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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9

인어공주 - 기타야마 다케쿠니 / 김은모 : 별점 2.5점

인어공주 - 6점 기타야마 다케쿠니 지음, 김은모 옮김/엘릭시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폴레옹 황제의 실각 이후 동맹국이었던 덴마크는 노르웨이에 해당하는 영토를 빼앗기는 등 빈국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덴마크 왕 프레데리크 6세의 둘째 아들 크리스티안 왕자는 스웨덴의 실력자 가문의 딸 루이세와 결혼했다.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는 결혼식 직후 피살된 시체로 발견되었다.
한편 덴마크 군인이었던 아버지가 실의에 빠져 병사한 후, 의지할 데 없는 나날을 보내던 학생 한스 안데르센은 우연히 만난 화가 루트비히 그림과 함께 해변에서 자신이 인어라고 주장하는 셀레나라는 여성을 만났다. 그녀가 심장을 내걸고 인간이 된 목적은 왕자 살인 사건의 진범이 누구인지를 밝히는 것이었다. 그녀를 도와 그림과 안데르센은 사건 수사에 뛰어드는데...

기타야마 다케쿠니의 판타지 본격 추리물. 요네자와 호노부<<부러진 용골>>과 비슷한 느낌의 작품입니다. 
하지만 실제 역사를 이야기에 강하게 끌고 들어온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보여줍니다. 나폴레옹에게 반해버린 마녀가 나폴레옹을 돕기 위해, 크리스티앙 왕자와 루이세 왕자비간 결혼을 파탄내어 스웨덴과 덴마크 간 동맹을 무너트리려 했다는 왕자 살해 동기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 외에도 실제 덴마크 역사를 이야기에 많이 삽입하고 있어서 이채로왔어요. 화자 역할로 한스 안데르센을, 탐정 역할로 그림 형제의 막내 루트비히를 내세우고 있는 것 역시 팩션 분위기를 더해주고요.
이러한 실제 역사, 인물과 대척점에 있는 '인어 공주' 이야기도 괜찮습니다. 안데르센동화를 가져와 추리 소설로 변주하고 있는데, 후더닛, 하우더닛 물로는 충분한 수준의 본격물이라 할 수 있어요. 도개교를 이용하여 시체를 발코니로 옮겼다는 핵심 트릭이 특히 그럴듯했습니다. 작품 분위기하고도 잘 어울리는 트릭이기도 하고요. 세세한 별궁 묘사는 물론 한스와 셀레나가 별궁에서 도망다닐때 도개교는 아이의 힘으로도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등 단서도 공정하게 제공됩니다. 시체가 도개교 끄트머리에서 떨어지지 않았을지?라는 의문은 존재하며, 이 정도는 추가로 설명해 주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확실히 나쁘지 않았어요. 작가가 워낙에 물리 트릭을 많이 내세워 '물리의 기타야마'라고 불리울 정도라는데 그 명성에는 충분히 값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마녀의 단도는 마녀의 갈비뼈로 만든 것인데 마녀의 시체 갈비뼈와 입수한 단도의 손잡이 모양이 다르다는 것에서 마녀가 사실은 2명이라는 것을 끌어내는 추리도 좋습니다. 마녀가 일종의 '대를 잇는' 존재라는 아이디어도 나쁘지 않았고요.
여러가지 가설을 늘어놓고 가장 합리적인 가설을 선택하는 루트비히의 추리법도 괜찮습니다.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가설이 전부 등장하며, 가설 모두 논리적으로 분석되어 설득력이 높은 편이에요. 개인적으로는 마녀가 마법으로 왕자를 죽이지 않은 이유가 가장 궁금했는데 구태여 '살인 사건'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 마녀의 마법이라면 자연사나 사고사를 노렸을테니 - 말이 안된다는 이론이 기억에 남네요.

하지만 문제가 없지는 않습니다. 우선 셀레나가 사건 수사에 왜 뛰어드는지 잘 모르겠어요. 바닷속 나라에서 인어공주 사건 때문에 내분이 생겼다는데 설득력이 약합니다. 바다 속 왕국은 어차피 덴마크와 아무 상관도 없는데 공주가 왕자를 죽이건 말건 그게 왜 큰 문제가 될까요? 설령 문제가 된다고 하더라도, 공주가 이미 죽은 이상 처벌도 끝난 것이고요.
핵심 동기도 본격물다운 설득력은 갖추고 있긴 하나 설정에 오류가 있습니다. 인어 공주는 원래 크리스티앙 왕자를 사랑해서 인간이 된 것인데, 마녀가 됨으로서 그 사랑을 잊어버리고 나폴레옹에 대한 사랑만 간직하게 된다는 것은 말이 안되죠. 나폴레옹을 사랑한 인어도 마녀를 죽이고 마녀가 된 것으로 묘사되기 때문입니다. 크리스티앙 왕자를 사랑한 인어가 이전 마녀를 죽였다면 사랑의 대상도 바뀌는게 더 합리적이잖아요?
아울러 루이제가 왕자를 살해한 것도 마녀에게 조종당했다고 보기에는 석연치 않습니다. 그냥 단순히 질투 때문이었다고 하는게 훨씬 깔끔했을 것입니다. 이 부분은 동화 속 주인공 중 하나인 루이제를 배려하기 위한 티가 역력합니다.
개인적을 이런 내용들은 싹 정리하는게 훨씬 좋았을 것 같아요. 물거품이 된 인어 공주가 왕자 살인범의 누명을 쓴 탓에 진상을 밝혀 억울함을 풀어주려고 언니 셀레나가 나서고, 범행은 루이제 왕자비가 질투 때문에 저질렀다는 정도로 말이죠. 이렇게 된다면 장점이라고 했던 실제 역사 이야기가 작품에 거의 녹아들 여지가 없다는 것이 단점이지만 추리적으로 설득력을 높이려면 이 편이 훨씬 깔끔했으리라 확신합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제 별점은 2.5점. 아이디어도 나쁘지 않고 추리적으로도 괜찮지만 지나치게 살을 붙인 것이 좀 아쉽습니다. 조금만 힘을 뺐더라면 훨씬 좋았을텐데, 최소한 <<부러진 용골>>급의 작품은 되었을텐데 말이죠. 그래도 워낙에 독특한 점이 있는 만큼, 궁금하신 분들은 한번쯤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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