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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07

추리소설가의 살인사건 - 히가시노 게이고 / 민경욱 : 별점 2.5점

 

추리소설가의 살인사건 - 6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소미미디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추리 소설 자체를 풍자했던 <<명탐정의 규칙>> 시리즈에 이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블랙 코미디 풍자 단편 모음집. 이번에는 추리 문단에 관련된 모든 인물들, 즉 작가, 독자, 편집자, 평론가 모두를 비판하고 풍자합니다. 돈벌이에만 골몰하는 작가, 잘 팔리기 위한 화제를 만드는데 집중하는 편집자, 제목과 약간의 설정만 다른 똑같은 작품을 유명 작가의 시리즈라는 이유만으로 소비하는 독자들. 책의 완성도따위는 관심없고, 쉽게 돈 벌 생각에, 생각과는 다른 평론을 써 제끼는 평론가가 등장하거든요. 2001년 발표작이라는데, 데뷰한지 15년이 지났고 여러 히트작으로 업계에서 탄탄한 지위를 굳힌 히가시노 게이고였기 때문에 쓸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고 생각됩니다. 그 만큼 과격한 풍자가 많거든요.

돈벌이에만 골몰하는 작가를 풍자하는건 <<세금 대책 살인사건>>이 대표적입니다. 작중 추리소설가 '나'가 막대한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고액의 영수증을 비용 처리하려고 원래는 홋카이도가 무대인 소설에 하와이를 집어 넣고, 여러가지 옷을 구입한 이유와 골프 비용 등을 집어 넣으면서 작품이 산으로 가게 만든다는 내용이니까요. 소설을 어떻게 바꿔 썼는지가 자세히 등장하는데, 이게 굉장히 웃기더라고요. 결국 '나'의 작품은 망해서 연재마저 끊기고, 세금 대책에도 실패한다는 결말이고요. 추리 소설이라기 보다는 블랙 코미디 풍자극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무엇보다도<<서점의 명탐정>> 수록작이었던 <<일상 업무 탐정단>>에 소개되었던 작품인데, 이렇게 읽게 되어 굉장히 반가왔습니다.

잘 팔리기 위한 화제를 만드는데 집중하는 편집자는 <<장편소설 살인사건>>에 등장합니다. 긴쵸사의 편집자 오기는 그는 '초대작' 이어야만 팔린다고 작가 구주하라 만타로를 꼬드겨서, 800장의 완성도 높은 작품을 2,000 장으로 늘려버립니다. 별 거 아닌 문장을 몇 배로 늘리고, 쓸데없는 묘사를 덧붙이는 식으로요. 게다가 신작 <<커브볼>>은 3,000장을 목표로 작품과는 상관도 없는 정보를 다수 삽입하여 분량을 늘려가다가, 결국 '무게'로 승부하고 만다는 황당무계한 짓거리를 저지르고 말지요. 구즈하라가 작품 길이를 늘리기 위한 분투를 상세히 묘사한 내용은 굉장히 재미있었습니다. 그나저나 알맹이는 없는데, 이상하게 긴 대작 장편이 많은건 저도 불만이었는데, 정말로 이런 짓거리가 벌어진게 아닌가 의심스럽군요.
<<마카제관 살인사건>>은 아주 짤막한데, 편집자에게 휘둘려 본의아닌 작품을 쓰게 되었던 작가의 절규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편집자를 풍자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물론 작가 문제도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요.

자기가 썼던 내용도 기억하지 못하는 탓에, 연재 소설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90대 고령 치매 작가 야부시마 기요히코가 등장하는 <<고령화 사회 살인사건>>은, 제목 그대로 '고령화'가 닥친 추리 작가의 비극(?)을 그려낸 블랙 코미디입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독자들을 비판하는 작품이에요. 야부시마 기요히코가 엉망인 작품을 쓰면서도, 심지어 이전에 출간했던 작품과 같은 내용인데도 불구하고 팔리는 이유는 독자들이 유명 작가의 시리즈라는 이유만으로 소비하기 때문이거든요. 독자들도 고령이라 전작을 다 잊었다는 식으로 끝맺기는 하는데, 전작을 잊지 않았더라도 현실에서 실제로 자주 일어나는 일이라 독자로서 반성하게 되더군요. 예를 들어 요코미조 세이시의 <<삼수탑>>은 <<여왕벌>>의 자가 복제에 불과했는데도 불구하고, 작품이 발표될 수 있었던건, 이름값만으로 무조건적으로 소비하는 독자 탓도 분명 크다고 생각됩니다.
<<이과계 살인사건>>은 내용이 뭔지도 잘 모르면서 읽은 척, 잘난 척을 해대는 매니아들을 비판하는 내용으로, 이 역시 추리 애호가로서 많이 와 닿았고요.

<<독서 기계 살인사건>>은 책을 읽지도 않고, 편집부 요청대로 호평과 혹평을 써갈기는 평론가 몬마가 주인공입니다. 이는 '쇼혹스'라는 기계를 구입한 덕에 가능했었지요. 쇼혹스를 만든 회사는 쇼혹스를 평론가들과 출판사에 팔아먹은 뒤, 쇼혹스의 비평을 최고 점수로 통과할 수 있는 요령을 알려주는 쇼혹스 킬러를 만들어 작가 지망생들에게 팝니다. 마지막 제품은 일반인용의 시타카브릭스로 책의 요약과 재미있고 지루한 부분을 알려주는 장치였고요.
단순히 평론가들만 비판하는건 아니고, 책을 읽지도 않는데 작가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책이 팔리지도 않는데 베스트셀러가 발표되고, 일반 독자는 알지도 못하는 상이 들어나는 등 책은 사라지고 있지만 책을 둘러싼 환상만은 요란한 현 세태를 풍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즘 컨텐츠가 넘쳐나서 사람들이 책을 예전만큼 읽지 않는건 명확한 사실이지요. 차라리 시타카브릭스같은 장치가 상용화된다면 팔리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줄거리는 물론 스포일러까지 가득 담고 있는 제 리뷰가 바로 그런 역할을 하고 있기는 한데, 조회수를 보면 이나마도 안 읽는게 요즘 세태가 아닌가 싶어 좀 씁쓸하기도 하네요.

이런 블랙 코미디나 풍자극으로 즐길 수 있는 작품 외에도 정통 추리물에 가까운 작품들도 수록되어 있습니다. <<범인 맞추기 소설 살인사건>>이 그러합니다. 유명 작가 시마부쿠로는 직접 쓴 추리 소설 '문제편'을 해결하는 편집자에게 신작 장편을 넘기겠다고 말하고, 각 회사 편집자들의 두뇌 싸움 끝에 긴초샤의 가타기리가 범인이 누구인지 밝히는데 성공합니다. 그러나 시마부쿠로가 쓴 신작 장편 따위는 없었습니다. 얼마전 죽은 그의 아내가 진짜 작가였기 때문으로, 시마부쿠로는 아내가 남긴 소설 문제편의 해답을 알 수가 없어서 편집자를 동원했던 겁니다. 즉, 어떻게든 돈벌이를 만들기 위해 있지도 않은 장편을 걸고 편집자를 이용한거지요. 악덕 작가의 표본처럼 묘사되는 시마부쿠로를 통한 적절한 풍자도 인상적이었지만, 편집자가 그럴듯한 해답을 추리해 낼 수 있게끔 문제편에서의 단서 제공이 완벽한 덕분에 정통파 본격 추리 소설로 보아도 충분했던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예고소설 살인사건>>에 등장하는 마쓰이 기요후미는 매 화마다 제복을 입은 여자가 살해되는 작품을 연재하는 인기없는 추리작가입니다. 그런데 그가 쓴 내용대로 실제로 제복을 입은 여자들이 살해되기 시작하고, 마쓰이의 작품도 덩달아 큰 인기를 얻게 된다는 내용이지요. 마지막 화에 범인이 '자살'한다고 쓴 마쓰이는, 범인과 대결하려다 오히려 살해당하는데 그 탓에 범인으로 몰리고 만다는 결말입니다. 마쓰이는 중반 이후. 범인과 결탁해서 원고를 썼기 때문에 돈벌이에 골몰하는 작가를 풍자했다고 할 수도 있지만, 풍자보다는 일종의 범죄물에 가까왔던 작품이에요.

결론적으로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블랙 코미디이자 풍자극으로도 재미있지만 정통 추리적인 요소도 없지는 않은 만큼, 독특한 읽을거리를 찾으시는 추리 문학 애호가분들이시라면 한 번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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