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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2/25

해적의 역사 - 앵거스 컨스텀 / 이종인 : 별점 3점

해적의 역사 - 6점
앵거스 컨스텀 지음, 이종인 옮김/가람기획

역사서적을 많이 내놓는 “가람기획”에서 발간된 역사명저 시리즈의 열한번째 책.

제목 그대로 인류사의 해적들의 역사를 주로 서양 중심으로 - 저자가 영국인이기에 당연한 것이겠지만 - 서술한 역사서적입니다. 로마시대에서 부터 중세의 바이킹과 바르바리 해적, 오스만 제국의 울루지 알리라는 해적출신 황제와 몰타 기사단의 해적질, 이후의 스페인과 영국의 재해권을 놓은 싸움의 주역인 영국의 프랜시스 드레이크 경과 존 호킨스 경, 스페인의 페드로 데 메넨데스 데 아빌레스 같은 인물들과 이른바 “해적의 황금시대” 시대의 해적들, 그리고 이후의 인도양과 미국의 마지막 해적들, 중국의 해적들까지 고금의 해적들의 역사를 망라하고 있죠.
관심이 갔던 것은 유명한 키드 선장과 블랙 비어드 같은 해적의 황금시대 인물들에 대한 정보인데 재미있고 놀라운 사실들이 많더군요. 키드 선장은 사실은 단 한번의 해적질 항해 후 체포되어 처형된 것이라던가, 신사이고 부유한 농장주였지만 모험을 동경해서 해적이 된 스티드 보넷이라는 사나이의 이야기라던가, 노획물로 남은 여생을 편하게 보냈던 헨리 에버리 같은 성공한 해적들의 이야기까지 흥미진진하고 다채로운 내용이 가득합니다. 인도의 해적왕조 앙그리아 가문이나 중국 해적 정성공과 정을, 삽응차이의 이야기도 재미있었어요.
이러한 이야기 외에도 해적들의 기지였던 여러 섬이나 당시 기준으로는 평등함의 최고봉이었던 해적 규약, 그리고 헐리우드 영화 등으로 미화된 해적 행위의 낭만적 추억들과 더불어 해적선들의 모습이라던가 당시의 관련 삽화 등 도판까지 충실하기에 그야말로 해적이라는 집단에 대해서는 교과서와 같은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별점은 3점. 역사 서적임에도 불구하고 쭉쭉 읽어나갈 수 있는 재미를 갖추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가람 기획의 다른 역사명저 시리즈도 기대하게 만드네요. 다만 “이종인”씨라는 상당한 수준의 번역가가 번역했는데도 불구하고 번역이 조금 매끄럽지 못하다는 점, 그리고 책의 완성도에 비하면 터무니없어 보이는 15,000원이라는 가격 때문에 감점합니다.

2014/10/06

세계 7대 불가사의 - 피터 A. 클레이턴 외 / 김훈 : 별점 2점

세계 7대 불가사의 - 4점
피터 A. 클레이턴 외 지음, 김훈 옮김/가람기획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알려진 건축물들에 대해 현재까지 밝혀진 사실을 바탕으로, 진위 여부 및 상세한 설명을 해 주는 미시사 서적입니다.

제목만으로도 호기심을 불러일으키지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별로였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책의 완성도가 현저하게 낮은 탓입니다. 번역의 문제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고 발음도 부정확하며(예: 쿠푸왕이라고 표기하고 배는 "케오프스(쿠푸)의 배"라고 표기), 여러 가지 단위를 현재의 단위로 변환하지 않은 것도 불친절하게 느껴졌습니다. 도판들의 인쇄 상태도 영 아니고요. 가람기획의 책들은 대체로 내용에 비해 완성도가 많이 아쉬운 경우가 많은데, 그 중에서도 특히나 심했어요.
내용도 익히 알려진 세계의 7대 불가사의에 대한 학술적인 설명이 전부라, 생각만큼 흥미롭지 않았고요.

그래도 각 항목별로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소개해 보자면,

"피라미드"
피라미드 근처에서 완벽한 형태의 배(케오프스의 배)가 출토된 것은 처음 알았습니다. 무려 5,000여 년 전의 배가 원형 그대로 발굴되다니! 이집트는 항상 가보고 싶었던 곳인데, 이런 정보까지 접하니 더 가고 싶어지네요.

"바빌론의 공중정원"
후대 역사가들에 의해 기록되어 있기는 하나, 실제 바빌론 유적에서는 관련된 유물이 하나도 발견되지 않는다고 하네요. 아직도 그런지 조금 궁금해집니다.

"제우스상"
남겨진 기록들을 통해 실제 제우스상이 어떤 모습이었을지를 상세하게 설명해주는게 좋았습니다. 높이 13m 정도의 거대한 조각상은 현대에도 볼 만한 것들이 많지만, 이 신상은 예술적 성취를 이룬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차별화된다고 할 수 있겠지요. 축조 방식이 나무로 틀을 만든 후 작은 조각들을 이어붙인 것이라는 설명은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고요. 이후 신상은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진 뒤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기록이 남아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책에 쓰인 대로 황폐해지더라도 그냥 올림피아에 남아 있었더라면 뼈대 정도는 전해져 현대인들이 그 위용에 감탄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습니다.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신전"
상당히 방대한 분량이지만, 실제 구조에 대한 설명이 장황할 뿐 핵심적인 내용은 부족했습니다. 기둥의 수가 너무 많아 '기둥숲'이라 불릴 정도로 대단한 구조물이었다는 건 알겠는데, 실물이 사라져 버렸으니...

"할리카르나소스의 마우솔레움"
예전에 읽었던 책에서도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유물인데, 이번에도 역시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십자군들이 성벽을 만들기 위해 훼손하고 파괴한 것도 많지만, 최초 붕괴 당시 토사에 묻혀 운 좋게 살아남은 거대 조각들(특히 지붕의 전차상 일부)의 위용은 대단하더군요. 그것이 발견된 위치를 토대로 높이를 추산하고, 남은 유물들과 사료를 통해 재현해보는 고고학적 과정은 마치 추리물을 보는 듯한 재미도 있었고요. 그런데 왜 이러한 유물들이 대영박물관에 있는 건지 당최 모르겠네요. "빼앗긴 문화재를 말하다"에서 언급된 우리 문화재도 떠오르는데, 원래 자리로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이 생깁니다.

"로도스의 거상"
이 거상이 세워진 과정을 알게 된 것이 큰 수확이었습니다. 알렉산더 사후 도시국가 로도스가 프톨레마이오스 편을 들었다가 적대 세력인 안티고노스에게 포위 공격을 받았지만, 이를 이겨낸 기념으로 세워졌다고 하네요. 공사비는 적이 남기고 간 공성 장비들을 팔아서 마련했다고 하니, 진정한 전승 기념비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익히 알려진, 두 다리를 벌리고 그 사이로 배가 지나간다는 형태는 허구이며, 하나의 통 형태에 가까웠을 것이라는 주장도 탄탄한 사료를 바탕으로 설득력 있게 전개되어 신뢰가 갔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파로스 등대"
상세한 사료가 많이 남겨진 유적이라는 점을 실감했습니다. 다른 항목들이 미터 단위로만 설명되어 있다면, 이 책은 센티미터 단위까지 세세하게 설명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조금 크다는 것 외에는 왜 이 건축물이 불가사의로 선정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습니다. 본문에 언급되었던 인근 바다에서 인양된 10m에 이르는 이시스 석조 조각상이 오히려 더 인상 깊었고, 그 자료를 더 찾아보고 싶어질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쓰고 나니 건진 내용도 제법 되네요. 허나 여러모로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2014/08/27

제2차세계대전의 에이스들 - 김진영 : 별점 2점

제2차세계대전의 에이스들 - 4점
김진영 지음/가람기획

"연합함대"로 접해보았던, 출판사 가람기획의 세계전사 시리즈 중 한 권입니다. 제목 그대로 제2차 세계대전 중 각국의 에이스들 - 독일 에이스 6명, 영국 에이스 6명, 미국 에이스 3명, 일본, 소련, 핀란드 각 1명 - 18명이 소개됩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저술되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절반 이상은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는 자료와 흡사합니다. 특히 독일군 에이스들 이야기에서 그런 경향이 두드러집니다. 에리히 하르트만이나 아돌프 갈란드, 아프리카의 별 한스 요하임 마르세유, 발터 노보트니 등은 다양한 관련 서적은 물론, 나무위키를 통해 더 자세한 정보를 접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분량도 한 편 씩 웹진에 소개될 정도의 분량에 불과해서 그다지 상세하지도 않고요. 전투 기술에 대한 묘사보다는 인간적인 고뇌와 같은 디테일이 살아 있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아쉽습니다.

그래도 워낙 많은 인물이 소개되는 덕분에 새롭게 알게 된 부분도 적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자면, 격추 대수가 200대를 넘었던 슈퍼 에이스 중 한 명이었던 헤르만 그라프는 독일 패망 후 소련에서 포로 생활을 하던 중 공산주의자가 되겠다고 하여 소련의 선전 활동에 이용되었고, 결국 귀국은 일찍 했지만 ‘배신자’라는 낙인을 극복하지 못한 채 용접공으로 여생을 보냈다고 합니다. 만화 "수리부엉이"에도 비슷한 캐릭터가 등장했었죠. (인터넷에 자세한 글이 있긴 한데, 이 책의 내용과 거의 동일하여 퍼온 것으로 보입니다.)

또 상대적으로 유명한 독일군 에이스들에 비해 영국과 미국의 에이스들은 아무래도 격추 대수가 독일군에 비하면 부족하고 인기도 그리 높지 않다 보니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이 책에서는 비슷한 비중으로 소개되고 있으며, 내용도 꽤 흥미로워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영국의 전투기 무장사 출신으로 비교적 많은 나이에 기량이 만개하여 28기의 일본기를 격추한 프랭크 캐리, 38기의 독일기를 격추하고 전후 영국군 부원수 자리에까지 올랐던 쟈니 존슨 등이 그러합니다. 에이스들의 전투 상황에 대한 상세한 증언도 아주 좋았습니다. "스핏파이어로 고도 4000미터에 도달한 뒤 슈퍼차저를 켜 속도를 올려 적기의 꽁무니를 따돌릴 수 있었다"는 식의 구체적인 장면 묘사처럼요.

이렇게 장점이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별점은 2점입니다. 절반 가량이 인터넷 등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정보라는 단점이 너무 크네요. 물론 이 책이 원전 중 하나일 수는 있겠지만, 독보적인 무언가가 있지는 않으며, 위인전으로 보기에도, 미시사 서적으로 보기에도, 전사로 보기에도 애매하다는 점도 감점 요인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 관심 가져볼 만하겠지만, 그렇지 않으시다면 굳이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2014/11/19

세계적인 과학수사 - 콜린 에번스 / 김옥진 : 별점 3점

세계적인 과학수사 - 6점
콜린 에번스 지음, 김옥진 옮김/가람기획

과학 수사, 법의학 관련 서적입니다. 건당 길어야 열페이지를 넘지 않도록 요약되어 있어서 전체 분량은 450페이지를 조금 넘는 정도네요. 크게 아래의 15개 항목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1. 프로파일링
  2. 시신의 신원확인
  3. 혈청학
  4. 사망시각
  5. 독극물학
  6. 탄도학
  7. 사망원인
  8. 문서감정
  9. DNA분석
  10. 폭발물과 화재
  11. 지문감식
  12. 법인류학
  13. 치의학
  14. 흔적증거
  15. 성문

"과학" 수사가 주제인 덕분에 가장 오래된 사건도 19세기 후반 사건입니다. 특정 사건으로 인하여 해당 기술이 유명해진 것들이 많기 때문에, 주로 20세기 초반까지의 사건들이 주요하게 다루어지고요. 20세기 후반 유명 범죄도 몇건 있기는 하지만, DNA 분석과 같은 신기술이거나 너무나도 유명해서 빼기 어려웠던 사건들에 한합니다. 주제로 삼은 15개 항목의 대부분은 이미 20세기 초반에 실제 사건을 통해 그 실효성이 검증된 것들이니 당연하겠지요.

익히 알고 있던 사건도 많지만, 관련하여 처음 알게 된 사실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사코와 반체티 사건은 일종의 인종차별, 정치적 탄압으로 이루어진 사건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 탄도학으로 범행에 사용된 총알이 사코의 총에서 발사된게 증명되었다는걸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이는 놀랍게도 사코가 범인이라는 뜻입니다.
린드버그 아들 유괴사건도 범인이 누명을 썼다고 생각해 왔었지만, 범행 현장에서 발견된 사다리와 용의자 하우푸트먼의 집에서 발견한 재료가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명백한 흔적 증거가 있다는 것도 처음 안 사실입니다. 모호한 부분도 없지는 않으나, 이 정도면 범행에 깊이 관여한 것은 분명하기에 유죄판결이 아주 잘못된 것은 아닌 듯 합니다.

20세기 초중반 범죄자들이 완전범죄를 노리고 벌였던 사건들도 인상적입니다. 독극물 검사를 빠져나가기 위해 동공을 일부러 확장시키기 위한 아트로핀을 투입했던 로버트 뷰캐넌 사건, 남편을 독살했는데 남편에게 가져다 주던 커피를 실수로 흘린 것 때문에 발목이 잡힌 에바 레이블런 사건 등이 대표적입니다. 아니벌 알모도바르 사건과 같은 조금 어설픈 알리바이 공작들도 몇 개 눈에 띄이고요. 시대를 막론하고 범죄자들의 생각은 다 비슷한 것 같네요.
또 팬암의 여승무원 헬레 크래프츠 살인사건은 시체가 발견되지 않았는데, 범행을 재구성할 때 유력한 용의자인 남편 리처드가 냉동고와 나무분쇄기를 구해 놓았었다는 점에서 영화 "파고"가 바로 떠올랐습니다. "나비성"이었나 "적색등"이었나.. 여튼 마츠모토 세이초의 작품 중 하나에서도 분쇄기로 시체를 갈아버리는 트릭이 등장했던 기억도 났고요. 여튼 수사관들이 나무분쇄기로 시체를 뿌린 서토닉 강을 샅샅이 뒤져 소량이지만(책에 따르면 인체의 1/1000 정도) 사체를 찾아내어 범인을 유죄로 만들 수 있었다니 다행일 뿐입니다.
그 외에도 작업복 한 벌 분석을 통해 범인의 모습을 거의 실제처럼 묘사해 낸 도트레몽 형제 사건, 침대에서 발견한 1cm 정도의 털 한가닥으로 범인이 밝혀진 낸시 티터턴 살인사건, 방문자를 대접한 형태로 봤을 때 아주 친한 사람은 아니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피해자의 옷과 범인의 옷에서 발견된 흔적 증거로 범인을 잡아낸 로저 페인 사건 이야기 등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러한 수록 사건들 중 최고를 꼽자면 프레더릭 스몰 사건입니다. 집에 큰 불을 질러 범죄 흔적을 지워버리려 했지만 방바닥이 먼저 타올라 아내의 시신이 침실에서 지하실로 떨어져 발목을 잡힌 사건인데, 이유는 범인 스몰의 인색함 때문입니다. 본인 스스로 싸구려 판자로 지하실 천정의 일부를 다시 만들었는데, 바로 그곳으로 굴러 떨어져 버린 것이거든요! 큰 범행을 앞둔 인간이 쪼잔하게, 인색하게 굴면 안되는 법입니다. 특히 살인에는 돈을 들여야죠. CMB 20권의 에피소드에서 처럼요.
남편 살해를 완벽하게 저질렀지만 의사가 사고가 아닌 폐기종으로 진단한 사망확인서 때문에 스스로 경찰에 전화를 걸어 사건 수사를 진행하게 만든 스텔라 니켈 사건도 비슷한데, 스텔라는 조금이나마 돈을 받은 시점에서 포기했었어야 합니다. 하긴 도박판에서 돈을 조금 딴 시점에서 일어난게 가장 힘들다고는 하니까 이해가 안되는 것은 아니지만요.

허나 단점도 분명합니다. 앞서 이야기했듯 너무 요약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개략적으로 훝어본 뒤, 정말 깊은 관심이 생기는 사건은 별도의 다른 책을 찾아보게 만드는 일종의 안내서와 같은 역할 정도에 그칩니다. "손과 낵" 사건이 궁금하다면 타블로이드 전쟁을 찾아보는 식으로요. 덧붙이자면 이전에도 언급했던 가람기획의 책 답게 번역이나 책의 만듬새는 약간 부족해 보입니다.

그래도 단점은 사소할 뿐, 풍성하고 재미도 있으면서도 자료적 가치도 높은 책이 도서정가제 실행을 앞둔 할인 열풍으로 50% 할인된 금액으로 판매되고 있으니 고맙기만 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가격을 생각하면 좋은 점수를 줄 수 밖에 없네요. 이런 류의 책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덧 1 : 그나마 잡힌 사건만 수록되어 있는데 용케 빠져나간 범죄자는 얼마나 많을까요?

2014/06/21

연합함대 - 남창훈, 박재석 : 별점 3점

연합함대 - 6점
남창훈.박재석 지음/가람기획

제목 그대로 일본 연합함대의 시작과 끝을 다룬 전쟁사 서적입니다. 청일전쟁, 러일전쟁을 통해 구축된 일본의 연합함대가 제2차 세계대전에서 몰락해가는 과정을 설명합니다.

장점이라면, 그동안의 관련 전쟁사 서적이 서양인이 쓴 탓에 외부인의 시각에서 일본 해군을 바라본 내용이 많았던 반면, 이 책은 일본 연합함대 그 자체를 굉장히 상세하게 들여다보았다는 점입니다. 덕분에 일본군의 당시 상황을 더 쉽게 알 수 있었으며, 각종 해전 설명 부분에서는 일본군과 미군의 피해 상황까지 자세하게 알려줍니다. 흡사 소설처럼 흥미롭게 이야기를 구성하여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게 해 준 점도 좋았고요.

또한 각종 무기(항공기)의 제원, 유명 지휘관들의 소개, 몰랐던 전황이나 일화들이 포함된 것도 돋보입니다. 예를 들어, 산소어뢰가 실제로 당시 대단한 신무기였다는 점, 불침함 "유키카제" 이야기, 일본 본토 항공전에서 자살특공이 아닌 엘리트들로 구성된 항공부대가 존재했다는 것 등은 처음 알게 된 내용이었습니다. 본토 엘리트 항공단은 작품에서 비유된 것처럼 아돌프 갈란드와 그의 마지막 전투 비행단이 연상되기도 했습니다. 물론 ME262 같은 신무기도 없고, 패전에 임박한 암울한 상황에서 낙후된 장비로 싸운다는 점에서는 지온 잔당(데라즈 말고 사막 애들)과 유사한 조직이었겠지만요.

그러나 단점도 분명합니다. 전쟁사 서적으로서는 치명적인 단점인데, 지도 등 핵심 도판이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이것저것 뒤섞인 편집도 조금 정리가 안 된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네이버 캐스트에 연재 중인 "전쟁과 평화" 기획물의 태평양 전쟁 관련 기사들로도 대략적인 이해가 가능한 내용들이라서 지금은 자료적 가치가 다소 떨어지기도 합니다.

아울러 특공 비판글과 같은 논조의 일부 내용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예를 들어, 급강하폭격기에서 거의 음속에 가깝게 떨어지는 폭탄 대비, 폭탄 무게로 느려진 기체가 충돌할 때의 충격이 비교도 되지 않는다는 논리를 제시했는데, 무게는 속도와 별 관계가 없다는 것은 갈릴레오 이후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더 무거운 것이 더 큰 충격을 준다는 건 당연한 사실 아닐까요? 다소 의아한 주장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래도 제가 좋아하는 전쟁사 서적 중 하나로, 재미와 자료적 가치 모두 일정 수준 이상은 충족되기에 제 별점은 3점입니다. 현재 절판되어 구하기 힘들긴 하지만, 네이버 등에서 도판을 추가해 다시 기사화한다면 많은 독자들이 유익하게 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10/04/04

내 인생의 만화책 - 황민호 : 별점 3점

내 인생의 만화책 - 6점
황민호 지음/가람기획

1940년대부터 90년대까지의 한국 만화를 캐릭터 중심으로 풀어낸 역사 및 비평서입니다. 대체로 시대에 맞는 이슈와 작품, 캐릭터를 잘 선택하고 있고 작품에 대한 비평도 냉정하고 객관적인 편입니다.

그러나 단점도 눈에 좀 뜨입니다. 첫번째는 소년 만화와 성인 만화에 치우쳐져 있다는 점입니다. 때문에 현재 한국 만화의 주요 흐름이라 할 수 있는 순정 만화와 무협 만화가 한편도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물론 "캐릭터"를 중심으로 한 비평서이기에 특정 캐릭터를 내세우기 어려운 순정 만화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었겠지만, 그래도 좀 더 공평한 시각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더군요. 
두번째로는 "캐릭터"를 주 테마로 삼았는데 왜 80년대를 풍미했던 강철수의 발바리가 포함되어 있지 않은걸까요? 당대 대학생을 대표하는 캐릭터로 인기덕에 영화화도 되었었고 지금까지도 그 생명력이 이어지고 있는 발바리를 이러한 목록에서 뺀 것은 정말이지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또 "어쩐지 좋은일이 생길 것 같은 저녁"은 이러한 목록에 포함될 수준의 작품은 아닙니다. 단지 일본 만화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1세대 창작물이라는 가치이외의 어떤 것을 찾기 힘든 작품이니까요. 이 작품만큼은 아무래도 저자가 소년 챔프 등 국내 챔프 계열 잡지 편집장을 역임했기에 선정된 것 같네요.
마지막으로, 너무 캐릭터 중심으로 풀어나가려다 보니 위대한 "작품"에 대한 해설이 부족해진 것도 아쉬웠습니다. 예를 들어 이강토를 비롯해서 80년대를 풍미한 최강타, 오혜성, 구영탄은 캐릭터를 특정하기 어렵고, 작품별로 복수의 화신이나 천방지축 학생 등으로 카멜레온처럼 변신했던 주인공들인데 너무 캐릭터에 집착해서 비평이 좀 애매해진 느낌이입니다. 이 시기는 그냥 "작품 - 공포의 외인구단 / 신의 아들 / 동전 한 개와 불청객 등 -"을 중심으로 서술했으면 더욱 좋았을텐데 말이죠.

그래도 위의 단점들은 제목이 "내 인생의 만화책" 이라는 걸 놓고 볼때는 모두 납득할만한 것들이죠. "내가 읽고 보았던 만화책 중에서 내가 선정했다" 라는 의미이니만큼 개인의 취향일테니까요. 아울러 전체적으로 "캐릭터"를 중심으로 한국 만화 역사 / 비평서를 써 내려간다는 애초의 컨셉과도 충분히 합치할 뿐 아니라 작품별로 세세하게 풀어나가는 비평의 수준도 높기에 국내 최고 수준의 심도 깊은 만화 평론서인건 분명합니다. 양도 풍성하고 자료적인 가치도 높으며 오랫만에 접하는 과거의 주인공들, 김민의 불나비나 길창덕의 꺼벙이, 신문수의 도깨비감투 혁이 등도 모두 반가왔고요. 별점은 3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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