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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05

검은 황무지 - S.A. 코스비 / 윤미선 : 별점 3점

검은 황무지 - 6점
S. A. 코스비 지음, 윤미선 옮김/네버모어

<<아래 리뷰에는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보러가드는 어머니의 병원비와 딸의 대학 등록금 등 급전이 필요해서 로니의 보석상 다이아몬드 강탈에 참여했다. 로니와 콴의 실수로 엉망진창이 된 와중에도 보러가드의 빼어난 운전실력 덕분에 다이아몬드는 훔쳐냈다. 그러나 다이아몬드는 뒷세계 거물 레이지의 것이었고, 레이지는 강도단을 붙잡아서 경쟁자 셰이드의 플래티넘 코일을 훔쳐오라고 협박했다. 보러가드는 혼신의 힘을 다해 코일을 성공적으로 탈취해 왔지만, 로니가 배신해서 코일을 빼돌렸고 보러가드의 사촌 켈빈마저 살해했다.
배신을 알게 된 레이지는 보러가드의 가족을 납치하려고 했고, 이에 보러가드는 로니와 레지 형제를 죽이고 코일을 되찾은 뒤, 가족을 지키고 복수를 하기 위해서 레이지와 마지막 결전을 준비하는데....


"타임지에서 선정한 역대 최고의 추리, 스릴러 소설 100선"을 통해 읽게 된 작품. 두뇌파 악당이 주인공이며, 그가 세운 계획에 따라 벌어지는 여러가지 범죄들이 이어집니다. 조금 어려운 말로는 피카레스크 하이스트 스릴러, 쉬운 말로는 악당 범죄 활극이지요. 한마디로 말하자면 흑인 버젼의 "악당 파커" 시리즈입니다.

하지만 전형적인 피카레스크 물과는 큰 차이점이 있습니다. 주인공 보러가드는 온갖 범죄를 저지르고 살인도 서슴치 않는 악당이기는한데, 그가 범죄를 저지르는건 모두 가족 때문이며 마지막에는 가족을 위해 스스로 사라질 결심까지 한다는 점입니다. 가족을 다치게 하지 않기 위해서요. 물론 마블 세계관의 킹핀처럼 '내 가족에게는 따뜻하지만 반대하는 자들에게는 잔인한' 악당도 있지만 '보러가드'는 삶에 찌든 소시민으로 가족을 위해 싸우는 '아버지'의 모습을 강하게 보여줍니다. 탁월한 묘사는 이런 모습을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해 주고요. 반면 '버그'로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악당으로 범죄 계획을 세우고, 자신을 괴롭힌 악당들에게 하는 복수는 처절합니다. 이렇게 악당 '버그'와 좋은 아버지 '보러가드'라는 이중적인 면모를  이상하지 않게 잘 그려낸 솜씨가 탁월했니다.

범죄물로서도 평균 이상입니다. 일단 스릴러로서의 전개가 발군입니다. 보러가드에게 끊임없이 위기가 닥치는데 정말 읽는 내내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습니다. 이게 연재물이었다면 다음 호를 기다리기 힘들었을 것 같을 정도였어요.
'하이스트' 물로서도 충분한 재미를 가져다 줍니다. 다이아몬드 강도 사건, 코일 탈취 사건, 그리고 마지막 레이지와의 결전이라는 세 개의 큰 작전 모두 계획부터 성공하기까지의 과정이 세밀하게 설명되는 덕분입니다. 모두 보러가드의 운전 실력이 핵심이라는 독특함도 좋았습니다. 다이아몬드 강도 사건에서 고가도로로 도주한 뒤 뛰어내린다던가, 코일을 탈취할 때 코일이 실렸던 트럭을 더 큰 트럭 안으로 몰아 넣어 숨기는 식이거든요. 마지막에는 레이지를 끝장내기 위해 애차 더스터를 몰고 카 체이스를 벌이고요.
보러가드의 정비 기술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다이아몬드 강도 사건 때에는 이산화질소식 촉매 시스템을 엔진에 장착해서 빠른 속도를 냈으며, 강철판을 용접하여 추락 시 충격을 흡수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코일 탈취 때에는 달리면서 밴이 트럭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트럭 꽁무니에서 경사로가 나오도록 개조했고요. 레이지에게 준 벤에는 원격 조종 폭탄을 설치하여 폭발시켰습니다. 이런 요소들은 범행 과정에서 반전처럼 등장해서 재미를 더해주며, 설명도 충분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자동차에 대한 상세한 설명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등장하는 거의 모든 차는 차종에 대해 무조건 언급해줄 정도인데, 작가가 자동차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중에서도 아버지의 유물로 또 다른 주인공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더스터'는 무슨 차인지 궁금해서 좀 찾아보았는데, "Plymouth Duster"로 1970년대 생산된 자동차더군요. 전형적인 '아메리칸 머슬' 입니다. 보러가드, 아니 버그와 참 잘 어울리네요. 가족에 위기가 닥쳐도 포기하지 못할 정도로 애정을 보이지만, 복수를 끝낸 뒤 폐차시킨다는 결말까지도 뭔가 미국적이고 마초적이었고요.

하지만 걸작 하이스트 소설로 보기에는 작전은 평이한 편입니다. 신기에 가까운 운전 실력이 알파이자 오메가로 그렇게 치밀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대단한 세력을 지닌 듯한 악당 레이지의 조직이 보러가드 한 명에 의해 괴멸되는 결말도 별로였습니다. 여기에서야 말로 수와 화력의 열세를 뒤집을 치밀한 작전이 필요했는데, 단지 '폭탄'으로 모든걸 해결한다는건 지나치게 시시했거든요. 악당 조직이 이 때 한 곳에 모두 모인다는 설정도 억지스럽고요. 최소한 보스 레이지가 직접 나서서 트럭을 찾으러 갈 이유는 없잖아요? 전형적인 헐리우드 액션 스릴러 스타일의 결말이었습니다.

그래도 단점은 사소합니다. 범죄 소설로서의 재미만으로도 별점 3점은 충분합니다.
덧붙이자면, 보러가드가 흑인이지만 인종 차별에 관련된 내용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 것도 좋았습니다. 어떤 가치관, 사상은 전혀 담겨있지 않은 순수한 오락물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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