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와 나 - 타케츠루 마사타카 지음, 김창수 옮김/워터베어프레스 |
일본 위스키의 아버지 타케츠루 마사타카의 자서전.
300년 전통의 사케 양조장 셋째 아들로 태어나 오사카 공업 고등학교 양조학과 졸업 후 셋츠 주조에서 근무하던 중, 아베 사장의 도움으로 영국 유학을 떠나 영국과 스코틀랜드 등지에서 위스키 양조 기술을 익히고 귀국하여 오사카 근처 야마자키에 산토리 증류소를 만들고, 10년이 자나 독립하여 홋카이도 요이치에 증류소를 세워 니카 위스키를 만들어 내고 성장시켰던 전과정에 대해 풀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대보다는 내용이 많이 부실했습니다. 특히 타케츠루가 일본에 위스키 증류소를 세우고, 위스키를 만드는 과정에 대한 소개는 정말로 부실합니다. 2년 남짓했던 유학 생활 이야기 비중이 거의 전 인생을 바쳤던 일본에서의 위스키 제조 분량과 맞먹을 정도니까요. 일본에 존재하지 않았던 위스키 증류소를 세우고, 위스키를 만들어 내는건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을테고, 당연히 극적인 이야기도 많았을텐데 솔직히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독립해서 닛카 위스키를 만들 때의 이야기도 부족한건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위스키 숙성 기간에는 주스를 팔아 회사를 유지할 생각이었지만 잘 되지 않았다던가, 순수한 스카치 위스키만 만들겠다는 고집을 꺾고 2등급 위스키를 만들어서 이름을 알리며 닛카 위스키가 시장에서 서서히 입지를 굳히는 과정은 요약만 읽어도 굉장히 흥미로왔는데, 자세한 설명이 없어서 아쉬웠거든요. 그냥 몇 년도에 무슨 위스키를 출시했다, 가 전부일 뿐입니다. 성공했다는 결과도 수치적으로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아 답답했고요.
몇 가지 역경이 등장하기는 하나 '좋은 사람들 도움으로 위기를 쉽게 넘길 수 있었다'는 일화가 대부분인 것도 문제입니다. 별다른 애로사항없이 쉽게쉽게 진행된 느낌이 들었으니까요. 입사 직후 징병 검사에서 신체 건강했음에도 '알코올'을 다룬다는 이유만으로 면제를 받았고, 그 덕에 고작 2년 근무 경력으로 발탁되어 영국에 장기 유학을 떠난 것이라던가, 유학 도중 독일 잠수함 탓에 위험에 처했지만 다른 배가 침몰했고, 2차 대전 때에도 가족 모두 무탈하게 넘긴 등 '운이 좋았다'는 걸 강조하는 에피소드들도 이런 느낌을 더욱 강하게 만듭니다. 운 만으로 이런 성공을 일구었을리는 없다는건 분명한 만큼, 보다 상세한 닛카 위스키 성공담이 선보였어야 했습니다. 홋카이도에서의 곰 사냥, 돗돔 낚시에 대한 회고보다는 말이죠. 지금 쓰여있는 것만 읽으면, 땅짚고 헤엄첬다는 느낌이 들 뿐입니다.
그리고 읽다보니 과연 이 사람이 존경할만한 사람인지도 살짝 의문이 들었어요. 우선 거액의 유학 비용을 대주고 위스키 공부를 밀어준 셋츠 주조를 너무 쉽게 떠난 것 부터가 이상했거든요. 셋츠 주조가 경영 환경이 악화되어 정통 위스키를 못 만들게 되었을지라도, 셋츠 주조에 남아 일하며 은혜를 갚는게 당연했습니다. 셋츠 주조의 아베 사장은 타케츠루를 유학보내준건 물론이고 누구나 반대하던 리카와의 결혼도 성사시켜주었을 정도의 은인이었니까요. 정통 위스키를 만들기 위해 공부를 시켜준건 고맙지만, 앞으로 정통 위스키를 만들지 않는다니 나는 그만 두겠소!라니, 배은망덕도 정도가 있어야죠.
10년 계약이 끝나자마자 토리이 씨를 떠나 독립하기 위해 산토리 증류소를 그만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처음부터 10년 계약이었으니 법적인 문제는 없습니다. 그러나 당시 돈으로 무려 200만엔이라는 거액을 투자해서 타케츠루에게 일본 최초의 증류소를 만드는 노하우를 쌓게 만들어준 회사입니다. 그런데 계약이 끝나자마자 독립해서 경쟁 회사를 창업한다? 이게 도의상 있을 수 있는 일일까요? 심지어 산토리 증류소는 위스키 판매가 부진해서 경영 환경이 좋지도 않았다는데 말이지요.
위스키 제조에 모든걸 건 장인치고는, 시장 요구와 상황에 너무 쉽게 굴복한 것도 실망스러웠던 부분이었습니다.
당연하게도 실제 위스키 제조에 대한 정보 역시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했습니다. 제조 과정이 짤막하게 소개될 뿐, 그 외의 정보나 지식은 별로 언급되지 않는 탓입니다. 그나마도 거의 스쳐지나가는 식이에요. 예를 들어, 거친 하이랜드 몰트와 중성의 그레인 위스키를 가교 역할인 로우랜드 몰트와 함께 섞어 최고의 블렌디드 위스키를 만들 수 있었다는 설명은 있지만, 하이랜드 몰트, 그레인 위스키, 로우랜드 몰트의 제조법 등의 상세한 정보는 없습니다. 어떤 재료를 어디서 어떻게 구했는지, 일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어떻게 술을 만들어 나갔는지 등에 대해 상세하게 그렸던 만화 <<명가의 술>> 정도의 디테일을 기대했는데, 무척 실망스러웠습니다. 차라리 부록처럼 이어진 글에서 위에 부담을 주지 않기 때문에 매일 마실 때는 미즈와리가 좋다, 비율은 위스키 1에 물 2 정도이며 너무 차가와지면 안되므로 온더락은 추천하지 않는다가 제일 유익했던 위스키 관련 정보입니다. 위스키는 즐기는 것이며, 즐기다 보면 취하는 것이다. 천천히 시간을 두고 진심으로 식사와 술을 즐기라는 말도 기억에 남는군요.
그러나 좋은 부분은 일부일 뿐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인터넷으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수준의 정보만 실려있으므로, 딱히 권해드리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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