을 읽어내려가는 수잔의 심리와 함께 실시간으로 병행 전개하고 있거든요. <<녹터멀 애니멀스>>의 주인공이자 화자 '토니 헤이스팅스'와 '수잔'이 전개의 두 축이기에 제목도 <<토니와 수잔>>인 것이죠.

우선 <<녹터멀 애니멀스>>는 딱히 대단한 작품은 아니에요. 아내와 딸이 강간 살해당한 대학 교수 토니를 그리는데, 묘사는 괜찮지만 신선한 부분은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류의 복수극은 너무 흔하기도 하고요. 토니를 유약한 찌질이로 설정하여 강한 동질감을 느끼게 해 주기는 하지만 결국 그 뿐입니다. 불한당들에게 어설프게 저항한 것 때문에 자책하는 묘사를 디테일하게 풀어줬더라면 훨씬 좋았을 것 같은데 아쉽더군요.
그래서 수잔 파트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보통 액자 소설의 경우, 작중 진행되는 책과 본편 이야기가 어떻게 엮이냐가 가장 중요하기도 하고요. 전혀 관계가 없을 것 같았는데 절묘하게 엮인다던가, 아니면 그냥 소설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굉장한 트릭이 숨어있었다던가 하는 식으로 사용되는 것이 일반적이니까요.

그러나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수잔의 이야기는 지극히 개인적인 한 중년 여성의 상념을 다룬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름 정교하게 짜여진 부분이 없지는 않습니다. 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에드워드가 그녀에게 책을 보낸 의도가 일종의 복수라는 것이 서서히 드러나는 전개가 특히 그러합니다. 25년전 소설을 쓰지 못한다고 자신을 비난했던 수잔에게 "내가 쓴 소설을 읽어봐! 죽이지!"라는 과시, 그리고 그녀의 대한 경멸을 담은 것이죠. 마지막에 소설을 다 읽으면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들으러 오겠다고 하고 수잔을 바람 맞힌 이유도 "너의 의견 따위는 사실 중요하지 않아!"라는 극도의 모욕이고요.

허나 이 모든 것은 수잔의 생각일 뿐, 별다른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나마 근거라면 에드워드가 찾아오지 않은 정도? 그 외의 모든 것들 - 수잔이 책을 읽고 나서 현실에 타협한 자신과 현 남편 아놀드에게 분노를 느낀다던가, 에드워드의 복수라는 것을 눈치챈다는 것 등등등 - 은 자신의 과거와 처한 상황에 대한 수잔의 생각일 뿐입니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페이스 북 등의 SNS에서 잘나가는 동창의 근황을 보고 열폭하는 심리 묘사와 크게 다르지 않아요. 이 동창이 나를 미워하는구나! 라고 생각하는 것은 내 글에 '좋아요'를 눌러주지 않은 것으로 오해하는 식이고 말이죠.

아울러 본인 상념에 기초해서 수잔이 에드워드에게 '평이 궁금하면 자신을 만나러 올 것'이라고 편지를 보내는 것은 최악의 선택이었습니다. <<녹터멀 애니멀스>>를 빗대어 보면, 토니는 평생을 찌질하고 나약하게 보냈지만 결국 원수에게 마지막 응징을 가하고 죽게 되죠. 이처럼 에드워드 역시 마지막 복수를 수잔에게 가하는데 성공했다면 이후 일은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는 의미가 쉽게 도출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에드워드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무의미한, 헛된 몸부림일 뿐인거죠. 책을 읽고 자신에 대한 온갖 생각은 다 하면서 이런 정도의 상상력조차 수잔이 발휘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수잔에게 감정이입을 하기가 더더욱 힘들어져 버립니다. 순전히 그녀의 망상일 뿐이라는 확신을 굳히게 만들 뿐이에요.

물론 아주 나쁘지만은 않습니다. 480여 페이지 분량이 쉽게 읽힐 정도로 잘 쓰여져 있긴 하거든요. 특정 책을 읽고 특정 독자가 느끼는 온갖 상념을 글로 옮겨 놓은 것에 불과한 복잡하고 개인적인 이야기가 어떻게든 하나로 완결된다는 점도 대단했고요. 또 책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남을 평가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새삼스럽게 다시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일반적인 액자 소설 상식에서 벗어난 구성의 아이디어가 참 좋네요. 앞서 말씀드렸던대로 보통 액자 소설은 안에서 전개되는 이야기와 밖에서 전개되는 이야기가 어떤 식으로는 엮이는데, 이 책은 그냥 독자의 감상평으로만 엮여 있다니 정말로 기발하잖아요?

하지만 저에게는 좋은 작품, 좋은 '스릴러'라고 보이지는 않았어요. 한 여자의 내면 심리 묘사를 그린 일종의 순문학드라마에 가까운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 "버티고" 레이블의 책들은 심리 묘사가 중심인 작품이 많아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었는데 이 작품은 그 중에서도 최고 수준입니다. 이런 류의 여성 심리 묘사를 좋아하시는 분이 아니시라면 권해드리기 어렵습니다.

그나저나 영화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단순히 상념이 중심인 수잔의 파트는 어떻게 영상화했을지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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