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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24

안녕 요정 - 요네자와 호노부 / 권영주 : 별점 2점

안녕 요정 - 4점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권영주 옮김/엘릭시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인 모리야 미치유키, 다치아라이 마치(센도), 시라카와 이즈루, 후미하라 다케히코 4명은 유고슬라비아에서 유학 온 여학생 마야와 만나 그녀가 떠날 때까지 2개월간 함께 여러 일들을 겪었다. 그러나 2개월 후 전쟁이 일어난 유고슬라비아로 마야는 모두의 걱정을 뒤로 한 채 귀국하고 말았다.
편지를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편지는 오지 않았고, 남은 친구들은 그녀가 유고슬라비아 연방국 중 어디에 머무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힘을 모으는데....

요네자와 호노부의 신작입니다. 긴 호흡의 이야기 속에 몇 가지 에피소드들이 들어 있는 구성이지요.

요네자와 호노부 작품은 놓치지 않고 찾아 읽는 편입니다. 작품들이 대체로 평균 이상의 재미를 선사하며, 추리적인 면에서도 합격점을 줄 만 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일상계 분야에서는 높은 수준의 작품들을 내놓기도 했고요.

이 작품 역시 일상계 추리물입니다. 그것도 전형적 일상계로, 왕도라고 부를 수 있는 구성이에요. 정말로 있을 법한 소소한 에피소드를 추리 형식으로 풀어내고 있으며, 이러한 과정이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라면 이즈루의 이름 유래를 알아내는 에피소드를 제외하면 진위 여부를 알 수 없고, 너무 소소해서 추리라고 부르기 어려운 수준의 이야기도 있다는 겁니다. 허나 지방 소도시 고등학생들 사이에서 일어날 법한 이야기로는 이 정도가 딱이겠지요. 오히려 이러한 소소한 이야기를 추리 소설로 만드는 능력이 참으로 대단하게 느껴질 뿐입니다.

조금 더 자세하게 소개해드리자면, 제일 처음 등장하는건 첫 만남에서 마야가 이야기한 "일본인은 비에 익숙해서인지 비가 오는데도 우산을 펴지 않고 잡고 뛰어간 남자" 사건입니다. 모리야는 '우산은 고장 난 것이고, 남자는 불에 타지 않는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달려나간 것'이라고 추리합니다. 조금 경우는 다르지만 "경성탐정록"의 "소나기"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그럭저럭 괜찮은 수준의 이야기였습니다.

두 번째는 마야가 신사 근처 구 시가지에서 들은 젊은 2인조가 남긴 수수께끼의 대사 "죽을 것 같으니 신사에 가자. 곤란하다. 떡을 만들어 간다 어쩌구"의 의미를 풀어내는 이야기입니다. 모리야는 2인조의 정체가 끈끈이로 새전함을 털려는 도둑들이라고 추리합니다.
일본식 대화를 가지고 풀어낸 것이라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번역이 아쉬웠어요. 일본어의 뉘앙스를 살리기는 힘들었겠지만, 우리 식으로 "먹고 죽을래야 먹을 것도 없고, 끈끈한 떡이나 준비해야지" 정도로 풀어낼 수는 있었을 텐데 말이지요.

세 번째는 묘지 앞 공물이 홍백 만주와 붉은 샐비어라는 기이한 물건인 이유를 밝혀내는 이야기입니다. 진상은 그의 죽음이 누군가에게는 경사였다는 겁니다. 일상계의 왕도라 할 수 있는 이야기였어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떡은 홍백인데 꽃은 붉은 것밖에 없다는 상황을 통해 추가적인 이야깃거리를 뽑아내는게 특히 괜찮았고요. 개인적으로 추리로만 따지면 이 작품 속 베스트 에피소드라 생각됩니다.

네 번째는 마야 이별 파티에서 시라카와의 이름인 "이즈루"에 얽힌 비밀을 밝혀내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재미 여부를 떠나 일본인이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라 별로 와닿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마야와의 짧았던 추억담 이후, 현 시점에서 모리야가 그동안 제공된 정보를 종합하여 결국 마야가 유고슬라비아 연방국 중 어디로 돌아갔는지를 알아내는 것으로 작품 속 추리는 마무리됩니다. 정교하기는 하지만 작품 내에서 전체적으로 흩뿌려진 단서를 모아 결론을 내는 것으로, 추리라고 하기는 조금 어렵지 않나 싶었어요. 일종의 숨은 그림 찾기에 가까웠달까요?

이렇듯 소소한 이야기에 소소한 추리가 펼쳐지는 작품으로 심심하다 여겨질 수 있긴 하나 제가 워낙 일상계 추리물을 좋아하기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런데 작자의 다른 유사 시리즈와 비교해 본다면 뚜렷한 차별화 요소나 매력 포인트가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물론 "고전부 시리즈"나 "소시민 시리즈"와는 주인공들이 정반대라는 차이는 있습니다. 모리야는 본인의 에너지를 투자하여 결과를 이끌어내는 인물이거든요. 처음 본 마야를 도와주는 것에서 시작하여 학교에서의 궁도부 활동, 마야와 함께하는 시간들, 거기에 본인의 시간과 돈을 투자하여 도서관에 없는 책을 구입해 공부하는 열의까지 모든 면에서 말이지요. 또 다른 주역 센도는 굉장히 차갑고 냉정한, 일종의 "쿨 뷰티"로 성숙한 학급 위원장 느낌이고요.
하지만 "고전부 시리즈"와 "소시민 시리즈"는 의욕 없는 무채색 주인공들이 매력 포인트의 하나였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모리야는 너무 뻔해서 매력 포인트를 찾기 힘들었어요. 센도 역시 다른 캐릭터들이 수도 없이 연상되는 스테레오 타입이었고요. 마야는 외국에서 왔다는 것을 제외하면 "고전부 시리즈"의 지탄다와 다르지 않습니다. 궁금한 것은 참지 못하고 수시로 메모장을 꺼내어 메모한다는 모습은 "신경 쓰여요~"와 똑같아요.

또 비교적 무거운 내용 역시 이전 두 시리즈와는 다르기는 하나 마음에 들지는 않습니다. 그냥 일상 속 청춘물과 달리 유고슬라비아 연방을 위해 아낌없이 배우고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려는 캐릭터를 등장시킨 이유가 무엇인지 알기 힘든 탓입니다. 다치아라이를 통해 밝혀지는 진상, 즉 마야는 이미 죽었다는 것은 충격적이지만 허무할 뿐이고요. 청춘의 노력은 무익할 뿐이라는 허망함을 전해주려는 의도였을까요? 도무지 모르겠네요.

아울러 유고슬라비아 연방 해체를 작품 속에 녹이기 위해 1992년을 그리는데, 1992년에 대학교 1학년이라면 저와 동갑이라 동질감은 느껴지긴 합니다만, 나이와 시점 모두 작품과는 별 관계가 없으며, 딱히 1992년일 필요도 없다는 점에서 역시나 불필요한 설정이었습니다. 고등학생에서 대학생이 된 주인공들을 통해 성장기 느낌을 주려는 의도였을지도 모르지만, 이 역시 어설픕니다. 모리야가 어떻게 포장하더라도 유고슬라비아로 가고자 했던건 젊은 치기에 가깝고, 대학생이 된 후 다시 가려고 하는 것은 오기에 불과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일상계 추리물이기는 합니다만, 추리의 밀도가 낮고 캐릭터의 매력도 떨어지며 드라마도 재미없기에 감점합니다. 유고슬라비아 이야기에 신경을 쏟지 말고 그냥 "고전부 시리즈"의 에피소드로 써먹는 게 나았을 것 같은데, 왜 별도의 이야기를 파생시켰는지는 모르겠네요. 작가 요네자와 호노부가 유고슬라비아 홍보대사쯤으로 임명된 뒤 쓴 작품이 아닐까 추측할 뿐입니다...

2023/02/18

책과 열쇠의 계절 - 요네자와 호노부 / 김선영 : 별점 3점

책과 열쇠의 계절 - 6점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엘릭시르

요네자와 호노부의 청춘 학원 추리 단편집. '고전부'나 '소시민' 시리즈와 비슷하지만, 가장 큰 차이점은 탐정의 역할입니다. 이 시리즈는 두 주인공인 호리카와와 마쓰쿠라가 각자 추리를 펼치며 서로를 보완해 나가기 때문입니다. 약간 버디물스러운 느낌도 들어요. 뛰어난 관찰력과 독특한 발상의 추리력을 갖춘 호리카와는 뻔한 고등학생 탐정 캐릭터인 반면, 모든걸 의심하면서 추리를 시작하는 마쓰쿠라의 독특함은 나쁘지 않았고요.

또 두 주인공이 도서위원이라서 대부분의 이야기에 주제가 되는 책이 등장한다는 것도 차이점인데, 저 역시 독서 애호가(?)인지라 마음에 들었습니다.

일상계로 한 획을 그은 작가답게 평범한 일상계로는 우수한 시리즈로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일상계를 좋아하신다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913><913>>
도서위원 호리카와 지로와 마쓰쿠라 시몬은 선배 우라가미로부터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금고를 열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과거 둘이 에도가와 란포의 <<흑수조>> 속 암호를 풀었던 모습을 눈여겨 보았던 탓이었다.
일요일, 우라가미 선배 집에 방문한 둘은 할아버지 서재 방에 놓여져 있었던, 어울리지 않았던 책들이 단서라고 짐작했다. 그러나 마쓰쿠라는 정보를 바로 공개하지 않고 따로 조사가 필요하다며 호리카와와 밖으로 나온 후, 그가 생각했던 의심을 털어놓는데...


등장하는 책은 많지만, 중요한건 할아버지가 남긴 단서가 되는 책들

마쓰쿠라의 의심은 우라가미 선배가 후배 둘에게 금고를 열어달라고 부탁한 이유가 무엇인지에서 시작됩니다. 가족이 정당한 유산 상속인이라면 금고를 여는 전문가를 부르면 됐으니까요. 그래서 마쓰쿠라는 우라가미 선배와 선배의 가족은 금고를 그렇게 쉽게 열 수 없는 사람이라고 추리합니다. 선배 집에서 대접받았던 차는 시판차와 똑같은 맛이었는데 그걸 끓여서 따로 찻주전자에 내 놓은 이유, 화장실을 간다고 했을 때 화장실 문 앞에서 기다렸던 이유 등 기묘했던 행동은 그 집이 선배 가족의 집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찻잎이 어디있는지는 모르지만 살고 있는 척을 해야 해서 차를 끓여 내 놓았고, 화장실 문 앞에서 기다렸던건 집 안을 마음대로 돌아다닐까봐 걱정했던 것이었지요.
할아버지의 단서는 이상한 책의 분류 번호에 대한 것으로, 그것을 통해 금고를 열 수 있었던 것은 물론이고 이를 이용하여 선배 가족의 정체를 밝히는 작전을 펼친 것도 눈여겨 볼 만합니다. 책 4권의 3자리 분류 번호를 50음도로 변환하면 모두 6자, "타스케테쿠레 (살려줘)"라는 말이 된다고 조작하는 방식으로요. 이 작전으로 선배와 선배 가족의 눈을 돌린 틈에, 마쓰쿠라가 집 안을 조사하여 노인을 발견하고 구해내게 됩니다.
금고 안 내용물은 할아버지 그림과 가족 앨범이었다는 결말도 깔끔했어요.

그런데 약간의 문제가 눈에 뜨이기는 합니다. 할아버지가 말했던건 서재방에 단서가 있고 그건 "어른이 되면 알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허나 서재방의 책 중 다른 책들과 사뭇 다른 책이 있다는건 어른이 되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금고 번호가 도서 분류 기호라는건 어른이 된다고 알 수 있는건 아니고요. 즉 할아버지가 말했던 단서는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애초에 선배 가족이 금고를 열기 위해 후배를 부른 것도 이상했어요. 저 같으면 사진을 찍어서 보여주는 정도로 끝냈을 겁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 다소 억지스러운 설정은 아쉬웠습니다.

<<록 온 로커>>
도서위원 컴비 둘은 함께 미용실을 찾았다. 함께 가야 40% 할인이 되기 때문이었다.

점장이 "귀중품은 '반드시' 지참하실 것"을 말했고, 이걸 이발 중 이야기하는걸 저지했다, 그리고 곧 종료 시간이라고 말하고 난 뒤 염색이 필요해 보이는 손님을 받았다는 등의 단서를 조합하여 마쓰쿠라는 미용실에 최근 도난 사건이 있었고, 범인을 잡기 위해 점장이 함정을 팠다는 추리를 펼칩니다. 호리카와는 마쓰쿠라의 도움으로 둘의 예약을 받았던 곤도가 범인이라는걸 알게 되고요. 이 작전을 모르는 사람을 점장이 의심하고 있으니, 그걸 모르고 예약을 받은 곤도가 범인이라는 추리로요. 이는 결국 사실로 밝혀집니다.
마쓰쿠라의 추리에 이어 호리카와의 추리가 이어지는 티키타카가 볼만했고, 마지막에 범인 곤도가 도주하는걸 저지할 수도 있었지만 나서지 않았던건 소시민 시리즈와 비슷한 감성을 느끼게 해 주어서 좋았습니다. 평범한 일상계로는 적절했어요. 별점은 2.5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일본의 미용실 모습은 우리나라와 별 차이가 없는데 비해 남자 둘이 미용실을 가는게 굉장한 금기인 것처럼 묘사되는게 신기했습니다.

<<금요일에 그는 무엇을 했나>>
기말고사가 진행되고 있는 중에 후배 도서위원 우에다 노보루가 호리카와와 마쓰쿠라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지난주 금요일, 학교에 누군가 침입하여 교무실 앞 창문이 깨졌는데 그걸 보고 학생지도부 요코세 선생이 노보루의 형인 불량 학생 우에다 쇼가 시험 문제를 훔치려 했다고 의심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요코세 선생은 이른바 '명탐정' 같은 사람으로, 무슨 사건이 터지면 무조건 학생 누군가를 아무런 근거없이 범인으로 지목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우에다 쇼가 그 날, 밤 늦게 돌아왔는데 무슨 일을 했는지 밝히지 않고 있는 점이었다...
둘은 우에노 쇼가 결백하다는 증거를 찾기 위해 형제가 같이 쓰는 방을 수색하는데...


등장하는 책은 <<파랑새>>. 유리창을 깬 원인이기도 한 새와 연결되는 장치. 헌책방에서 산 이름을 알 수 없는 애장판 만화도 중요한 단서 중 하나. 그 외에도 노보루가 관심있어하는 책으로 나니아 연대기를 비롯한 판타지 시리즈가 언급됨.

추리를 통해 밝혀낸 우에다 쇼의 알리바이는 가족과 별거 중인 아버지 병문안이었습니다. 어머니와 동생이 아버지를 경멸하고 있어서 그 사실을 숨겼던 것이지요.
우에다 쇼의 바지 주머니에서 '라이라이켄'이라는 라면집 쿠폰을 찾아낸 뒤, 이상할 정도로 좁았던 집 등의 단서를 통해 아버지가 별거 중이라는 노보루의 답변을 끌어내어 우에다 쇼의 그날 행적을 추리해내는 과정은 깔끔했습니다. 완벽한 일상계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어요.

그런데 이 사건을 맡아서 끌어가는 과정과 결말이 다소 석연치 않습니다. 우에다 노보루의 부탁부터 억지스럽습니다. 왜 호리카와에게 부탁했는지 모르겠어요. 작중에서도 우에다 혼자서는 도저히 알리바이를 찾을 수 없어서 그랬다고 했지만, 그렇다고 호리카와에게 부탁할 이유는 되지 못합니다. 호리카와가 딱히 알리바이 찾기로 이름을 떨친 것도 아니고, 그렇게 친한것도 아니니까요.
호리카와가 부탁을 선뜻 받아들인 것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에초에 우에다 쇼는 증거가 집에 있다는 말은 하지도 않았으니까요. 설령 부탁을 받아들인다 해도 집을 뒤지느니 우에다 쇼를 만나서 이야기를 듣는게 더 나은 해결책이었어요.

이에 대해 마쓰쿠라의 추리 - 우에다 노보루가 형의 퇴학을 바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집도 좁고 어차피 형은 아버지랑 살 터였기에. 그래서 알리바이 증거를 찾아내서 없애려고(형을 퇴학시키기 위해) 호리카와에게 부탁했던 것이다. 호리카와는 인간 관계가 깨져도 무방한 사람이었으니까 - 는 주객이 전도된 것입니다. 형의 퇴학을 바란다면 알리바이를 증명하지 못하는 현재 상황이 이상적입니다. 구태여 알리바이를 찾아내고, 또 그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을 늘린다는건 말이 안되잖아요? 애초에 학교에서 퇴학당할 정도의 위기에 처한다면, 증거 유무와 관견없이 병문안 당사자였던 아버지가 가만히 있지도 않았을테고요. 모든 상황을 삐딱하게 바라보는 마쓰카와의 성격을 부각시키기 위한 주장으로 보이지만, 이전에 보여줬던 추리력과 상반될 정도의 비합리적인 주장이라서 오히려 캐릭터에 안 좋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유리창을 깬건 마쓰카와였다는 결말도 별로였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없는 책>>
3학년 선배 고다가 자살한 뒤, 자살한 선배의 친구 하세가와가 도서실에 나타났다. 그는 고다가 책 사이에 유서를 넣는 모습을 목격했기 때문이라며, 빌렸던 책을 찾아줄 것을 부탁했다.
둘은 하세가와의 빌린 책에 대한 언급을 통해 그가 거짓말을 했다는걸 알아채는데....


등장하는 책은 이와나미 문고에서 나온 쇼펜하우어의 <<자살론>>.

극히 적은 정보만 가지고 원하는 책을 찾아준다는 이야기는 서점이나 도서관이 무대인 작품에서는 굉장히 많습니다. 아예 이런 내용이 핵심인 <<서점원 하야미>>라는 만화가 떠오르네요. 이번 이야기는 이런 류의 전형적인 스타일로 전개되다가, 마지막에 반전과 함께 여운도 남기는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하세가와가 찾아달라고 하며 알려준 핵심 정보는 고다가 책을 읽다가 덮었는데 책 등이 보였고, 밑에 바코드 스티커가 있었다는 겁니다. 고다가 좋아했던건 소설책이고요. 그런데 현장 조사를 통해 하세가와는 고다의 오른쪽에 있었다는게 드러납니다. 그런데 일본의 소설책은 대부분 세로쓰기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넘기므로, 책을 읽다가 덮으면 하세가와의 위치에서 책 등과 스티커를 함께 보는건 불가능합니다. 즉, 하세가와의 말은 거짓말이었던 것이지요.
마쓰카와는 고다 선배의 유서를 날조하려는 속셈이었다고 하세가와를 비난합니다. 그러나 호리카와는 고다 선배의 유서는 육필이라 위조할 수 없고, 오히려 유서를 받은 뒤 친구가 자살한 탓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은밀하게 유서를 드러내려고 했던 거라고 추리하며 이야기는 마무리됩니다.

묵직한 내용에 추리적으로도 좋았으며, 두 주인공의 차이를 강하게 드러내는 결말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사람의 선의를 믿지 않고, 무조건 나쁜 의도일 것이라 짐작한 마쓰카와의 잘못과 이를 반박하는 호리카와의 말이 대미를 장식하거든요.
선배 교실에 가서 불필요한 연극을 할 필요는 없었지만 문제는 사소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옛날 이야기를 해줘>>
마쓰카와는 호리카와에게 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숨겨두었던 현금을 함께 찾아보자고 부탁했다. 그간 호리카와의 추리력을 눈여겨 보았던 탓이었다.
호리카와는 마쓰카와가 내 놓았던 과거의 단서들를 함께 검토하다가 과거 마쓰카와 가족에게 차가 한 대 더 있었다는걸 추리해내었고, 둘은 결국 그 밴을 찾아내는데...


여러 책이 등장하지만 핵심은 아버지 밴 안에 있었던 마쓰모토 세이초의 "제로의 초점".

보물찾기 이야기인데 마쓰카와가 잊고 있었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든, 호리카와가 잡아낸 마쓰카와의 이야기 속 단서 - 동생이 멀미를 했다는 것 - 라는 착안점은 좋았습니다. 그때까지 마쓰카와는 당시 탔던 차가 렌트카라고 생각했는데, 동생의 멀미는 담배 냄새 때문이라는걸 깨닫고 담배 냄새가 나는 차를 렌트할리가 없었다는걸 깨닫게 되거든요. 결국 그 차는 빌린 차가 아닌 아버지 차였다는 추론에 이르게 됩니다. 또 이 추리는 자동차로 여행을 가다가 동생이 심하게 멀미를 했었다는 별게 아닌 추억담이 결정적 단서가 되었다는 점과 호리카와는 마쓰카와가 잊고있던 기억을 떠오르게끔 도와주는 정도의 도움을 줄 뿐이라는 점에서 완벽한 일상계라 할 수 있습니다.
그 뒤 차를 찾아내는 과정, 그리고 차 속에서 발견한 열쇠의 '501호'가 어디인지를 추리하는 과정도 그럴듯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책'이 중요 단서로 사용된다는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차 안에 굴러다니던 헌 책이 도서관 '제적본' 책이라는걸 알아낸 뒤, 도서관이 위치한 도시의 5층 건물을 검색한다는 것으로 도서위원인 아이들의 특기가 발휘된 것은 물론이고, 그 도시는 차로만 갈 수 있다는 등의 설정이 덧붙여져 있어서 여러모로 설득력이 높았습니다.

일상계 보물 찾기로는 더할나위 없긴한데 딱 한가지 억지가 있습니다. 주차장에 주차해 둔 차라면 당연히 주차비를 냈을테니, 주차비를 내는 누군가는 차의 존재를 알고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 누군가가 그렇게 했던 이유도 설명되지 않고, 그 누군가가 몇 년 동안 차를 뒤져 그 안의 보물을 가져가지 않았을리도 없겠지요. 즉, 자동차가 주차장에 장기 주차되어 있었다는게 밝혀진 순간 보물찾기는 끝났어야 마땅합니다. 이걸 바로 떠올리지 못한건 이상해요.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친구여, 알려 하지 마오>>
호리카와는 도서관 검색을 통해 마쓰카와의 아버지가 돈을 도둑맞은 피해자가 아니라 돈을 훔쳤던 가해자였다는걸 알아낸다. 단서는 마쓰카와 시몬, 레이몬 형제 이름과 이에 대해서 마쓰카와가 '3/5이다'라고 했던 말이었다. 시와 예 (레이)는 중국 고전 5경에서 따왔으니 아버지 이름도 그럴 것이다라고 추리하여 아버지 이름을 검색했던 것이다.

호리카와도 전편에서 독자가 가졌던 의문을 그대로 가지고, 자신의 추리 결과로 도서관에서 기사를 검색하게 됩니다. 자동차가 월 정액 주차장에 남겨져 있었던건 누군가 돈을 계속 냈다는 의미라는 추리는 저와 같은데요, 호리카와는 왜 돈을 계속 냈을까?에서 또 다른 추론을 얻어냅니다. 주차장에 놓여진 차를 처분할 수 없었던건 그 안의 열쇠 때문이었고, 열쇠를 지금 당장은 회수할 수 없었다는 처지였다고요.
그리고 줄거리 요약처럼 '오경'의 한자를 통해 마쓰카와 아버지 이름을 추측하여 검색한 결과, 마쓰카와의 아버지가 절도범이었다는걸 알게됩니다. 즉, 마쓰카와의 아버지는 지금 구속 수감 중이라 열쇠를 회수할 수 없었던 것이지요.

여기까지의 추리는 기가 막힌데 그 뒤는 특별히 추리적인 부분은 없습니다. 뒷부분은 마쓰카와가 돈이 필요한 이유, 그리고 그에 대해 반론하는 호리카와 사이의 자기 주장 대결이 대부분이에요.
마쓰카와가 약점을 잡히지 않기 위해 평소에 돈을 아끼지 않는 듯한 모습을 보인 이유 등 약간 사회파스러운 분위기가 눈에 뜨이기는 하지만, - 약점이란 건 그런 거야. 약점 하나로 세상은 변해….. - 어차피 고등학교 2학년 생이 하는 이야기니 그렇게 깊이있는 이야기라고 보기는 힘듭니다. 호리카와 역시 이상론만 이야기해 줄 수 있을 뿐이고요.
이야기는 마쓰카와가 그 돈을 찾으러 후미쿠라 정에 가서 건물들을 뒤졌는지, 그래서 돈을 찾았는지 밝혀지지 않고, 평범한 도서위원으로 마쓰카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호리카와 시점에서 마무리됩니다. 아무래도 마쓰카와가 돈을 찾으면 더 이상 이야기는 이어지지 않을텐데, 어떻게든 마쓰카와가 평범한 도서위원으로 돌아와 이야기가 이어지면 좋겠습니다.

추리도 괜찮았고, 대단원의 막을 장식하기에는 나무랄데 없는 깔끔한 전개의 작품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2018/11/10

가을철 한정 구리킨톤 사건 상, 하 - 요네자와 호노부 / 김선영 : 별점 2.5점

[세트] 가을철 한정 구리킨톤 사건 상.하 세트 - 전2권 - 6점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엘릭시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름 이후 헤어진 고바토와 오사나이는 각각 다른 이성 친구와 교제하게 되었다. 오사나이와 교제하게 된 신문부 열혈 부원 우리노는 매달 벌어지는 연쇄 방화 사건에 집중하여 사건을 다룬 기사를 교내 신문에 발표했다. 기사를 통해 몇 개월간 다음 방화 장소를 예언하고 맞춘 우리노는 신문부의 손으로 범인을 잡을 계획을 세우는데...

요네자와 호노부와 일상계 추리물의 존재를 우리나라에 처음 알림 소시민 시리즈 신간(이라고 하기는 작년에 나와서 좀 어색하지만 제 기준으로는)입니다. 십여 년 전에 출간된 책은 아동용 동화같은 커버 일러스트로 충격을 주었는데, 예쁜 일러스트의 양장본으로 재출간된걸 보니 감개가 무량합니다. 십여년 전만 해도 요네자와 호노부는 우리나라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었는데, 지금은 거의 전작 출간이 되었을 정도의 인기 작가라는걸 여실히 보여주네요. 이런 추리, 미스터리 장르물의 인기에 저도 약간이나마 기여(?) 하지 않았을까 싶어 살짝 뿌듯하기도 하고요.

하여튼, 이 작품은 시리즈 1편인 "봄철 딸기 타르트 사건" 보다는 2편 "여름철 트로피컬 파르페 사건"과 더 비슷합니다. 조금 긴 호흡의 긴 이야기가 핵심으로 펼쳐진다는 점에서요. 주인공 고바토와 오사나이가 거주하는 기라시에 매달 장소를 바꾸어가며 방화가 일어나고, 이를 쫓는 신문부 후배 우리노와 이에 얽히게 된 고바토와 오사나이의 이야기가 시간으로 따지면 2학년에서 3학년까지 거의 9개월에서 10개월 동안 펼쳐지거든요.

그런데 방화사건 쪽 주인공은 우리노이며 그와 교제하게 된 오사나이가 양념처럼 등장할 뿐입니다. 고바토가 다른 여자 친구 나카마루와 교제하며 일상계 추리를 펼치는 이야기는 완벽하게 분리되어 있어요.
이러한 고바토의 일상계는 다른 일상계들과 마찬가지로 대단한 사건들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나카마루와 함께 데이트를 가던 코바토가 만원 버스에서 누가 버스에서 먼저 일어날 것인지를 추리하고, 나카마루가 이야기해 준 자신의 오빠에게 있었던 기묘한 도난사건에 대해서 추리하고, 헤어지기 직전 나카마루가 토마토를 싫어하는게 아닌가하고 추리하는 정도입니다. 이 중 버스 이야기는 추리에 비하면 분량이 과할 정도로 길어 별로였고, 토마토 이야기는 정말로 스쳐 지나갑니다. 그래도 헤비메탈 음악을 좋아하는 나카마루의 오빠가 3일간 여행 갔다 온 후 집에 유리창에 깨져있고, 누군가 침입했지만 없어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는 기묘한 도난사건 이야기만큼은 꽤 괜찮았습니다. 그동안 오디오 알람이 어떻게 동작하는지 몰랐다는건 말이 안되고, 설령 이런 일이 생겨도 집 주인을 부르지 무단 침입은 하지 않겠지만 이 정도면 나쁘지는 않아요. 전부 다 소소하고 심심하지만, 담백한 덕분에 일상계 팬이라면 충분히 즐길만 합니다.

그런데 연쇄 방화 사건 이야기는 불만입니다. 물론 추리적으로는 나름 번득이는 부분이 있기는 합니다. 특히 연쇄 방화 방법에 대한 아이디어는 괜찮습니다. 우리노가 다음 번 방화 장소를 추리해 낸 게 아니라, 사실은 우리노의 친구이자 범인인 히야가 우리노의 기사를 보고 그곳에 불을 질렀다는 건데 상당히 의외성이 있어 감탄이 나올 정도입니다. 우리나라 영화 "밀정"에서도 등장했었던, 간단한 트릭으로 용의자를 좁히고 진범을 추리해 내는 과정도 괜찮았고요.
그러나 이 이야기는 제대로 된 추리물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거의 전편에 걸쳐 탐정역을 수행하고, 온갖 추리를 펼친 우리노의 마지막 추리쇼를 박살내기 위한 오사나이의 복수극일 뿐이니까요. 게다가 복수를 위한 오사나이의 공작도 억지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범인을 잡기 위해 잠복해있던 우리노와 통화했을 때 고의로 기차 소리를 들려주어 현장 근처로 오해하게 만들고, 범행 현장 근처에 서점에서 책을 산 영수증을 우리노의 눈에 띄는 곳에 놔 두는 식인데 우리노가 이를 추리해낸다는 보장도 없지만 이렇게 해서 자신을 범인으로 오해하게 만든 의도가 불분명한 탓입니다. 마지막 순간 추리쇼를 펼친 우리노에게 면박을 주고 재기불능 수준의 창피를 주기 위해서? 복수라고 하니 그럴 수도 있지만 이 모든게 작위적입니다. 또 정통 추리물이라면 동기가 무엇인지를 파고들었어야 하는데 우리노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에게는 그런 인식이 전무하다는 것도 실망스럽습니다. 추리를 위한 단서도 독자들에게 공정하게 제공되지 않고요. 이래서야 잘 된 추리물이라고 보기는 어렵죠.

고바토가 마지막에 구리킨톤을 먹으며, 오사나이가 우리노에게 복수를 하기로 결심한 것은 지난 5월 이후라고 추리해내고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멋대로 오사나이에게 키스하려 했기 때문"이라고 답하는 장면은 깔끔했지만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복수를 꾸밀 정도의 일인지도 잘 모르겠네요. 또 우리노는 명예욕은 있지만 사건에 열정적으로 뛰어든 좋은 녀석인데, 이쓰카이치의 기사로 확인 사살까지 당하니 불쌍하기만 했습니다.

아무래도 이런 전개는 작가의 고등학생이 등장하는 동일한 느낌의 또다른 일상계 시리즈인 고전부 시리즈와 명확하게 구분하기 위해서였던 듯 합니다. 고바토가 마지막에 추리를 통해 자기 만족을 채우는 인물이라는 걸 깨닫는다던가, 오사나이는 대단한 행동력과 책략을 갖춘 팜므파탈로 묘사된 것도 같은 이유일 테고요. 소시민을 꿈꾸는 고바토 죠고로와 회색을 신봉하는 에너지 절약주의자 오레키 호타로의 캐릭터부터가 완벽하게 겹치기에,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선을 그은 것이지요. 아마 시리즈 다음 작품이 출간된다면 고바토는 보다 적극적으로 사건에 뛰어들어 추리를 펼치고, 오사나이는 추리를 위한 각종 작전을 짜내고 실행하는 행동대장 역으로 묘사되리라 생각됩니다.
문제는 이러한 큰 변화가 작품에 좋게 작용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고바토야 그렇다 쳐도 오사나이 캐릭터 변화가 문제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억지스러운 복수극 전개가 모두 이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에요. 그냥 예전처럼 한 발자욱 물러나 사건을 추리하는게 훨씬 좋았을텐데, 지금은 여러모로 작위적이고 억지스럽기만 해서 별로였어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일상계 추리가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녹아드는 구성은 좋고, 추리적으로도 눈여겨 볼 부분도 제법 됩니다. 하지만 단점도 분명해요. 억지스럽게 설정까지 바꾸어 가며 시리즈를 이어나가느니 그냥 고전부 시리즈에 집중하는게 훨씬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2018/07/22

가제가오카 50엔 동전 축제의 미스터리 - 아오사키 유고 / 이연승 : 별점 2점

가제가오카 50엔 동전 축제의 미스터리 - 4점
아오사키 유고 지음, 이연승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헤이세이의 엘러리 퀸이라는 어마어마한 별명의 일본 작가 아오사키 유고의 단편집입니다. 

작가의 이전 작품들은 트릭과 추리의 과정만큼은 괜찮았던 정통 본격물임에는 분명했습니다. 별명이 허언만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동기, 전개 등 전체적인 완성도 측면에서는 미흡한 부분이 없지 않아서 이야기를 충실하게 쌓아올리고 만들어가야 하는 장편보다는 트릭 중심의 단편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해 왔었는데 아니나다를까, 단편집이 발표되었네요. 작품 해설을 보니 이 단편집으로 가제가오카의 우라조메 탐정 시리즈 1기가 마무리된다는군요.

이전 장편들이 "~관" 시리즈였던 것에 반해 단편들 제목이 상당히 소박한게 눈에 띕니다. 표제작은 엘러리 퀸의 패러디이지만요.
그런데 추리적으로는 기대에 미치지 못합니다. 추리들 모두가 비약이 심해 설득력이 떨어지는 탓입니다. 장편에서 긴 호흡으로 쌓아올릴 수 있었던 논리가 단편 분량에서는 효과적으로 선보이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전형적인 학원 무대 일상계 청춘물인데, 경쟁작이라 할 수 있는 "소시민" 시리즈나 "빙과" 시리즈에 비하면 추리적으로나 캐릭터 측면으로나 모두 미치지 못하는 범작입니다. 시리즈의 팬이시라면 한번 쯤 읽어볼만 하지만 그렇지 않으시다면 딱히 권해드리지는 않겠습니다. 차라리 빠른 호흡으로, 시각적으로 정보를 전달해가며 전개하는게 용이한 만화였더라면 더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수록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합니다.

"원플러스원 덮밥"

학교 식당에서 금지된 식기 반출을 한 범인이 누군지 찾아낸다는 설정만큼은 학교를 무대로 한 일상계 추리물의 교과서 같은 느낌입니다. 정말 있음직하고 그럴듯한 이야기니까요. 우라조메 추리의 댓가가 식권 20장이라는 점도 역시나 일상계스럽고요.

하지만 추리적으로는 좋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추리보다는 비약에 가까운 탓입니다. 남겨진 트레이에 머리카락이 묻었다? 식판과 식기에 머리카락이 묻을 이유가 있을까요? 머리를 처박고 먹는 것도 아니고... 소스 개봉부를 얌전히 자주 쓰는 손 방향으로 놓아 둘테니 왼손잡이라는 추리도 비약입니다. 바람에 날려 떨어지거나 옮겨졌을 수도 있으니까요. 식욕 때문에 운동계 동아리일 것이다 역시 지나친 비약입니다. 작은 체구의 사나에도 한그릇 뚝딱하는 덮밥이라고 묘사되기도 했고요. 점심 시간에 중요한 회의를 한 동아리를 찾는다는 것 역시 나쁘지는 않지만 개인적인 약속일 수도 있고, 정말 급하게 화장실을 가야만 했을 수도 있어서 이 역시 비약인건 마찬가지입니다.
마지막의 진상 - 여자친구가 돈가스 도시락을 주었는데 먹지 못하고 버린 후, 원플러스원으로 좋아하는 것 반, 돈가스 반을 시켜 젓가락만 지저분하게 해서 주었다 - 도 비약입니다. 제가 저런 상황에 처했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다 먹던가 아니면 돈가스는 빼고 다 먹었을 겁니다. 왜 도시락을 버리고 구태여 식사를 또 시켰는지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네요.

아울러 키에 대한 추리는 추리라고 하기도 어렵습니다. 180cm 이상, 아니면 160cm 이하 등 용의자 범위를 대폭 줄일 수 있는 숫자면 모를까, 180 m이하의 학생이라는 건 가제가오카. 재학생의 90% 이상을 차지할 거라 아무런 의미가 없는 숫자니까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평범한 일상계지만 소설보다는 만화에 더욱 적합한 이야기입니다. 비약이 심한 내용으로 빠르게 전개하기 보다는, 단서가 조금 더 적더라도 정교하게 이야기를 쌓아나갔어야 했습니다.

"가제가오카 50엔 동전 축제의 미스터리"

표제작으로 왜 신사 축제 노점에서 거스름돈을 50엔 짜리로만 주는지에 대한 수수께끼 풀이가 펼쳐집니다. 

하지만 축제를 즐기는 내용이 이야기의 2/3 이상을 차지하며, 추리적인 부분은 그다지 눈에 뜨이지 않습니다. 잔돈 숫자를 증가시켜 사람들이 분실을 더 많이 하게 만드려는 의도였다는 진상 역시 설득력이 높다고 보기는 어려웠고요. 일본식 유타카 차림으로는 잔돈을 보관하기 어렵다는, 일본식 사고방식이 깔려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납득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이 작품 역시나 정보의 제공이 시각적이며 전개와 호흡이 빠른 만화가 더 어울렸을 이야기입니다. 만화나 애니메이션의 전형적인 클리셰라 할 수 있는 여름 축제가 무대라 더 그런 느낌이 드네요.

"하리미야 리에코의 서드 임팩트"

전작의 등장인물 중 한 명이었던 하리미야 리에코가 등장하는 전형적인 일상계 청춘 미스터리입니다. 그녀의 남자친구인 귀여운 후배 사오토메가 취주악부에서 왕따를 당하는 듯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우라조메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이야기지요.

유노와 우라조메가 아니라 하리미야 시점의 이야기라는게 독특했던 작품으로 수록작 중에서 가장 그럴듯한 추리가 펼쳐집니다. 더위와 싸우며 연습하는 상황에 대한 강조, 취주악부 연습실에 널부러진 다양한 쓰레기들, 연습하는 곡과 독주 파트에 대한 언급 등 독자에 대한 정보도 굉장히 공정하게 제공됩니다.
또 불량이라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순진한 하리미야 리에코의 성장기 성격도 있고, 이 둘의 사랑을 응원하는 우라조메 덴마의 모습도 상당히 의외의 재미를 선사해 줍니다. 뭔가 애니메이션이나 라이트노벨 같은 커플이라고 느꼈던게 아닌가 싶어요.

하지만 진상, 그리고 결말이 썩 개운치는 않습니다. 취주악부의 야마부키가 자신의 독주 연습을 위해서 사오토메를 일부로 쫓아내고 연습실로 쉽게 들이지 않은 상황은 일종의 왕따라고 해도 무방하니까요, 협주 파트를 모두 함께 열심히 연습하고, 독주 파트는 시간을 정해 따로 연습하자고 하거나, 최소한 선풍기를 빌리려는 시도를 먼저 해 보는게 당연한데 말이죠. 이를 하리미야가 쉽게 납득하는 것도 잘 이해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천사들의 늦더위 인사"

5년전 졸업한 시시도 선배의 노트에 적혀있던 두 소녀 소실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는 이야기로 서두에 유노와 사나에에게 노트에 묘사된, 일종의 백합 연애물같은 포즈를 취하게 하는 개그 외에는 딱히 눈여겨 볼 부분이 없는 범작입니다. 너무 작위적인 탓입니다. 

우선, 아무리 학교 일에 관심이 없어도 모두가 대피 훈련을 하는 상황을 몰랐다는 것부터 말이 안됩니다. 우라조메의 추리도 두 소녀의 연극과는 무관하게 9월 1일이라는 날짜에 기인한 것인데, 날짜까지 적은 일기 같은 글에서 정말로 진상을 깨우치지 못한 건 이해할 수 없어요. 예전에 매월 15일마다 실시했던 우리나라 민방위 훈련같은 거니까요. 소녀들의 소실은 사다리차를 이용한 탈출 훈련 때문이었다는 진상도 그럴 수 있었겠다 싶기는 하지만 장비에 준비가 필요하고, 탈출 순간의 환성도 있었을텐데 외부 상황을 몰랐다는 건 설득력이 너무 떨어집니다.

두 소녀가 껴안는 연극에 대한 유노의 반응은 여러모로 재미있고, 우라조메가 가오리 외에도 연극부 부장 가지와라 같은 지인이 있고 나름 학교 생활을 잘 한다는 묘사도 팬이라면 볼 만 합니다. 그러나 추리적으로는 별볼일 없어서 별점은 2점입니다.

"그 꽃병에는 주의를"

가제가오카가 아닌, 사립 히텐 학원 중등부를 무대로 우라조메의 동생 교카가 탐정으로 활약하는 일상계 소품으로 복도에 놓인 꽃병을 깬 범인을 찾는 이야기입니다.

나름 정교한 무대 설정으로 범인을 특정하고, 왜 범인이 꽃병을 가져왔는지 추리하여 동기를 밝혀내고, 그 결과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를 차분하게 설명해 주는게 괜찮습니다. 특히 "물"의 사용법에 대한 추리 두 가지가 아주 그럴듯했어요. 구태여 생수를 구입한 건 화분이 깨진 장소를 위장하기 위해서!라는 추리에서, 그게 아니라 처음에는 화병의 물이 필요했던 것! 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설득력이 높았던 덕분입니다.
그다지 비중이 크지 않았던 교카의 학교 생활, 교우 관계 및 범인 야가라스의 논리적인 반박, 비야냥에 분노하는 모습에서 드러나는 성격 등의 디테일도 좋았고요.

문제는 야가라스의 말대로 나카자와와 소프트볼 부 아이들의 증언을 믿을 이유도 없고, 2층 교실에 사람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또 이렇게 한 방 먹은 다음에 재차 휴지통을 뒤져 폭죽을 찾아내는건 어설펐고, 극적인 드라마를 만들기 위한 억지스러운 설정에 불과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교카의 캐릭터 설정 자체가 굉장히 만화적이라는 것도 문제입니다. 백합계 쿨데레? 친구 센도 히메마리도 만화 등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학생회 캐릭터라 너무 뻔했어요. 묘사를 디테일하게 하더라도 이렇게 뻔하면 딱히 깊이가 느껴지지는 않네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정말로 학교에서 일어날 수 있음직한 사건을 다룬 일상계라는 점, 교카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한 외전 형식의 성격은 마음에 들었지만 중반부 전개와 앞서 말씀드린 전형적인 캐릭터 묘사로 감점합니다. 이 작품도 마찬가지로 만화였다면 훨씬 좋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실린 짤막한 부록은 우라조메와 그의 아버지가 우연하게 사우나에서 마주친 순간을 그리고 있습니다. 우라조메 남매의 추리력은 아버지로부터의 유전임을 드러내는 이야기인데 추리에 있어 비약이 심한건 마찬가지며 워낙에 짧아 점수를 줄 만 한 부분도 없습니다.

2014/10/07

보틀넥 - 요네자와 호노부 / 권영주 : 별점 2점

보틀넥 - 4점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권영주 옮김/엘릭시르

사가노 료는 동급생 스와 노조미가 추락사한 곳에서 실수로 떨어져 버렸다. 그가 다시 정신을 차린 곳은 같은 장소지만, 유산되었다는 누나 사키와 죽어버린 노조미가 살아 있는 또 다른 평행우주의 세계였다.

요네자와 호노부의 장편입니다.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청춘 성장기, 혹은 청춘 드라마에 가깝습니다.

작가 특유의 주인공 스타일에 대한 비판이 눈에 뜨입니다. 주변 환경을 거스르지 않고 최대한 은근하게 살아가자는, 회색이 되고 싶어하는 "소시민 시리즈"의 고바토나 "고전부 시리즈"의 오레키 호타로가 연상되는 1인칭 주인공인데, 이러한 성격 탓에 문제가 발생하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제목 그대로 '보틀넥(병목현상)'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랄까요. 이런 점에서, 주인공이 가진 문제에 대해 자각하고 반성의 의미로 쓴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단순한 비판에 그치지는 않습니다. 다른 시리즈 주인공들과 달리, 사가노 료는 별다른 추리력이 없고 탐정 역할은 누나 사키가 맡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이거든요. "추리력 없는 소시민은 남에게 피해를 줄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또 적절한 분량에 쉽게 읽힌다는 장점도 있고, 추리적으로도 완전히 건질 게 없는 것은 아닙니다. 도로를 위험하게 가로막은 은행나무를 둘러싼 이야기나, 노조미의 죽음에 대한 진상을 밝히는 부분에서는 특유의 일상계 추리물 분위기를 잘 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후미카라는 캐릭터가 설득력을 가질 만큼 충분히 묘사되지 않아 다소 아쉽지만요.

사키가 현명함과 행동력으로 '더 나은 세계'를 만들지만 그 결과에 충격을 받고, 자신의 세계로 돌아가게 된다는 결말도 끔찍하고 충격적이에요. 자신은 최선이라 생각했고 아무런 악의도 없었지만, 결국 주변 인물들이 자신으로 인해 붕괴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건 저주와도 같지요.

그 외에도 실제 지명을 작품에 잘 녹여낸 묘사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여정 미스터리"가 연상될 정도로 그곳에 살았거나 가 본 적이 있다면 무척 반가웠을 장소들이 상세하게 등장합니다. 예를 들어 노조미가 추락사했다는 "도진보", "가나자와의 21세기 미술관", 와카마쓰정, 무로우 사이세이의 시비 등이 있습니다. 조사해보진 않았지만 자주 등장하는 자스코(Jasco)도 실제로 존재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러나 이러한 캐릭터 중심의 드라마 외에는 딱히 특기할 만한 점이 없다는 점은 아쉽습니다. "평행우주"라는 SF적 설정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이는 료와 사키를 대비하여 그들의 세계에 어떤 결과가 나타났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장치일 뿐이며, 별다른 설명이나 과학적 근거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솔직히 추리물을 기대했는데 정작 접한 것은 청춘 반성, 성장기였기에 실망한 탓이 큽니다. 요네자와 호노부의 "추리물"을 좋아하신다면 굳이 찾아 읽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2023/02/19

리버티 바 - 조르주 심농 / 임호경 : 별점 2점

리버티 바 - 4점
조르주 심농 지음, 임호경 옮김/열린책들

바캉스 분위기 가득한 휴양지 앙티브에서 과거 전쟁 당시 프랑스 정부를 위해 일했던 윌리엄 브라운이 살해되었다. 경찰은 메그레 경감을 파견했다. 첩보전에 관련된 사건이라는 괴소문을 막기 위해 빠른 진상 파악이 필요했던 탓이었다.
수사 결과, 브라운은 오스트레일리아 거대 목장주였지만 유럽에 왔다가 향락에 빠진 나머지 아내와 가족으로부터 의절당해 빈털털이가 된 신세였다. 수입은 매달 아들이 보내주는 5천 프랑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중 2천 프랑 정도만 정부에게 주고 나머지 돈은 한달에 9일 정도를 칸의 리버티 바에서 보내며 써 버렸다는 것, 그리고 아들 해리 브라운이 그가 재산에서 완전히 손을 떼는 조건으로 백만프랑을 제안했지만 윌리엄 브라운은 가족을 귀찮게 하려는 일념하나로 그 제안을 거절했다는 것이 수사를 통해 밝혀졌다.
리버티 바에서 사는 창녀 실비가 해리와 만난 뒤 2만 프랑을 손에 넣는걸 발견한 메그레 경감은 그 돈은 윌리엄 브라운의 유언장 댓가라는 증언을 확보했다. 알고보니 윌리엄은 정부와 장모, 리버티 바의 주인 자자와 실비에게 유산을 남겼었다....

조르주 심농의 대표작인 메그레 경감 시리즈. 완역 출간 시도가 좌절된 국내 출간된 시리즈 중 17번째 작품입니다. 1932년에 발표되었던 고전이지요. 메그레 경감이 휴양지 앙티브, 그리고 칸을 무대로 활약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으나 무대만 휴양지일 뿐, 피폐하고 팍팍한 소시민의 삶이 작가 특유의 묘사를 통해 가득 담겨있습니다. 하긴 메그레 시리즈에서 꿈과 희망, 여유를 느낀다는건 말도 안되죠. 모든걸 잃은 남자가 편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유일한 안식처인 리버티 바의 묘사도 아주 멋드러집니다. '방탕한 게으름'이라는 표현이 아주 기억에 남네요.

장점이라면 '드라마'로서의 재미입니다. 밑바닥 인생끼리 얽힌 기묘한 인간 관계에서 동기가 빚어져 살인 사건이 일어나는 과정의 극적인 전개가 아주 볼만한 덕분입니다. 원래 창녀 출신이었던 리버티 바의 여사장 자자는 단골 윌리엄이 자기를 사랑한다고 생각했지만, 윌리엄이 실비와 관계를 가지자 격분하여 살해하고 말았던게 진상이거든요. 이 진상이 극적으로 드러나는 과정은 일종의 반전이라고 할 수 있는데, 독자를 깜짝 놀라게 함으로서 상당한 재미와 흥미를 가져다 줍니다.

자자가 윌리엄을 정말 사랑했기 때문에 살인을 저질렀다는 점에서, 그리고 칼에 찔린 윌리엄 브라운이 자자에 대한 마지막 애정과 책임을 쥐어짜서 차를 몰고 별장으로 돌아간 뒤 죽었다는 점에서는 진짜 사랑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이 수차례 영화화된 이유도 이런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라는 이유가 클 것 같아요. 사건을 마무리하고 메그레 경감이 부인과 나누는 아래의 마지막 대사는 정말이지 심금을 울립니다.
"그는 한 선술집과 한 착한 늙은 여자를 찾아냈어. 그러고는 같이 술을 마셨지."
"술을 마셔요?"
"그래요! 그들이 술을 마시면 세상이 다르게 보였지. 그들이 세상의 중심이 되었거든……. 그들은 이런 얘기, 저런 얘기 나누었지……."
"그러고 나서요?"
"늙은 여자는 그게 왔다고 믿게 되었어."
"뭐가 왔는데요?"
"누군가가 자기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자기가 영혼의 짝을 찾게 되었다고! 모든 것을 찾게 되었다고!"
메그레 경감이 죽을 날이 머지 않은 자자를 풀어주고 사건을 대충 마무리하는 결말도 진짜 사랑 이야기에 잘 어울렸습니다. 해피 엔딩이라고 하기는 애매합니다만.

그러나 추리적으로 딱히 별볼일 없다는건 아쉬웠습니다. 메그레 경감 시리즈가 고전이지만 대단한 트릭이 사용된 작품이 거의 없다시피한데, 이 작품은 제가 읽었던 시리즈 중에서도 손꼽을만큼 추리물 요소는 찾아보기 힘들었어요. 메그레 경감의 끈질긴 수사로 진상이 밝혀지는 과정은 잘 그려져 있지만, 우연과 운이 많이 좌우했다는 점에서 정교한 이야기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만약 실비와 해리가 만나는 장면을 목격하지 못했다면 진상을 알아낼 수 있었을까요? 아마 불가능했을겁니다.
스스로 자기 파괴적인 행동만 반복하는, 또 여러가지 이유를 대며 자신의 삶을 나락으로 몰고가는 여러 등장인물들 묘사도 지나칠 정도로 뻔했다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메그레 시리즈에서 그동안 많이 등장했던 인물들과 별로 다르지 않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 드라마로서는 볼 만 했지만, 추리물로 보기는 다소 어렵기에 감점합니다.

유튜브를 찾아보니 브루노 크레머 주연의 1991년도 제작된 TV 시리즈 버젼이 올라와 있더군요. 프랑스어를 몰라서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대체로 원작을 그대로 영상화한 것으로 보입니다. 원작을 읽으셨다면 한 번 비교해보셔도 재미있을겁니다.

2007/07/12

봄철 딸기 타르트 사건 - 요네자와 호노부 / 박승애 : 별점 3점

봄철 딸기 타르트 사건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박승애 옮김/노블마인

이곳 저곳에서 평이 좋길래 구입해 본 젊은 일본 작가의 청춘 추리물로 다섯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는 단편 연작집. 막 고등학교에 진학한 주인공 커플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첫 에피소드에서 시리즈의 시작을 알린 뒤 두번째 에피소드부터 제목 그대로 "봄철 딸기 타르트"와 연관되어 전체적으로 통일성을 지니는, 그러면서도 각각 일상 속의 소박한 사건들을 다루며 한편으로 완결되는 스토리가 있는 옴니버스 형태로 구성되어 있는 책입니다..

일단 장점이라면 일상 속 사건임에도 추리적으로 괜찮다는 것입니다. 굉장한 트릭은 등장하지 않지만 몇몇 부분에서의 트릭과 아이디어가 꽤 재미나더라고요. 그러니 2007년판 "이 미스테리가 굉장해!" 순위에도 등장했겠지만요. 전부 비슷비슷한 수준이지만 연작성격을 떠나서 제일 마음에 들은 이야기는 "도둑맞은 딸기 타르트" 였습니다. 그 외의 이야기들도 좋았습니다. 사실 일상 생활속에서 사람들이 강력 사건을 접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기에 이렇게 일상 속의 자질구레하면서도 소박한 사건을 다루는 것이 외려 현대 추리 소설에 더욱 잘 어울려 보이기도 했고요.
아울러 탐정역을 소화하고 있는 주인공 커플 역시도 "소시민이 되고 싶다" 라는 장래희망마저도 소박한, 명탐정의 전형을 깨버리는 우리 주위에 흔히 있을 수 있는 아이들이라는 것도 정감가는 요소였습니다. (참고로 소시민이 되고 싶다는 고바토의 꿈은 추리력 과시에 의해 외려 손해를 본 과거의 트라우마라는 설정이던데 이 역시 QED의 한 에피소드와 상당히 유사했습니다.)

한가지 아쉬운 부분은 너무 만화적인, 그림이 훨씬 어울리는 트릭이 많다는 점입니다. 만화 버젼이 연재되고 있다는데 만화 쪽이 그림만 마음에 든다면 외려 구매 욕구를 자극하는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 정도로 만화에 더욱 어울리는 소재들이었거든요. 책 뒤의 해설에도 나오지만 고등학교 1학년 커플이 탐정역으로 등장한다던가, 학교 또는 일상 생활 속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사건들을 해결한다는 점에서 만화 "QED"와 굉장히 닮아 있기도 하고 말이죠.

결론내리자면 시리즈 첫 작품으로서는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보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제가 읽기에는 좀 너무 어린 취향이 아닐까 싶어서 이후의 시리즈를 계속 사 볼지는 좀 생각해 봐야겠지만요. 추리물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없던 초심자, 그 중에서도 20대 아래의 나이층이라면 적극 추천하고 싶네요.

그런데 표지가 너무 유치한 것은 도저히 용서가 되지 않습니다... 이거 무슨 아동용 동화책도 아니고...

1. 가방 찾기 대소동
고등학생이 된 후 진정한 소시민으로 거듭나려는 주인공 고바토와 오사나이. 그러나 고바토의 초등학생 동창 겐고를 만나면서 그 계획이 틀어지게 된다. 겐고는 너무나 정의감이 투철한, 앞장서기 좋아하는 열혈남아였던것. 겐고가 한 여학생의 가방 도난 사건의 조사를 요청하면서 고바토는 다시금 추리의 세계로 뛰어든다.

2. 도둑맞은 딸기 타르트
오사나이가 너무나 좋아하는 봄 한정 딸기 타르트를 실은 자전거를 도둑맞은 뒤, 고바토는 오사나이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신문부인 겐고가 의뢰한 미술부의 수상쩍은 그림의 수수께끼 풀이에 도전한다.

3. 맛있는 코코아를 타는 법
주말에 오사나이와 만나던 고바토에게 겐고가 자기 집으로 놀러오라는 전화를 하고, 찾아간 둘에게 겐고는 맛있는 코코아를 대접하며 그 비결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겐고의 누나 치사토는 부엌에서 겐고가 어떤 방법으로 코코아를 만들었는지에 대한 것을 궁금해 하며 애를 태우는데...

4. 커닝페이퍼의 비밀
오사나이에게서 시험 도중에 깨진 병에 대한 이야기를 듣던 고바토는 잠깐의 조사로 병이 깨진 이유를 알게 된다.

5. 딸기 타르트의 복수
자전거를 훔쳐간 이웃 고등학교 학생 사카가미를 우연히 발견한 오사나이와 고바토. 오사나이는 복수를 다짐하지만 고바토는 오사나이 신변을 걱정하여 겐고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 하지만 선뜻 도와주지 않으려는 겐고에게 고바토는 어쩔 수 없이 스스로 추리한 자전거 도난 사건의 진상을 털어놓고 결국 사건을 해결한다.

2013/12/19

빙과 - 요네자와 호노부 / 권영주 : 별점 2.5점

빙과 - 6점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권영주 옮김/엘릭시르

회색을 선호하는 에너지 절약주의자 오레키 호타로가 누나의 부탁(협박?)으로 가미야마 고교의 특활동아리 "고전부"에 입부한 뒤 벌어지는 소소한 사건을 다룬 일상계 단편 연작집입니다.

요네자와 호노부는 국내에서 예상외로 사랑받는 작가이기는 하지만, 이 작품의 출간은 순전히 애니메이션으로 더욱 유명해진 덕으로 생각됩니다. 사실 애니메이션이 없었더라면 작가의 데뷔작일 뿐더러, 무슨 상을 탄 것도 아니기에 딱히 출간될만한 임팩트는 없거든요. 뭐 저 개인적으로야 작가에게 호감이 있는 편이라 국내 출간된 작품은 챙겨 읽는 편이고, 제가 좋아하는 일상계 미스터리물이기도 해서 주저 없이 읽어보게 되었지만요.

작품은 기대했던 대로, 그야말로 일상계 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한 일상계 작품이더군요. 정말 놀라울 정도로 소소한 이야기들이 펼쳐집니다. 분명히 열려 있던 부실의 문이 잠긴 이유, 매주 금요일에 똑같은 책이 대출되고 반납되는 이유, 고전부의 회지가 어디로 사라졌는지를 찾아내는 정도의 사건들이니까요. 이후 지탄다의 삼촌이 남긴 말과 33년 전에 학교에 무슨 사건이 있었는지, 지탄다의 삼촌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추리하는 약간 긴 분량의 이야기가 이어지지만, 역시나 딱히 큰 사건은 아닙니다. 빙과라는 회지의 제목이 삼촌의 심정을 대변하는 말이었다는 것 정도가 인상적일 뿐이에요.

그러나 이야기 자체는 아주 재미있습니다. 소소한 사건이지만 충분히 우리 주위에서 있었음직한 것들이라 설득력 높고, 사건의 이유와 진상을 파헤치는 추리적인 재미 역시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살인범이 넘쳐나는 부동고교가 비정상적인 거지, 고등학교에서 대단한 사건이 일어나는 게 더 말이 안 되는건 당연하니까요.

필요 없는 에너지를 절대로 쓰지 않는다는 원칙의 소유자이지만 주어진 정보를 조합하여 정확한 결과를 추리해내는 의외의 능력을 갖춘 주인공 오레키 호타로, 오감이 발달해 있고 섬세한 감성을 갖췄지만 의외로 행동파인 지탄다 등의 캐릭터들도 생동감 넘치면서도 현실에 있음직한 고등학생들 그 자체라 마음에 들었습니다. 친구들도 감초 역할은 충분히 해 줍니다.

아울러 개인적으로는 작품 내에서 무리하게 성장기를 그려가는 전형적인 청춘물 느낌을 많이 전해주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원하지는 않았지만 고전부에 입부한 뒤 평범한 사건과 소소한 일상을 거치며 약간은 회색에서 물든 오레키 호타로의 변화 정도가 딱 적절했다고 생각됩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일상계의 단점인 밋밋한 이야기가 도드라지기는 해서 살짝 감점했습니다만, 일상계 추리물의 왕도를 걷는 작품으로 충분히 추천할 만합니다. 책의 장정과 크기 등 만든 모양새도 최근 본 책들 중에서는 최고로 치고 싶네요. 애니메이션도 구해봐야겠습니다.

그런데 평범한 고교를 무대로 한 설정과 소소한 일상 속 사건을 다룬 내용, 거기에 오레키 호타로와 고바토라는 탐정역 캐릭터의 속성까지 작가의 다른 작품인 소시민 시리즈와 굉장히 유사한데 왜 별개의 시리즈로 작품을 만들었는지는 궁금합니다. 뭐 하나라도 확연히 구분되는 점이 없기에 하나의 시리즈로 일관되게 끌고가도 충분했을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2017/09/03

미스테리아 13호 - 미스테리아 편집부 : 별점 2.5점

미스테리아 13호 - 6점
미스테리아 편집부 지음/엘릭시르

미스테리 장르문학 전문잡지 미스테리아 최신간입니다. 창간 2주년 기념호라 그런지 특별 보급가이기도 하고, 항상 관심있게 찾아보던 주제인 "경성"을 특집으로 하고 있어서 구입했습니다.

특집인 "경성" 관련 기사들은 기대에 값합니다. 1930년대 경성이 어떤 곳이었는지를 '장르 문학'과 관련된 시각으로 설명해주는데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았던 덕분입니다. "별건곤"에 실렸다는 경성 7대 특수촌이나 5대 마굴에 대한 탐사기는 충분히 하나의 작품 소재가 될 만큼 재미있었어요.
경성을 탐정 소설의 배경으로 바라보고 분석한 기사들도 좋았습니다. 예를 들면 "염마"에 등장하는 서광옥의 X별장은 "체신국 뒤로 해서 개천을 메워가지고 새로 낸 큰길을 단 후 누상동 큰거리에서 언덕 위에 지은 큰집을 찾았다"라는 묘사를 통해 '아방궁'이라 불렸던 친일파 윤덕영의 저택을 모델로 했다고 알려주는 식입니다.
여기에 더해 남촌과 북촌의 특수성과 같은 사회적인 부분, 아편굴과 같은 특수 장소와 같은 당대 경성에 대한 갖가지 디테일이 가득하여 아주 만족스러웠습니다. 박태원의 "최후의 억만장자"는 예전에 읽어봤던 작품으로 내용은 별 볼일 없지만, 삽화를 맡았던 월북 화가 정현웅의 그림은 마음에 들었어요. 목판화 스타일의 삽화는 지금 보아도 전혀 어색하지 않는 수준의 완성도니까요.

물론 이런저런 한국 추리 소설 역사서에 실려있는 내용에서 불과한 기사들도 제법 됩니다. 김동인의 "수평선을 넘어서"에 대한 기사가 대표적이에요. 얼마전 읽었던 "대중서사장르의 모든 것 3 : 추리물"에 수록된 내용과 별로 다르지 않아요. 주제에 맞춰 "경성"이라는 공간, 배경에 집중하지 않고, 당시 사회적 배경을 통틀어 설명하고 있는 탓입니다. 이렇게 풀어내면 다른 유사한 컨텐츠와 변별력을 가지기 힘들지요.

그러나 특집 외의 기사들은 기대 이하의 결과물이 많습니다. 홍보 문구에서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는, 그래픽 디자이너 8인에게 가상 표지를 제안했다는 "세상에 아직 없던 책"은 그 중에서도 최악입니다. 박철희의 "환상의 여인" 정도만 괜찮을 뿐, 그외 표지들은 실제 책이 출간되더라도 구매 욕구가 일어나지 않을 정도로 엉망이에요. 요새 대학생들 과제도 이것보다는 나을 듯 한데, 차라리 왠만한 미술 대학 디자인 학과와 연계하여 결과물을 수록하는게 좋았을 겁니다.

"미스테리아"의 핵심 컨텐츠인 리뷰 형태의 새 책 소개도 이번에는 그냥저냥입니다. 그닥 끌리는 책이 없더군요. 게다가 리뷰어 중 한 분은 직업이 "인형사, 자유기고가"라고 되어 있어서, 대체 이 리뷰가 무슨 기준인지도 헛갈립니다. 꼭 전문가가 좋은 리뷰를 쓴다는 것은 아닙니다만, 인터넷을 통해 무료로 볼 수 있는 컨텐츠가 아니라, 비용을 들여 구입한 책의 리뷰라면 그만큼의 전문성은 보장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미스터리 애호가라면 최소한 인터넷을 통해 잘 알려진 분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잠깐 인터넷을 찾아보았는데 당쵀 뭐하시는 분인지 모르겠더군요. 이 분이 소개하는 기타무라 가오루, 요네자와 호노부의 작품들도 구태여 리뷰가 필요한지도 의문입니다(심지어 요네자와 호노부 작품은 '소시민'시리즈 최신간!). 이 잡지를 구해 읽어볼 정도의 독자라면, 이 두 작품은 딱히 리뷰가 필요없을테니까요. 새책 소개는 다른 곳에서는 잘 소개되지 않는 독특한 작품을 소개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입니다.

뒤 이은 영화 "불한당"의 감독 인터뷰 역시 개인적으로는 별로였습니다. 감독이 SNS를 통해 실수했던 이력만 기억에 남을 뿐으로 이런 인물을 지면을 할애해가며 인터뷰를 한 이유를 모르겠거든요. "불한당"이 국내 범죄, 느와르 영화에서 특기할 만한 성취를 이룬 작품이라서 일까요? 영화를 보지는 않았지만 별로 그랬을 것 같지도 않네요.

특집 외 기사들 중에서는 미스테리 속 음식에 대해 파헤치는 정은지 작가의 컬럼과 3편의 논픽션 정도만이 그나마 괜찮은 편입니다. 정은지의 컬럼에는 국내에는 소개된 적이 없는 형사 몬탈바노 시리즈를 소개하며, 작 중 등장하는 다양한 이탈리아 요리들의 소개가 곁들여지고 있는데 재미도 있고 신선했습니다. 제가 준비 중인 '장르 문학 속 음식 이야기'라는 컬럼과 비교되어 자극도 되었고요.
3편의 논픽션은 법의학자가 분석한 평범한 일상 속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 미국에서 화제가 되었던 살인 매뉴얼, 한강변에서 발견된 시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중 마지막 이야기가 가장 강렬합니다. 범인을 조작하려는 경찰의 노력에, 무고한 용의자가 겨우 혐의를 벗는 과정, 그리고 결국 미제 사건으로 범인은 커녕 피해자가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았다라는 결말까지 모두 충격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3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 역시 이전 호들과는 다르게 수준 이하의 작품이 더 많네요. 우선 로스 맥도널드의 "사라진 여인"은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던 루 아처 시리즈라는 점을 제외하면 특기할 만한 점이 전무한 소품입니다. 루 아처가 묶은 모텔에서 살인 사건이 벌어지고, 루 아처가 진상을 파헤친다는 내용인데 루 아처가 하나씩 손에 넣은 단서를 되짚어가면 진상이 드러나는 전개라 추리의 여지도 없고 이야기도 원사이드하게 흘러갑니다. 선택지가 하나 뿐인 미션을 수행하는 느낌이랄까요? 딱히 반전이 있는 진상도 아니고요. 이 정도면 평범 이하라고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국내작가 차무진의 "비형도"는 전개는 흥미로우나 좋은 작품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아무런 단서나 복선도 없이 귀신들 사이에 어울린다는 결말이 영 납득이 되지 않거든요. 물론 조상병이 살의를 품은 순간, 그 장소에 있던 귀신들 속으로 들어가 귀신들의 역할극이 벌어진 것에 불과하다고 설명되기는 합니다만... 개연성도 없는 역할극이 전체 분량의 90%에 달하는 작품을 좋은 작품이라고 말할 수는 없죠. 생각한대로 현실이 바뀌는 "열린 우주"라는 핵심 설정 및 이를 통해 벌어지는 온갖 사건들은 아주 재미있었는데 아쉽네요. 하기사 좋았던 부분들도 여러모로 애매하긴 합니다. 사건의 시작은 학예사의 뿔테 안경이 아니라 "껌"이었어야 할 것 같고, 학예사가 목을 메다는 장면은 이게 뭔가 싶으니까요. 여튼, 이 역시 별점은 1.5점입니다.

그래도 피터 러브시의 "오이스터 브라운이 저지른 범죄"는 아주 괜찮습니다. 펄, 오이스터 자매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지 트리거의 의심을 독자에게 공유하게 만드는 전개는 정말로 일품이에요. 분명 언니가 사라졌는데 애써 있는 것처럼 가장하는 오이스터의 행동의 이유는? 평생 써도 다 쓰지 못할 퇴비화 속도가 빨라지는 발효 촉진제를 산 이유는? 집에 아무도 들이지 않는 이유는? 이런 질문들은 가장 설득력 있는 추리, 즉 "펄은 죽었고 오이스터가 그녀를 자체적으로 처리하려 한다"로 이어지니까요.
하지만 진상은 정말로 터무니없었고 황당하다는 점에서 독자의 뒷통수를 칩니다. 거장다운 장난스러운, 그렇지만 또 서늘한 결말도 매력적이에요. 트리거가 어디로 갔는지 정말 아무도 몰랐을지, 그리고 트리거의 차가 집 앞에 있으므로 완벽한 인멸은 불가능 했으리라는 점에서 조금 감점하여 별점은 3.5점입니다만, 거장의 실력만큼은 유감없이 느낄 수 있는 작품입니다.

이렇듯 다양한 기사, 읽을 거리로 가득차 있는데 특집과 정말로 몇 안되는 기사, 한 편의 단편만이 기대에 값하기에 전체 별점은 2.5점입니다. 가격이 저렴하지 않았다면 2점 이상 주기는 힘들었을거에요. 식민지 경성, 그리고 그 공간을 무대로 한 장르 문학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꼭 읽어보셔야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딱히 추천드리지 않습니다.

2008/06/15

무지개집의 앨리스 - 가노 도모코 / 장세연 : 별점 2점

무지개집의 앨리스 - 4점
가노 도모코 지음, 장세연 옮김/손안의책(사철나무)

전에 읽었던 "나선계단의 앨리스"에 이어지는 샐러리맨 출신 탐정 니키와 아리사 컴비 연작의 두번째 단편집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망스러웠습니다. 이른바 "일상계 미스터리물"을 많이 접하다보니 식상하기도 하지만, 이야기 자체가 너무 재미없는 탓입니다. 일상계 미스터리가 잔잔하고 소소한 사건들을 다루는 이야기라고는 하더라도, 이렇게 재미없어서야 소설 자체로 성립하기 어려운거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듭니다. 

추리적으로 잘 짜여진 이야기도 별로 없어서 추리물로의 재미 역시 많이 부족합니다. 소시민 고바토 - 오사나이 시리즈 역시 두번째 작품 "여름철 트로피컬 파르페 사건"이 무척 재미없었던 기억에 비추어 볼 때, 역시 "일상 속에서 펼쳐질만한 재미있고 기발한 소재"가 동일한 캐릭터로 계속 등장하는건 무리가 아닐까 싶을 정도입니다. 

하여튼, 수록된 여섯편의 이야기 대부분이 지루하고 시시합니다. 이렇게 시시할 바에야 만화 QED처럼 일상계에 얽매이지 않고 잔잔하고 소박한 사건 + 강력 사건 미스테리가 잘 어우러져서 재미를 극대화시키는 방향이 나았을 겁니다. 와카타케 나나미의 작품인 "네 탓이야" 같은 경우가 좋은 예가 될 수 있을 것 같네요. 아니면 일상 속에서의 악의나 서늘한 사건을 그리는 로열드 달 분위기로 가 주던가.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세 번째 시리즈가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지루한 일상계 시리즈의 전형이라 판단되기에 저는 더 이상 읽어볼 생각은 없습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이중 그나마 베스트를 꼽으라면 평작 이상 수준은 보여주는 "감옥의 집의 앨리스"를 꼽습니다.

"무지개 집의 앨리스"

아리사를 통해 소개받은 주부들의 모임에 참석한 니키는 자신이 "미세스 하트"라 별명을 지은 부인에게 조사 의뢰를 받았다. 그녀가 속한 주부들 커뮤니티에서 발생한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과 협박장들에 대한 의뢰였다. 

이번 편에 많이 등장하는 주부들 커뮤니티 시리즈 1작입니다. 워낙 사건이 별볼일 없어서 지루합니다. 일본어 말장난은 짜증나는 수준이고요. 결말은 그나마 깔끔했지만 뻔해서, 점수를 줄 부분이 없네요.

"감옥의 집의 앨리스"

전작에서 인연을 맺은 산부인과 아오야마 의원과 우연한 통화를 통해 병원에서 발생한 신생아 유괴 사건 의뢰를 받는데...

1편에 등장했던 아오야마 의원이 또 등장하네요. 이 작품은 그런대로 괜찮았습니다. 약간 강력사건 냄새가 나기도 했지만, 추리적으로 제법 괜찮은 수준이었던 덕분입니다. 동기와 사건 전개 모두 확실한, 평균 이상의 완성도를 보여줍니다.

고양이 집의 앨리스

"무지개 집의 앨리스" 편의 주부 모임에서의 또 다른 사건 의뢰는, 그녀들의 친구인 애묘인 사나에씨가 우연찮게 발견한 고양이 ABC 살인사건이었다. 

역시나 주부 커뮤니티 시리즈입니다. 고양이 ABC 살인 사건이라는 설정 자체도 웃기지만 모든 것이 익명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벌어진다는 설득력없는 전개가 영 맘에 들지 않더군요. 결말 역시 씁쓸했습니다.

"환상의 집의 앨리스"

아리사의 본가 가정부 후키코의 의뢰로 니키는 아리사가 왜 후키코를 싫어하게 되었는지 조사하는데... 

추리물이라기 보다는 아리사의 과거에 얽힌 추억담으로 보는게 맞습니다. 캐릭터 설명을 위한 취지는 좋지만 힘이 다 빠질정도로 재미가 없었습니다. 추리 단편이라기 보다는 아리사 팬픽에 불과합니다.

"거울의 집의 앨리스"

니키의 아들 슈헤이가 자신의 약혼녀 유리아를 보호해 달라고 부탁했다. 과거 사귀던 아키코라는 아가씨로부터 협박을 받게 된 탓이었다.

니키가 추리에 실패하는 모습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이색작입니다. 전작에 이어 이번 편은 니키의 과거와 가정사에 얽힌 이야기인데, 전작보다는 낫습니다. 제법 긴장감있는 전개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말이 매끄럽지 못해서 아쉬웠습니다. 유리아에 관련된 결정적인 단서가 그닥 공정하지 못해서 추리적으로 높은 점수를 주기도 힘들었고요. 

그나마 보석 은닉 장소에 대한 내용만큼은 괜찮아서, 이 정도면 평작 정도는 됩니다.

"꿈의 집의 앨리스"

주부 모임을 통한 화분, 화초 도난 사건의 의뢰와 정체불명의 여인으로부터의 마치 소설과도 같은 의뢰 등 갑자기 몰린 의뢰를 해결해 나가는데...

화초 도난 사건의 진상이 그닥 명쾌하지 않아서 주 사건으로서의 긴박감이 많이 떨어집니다. 정체불명의 여인의 의뢰는 괜찮았지만 워낙 주 사건이 심하게 아니라서 별로 마음에 들지 않더군요.

2021/12/11

불온한 잠 - 와카타케 나나미 / 문승준 : 별점 2점

불온한 잠 - 4점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문승준 옮김/내친구의서재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와카타케 나나미의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 최신작입니다, 2019년 12월 발표되었습니다. 2020년 초에 하무라 드라마가 방영되었기 때문에 일부러 간행 일자를 맞춘 듯 합니다. 통상 2년 정도 기간을 두고 발표되었던 시리즈 이전 작들에 비하면, 중간 기간이 확연히 짧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시리즈 이전 작들에 비하면 확실히 별로였습니다. 사건들은 대부분 억지스러웠으며 추리적으로도 별볼일 없거든요. 전작에 비하면 많아진 극적 소재들 - 폭발, 유령 빌딩과 그라피티, 총격 사건, 산사태 등 - 도 대체로 비현실적이었고, '세계에서 가장 불행한 탐정'이라는 별명을 강조하기 위한 지나친 상황과 인물 설정들도 억지가 심했어요.

그래서 별점은 2점, 와카타케 나나미의 다른 작품들보다는 여러모로 부족했습니다. 미디어 믹스의 유혹, 편집부의 요청이 지나쳤던게 아니었나 싶네요.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거품 속의 나날" 

자신이 곧 죽을거라는 옛 기치조지의 마담 사쓰키는 하무라 아키라를 자택으로 불렀다. 그녀가 돌보던 친구 딸 하루카가 곧 출소하는데, 자기에게 데려와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하루카는 마약에 취해 저지른 방화로 불륜남을 사망케해서 7년형을 받았었다. 하루카를 교도소에서 태우고 돌아오던 중, 수상한 2인조가 하루카를 납치하려다 실패했다. 경찰은 하루카가 죽게 만들었던 불륜남 다케이 소지로가 무언가 위험한걸 밀수했었고, 아직 그게 발견되지 않았다고 알려주는데...

하루카와 하무라 아키라, 악의 조직이 서로 쫓고 쫓기는 과정은 전형적인 하드보일드 세계관 그대로입니다. 재미도 있고요. 특히 하루카가 수상한 조직에 쫓기다가 도망가서 '무언가'가 있음직한 장소로 향하는 과정, 하무라가 그녀를 뒤쫓다가 조직과 마주치는 등의 장면은 "몰타의 매"를 연상케 합니다. 비싼 값어치가 있는 보물을 여러 명이 노리고, 여자와 탐정이 한 팀인줄 알았는데 여자가 뒷통수를 친다는 설정이 똑같으니까요. 

물론 하루카는 전혀 미인도 아니고, 머리도 나쁘며 하무라 아키라도 생활고에 시달리는 소시민인데다가, 악의 조직도 사람을 죽이기 보다는 '손을 믹서기에 실수로 넣어 버리는' 정도의 조직이라는 차이는 있습니다. 현대 일본에 하드보일드 세계관을 풀어놓으려면 어쩔 수 없었겠지요. '무언가'가 고작 거북이었다는 진상도 황당했지만, 현대 일본이 무대인 상황에서는 최선이었을 테고요. 악당들이 거액과 시간을 들여, 폭행을 가해가며 노려왔지만 정작 경찰은 딱히 관심을 가지지 않을 그런 물건으로 딱 적당하다 싶었거든요. 멸종 위기종으로 약효가 좋다고는 해도, 수많은 관계자들 손을 갈아가면서 찾을 필요가 있나 싶기는 했습니다만.

하지만 이 작품이 진짜 하드보일드구나! 싶었던건, 악의 조직과의 문제가 일단락된 다음입니다. 사쓰키가 죽기 전, 하루카를 데려와 달라고 탐정을 보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7년간 면회는 커녕, 영치금 한 번 넣어준 적이 없었고, 하루카는 사쓰키를 두려워했는데 말이죠. 정답은, 사쓰키는 하루카에게 복수를 하려고, 그녀가 도망가지 않고 자신에게 오도록 탐정에게 의뢰했던 겁니다. 이를 위해 앞서의 복선이 드러나는 장면은 서늘합니다. 사쓰키가 장갑을 끼고 있었던 이유가 대표적이에요. 사쓰키는 하루카 때문에 손가락을 믹서에 넣게 되었던 것이지요. 그 밖에도 친구가 하루카를 임신했던 탓에 좋았던 관계가 깨졌었고, 하루카의 불륜으로 사업도 큰 손해를 보았던 등도 복수의 이유였고요. 이렇게 애정이라고는 느낄 수 없는 순수한 복수심이 대폭발하는 마지막 장면은 정통파 하드보일드 물임을 새삼 느끼게 해 주었어요.

그러나 멀쩡한 회사 대표였던 사쓰키 손을 갈아버렸다면, 왜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일본이 이렇게나 무식하고 무서운 무법천지란 말일까요? 하루카가 훨씬 젊고 힘도 좋을텐데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죽음을 맞는 결말도 납득이 가지 않았고요. 또 물론 집을 폭탄으로 날려버리는 마지막 장면은 드라마를 과하게 의식한게 분명해 보여서 좀 별로였습니다. 앞서의 소시민스러운 하드보일드 느낌을 망쳐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하드보일드 범죄물 팬이라면 누구나 좋아함직한 수작이라 생각됩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새해의 미궁" 

하무라 아키라는 12월 31일, 하청 알선업자 사쿠라이를 통해서 철거 예정인 빌딩의 경비를 맡게 되었다. 유령이 나온다는 소문으로 유명한 빌딩이었다. 고생 끝에 경비를 마친 히무라에게 경비 사무소 사무원 사나에가 실종된 경비원 구도 쓰요시를 찾아 달라고 의뢰했다. 구도 쓰요시는 회사 몰래 유령 빌딩 견학회를 열었던 사실이 질책받고 도망가 버린 상태였다. 하무라는 구도와 악연이 있다는 예술가 사촌 라이카의 집에서 구도를 발견하는데...

라이카가 빌딩 개발업자 관계자와 함께 경비 중이던 구도를 협박해서 유령 빌딩에 침입했던 이유는, 독자들도 비교적 쉽게 추리할 수 있습니다. 라이카가 이구치라는 그라피티 아티스트에게 푹 빠저 있었다는 정보가 초반에 제시되는 덕분입니다. 해체 직전의 빌딩에 경비원을 둔 건 빌딩 안에 값나가는 무언가가 있다는걸 개발업자도 알고 있었다는 뜻이고, 그 사실을 눈치했던 회사의 누군가가 이구치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라이카를 현장에 불렀던 거라는 추리는 덕분에 쉽게 떠올릴 수 있었어요. 아마 그 누군가는 직품을 확인한 뒤 몰래 빼 낼 계획이었을테지요. 

그러나 진상은 조금 의외였습니다. 개발업자인 산도 개발의 오키타 부장이 이구치 그라피티가 있다고 사기쳐서 한 몫 챙기고 있었던 겁니다. 이구치 그림은 없었던 거에요! 이렇게 독자의 의표를 찌르는 맛도 좋고, 덕분에 사건의 복잡도도 높아져서 꽤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전개는 여러모로 억지스러웠어요. 일단, 앞서 말했던 '누군가'에 해당하는 오키타 부장의 부하 후치가미가 아라카와, 라이카에게 이구치 그라피티에 대한 정보를 흘린건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데 뭘 위해서 그랬을까요? 그림을 빼돌릴려고? 작 중에서 설명되지만, 건물 속 그라비티를 훔쳐내는건 현실성 없는 이야기에요. 벽을 해체하는게 그리 쉬울리가 없으니까요. 그렇다고 달리 돈을 만들 방법도 없고요. 후치가미가 속수무책으로 실종된걸 보면 딱히 협박이 목적이었던걸로 보이지도 않습니다. 도무지 이유를 모르겠어요. 

그리고 라이카는 이구치의 작품이 없다는 걸 알았을겁니다. 그런데도 시간을 들여 누드 사진을 찍은 이유도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녀도 사실은 이구치 작품이 뭔지 잘 몰랐다는걸 의미하는 걸까요? 설령 그렇다쳐도, 작품 전개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무엇보다도, 라이카가 사진가 아라카와에 의해 빌딩 안에서 살해당했다는게 가장 억지스러웠습니다. 경비원이었던 구도를 반 협박하다시피해서 들어오기는 했지만, 라이카와 아라카와가 빌딩에 잠입한건 그리 대단한 죄는 아닙니다. 그런데 그걸 숨기기 위해 살인까지 저지른다? 아라카와는 이구치 그림이 없다는걸 알고, 오키타 부장 패거리에게 잡히면 죽을 거라고 추리했을 수는 있습니다. 문제는 그렇다면, 오키타 부장 패거리가 자기들 얼굴을 목격했던 경비원 구도를 살려둔 이유가 설명이 안되지요.

사소해 보였던 의뢰가 대기업이 엮인 대형 사기극과 이어지지만, 하무라가 받은 의뢰는 사기와는 별로 관계가 없었습니다. 살인 사건은 우발적인 범행이었고요. 사건 해결도 추리라고는 찾아보기 힘들고 우연에 가까왔다는 점에서, 하드보일드 물이라고 볼 수 있을지도 의문이에요. 그래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도망친 철도 안내서" 

하무라 아키라는 병원에 입원한 도야마의 지시로 '철도 미스터리 페어' 준비를 도맡게 되었다. 페어의 메인은 수집가 미노와로부터 빌린 "ABC"였다. 유명 작가 가미오카의 장서로 '94식'이라는 총기 난동 현장에 있었다고 알려진 책이었다. 그러나 페어 와중에 누군가가 하무라를 전기 충격기로 기절시킨 뒤 책을 훔쳐가 버렸다...

진상은 책이 가짜였다는 겁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수집가 미노와는 손자를 시켜 책을 훔쳐냈던 거지요. 나중에 가짜와 바꿔치기 되었다고 할 속셈으로요. 진상을 밝혀내기 위해 이리저리 연결되어 있는 실마리를 더듬어나가는 과정은 하드보일드물 스타일입니다. '철도 미스터리 투어'를 준비하면서 소개되는 열차 관련 미스터리 작품들의 목록들도 현란하고요.

그러나 그 밖에는 딱히 건질게 없던, 그닥인 작품이었습니다. 추리적으로도 아주 별로에요. 살인곰 서점에서 책을 훔처간 범인은 CCTV를 통해 누구인지 밝혀지고, 진상은 범인에게서 듣는게 전부니까요. 심지어 94식 사건의 관계자 구라나 마호코의 손자 구라노가 절도 미스터리 페어의 하이라이트인 경매회를 덥쳐서, 진상을 모든 이들에게 폭로하기까지 합니다!

무슨 회사 내부의 알력 어쩌구는 억지로 가져다 붙힌 설정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 뿐, 하드보일드인지도 잘 모르겠기에 별점은 1.5점입니다. 요약이 힘들 정도로 알맹이가 없었던 졸작입니다.

"불온한 잠" 

서점 단골 시나코씨가 11년 전, 자신 소유의 집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던 하라다 히로카를 소중하게 생각했던 누군가를 찾아, 유품을 전해 달라고 의뢰했다. 예전 히로키의 이웃 이와오 하쓰에 할머니가 탐문 수사 중이었던 하무라를 습격해 목을 졸랐고, 그녀가 히로카를 증오해서 위협했던게 사망 원인으로 밝혀졌다. 

히로카의 과거를 계속 추적하던 하무라는 그녀가 다른 남자에게 얹혀 사는걸 반복해 왔다는 걸 알아냈다. 어린 시절부터 이어져 있던 생활 습관이었다. 그녀 어머니 이치카는 돈을 갚지 못한 채무자 집에 히로카를 보내어, 그녀가 그 집의 모든걸 독차지하여 살게 해 왔었다...

표제작, 하라다 히로카의 과거를 추적해나가는 과정은 정통 하드보일드스럽습니다. 사람들을 만나고, 단서를 수집하여 과거로 한 발 더 나아가고, 그러면서 숨겨져 있던 추악한 진실을 알게된다는 전개니까요. 간단해 보였던 의뢰가 범죄로 얽혀있고, 등장 인물들도 기묘하게 얽혀있는 내용도 마찬가지에요. 이거야말로 하드보일드다라는 느낌을 담뿍 전해줍니다. 

반면 수사 대상인 하라다 히로카에게 아무런 개인적 감정을 품지 않고, 의뢰 내용을 수행하기 위해서 몇 번이나 죽을 뻔 하면서도 최선을 다하는 하무라 아키라의 모습은 상당히 독특했습니다. 복수와 같은 개인 감정 때문도 아니고, 수사 중 위험에 휘말려 살아남기 위해서도 아닌 정말로 열심히 일하는 탐정은 처음 봤거든요.

그런데 원래 의뢰는 '연고 없이 사망한 사람의 영혼을 달래주고 싶다'는 것 뿐이었습니다. 고향까지 찾아갔지만, 사채 탓에 모든 사람들이 미워했다는 걸 알아냈다면 의뢰는 끝난 거에요. 히로카의 어머니 이치카가 '먼 모래'의 마담 아치요에게 돈 때문에 살해당했건, 히로카 옆집의 이와오가 사망한 히로카의 돈을 빼돌렸건, 그건 의뢰와는 무관했습니다. 하무라 아키라가 아치요와 이와오를 찾아갈 이유는 아니에요. 또 찾아가 봤자 이치카와 히로카의 돈이 둘에게로 흘러갔다는 증거가 없으니 할 수 있는 것도 없습니다. 경찰 신고도 무용지물이었을테고요.

게다가 이렇게 하무라 아키라가 이야기를 끝낼 방법이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든 끝은 내기 위해 작가는 천재지변이라는 최악의 선택을 하고 말았습니다. 토사 붕괴로 뉴타운이 휩쓸리고, 아치요와 이와오마저 실종되었다는 결말인데 작위적이고 허무하기로는 그야말로 끝판왕 격이에요. 차라리 하무라 아키라가 야치요에게 추리를 털어놓고, 원래 의뢰대로 유품을 전해주고 가는게 더 하드보일드스럽고 괜찮았을 겁니다.

하무라의 수사도 히로카의 죽음이 자연사가 아니었다는게 밝혀지는 도입부는 괜찮았지만, 이후 기타노의 아내도 식칼로 하무라를 죽이려 했다던가, 히로카가 거쳐간 세 번의 거주지를 방문했고 기타노는 직접 만났음에도 마지막까지 '사채에 대해 증언을 얻지 못한다는 등 억지가 많더군요. 이치카, 히로카 모녀가 살던 오매 마을 사람들은 모두 사채에 대해 알고 있었고, 그래서 모녀를 적대시 했었지요. 히로카의 정체 (사채업자)는 널리 알려져 있는게 당연했습니다. 최소한 불륜 상대로 오해받는 것 보다는 말이지요. 하루카가 시나코 씨 소유의 좁고 낡은, 거지같은 집에서 혼자 머무르다 죽음을 맞았다는 것도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원칙대로였다면 채무자 이마이 집에 머물며 왕처럼 지냈어야죠. 돈도 많았을 텐데...

이렇게 독특함은 있지만, 단점들이 많아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제 별점은 2점입니다.

2025/06/07

백수아파트 (2025) - 이루다 : 별점 2점

아래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백수인 안거울은 큰동생 두온의 집에서 조카들을 돌보며 지냈지만, 오지랖 넓은 성격 탓에 쫓겨나듯 독립하게 되었다. 그녀가 새로 이사한 곳은 재개발 예정지에 위치한 백세 아파트로, 이곳에선 새벽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층간소음이 발생해 주민들이 괴로워하고 있었다.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선 안거울은 이내 주민 대표 지원, 무당 무학보살, 전직 회계사 경석, 공시생 샛별, 유튜버 동오와 협력하게 되었고, 203호에 사는 광신도 여성을 체포하게 만드는데 성공했지만 그녀는 범인이 아니었다. 
안거울은 크게 좌절했지만, 결국 소음을 일으킨건 경석이며, 그 배후에 아파트 경비원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주민들과 함께 마지막 대결에 나서는데...

이 영화는 백수 소시민이 층간 소음 추적에 나선다는 일상계 코믹 추리 스릴러입니다. 연휴를 맞아 티빙으로 감상했습니다. 

장점이라면 우선, 남는 것이 시간뿐인 백수가 탐정극을 끌고 나가는 설정 자체가 독특하고 흥미롭습니다. 실제로 층간 소음 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작전—탐문 수사, 주민 파티 구성, 소음 측정기 활용 등—은 현실적인 공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했고요. 무엇보다 수상해 보인다고 막무가내로 몰아가는 것이 아니라, 단서와 증거를 수집하고, 그에 대한 반론 상황까지 함께 제시하며 범인을 좁혀가는 과정은 장르적 재미를 잘 살리고 있습니다. 대표적인건 203호가 범인이 아니라는게 노숙자 증언으로 밝혀진 뒤, 경비가 그 때 소음을 일으켰고 이유는 자기 멤버 중 한 명이 범인이었기 때문이라는 거울의 추리입니다. 뒤이어 거울은 쉼터 사용자 목록을 조사하여 범인이 경석이라는걸 밝혀내게 되지요.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주인공 안거울 캐릭터도 생생합니다. 배우 경수진 씨의 연기가 좋더라고요. 그가 함께 지내는 조카가 실은 이미 세상을 떠난 존재였고, 현재 곁에 있는 조카는 귀신이라는 설정도 비교적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습니다. 다른 아파트 주민들도 잘 표현하며, 곳곳에 피식하게 만드는 재미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저예산 영화라 해도 영상미나 연출의 완성도, 스케일 모두가 영화보다는 TV 드라마에 가깝다는건 아쉽습니다. 차라리 기, 승, 전, 결의 네 파트로 나누어 - 안거울 설정 설명과 이사 후 층간 소음을 만나는 기, 안거울이 오지랖 넓게 나서서 범인을 찾기 시작하는 승, 203호를 범인으로 특정하지만 그녀가 범인이 아니라는게 밝혀지는 전, 진범인 경비와 마지막 승부를 펼치는 결 - 연속극 형식으로 구성했다면 더 효과적이었을겁니다. 

또한 후반부로 갈수록 추리 스릴러로서의 서사의 긴장이 급격히 사라져 버리고 맙니다. 범인이 경비원으로 밝혀지는건 너무 노골적이었고, 경비원이 감추고 있던 서류를 놓고 다투는 장면이 너무 길며 긴장감도 느낄 수 없었던 탓입니다. 경비원은 안거울을 살해하려고 했다가 실패한 상황인데, 서류를 숨기고 있었는지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안거울이 경찰에 신고만 해도 살인미수, 납치 감금 등으로 중형을 선고받았을텐데 말이지요. 경비원과 부하들이 주민들과 몸싸움을 벌이는 것 역시 마찬가지, 백주대낮에 그렇게 심한 폭행을 저지르고 빠져나간다는건 말이 안됩니다.

아울러 재건축을 유도하기 위해 집값을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몇 개월씩 소음을 유발했다는 설정은 설득력이 부족했습니다. 그렇게 장기간 문제가 지속되었다면, 영화보다 훨씬 빠른 시간 안에 범인이 밝혀졌을 법하다는 생각이 드니까요. 이보다는 차라리 다른 방법, 예를 들어 방화를 시도하는 등의 적극적인 방법이 더 현실적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시도 자체는 흥미로웠지만, 완성도 면에서는 아쉬움이 컸습니다. 영화보다는 백수 안거울을 중심으로 한 연속 TV 시리즈가 훨씬 어울렸을테고요. 같은 설정의 TV 시리즈를 기대해 봅니다.

2019/09/22

진실의 10미터 앞 - 요네자와 호노부 / 김선영 : 별점 3점

진실의 10미터 앞 - 6점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엘릭시르

프리랜서 기자인 다치아라이 마치가 등장하는 단편들을 수록한 요네자와 호노부의 단편집입니다. 

다치아라이 마치는 '고전부'나 '소시민' 등 다른 시리즈 캐릭터에 비하면 지명도가 낮은 편입니다. 등장 작품이 "안녕 요정", "왕과 서커스" 두 편 뿐이며 그나마도 "안녕 요정"에서는 주인공이라고 하기 힘든 탓입니다.

작품 특징이라면 웃음기를 쫙 빼고 서술되고 있으며 살인이나 자살과 같은 강력 사건들이 벌어진다는 점입니다. 표제작을 포함한 수록된 여섯 편의 단편 모두요. 대부분 비극이거나 씁쓸한 뒷 맛을 남긴다는 점도 마찬가지고요.

모든 이야기에 '기자' 라는 직업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조금씩 다른 해석으로 실려있는 것도 눈에 뜨입니다. 이야기 속 다치아라이의 취재는 대다수 독자를 위해 진실을 규정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극소수의 독자를 위해 눈에 보이는 진실이 아닌 그 이면을 들춰내어 밝혀내고, 그러면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거나 상처를 입게된다는 내용이거든요.

이를 화자인 '나'가 다치아라이 마치인 "진실의 10미터 앞"에서 시작해서 '나'가 범인인 "정의로운 사나이", 다른 기자가 화자인 "고이가사네 정사", 3인칭 전지적 관찰자 시점인 "이름을 새기는 죽음", 그리고 취재에 동행한 제 3자가 화자인 "나이프를 잃은 추억 속에"와 사건의 주요 관계자가 화자인 "줄타기 성공 사례"와 같이 다양한 시점 변화를 통해 강조하는 솜씨도 인상적입니다.
이러한 묵직한 내용과 현란한 기교는 작가 요네자와 호노부 스스로 고교생 일상계에서 벗어나 진지한 주제를 다루고 싶었던 욕심에서 비롯된게 아닐까 싶네요.

작가의 이름값에 걸맞게 추리적으로도 꽤 괜찮습니다. 사소한 단서에서 진실을 끌어내는 이야기들이 많은데 상당히 설득력이 높은 덕분입니다. 실제로 있음직한, 생활감 넘치는 단서와 전개는 작가의 특기인 일상계 추리물을 연상케 하고요. 전화 통화 내용만 가지고 자신이 찾는 인물의 소재를 밝혀내는 과정을 그린 "진실의 10미터 앞", 자살을 각오한 고교생 연인의 노트에 쓰여진 '살려줘'라는 글귀, 그리고 함께 죽지 않은 기묘한 현장에서 다른 사건과의 관련성을 눈치챈다는 "고이가사네 정사", 한 노인의 고독사 이면에 있는 진상을 그린 "이름을 새기는 죽음"이 특히 괜찮았습니다.

조금 억지스러운 이야기도 없지는 않고, 기자 의식을 무리하게 집어넣은게 아닌가 싶은 이야기도 있기는 합니다. 일본 전국을 누비지만 기묘할 정도로 여정 미스터리 느낌이 나지 않는것도 단점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약간 아쉽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전체적으로 완성도 높은 수작 단편집이라 생각되네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요네자와 호노부의 팬이시라면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언제나처럼 작품별로 상세하게 소개하며 리뷰를 마칩니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진실의 10미터 앞"

나 다치아라이 마치는 사진기자 후지사와 요시나리와 함께 야나마시로 향했다. 도산한 벤처 기업 퓨처스테어 홍보 담당인 하야사카 마리가 실종되었는데, 그녀의 행방을 찾을만한 단서가 발견되었기 때문이었다. 단서는 그녀가 여동생과 통화한 통화 기록 뿐으로, 다치아라이는 통화 기록을 토대로 야마나시의 명물 호토를 파는 가게 중 한 곳을 특정하여 그녀를 발견하는데 성공한다.

통화 기록 속에 숨겨진 몇 가지 단서를 통해 하야사카 마리의 행적을 밝혀내는 추리가 화려하게 펼쳐집니다. '타이어 문제로 움직일 수 없다'에서 눈이 내린 지역을, '우동 같은 음식'으로 야마나시 명물 '호토'를, 술에 취했다는 말을 통해 호토와 술을 함께 밤 늦게까지 파는 가게를 찾고 '말도 잘하는 멋진 남자'에서 마지막 목격자인 외국인 가게 종업원을 찾아내는 이야기로 모두 이치에 합당하고 설득력이 높습니다. 추리만으로도 별점 3점은 충분한 좋은 작품이지요.

하지만 숨은 그림 찾기같은 추리 외의 이야기 자체로는 별다른 내용은 없습니다. 하야사카 마리는 자살한 시체로 발견되고, 관련된 기사도 쓰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작품들과 같은 주제 의식을 드러내기에는 좀 부족해서 아쉽습니다.

"정의로운 사나이"

막 투신 자살 사고가 일어난 지하철 플랫폼에서 '나'는 다른 사람에게 불편을 초래하는 짜증나는 여기자를 발견하는데... 

20여페이지 남짓한 소품인데 플랫폼 끝이 아니라 중간 지점에서 투신이 일어났다는 점에서 사고가 아니라 살인이 아닐까 생각한 다치아라이의 재치는 높이 평가할 만 합니다. '민폐를 끼치는 인물에 대한 불쾌감'이라는 동기도 현대 사회에서는 충분히 있음직 하고요.

그러나 그 외의 내용은 지나치게 작위적입니다. 범인이 그 자리에 계속 머물러 다치아라이를 관찰한다던가, 다치아라이의 행동을 민폐로 여기고 불쾌해한다던가 하는 설정과 전개 모두요. 기자 의식을 다룬 부분도 짤막하게 등장하기는 합니다만 그렇게 중요한 내용으로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사건을 만나 기쁘다는게 진심인지 아닌지는 결국 밝혀지지도 않고요. 한마디로 가벼운 소품입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고이가사네 정사"

미에 현에서 고교생 2 명, 구와오카 다카노부와 가미조 마리의 동반 자살 사건이 일어났다. "주간 심층"의 기자 쓰루는 현지 취재를 나서서 코디네이터 다치아라이와 함께 행동하게 되었다. 유언장에 남겨져 있던 '살려줘'라는 글귀와 고교 선생님들과의 인터뷰 등을 통해 다치아라이는 이 사건이 의원 폭탄 사건과 관련되어 있다는걸 알아내고 이 정보를 쓰루와 공유하는데...

가족을 통해 성폭행을 당해 임신한 여고생과 그녀를 돕지못해 좌절한 남고생이 함께 자살한다는 정사 사건 속 또다른 진상을 밝혀낸다는 이야기입니다. 함께 죽기를 원했던 둘이었는데, 왜 마리만 칼에 찔려 죽고 다카노부는 물에 빠져 교각에 걸린 사체로 발견되었는지?와 유언장에 남겨진 글귀, 그리고 현장에 남겨져 있던 와인 속 맹독인 '황린'을 통해 진상에 이르는 과정이 합리적이면서도 깔끔합니다. 그나마 믿을만하다 생각했던 '선생'이 사실은 자기만 아는 이기주의자 쓰레기로 둘의 죽음을 자신의 범행 은닉에 이용했다는 진상과 결말은 굉장히 씁쓸하면서도 잔혹하고요.

다치아라이가 주변인처럼 그려지며 그녀가 취재하는 의원 폭탄 사건에 대해 전혀 알 수 없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왜 시모타키 선생이 의원들에게 발화 폭탄을 보냈는지는 알 수 없지요. 그래도 추리와 이야기 전개 모두 빼어난 수작임에는 분명합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이름을 새기는 죽음"

중학생 히노하라 교스케는 이웃집 노인 다가미 료조가 고독사한걸 최초로 발견했다. 얼마 뒤 프리랜서 기자 다치아라이 마치가 그를 찾아와 인터뷰를 요청하고, 교스케는 그녀의 취재에 동행하는데...

다가미 료조가 지역 신문에 투고한 글과 다른 사람의 투고글, 그리고 다가미 료조의 집에 남겨져 있던 엽서 필적을 통해 피해자의 아들 다가미 우노스케가 아버지의 죽음을 방조했다는 진상이 드러나는 작품입니다.
그런데 다가미 료조가 '직함'에 연연하여 '이름을 새기겠다'는 사명감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설정이 돋보입니다. 기묘하지만 아주 그럴싸하거든요. 실제로 직함에 목숨을 거는 사람이 많은게 사실이기도 하니까요. 이를 노인 고독사와 연결하여 전개한 솜씨도 아주 일품이에요. 

아울러 다가미 우노스케가 쓰레기지만 그의 입을 빌어 다가미 료조 역시 나쁜 사람이라고 다치아라이가 결론내리는 마지막 장면은 그녀의 기자로서의 한 단면을 보여줍니다.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멋졌어요. 진실도 좋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은 살아가야 한다는 점에서 와 닿기도 했으니까요. 덕분에 교스케는 과거에 사로잡히지 않고 한 발자욱 더 나아갈 수 있었을테지요.

실제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상 속 사건과 독특한 아이디어가 잘 결합한 좋은 작품이었어요. 개인적으로 이 단편집 최고 작품으로 꼽습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나이프를 잃은 추억 속에"

'나'는 오래전 여동생의 친구였던 다치아라이 마치를 만나기 위해 시골 소도시 하마쿠라를 찾았다. 그리고 다치아라이가 취재하는 유아 살인사건 취재에 동행하며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가는데...

"안녕 요정"의 핵심 인물이었던 유고슬라비아 유학생 마야의 오빠가 등장합니다.
그는 다치아라이가 취재하는 마쓰야마 가린 살인 사건 취재에 동행하여, 그 과정에서 다치아라이와 같은 기자에 대한 실망감과 환멸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현실을 보여주는 '눈' 역할이 아니라 사실을 가공하여 미력하나마 피해자를 구해주려고 노력하는 다치아라이의 진면목을 취재 동행을 통해 알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사건보다는 다치아라이가 어떤 기자인지를 알려주는게 목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추리적으로는 범인으로 지목된 마쓰야마 가린의 삼촌 마쓰야마 요시카즈의 수기가 일종의 암호라는 암호 트릭물인데 대단한 추리가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극 중 다치아라이의 말대로 추후 요시카즈가 사실을 고백하고 경찰이 수사에 집중한다면 밝혀낼 수 있는 수준의 사건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다치아라이라는 인물에 대해 잘 알 수 있는 이야기이기는 한데 추리물로는 부족해서 감점합니다.

"줄타기 성공 사례"

나가노 현 남부를 덮친 수해 현장에서 일흔이 넘은 도나미 부부가 극적으로 구출된다. 부부는 사흘 동안 콘플레이크를 먹으며 버틸 수 있었다. 현장 근처에서 가업을 이어 가게를 운영하는 오바에게 다치아라이가 찾아와 도나미 부부에 대해 물어보는데...

한 여름에 콘플레이크를 무엇에 타서 먹었는지? 가 수수께끼로 등장하는데 이게 왜 수수께끼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콘플레이크는 꼭 우유에 타 먹지 않아도 먹을 수 있는 식품이잖아요? 게다가 그게 문제가 된다는 상황도 이해가 되지 않아요. 노부부가 전기, 가스가 모두 끊긴 집에 고립된 상황에서 매몰된 이웃집에서 가동되는 냉장고를 사용한게 죄가 될까요? 그 집 음식을 전부 가져다 먹어도 괜찮았을텐데 말이지요. 이런 점을 굉장한 민폐로 여기고 미안해하는 수준을 넘어서 오열하는 노부부의 모습도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오바는 '행방불명된 사람의 집에 들어가 목숨을 연명한 부부는 비난받을거다' 라고 생각하지만 저는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 누구도 비난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이야기가 성립된다고 생각되지 않아서 좋은 점수를 줄 수는 없네요. 추리적으로도 별다른 내용이 없고요. 이 단편집의 워스트 단편으로 꼽겠습니다.

2024/01/05

검은 황무지 - S.A. 코스비 / 윤미선 : 별점 3점

검은 황무지 - 6점
S. A. 코스비 지음, 윤미선 옮김/네버모어

<<아래 리뷰에는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보러가드는 어머니의 병원비와 딸의 대학 등록금 등 급전이 필요해서 로니의 보석상 다이아몬드 강탈에 참여했다. 로니와 콴의 실수로 엉망진창이 된 와중에도 보러가드의 빼어난 운전실력 덕분에 다이아몬드는 훔쳐냈다. 그러나 다이아몬드는 뒷세계 거물 레이지의 것이었고, 레이지는 강도단을 붙잡아서 경쟁자 셰이드의 플래티넘 코일을 훔쳐오라고 협박했다. 보러가드는 혼신의 힘을 다해 코일을 성공적으로 탈취해 왔지만, 로니가 배신해서 코일을 빼돌렸고 보러가드의 사촌 켈빈마저 살해했다.
배신을 알게 된 레이지는 보러가드의 가족을 납치하려고 했고, 이에 보러가드는 로니와 레지 형제를 죽이고 코일을 되찾은 뒤, 가족을 지키고 복수를 하기 위해서 레이지와 마지막 결전을 준비하는데....


"타임지에서 선정한 역대 최고의 추리, 스릴러 소설 100선"을 통해 읽게 된 작품. 두뇌파 악당이 주인공이며, 그가 세운 계획에 따라 벌어지는 여러가지 범죄들이 이어집니다. 조금 어려운 말로는 피카레스크 하이스트 스릴러, 쉬운 말로는 악당 범죄 활극이지요. 한마디로 말하자면 흑인 버젼의 "악당 파커" 시리즈입니다.

하지만 전형적인 피카레스크 물과는 큰 차이점이 있습니다. 주인공 보러가드는 온갖 범죄를 저지르고 살인도 서슴치 않는 악당이기는한데, 그가 범죄를 저지르는건 모두 가족 때문이며 마지막에는 가족을 위해 스스로 사라질 결심까지 한다는 점입니다. 가족을 다치게 하지 않기 위해서요. 물론 마블 세계관의 킹핀처럼 '내 가족에게는 따뜻하지만 반대하는 자들에게는 잔인한' 악당도 있지만 '보러가드'는 삶에 찌든 소시민으로 가족을 위해 싸우는 '아버지'의 모습을 강하게 보여줍니다. 탁월한 묘사는 이런 모습을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해 주고요. 반면 '버그'로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악당으로 범죄 계획을 세우고, 자신을 괴롭힌 악당들에게 하는 복수는 처절합니다. 이렇게 악당 '버그'와 좋은 아버지 '보러가드'라는 이중적인 면모를  이상하지 않게 잘 그려낸 솜씨가 탁월했니다.

범죄물로서도 평균 이상입니다. 일단 스릴러로서의 전개가 발군입니다. 보러가드에게 끊임없이 위기가 닥치는데 정말 읽는 내내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습니다. 이게 연재물이었다면 다음 호를 기다리기 힘들었을 것 같을 정도였어요.
'하이스트' 물로서도 충분한 재미를 가져다 줍니다. 다이아몬드 강도 사건, 코일 탈취 사건, 그리고 마지막 레이지와의 결전이라는 세 개의 큰 작전 모두 계획부터 성공하기까지의 과정이 세밀하게 설명되는 덕분입니다. 모두 보러가드의 운전 실력이 핵심이라는 독특함도 좋았습니다. 다이아몬드 강도 사건에서 고가도로로 도주한 뒤 뛰어내린다던가, 코일을 탈취할 때 코일이 실렸던 트럭을 더 큰 트럭 안으로 몰아 넣어 숨기는 식이거든요. 마지막에는 레이지를 끝장내기 위해 애차 더스터를 몰고 카 체이스를 벌이고요.
보러가드의 정비 기술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다이아몬드 강도 사건 때에는 이산화질소식 촉매 시스템을 엔진에 장착해서 빠른 속도를 냈으며, 강철판을 용접하여 추락 시 충격을 흡수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코일 탈취 때에는 달리면서 밴이 트럭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트럭 꽁무니에서 경사로가 나오도록 개조했고요. 레이지에게 준 벤에는 원격 조종 폭탄을 설치하여 폭발시켰습니다. 이런 요소들은 범행 과정에서 반전처럼 등장해서 재미를 더해주며, 설명도 충분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자동차에 대한 상세한 설명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등장하는 거의 모든 차는 차종에 대해 무조건 언급해줄 정도인데, 작가가 자동차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중에서도 아버지의 유물로 또 다른 주인공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더스터'는 무슨 차인지 궁금해서 좀 찾아보았는데, "Plymouth Duster"로 1970년대 생산된 자동차더군요. 전형적인 '아메리칸 머슬' 입니다. 보러가드, 아니 버그와 참 잘 어울리네요. 가족에 위기가 닥쳐도 포기하지 못할 정도로 애정을 보이지만, 복수를 끝낸 뒤 폐차시킨다는 결말까지도 뭔가 미국적이고 마초적이었고요.

하지만 걸작 하이스트 소설로 보기에는 작전은 평이한 편입니다. 신기에 가까운 운전 실력이 알파이자 오메가로 그렇게 치밀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대단한 세력을 지닌 듯한 악당 레이지의 조직이 보러가드 한 명에 의해 괴멸되는 결말도 별로였습니다. 여기에서야 말로 수와 화력의 열세를 뒤집을 치밀한 작전이 필요했는데, 단지 '폭탄'으로 모든걸 해결한다는건 지나치게 시시했거든요. 악당 조직이 이 때 한 곳에 모두 모인다는 설정도 억지스럽고요. 최소한 보스 레이지가 직접 나서서 트럭을 찾으러 갈 이유는 없잖아요? 전형적인 헐리우드 액션 스릴러 스타일의 결말이었습니다.

그래도 단점은 사소합니다. 범죄 소설로서의 재미만으로도 별점 3점은 충분합니다.
덧붙이자면, 보러가드가 흑인이지만 인종 차별에 관련된 내용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 것도 좋았습니다. 어떤 가치관, 사상은 전혀 담겨있지 않은 순수한 오락물이거든요.

2007/07/31

여름철 트로피컬 파르페 사건 | 夏期限定トロピカルパフェ事件 (2006) - 요네자와 호노부 / 박승애 : 별점 1.5점

여름철 트로피컬 파르페 사건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박승애 옮김/노블마인

소시민을 지향하는 고교생 고바토는 컴비격인 오사나이의 여름 방학 계획인 "오사나이 스위트 섬머 셀렉션"에 동참하여 마을의 맛있는 과자가게 순례에 나선다. 그러던 중 갑자기 오사나이가 유괴되고 직후 고바토에게 수수께끼같은 문자 메시지가 날아온다. 고바토는 유일하다 할 수 있는 친구 겐고와 더불어 오사나이 구출 작전에 나선다.

전작 "봄철 딸기 타르트 사건"에 이어 읽게 된 요네자와 호노부의 고바토-오사나이 컴비 시리즈. 전작을 그런대로 재미나게 읽었기에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전작과 비교한다면 실망스러웠어요. 전작을 재미나게 읽었던 가장 큰 이유가 일상속의 사소한 사건을 가지고 이야기를 전개하는 소박한 일상계 추리물이라는 것이었는데 이 작품은 일상계도 아니고 추리물도 아니거든요. 기둥 이야기인 오사나이의 유괴 이야기가 너무 황당하고 스케일이 커서 도저히 일상계라고 보기는 어려우며 두어편을 제외한 다른 이야기들, 프롤로그나 유괴사건 관련 이야기는 별다른 트릭조차 등장하지 않아 추리물로 보기도 어렵습니다. 전채만 푸짐하고 메인 요리는 형편없는 코스 요리를 먹은 느낌이랄까요? 차라리 청춘 모험물이라고 포장했더라면 더 나았을 것 같아요.

그나마 읽을만 했던 것은 첫 번째 사건 - 샬로트 게임 과 두 번째 사건 - 알쏭달쏭 수수께끼의 메모 정도였습니다. 이 두 단편만 그런대로 추리물의 형식을 갖추고 일상 속 사소한 사건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죠. 샬로트 게임의 경우 지나칠 정도로 사소한 이야기라 어떻게 보면 좀 황당하기도 하지만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내용도 별로였지만 아무래도 제가 읽기에는 너무 어린 작품이었다고 생각되네요. 앞으로 구입하게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혹 궁금하시다면 전작만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덧붙이자면 유치한 제목과 창피한 수준의 표지 일러스트 탓에 더 구입하기가 싫어집니다....

2020/02/27

더 이퀄라이저 2 (2018) - 안톤 후쿠아 : 별점 2.5점

지난 주말, 코로나 바이러스로 도저히 어디 갈 수가 없어서 넷플릭스로 감상한 영화입니다. 예전에 감상했던 1편이 괜찮았기에 2편도 조금은 늦었지만 찾아보게 되었네요.

1편에서의 사건 때문인지 로버트 맥콜은 더 이상 홈센터에서 일하지 않고 택시 운전사로 일하는데, 단골 서점 주인의 딸을 구하기 위해 터키 악당들을 물리치고, 마약에 취해 성폭행당한 여성의 복수를 위해 파티 주관자들을 응징하고, 동네 마약 판매상들로부터 이웃 청소년 마일즈를 구해낸다는 초반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은 세상의 선과 악을 균등하게 만드는 심판자 "더 이퀄라이져"스럽습니다. 성폭행 파티 참석자들을 응징하고 경찰을 부르면 맥콜이 범인이라는게 쉽게 드러날거라는 문제를 너무 대충 넘기지 않았나 싶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액션도 볼만하고 이웃간 정도 느껴져서 마음에 들었어요.

그러나 영화의 핵심인, 과거 정보기관에서 일할 때 친구의 복수를 위해 살인 청부업자가 된 옛 팀원들 모두를 죽이는 복수극은 별로였습니다. 일단 너무 뻔한 설정이에요. 과거 잘 나가던 영웅이 은퇴한 뒤, 복수나 다른 모종의 임무를 위해 악을 처단한다는 이야기에 불과하니까요. 오히려 로버트 맥콜의 과거를 제대로 밝히지도 않고, 복수를 위한 수사의 치밀함도 부족해서 유사한 복수극보다도 완성도는 떨어집니다. 범인들이 엘리베이터 버튼을 먼저 눌렀다는 정보를 CCTV를 통해 밝혀내는 정도만이 조금 그럴싸 했을 뿐이니까요. 게다가 정작 그 범인들은 사전에 모두 정리되어 버리고요.
맥콜이 진짜 흑막 데이브의 정체를 알아내는건 자신을 습격한 킬러의 휴대폰을 통해서라는 전개는 개연성, 설득력 모두 떨어지는 작위적인 이야기에 불과했어요. 애초에 이럴거라면 뭐하러 킬러를 고용합니까? 자기 정체를 알기 전에 초대해서 몰래 죽이면 되지.... 

또 이 영화의 매력은 평범한 이웃 노인이자 택시 운전사인 로버트 맥콜이 알고보니 악을 모조리 응징해 버리는 응징자라는 것인데, 이 복수극은 로버트 맥콜의 캐릭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복수를 실행할 때의 로버트 맥콜은 인간 흉기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전의 동료들이자, 지금은 살인 청부업을 하는 데이브와 팀원들의 최후도 허무합니다. 4명이나 되는 젊은 살인 전문가들이 팀을 짜서 움직이지만 60이 넘은 할아버지에게 반항도 못하고 나가떨어지는걸 보면 한심하기 그지 없어요. 마일즈를 인질로 잡았음에도 잘 써먹지 못하고, 오히려 태풍이라는 자연재해 때문에 궁지에 몰리는 데이브를 보면 과연 이놈이 프로가 맞나 싶은 생각마저 듭니다. 액션도 여전히 화려하고 멋지긴 하지만 전편에서 눈에 띄었던 근접 격투 장면이라던가, 시작 전 시계를 맞추고 특정 동선에 따라 움직이는 등의 특징이 거의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 역시 매력 포인트였는데 말이죠.

물론 이 복수극 와중에서 건질만한 장면이 없는건 아닙니다. 맥콜의 집에 페인트를 칠해주기 위해 방문한 마일즈가 습격한 데이브와 킬러를 피해 비밀 장소에 숨는 장면은 긴장감이 정말로 압도적입니다. 간만에 쫄깃하게 보았네요.
또 캐릭터의 매력은 무뎌졌지만 맥콜의 카리스마만큼은 여전합니다. 마일즈가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자신의 집 안을 CCTV 모니터링으로 확인한 뒤 데이브에게 전화를 걸어 "오랫동안 귀가하지 않을 예정이니 화분에 물 좀 줘라"고 말하는 장면, 그리고 데이브와 옛 팀원을 만난 자리에서 "너희들 모두를 죽일거다. 내 친구는 건드리지 말았어야지. 한 번 밖에 죽일 수 없는게 유감이다"라고 말하며 데이브 아내를 도와주는 척 하며 유유히 그 자리를 빠져나가는 장면은 정말 멋져요. 절대자, 최강자이자 고수의 풍모가 물씬 넘쳐납니다.

그러나 여러모로 전 편보다는 못했기에 별점은 2.5점입니다. 흥행 성적을 보아도 3편이 나올 것 같지는 않네요. 동네 소시민의 "더 이퀄라이져" 스러운 이야기들은 마음에 들었던 만큼, 이런 류의 에피소드들로 구성된 TV 시리즈로 나오면 좋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2004/11/09

병속의 미녀 - 정태원 엮음 : 별점 1.5점

병속의 미녀 - 4점 정원태/이성

다시 접한 정태원씨가 엮은 단편 앤솔러지. 헌책방에서 몇권 구입한 시리즈 중 마지막입니다. 목차는
  • 존 콜리어: 병속의 미녀 / 무서운 교배 / 잠자는 미녀
  • 클라이브 바커 : 수의의 고백 / 섹스와 죽음과 별빛 / 재클린 에스 / 마돈나
  • 아토다 다카시 : 여난 / 이상한 벌레
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부제가 "미스터리 에로티카"고, 책 소개도 에로틱한 미스터리 단편을 모아놓았다고 되어 있는데 선정 기준이 의심됩니다. 존 콜리어의 작품들은 그닥 에로틱하지도 않고 미스터리도 아니었고, 클라이브 바커는 도저히 좋아할 수 없는 취향의 작품만 실려 있습니다. 그나마 아토다 다카시 작품들이 비교적 괜찮지만 너무 짧은, 그야말로 꽁트 길이밖에 안되는 소품이고요. 한 마디로 전체적으로 균형이 맞지 않아요. 무언가 좀 부족하고 모호하달까요? 여튼 제 판단으로는 절대로(!) 미스터리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 클라이브 바커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마음에 들었겠지만 저에게는 많이 아쉬운 단편집이었습니다. 그나마 "잠자는 미녀"와 "이상한 벌레"는 독특한 반전과 결말이 인상적인 작품으로 비교적 추천할만 하지만 나머지 작품은 별로 언급할 필요를 못 느끼겠네요.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병속의 미녀"
지니가 들어있다는 마법의 병을 산 남자가 지니를 이용하여 온갖 향락을 즐기다가 병에 자신이 갇히게 된다는 이야기. 뻔한 동화의 뻔한 패러디죠...
 
"무서운 교배"
농부가 시체를 묻은 밭에서 기괴한 호박을 캐내는 이야기. 약간 섬찟하긴 한데, 무섭지도 않고 그냥 기묘하기만 했습니다.

"잠자는 미녀"
한 부자가 서커스에서 우연히 만난, 몇년째 잠을 자는 여인이라는 존재에 마음을 빼앗겨 자신의 거의 전 재산을 동원하여 그녀를 소유하게 됩니다. 그리고 갖은 방법을 동원하여 잠에서 결국 깨어나게 만들고요. 그러나 그녀가 깨어난 직후 바로 실망한다는 내용입니다.
외모 지상주의의 현대 사회에 비판을 가하는 듯한 탄탄한 줄거리와 이색적인 반전이 마음에 듭니다.

"수의의 고백"
포르노 사업가의 속임수에 빠져 가족과 생활을 잃은 회계사가 복수를 꾀하다가 살해된 직후, 자신의 수의에 빙의하여 마지막 복수를 완성한다는 내용입니다. 클라이브 바커 특유의 디테일한 묘사는 빛을 발하지만 얄팍한 줄거리와 허무한 결말로 그냥저냥한 작품이 되어버렸습니다.

"섹스와 죽음과 별빛"
클라이브 바커의 다른 단편집 "피의 책"에서 이미 읽은 작품입니다. 연기에 대한 정열을 불태우는 일종의 좀비물입니다. 평작수준이라 보여집니다.

"재클린 에스"
이 단편집에서 가장 특이한 작품입니다. 섹스에 대한 치밀하고도 기괴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기이한 초능력을 가진 마녀와 같은 여인 제클린 에스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지나치게 잔인하고도 엽기적인, 변태적인 상상력의 산물이라고 밖에 보이지는 않지만 최소한 그 상상력에는 경의를 표합니다. 하지만 제 취향에는 전혀 맞지 않더군요.

"마돈나"
위의 작품만큼은 못하지만, 마찬가지로 특이했습니다. 클라이브 바커의 "한밤의 지하철"이 연상되는 "초자연적인 절대자"와 "운명에 휩쓸린 평범한 사람"의 관계를 어떻게 보면 종교적으로, 하지만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뭐 이것도 그닥 제 취향이 아니었습니다.

"여난"
평생 여자에게 눌려살던 한 소시민이 자살 직전에 군중들의 이목을 끌고 잠시 다른 세상을 꿈꾸지만 군중들은 바로 미인 여성 자살자에게 이목을 돌리게 된다는 이야기. 뭔가 공감이 가는 내용이더군요. 짧지만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상한 벌레"
20페이지도 안되는 꽁트입니다. 플라스틱을 갉아먹는 벌레를 발견한 사나이의 이야기입니다. 짧지만 성형수술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는 반전까지 괜찮은 완벽한(!) 작품입니다. 역시 단편의 제왕 아토다 다카시다운 면모를 보인달까요?

2020/03/22

희망장 - 미야베 미유키 / 김소연 : 별점 3.5점

희망장 - 8점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북스피어

미야베 미유키의 시리즈 탐정 중 하나인 스기무라 사부로가 등장하는 단편집입니다.

미야베 미유키는 유명세에 비하면 제가 많이 읽은 작가는 아닙니다. "화차"는 제 올타임 베스트 10에 언제나 꼽을 수 있는 걸작이고, 다른 작품들도 대체로 평균 이상이지만 이상하게 손이 잘 가지는 않더라고요. 가장 큰 이유는 500페이지는 훌쩍 넘기는 대장편이 많은 탓입니다. 두께만 봐도 먼저 질리는 느낌이거든요. 에도 시대물은 재미있긴 했지만 별로 취향이 아니었고요.
이 책 역시 거의 500페이지에 이르는 두께를 자랑합니다. 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로 외부 활동이 극히 적어진 요즈음, 이런 책이 집에서 진득하게 읽기에는 오히려 좋겠다 싶어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작품에 대한 아무런 사전 정보도 없이 시작했는데, 너무 재미있고 괜찮아서 깜짝 놀랐습니다. 재미의 핵심 요소는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탐정과 일반인의 경계에 묘하게 걸쳐있으며, 추리력과 더불어 인간 그 자체에 대한 깊은 관찰력을 선보이는 주인공 스기무라 사부로입니다. 스기무라 사부로는 "탐정 사전"을 통해 존재를 알게된 뒤, 한 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만 해 왔었는데 이렇게 만나게 되니 더욱 감개무량하네요. 평상시 흠모하던 스타와 우연히 동석하여 식사를 했는데, 스타가 밥값까지 내 준 격이랄까요. 두 번째는 평균 이상되는 추리물로서의 완성도고요.

단점이 없지는 않지만, 평균 이상의 좋은 작품들이었습니다. 전부 평균한 제 별점은 3.5점입니다. 스기무라 사부로 시리즈의 전작을 꼭 찾아서 읽어봐야겠네요.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은 참고 부탁드립니다.

"성역"

이혼한 독신남으로 사립 탐정업과 조사로 먹고 사는 38살의 스기무라 사부로에게 기념할 만한 첫 손님이 찾아왔다. 이웃 맨션 파스텔 다케나카에 사는 독신 여성 모리타였다. 그녀의 의뢰 내용은 유령의 정체를 밝혀달라는 것으로, 그녀의 아래층에 살다가 사망한 할머니 미쿠모 가쓰에를 꼭 닮은 사람을 보았는데 가난에 허덕이던 미쿠모 할머니와는 다르게 그녀는 유복해 보였다고 했다. 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한 조사의 의뢰비는 착수금 5천엔과, 2년 동안의 쓰레기장 청소 당번 대행이었다.

조사 시작과 거의 동시에, 스기무라는 곧 죽을거라는 전화만을 남기고 사라진 미쿠모 할머니가 죽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됩니다. 남겨진 몇 가지 단서를 통해 이루어진 죽지 않은 그녀가 지금 유복해보이는건 뭔가 인생 역전의 계기가 있었다고 추리하고, 옛 주소지에서 연을 끊다시피한 딸 역시 행방불명이라는걸 알아내 둘 사이에 뭔가 연결 고리가 있다는걸 알아내지요.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복권 당첨에 당첨된 할머니가, 딸에게 다시 전화를 해서 둘이 새로운 삶을 찾아 과거를 모두 버리고 떠났다는 결말까지 차분히 이어집니다.
이를 위한 중간중간의 디테일들도 꼼꼼합니다. 38살 밖에 되지 않았지만(그런데 작중 배경인 2010년에 38살이면, 저와 동갑이네요. 호감도가 더욱 증가했습니다!), 사람으로서의 배려를 소중히 여기는 스기무라 사부로도 무척이나 호감가게 그려지고요.

조금 특이했던건, 불쌍한 할머니를 염려하는 동네 주민의 의뢰와 조사 중 자상한 동네 주민들의 도움을 받는 따뜻한 분위기와 딸인 지독한 이기주의자 미쿠모 사나에의 표독스러움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부분입니다. 심지어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사이비 종교집단으로 보였던 스타차일드 멤버들마저도 알고보니 착하고 불쌍한 사람들이라는게 밝혀집니다. 이들에 비하면 사나에는 그야말로 자기만 아는 압도적인 악역이에요. 문제는 사나에같은 인물이 우리 주위에서 더욱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이겠죠. 할머니의 무사는 축하할 일이지만 이런 딸과 함께 산다면, 결말은 안 봐도 뻔할 거라는게 무섭게 다가옵니다.

스타차일드 멤버인 벨과 사나에의 악연, 그로부터 비롯된 가노쿠라 풍아당과의 관계는 사족이었다 생각되지만, 이 정도면 아주 좋은 작품입니다. 제 별점은 3.5점입니다.

"희망장"

세상을 떠난 무토 간지는 죽기 전, 양로원 관계자와 아들에게 과거 사람을 죽인 적이 있다고 고백했고 아들 아이자와는 스기무라에게 이 사실의 진위여부를 밝혀줄 것을 부탁했다. 주변인들을 통해 밝혀진건, 간지 씨가 쇼와 50년 8월, 젊은 여성이 습격당해 살해된 사건에 대해 이야기했다는 것이었다.

아이자와의 말에 따르면, 무토 간지는 데릴사위로 들어간 아이자와 가문으로부터 절연당한 뒤 어렵게 살아왔습니다. 어머니의 외도 탓으로, 그가 특정 여성에게 발끈하여 살해했을 수도 있다는건 충분히 가능했을거라고 설명되지요. 하지만 스기무라의 조사로, 그가 '사람을 죽였다'고 직접 표현한 적은 없다는게 곧바로 밝혀집니다. 그렇다면 진상은 무엇이었을까요?

이를 밝혀내기 위해 성실하게 발품을 팔아 단서를 찾는 스기무라 사부로의 조사 활동은 정겹습니다. 오래전, 35년 전 거주했던 흔적을 찾아 거리를 헤메는데, 나름의 노하우가 눈에 띕니다. 음식점, 이발소, 미용실, 세탁소나 술가게 등 배달도 하는 업종의 가게 등을 돌아다니지만, 바나 스낵에는 기대지 않는다는 겁니다. 바둑 모임이나 장기 살롱은 있으면 좋은 정보원이지만 마작이나 파친코는 그 반대이고, 편의점은 별로 도움이 안되지만 학원은 도움이 된다던가, 파출소에는 들르지 말아야 한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류의 조사를 한다면 참고할 만한 정보네요.

하여튼, 이러한 스기무라 사부로의 조사로 35년 전 강간 살해 사건의 범인과 무토 간지가 같은 아파트 '희망장'에 살았다는게 밝혀집니다. 처음 방문했던 술가게에서 정보를 얻었더라면 이후의 조사는 별로 필요가 없었지만, 이런 시행착오가 오히려 현실감을 더해줍니다. 또 이 과정에서 탐정은 아무리 일상계라도 비정할 수 밖에 없다는걸 전해주는 부분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좋은 사람들에게, 차가운 질문을 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이유인데, 굉장히 와 닿더라고요.

그리고 이어지는 스기무라의 추리에 따른 가설도 그럴듯합니다. 35년 전 사건의 진범이 무토 간지였거나, 진범 가야노 지로의 아주 친한 지인이었을거다라는 가설이지요. 당연히 35년전이라고 해도, 경찰을 우습게 보면 안되니 두 번째 가설이 정답이고요.
그렇다면 왜 무토 간지가 죽기 전 양로원에서 이상한 말을 했느냐는 의문이 생기는데, 이는 스기무라가 양로원 청소 스태프가 청소할 때 스포츠 타월을 접어 바닥에 까는 걸 보고 알아채게 됩니다. 무토 간지는 살인범을 본 적이 있어서, 그가 어떤 변화를 보이는지 알았던 겁니다. 그래서 양로원 청소 스태프 하자키가 살인을 저질렀다는걸 알고 그걸 은밀히 드러내려 했다는게 진상입니다.
최근에 일어났던 성폭행 미수 살인사건과, 35년전인 쇼와 50년 8월 사건 두가지가 마지막에 맞물리는 전개가 정말 멋집니다. 일평생 고독하지만, 정직하고 한결같이 살아온 무토 간지의 매력도 빛을 발하고요.

하지만 욕심이 조금은 지나친 느낌입니다. 35년전 피해자 다나카 유미코의 동생을 이야기에 포함시킬 필요는 없었어요. "그녀는 원래부터 재였다. 사람의 모습을 한 재다."와 같은 멋드러진 묘사에 비하면 등장해서 하는게 없고, 묘사도 담담하게 전개되는 이야기에 담아내기에는 지나친 편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4.5점입니다! 지금도 좋은 작품이지만 불필요한 요소를 들어내는게 더 좋았을겁니다. 아니면 다나카 유미코 사건도 더 깊숙히 파고들어 더 긴 호흡의 이야기로 전개하던가요. 그랬다면 별점 5점도 충분했을텐데, 약간 아쉽습니다.

"모래 남자"

스기무라의 이혼 후 야마나시에서의 삶, 가키가라 스바루를 만나 조사원으로 일하게 된 계기 등이 차분히 펼쳐지는 작품입니다. 호토 가게 '이오리'의 주인 마키타 히로키가 이노우에 다카미와 불륜 끝에 사랑의 도피를 한 사건의 조사와 추리와 함께 진행되지요.

남편 마키타 히로키는 과거 문제아로 아버지에게 절연당했다, 지금 그의 사진은 남아있는게 없다, 사진을 확인조차 못했다는 이야기에서 당연히 과거 문제아 가가와 히로키는 지금의 마키타 히로키와는 다른 인물이라는건 쉽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다카미가 문제아 시절 과거를 노리코와의 친분 덕분에 알게 되었고, 돈이 궁해진 지금에 와서 그 정보를 협박의 도구로 썼으리라는 추리도 역시나 상상력 범주 안에 있고요.
하지만 이를 마키타 집에서 풍겨온 염소 냄새, 집 근처에 묘지가 있다는 상황 등과 연결하여 풀어나가는 전개는 오싹합니다. 협박을 '공포'의 문제로 풀어나가는 감각, 섬세한 심리 묘사를 통해 피해자들의 공포, 후회를 드러내는 솜씨도 실로 발군입니다.

하지만 이노우에 다카미가 살아있었으며, 이 모든건 히로키의 부탁으로 벌인 연극이었다는 진상 이후부터는 시시해집니다. 히로키가 지나치게 착한 탓에 벌어진 일이라서 마음이 무겁기도 했고요. 한 번 희생양은 영원히 그 속박을 벗어날 수 없다는 이야기로 느껴졌거든요.
같은 이유로 진짜 히로키로부터 위협받던 가짜가 진짜를 죽였을지도 모른다는건 의외이기는 했지만 와 닿는 이야기는 아니었고, 모든걸 알게 된 다카미가 어머니와 함께 사과했다는 후일담은, 결국 히로키의 연극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결말이라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다카미의 철없는 악의가 결국 모든 걸 망쳐버렸다는 뜻이니까요. 게다가 본인은 잘못을 느끼지 못하며, 잘못을 깨닫고도 결국 민폐만 끼치고 말았다는 점에서 아예 사악함을 뿜어냈던 "성역"의 사나에보다도 더 질이 나빠요.

결론내리자면, 사건보다는 스기무라의 과거 이야기가 더 재미있었던 소품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도플갱어"

후쿠시마 사태를 일으킨 도호쿠 대지진을 소재로 한 작품. 대지진과 후쿠시마 사태가 일본인에게 얼마나 공포였는지가 작품에서 은근하게 표현되는게 이채로왔습니다. 스기무라 사부로의 입을 통해 '일본은 키를 잃고 폭주할 것이다, 우리는 망망대해를 절망 속에서 떠돌 것이다'라는 비관적인 예측이 대표적이지요. 소시민과 상대적인 약자들의 삶에 관심을 가지는 미야베 미유키의 특성이 잘 드러난 말이기도 하고요.

그러나 핵심 사건인 유타카 실종 사건의 추리는 그다지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지진으로 실종된 줄 알았지만 사실은 살해되었다는건 좀 뻔한 이야기죠. "브라운 신부"에서도 시체를 숨기려면 전쟁을 일으키라는 말과 일맥상통합니다.
그래도 동기가 그의 결혼 결심이었다는건 꽤 괜찮은 아이디어였어요. 결혼을 결심하면 프로포즈를 해야 하고, 프로포즈를 위해 고가의 반지를 구입했으며 이를 범인이 유타카를 살해하고 빼돌렸다는 진상은 충분히 합리적이니까요.

그러나 전반적으로 작위적인 전개가 눈에 거슬립니다. 애초에 아스나가 스기무라에게 실종 조사를 의뢰한 것 부터가 작위적이에요. 스기무라가 그 의뢰를 진지하게 받아들여 조사를 한 것도 석연치는 않고요. 작 중 묘사되듯 '자원 봉사'로 할 일은 아니잖아요. 이런 실종은 전문 단체에 의뢰하는게 맞는 상황이니까요.
마쓰나가가 유타카를 살해한 직후, 대형 재해가 때마침 벌어진 것 역시 작위적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차라리 재해가 일어난 후, 유타카가 프로포즈를 결심하고 , 그 탓에 마쓰나가와 트러블이 일어났다고 이야기를 끌어나가는게 더 나았을 겁니다. 또 사부로가 결정적인 단서를 잡게 된 계기인 아스나를 괴롭히는 나쁜 친구들이 사건에 엮인 과정도 설득력이 약합니다. 단서를 끄집어 내기 위해, 이야기를 전개시키기 위한 억지스러운 느낌이 강했어요. 이 친구들이 등장하느니, 마쓰나가가 아스나에게 직접 연락하여 사귀자고 한 뒤, 그 징표로 비싼 반지를 선물한다는 식으로 풀어나갔더라면 더 어땠을까 싶네요.

명백한 살인 사건을 스기무라 사부로가 해결하는 정통 추리물로, 수록작 중에서는 가장 본격물에 가까운 작품이지만 그만큼 본격물이 현대 사회에 얼마나 어울리지 않는지를 깨닫게 해 주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심지어 경찰도 아니고, 정식 탐정도 아닌 스기무라 사부로 수준에서는 더욱 한계가 느껴질 수 밖에 없지요. 수록작 중에서는 가장 처집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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