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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10

올빼미의 울음 -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 홍성영 : 별점 3.5점

올빼미의 울음 - 8점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홍성영 옮김/오픈하우스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연히 엿본 여자에게 마음이 팔린 로버트는 그녀를 스토킹하다가 발각된다. 그러나 오히려 그녀 제니는 로버트를 사랑하게 되며, 그 때문에 약혼자 그렉과 파혼한다. 이에 앙심을 품은 그렉은 로버트를 습격하지만 이후 행방불명되고 만다. 로버트는 그렉 살해 누명을 뒤집어 쓰게되고, 이후 주변의 시선과 로버트의 심리를 이해하지 못한 제니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고 마는데....

서늘한 심리 묘사 측면으로는 장인의 반열에 오른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장편.
아무런 정보 없이 처음 접해본 작품. 제가 별로 좋아라 하지 않는 '버티고' 레이블이라 크게 기대도 하지 않았습니다. '버티고'에서 출간된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또다른 작품인 <<심연>>은 영 별로였기도 했고요.

그런데 이 작품, 물건입니다. 최고였어요. 나름 평온한 일상을 보내던 주인공의 삶에 균열이 생기고, 그것이 점차 커져가 그와 그 주위 사람들을 집어삼키는 과정이 적나라하게 펼쳐지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중반 이후, 제니의 약혼자 그렉이 사라진 상황에서 그를 죽인 살인자로 몰린 이후부터는 그야말로 압도적입니다. 주변 사람들의 싸늘한 시선과 무너져가는 제니와 로버트의 삶에 대한 묘사가 그만큼 대단하거든요. 무엇하나 잘못한 것이 없는데 서서히 궁지에 몰리는 전개는 보는 내내 굉장히 답답하고 짜증이 나지만 손에서 떼기 힘들 정도의 몰입감을 선사해줍니다. 비유하자면 야구 응원팀이 매 회 실점하는 상황에서도 계속 무사 만루 찬스를 잡지만, 마지막 회까지 한 점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는 느낌이랄까요? 무언가 해결될 것 같지만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수렁에 계속 빠지는 전개는 정말이지 똑같습니다.

이 와중에 등장하는 주변인들에 대한 세세한 묘사 역시 수렁에 빠지는 과정에 실감을 더해 줍니다. 유일한 친구로 믿었던 직장 동료마저 함께 하기를 거부하고, 온 동네 사람들이 살인자라 욕하며, 심지어 경찰마저도 면전에서 대 놓고 비웃는 등의 묘사가 이어지는데 독자라서 정말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끔찍해요. 그렉이 로버트를 죽이려고 총을 들고 쳐들어온 날, 운 좋게 그를 제압하는데 성공한 로버트를 도와주지 않고 오히려 그렉을 풀어줄 것을 요구하는 이웃 콜비씨 에피소드는 그 중에서도 백미죠. 흉기를 들고 쳐들어 온 낯선 남자를 제압했지만, 이웃이 나보다 이 남자를 더 신뢰하는 상황인 것인데 이 쯤 되면 모든 곳에서 도망치고 싶은 생각밖에는 안 들것 같아요. 출구없는 감옥과 다를게 없죠.

그러나 아쉬운 점도 없지 않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주인공 로버트가 제대로 된 인물은 아니라는 것이죠. 아주 평범한 인물이었다면 이 상황이 더 끔찍하게 다가왔겠지만, 그가 제니의 집 앞을 일부러 배회하고 스토킹한 것은 사실이거든요. 제목처럼 올빼미가 밤에 울 듯 그의 밤 산책이 모든 것의 원인이 된 것이죠. 그가 밤 산책을 하지 않았다면, 뒤 이어질 엄청난 비극 - 세 명의 죽음 - 은 일어나지도 않았으리라는 점에서 면죄부를 주기는 힘듭니다. 올빼미만 울지 않았더라면 훨씬 좋았을텐데 말이죠. 아울러 제니의 자살에는 그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한 이유도 존재하며, 그 외에도 정신병을 앓고 있다는 몇몇 묘사들 역시 그에 대해 좋은 평가를 하기는 어렵게 만듭니다.
또 제니가 낯선 스토커와 곧바로 사랑에 빠진다던가, 로버트의 전처 니키가 그를 파멸시키지 못해 안달이 난 이유 등은 제대로 설명되지 못해 답답합니다. 캐릭터 설정이 그닥 탄탄하지 못한 탓입니다. 그나마 제니는 동생의 죽음으로 죽음과 항상 맞닿아 있었기에 '죽음'을 상징하는 로버트와 엮일 인연이었다...는 설명 (물론 설득력은 없습니다) 이라도 해 주지만 니키, 그렉의 경우는 전혀 그렇지 못해요. 니키가 왜 로버트를 이렇게까지 미워하는 것인지 독자는 도무지 알 길이 없어요. 심지어 자기 돈까지 들여가면서 로버트를 파멸시키려 노력하는데 그 심리를 이해하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렉은 실연으로 괴로워하는 성인에서 복수와 자기 합리화를 위해 몸부림치는 어린아이로 돌변하는 느낌이고요. 제니가 자살한 이유는 로버트 때문이 아니며, 실종된 그렉을 살해했다는 누명 때문에 비롯된 것이라는 것도 망각한 유아적인 태도에는 몹시 짜증이 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덕분에 마지막에 술에 취한 그렉에게 니키가 살해당하는 결말은 끔찍하지만 시원해서 나쁘지 않았습니다. 니키가 벌인 그간의 행동은 죽어도 싸다 여겨지니까요. 그렉 역시 보석 기간에 살인을 저질렀으니 전기 의자 행은 피하기 어려울테고 말이죠. 이 정도면 9회말까지 시청한 관객을 위한 시원한 역전 홈런 격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9회말까지 보는 동안 암에 걸려도 일곱번은 더 걸렸겠지만, 끝이 좋으면 다 좋은 법이죠.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5점! 아쉬움 때문에 조금 감점하지만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장편 중에서 재미와 함께 서스펜스를 가져다 주는 보기드문 수작입니다. 명성에 비하면 '재미' 측면에서는 부족했던 작가인데 이 작품은 제가 읽은 하이스미스 장편 중에서는 최고 수준이네요. 아직 읽지 않으신 범죄 문학 애호가 분들께 적극 권해드리는 바입니다.

덧붙이자면, 영화화가 바로 연상될 정도의 묘사가 출중한데 역시나 영화화가 되었더군요. 그것도 1987년, 2009년 두번이나요. 이 중에서도 1987년 작품은 거장 클로드 샤브롤이 감독하기도 했고, 가장 잘 만든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원작 영화 중 한 편이라고도 하니 한번 구해보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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