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행 -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김해용 옮김/예담 |
전작들이 국내에서도 꽤 인기를 끌었던 일본 작가 모리미 토미히코의 연작 단편집. 제목과 표지만 보고 충동적으로 집어든 책입니다. 요네자와 호노부의 <<야경>> 같은 책으로 생각하고요. 하지만 내용은 그야말로 환상 소설인데,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했습니다.
10년 전 실종된 하세가와와 함께 했던 여행을 다시 떠난 5인이 멧돼지 전골을 앞에 놓고 각자 겪었던 기묘한 체험 (그것도 기시다 미치오라는 화가의 동판화 시리즈 '야행'와 관련되어 있는)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는 도입부는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나카이가 이야기하는 첫번째 이야기 <<오노미치>>에서, 수수께끼의 집으로 빨려들듯 사라진 아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인지? 호텔 종업원의 아내는 어떻게 된 것인지?와 같은 궁금증을 계속 등장시켜 흥미를 자아내는 전개도 제법이고요.
그러나 이 이야기에서 궁금증에 대해 해결해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내는 이상한 집 암실에 갇혀있었다는 것이 전부이며 호텔 종업원과 아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전혀 설명되지 않거든요. 또 이야기에서 나카이가 호텔 종업원을 공격하여 거의 죽였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듣는 지인들이 별다른 반응도 하지 않고 넘어가는 것도 이해할 수 없고요.
다케다가 이야기하는 두번째 이야기 <<오쿠히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회사 동료와 함께 커플로 여행을 떠났다가 우연히 만난 카리스마 점장이 미시마 씨로부터 "2명에게서 사상(死相)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 불안에 휩싸인다는 부분까지는 아주 괜찮아요. 4명 중 2명이 누구인지? 미시마 씨의 능력은 대체 무엇인지? 등 수수께끼를 쌓아나가는 전개도 전편과 같고요.
그러나 이 역시 풀어놓은 떡밥은 하나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사라진, 즉 죽은 2명이 회사동료 마스다와 미야인지, 다케다와 루리 커플인지도 등장하지 않을 정도니까요. 마스다와 미야 커플이 실종된 것이라고 해도 이상합니다. 이런 중대 사건을 별 일 아닌 것 처럼 지인들에게 털어놓는 다케다와 그것을 듣고도 아무렇지도 않아하는 지인들 모두 상식적으로 보이지 않으니까요.
그나마 후지무라 씨의 <<쓰가루>>라는 세번째 이야기는 '후지무라 씨의 어릴 적 친구 가나 짱은 후지무라 씨가 상상 속에서 만들어낸 존재였다' 라는 식으로 부족하나마 한편으로 마무리되기는 합니다.
그러나 이 역시 과거인지, 현재인지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 엔딩은 별로였습니다. 지금 이 이야기를 지인들 앞에서 하고 있다는 설정이니 과거의 일이라고 친다면, 도대체 그 집에서 뭐가 어떻게 됐는지는 왜 설명하지 않는거죠? 인터넷 토막글도 기승전결이 있는 세상입니다. 이 정도로 설명이 부족하면 아무리 좋게 봐 줘도 한계 역시 분명합니다.
네번째 이야기 <<덴류쿄>>는 다나베 씨의 이야기로 '야행'의 작.가 기시다에 대한 설정을 본격적으로 풀어놓는 이야기입니다. '야행'에 등장하는 귀신도 등장하고요. 그런데 앞의 세 편과는 좀 동떨어진 내용입니다. 바로 뒷 이야기인 마지막 밤 <<구라마>>를 통해 '아행'과 기시다, 그리고 실종된 하세가와가 어떻게 되었는지 모두 설명되기 때문이에요. 즉, 네번째, 다섯번째 이야기가 한 묶음이며 모든 내용이 설명된다는 뜻이죠.
이렇게 될 바에야 차라리 네번째, 다섯번째 이야기를 묶어서 하나의 중단편으로 발표하는게 훨씬 낫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야행'과 '서광'은 서로 대칭이며, 두 세계는 그림으로 이어져있다는 설정은 괜찮았던만큼 꽤 그럴듯한 환상 소설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을텐데 아쉽네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괜찮은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며, 묘사도 괜찮아서 몇몇 부분은 굉장히 공감됩니다. 여정 미스터리를 연상케하는 일본 각 지방의 묘사도 볼거리이고요. 허나 절반 이상이 납득하기 어렵고 개연성 없는 이야기로 채워져 있어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그닥 권해드릴 만한 책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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