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테리아 5호 - 미스테리아 편집부 엮음/엘릭시르 |
구하게 되면 읽곤 하는 장르문학 전문 잡지 미스테리아의 5호입니다. 작년 초에 출간된 한참 전 과월호죠. 언제나처럼 특집 기사와 신간 소개, 이런 저런 연재 기사, 인터뷰, 수록 단편으로 이루어진 구성입니다.
이 중 가장 관심 있던 것은 특집입니다. "음식 미스터리"가 주제인데, 개인적으로 '장르 문학 속 요리'에 대해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비교, 혹은 참고가 되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그런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아주 별로였습니다.
첫번째 이유는 소재가 진부하다는 것입니다. 추리 애호가라면 누구나 쉽게 떠올릴 수 있는 흔해빠진 내용이에요. 도입부의 식인 천재 범죄자 한니발 렉터, 미식가 탐정 네로 울프가 대표적이며, 그나마도 인터넷을 뒤지면 알 수 있는 내용일 뿐으로 정작 기대했던 내용은 실려있지도 않습니다. 저라면 한니발 렉터의 '전두엽 소테'나 네로 울프의 '소시스 미뉴이'를 소개할 때 최소한 해당 음식의 레시피와 조리 사진을 수록했을 겁니다. 그리고 애거서 크리스티 작품 속 독약에 대한 소개는 솔직히 '음식 미스터리'의 범주로 넣기에는 무리였어요. 차라리 <<크리스마스 푸딩의 모험>> 같은 작품 소개가 더 적절한 예가 아니었을까요?
이어지는 작품 속 요리를 재현하는 코너 역시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주제와 연결되는 요리들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미스테리아 측에서 별다르게 창작한 것도 없습니다. 모두 참고 도서 속 요리를 재현한 것에 불과해요. <<미국 미스터리 작가들의 요리책>>이 주로 사용되었더군요. 게다가 작품 속에서 그 요리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지도 않습니다. 개중 마음에 들었던 것은 <<해군 조약문>> 속 치킨 커리 정도랄까요? 작품에서는 셜록 홈즈가 '해군 조약문'을 극적으로 등장시키기 위한 장치로 사용되었었죠. 이야기의 주인공이나 핵심 소재라고 하기에는 절대로 무리이지만 다른 요리들에 비하면 그래도 비중이 있어 보이네요.
그리고 마지막의 '10권의 맛있는 미스터리' 소개는 실망의 정점을 찍습니다. 기준, 근거를 알기 어려워요. 일단 소개작 중 <<스위트 홈 살인사건>>,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 <<기나긴 이별>>은 음식 미스터리라고 포장할 수 없습니다. 억지에요. <<어느 백만장자의 죽음>>은 아슬아슬하게 음식 미스터리 범주 안에는 들기는 합니다. 허나 지금은 절판되어 구하기 힘든 책을 추천 도서로 떡하니 내미는 행위는 영 받아들이기 힘들군요. 조앤 플루크의 한나 스웬슨 시리즈는 빈말로도 좋은 작품이라 하기 어렵고요. 그 외 작품들도 음식 미스터리로 볼만한 작품들이긴 하지만 과연 추천할만한 작품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특별 요리>>와 <<맛>> 외에는 모두 추천하고 싶지 않습니다.
결론적으로 점수를 주자면 1.5점 정도? 여러모로 점수를 주기 힘든 기획이었습니다. 제 개인 프로젝트에 필적할만한 내용은 없어서 안심이 되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특집 외에는 나쁘지는 않습니다. 우선 신간 소개는 <<미스테리아>>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인 코너입니다. 빼어난 리뷰가 많은 탓으로 이번 호에도 역시나 사람을 혹하게 만드는 좋은 리뷰들이 많습니다. 솔직히 읽어본 결과에 따르면 좀 과한 홍보의 결과물이라 생각되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마쓰모토 세이초의 <<범죄자의 탄생>>은 꼭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런데 원작, 영화를 함께 소개하는 코너에서 딱 한가지 불만이 있습니다. <<검은 옷을 입은 신부>>가 <<상복의 랑데뷰>>보다 낭만적인 애상으로 넘쳐흐른다는 것인데 동의할 수 없습니다. 완성도 면에서 천지차이에요. 영상화된 작품이라는 이유로 소개되기는 했지만 정보는 공정하게 제공해 주면 좋겠네요.
연재물인 아리스가와 아리스와 건축가 야스이 도시오의 밀실에 대한 대담은 재미있었습니다. 일본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라 써먹기는 힘들다는 단점은 있지만 참고할 만한 내용이 많았어요. 특히 다다미를 걷어내면 아마추어는 다시 깔 수 없다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아울러 이 코너를 통해 소개되는 정보를 토대로 아리스가와 아리스가 내 놓는 아이디어 - 다양한 기술자들이 등장하는 탐정물 - 도 재미있을 것 같았습니다. 미로관을 예로 들며 전기비가 많이 들었을 것이라는 언급을 하는 등 건축 전문가의 식견이 느껴지는 여러 코멘트들도 기억에 남네요.
한국의 50~60년대 추리 소설을 발굴한 추리소설 평론가 박광규 씨와의 인터뷰 역시 좋습니다.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게 되었으니까요. 화재 사고와 관련된 논픽션, 폴란드에서 실제로 있었던 젊은 지식인 발라가 자신이 저지른 살인 사건을 바탕으로 쓴 소설 이야기도 아주 흥미로왔고요. 범인 크리스티안 발라와 그의 작품 <<아목>>, 형사 브로블레브스키라는 키워드는 꼭 기억해두었다가 나중에 찾아봐야겠어요.
한국 미스터리 소설의 계보를 추적하며 잃어버린 고리를 찾는다는 기획물인 '동아시아 미스터리, 정치적 죄와 서스펜스'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식민지 대중 서사의 최고봉이라는 이병주의 <<관부 연락선>>, <<별이 차가운 밤이면>>과 김내성의 <<청춘 열차>>는 시간나면 한번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에 수록된 2편의 단편도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체 평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척박한 한국 장르 문학의 구심점 역할을 해 주는 좋은 잡지라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이번호는 특집이 너무 별로라 아주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마지막으로 수록된 2편의 단편의 짤막한 리뷰로 글을 마칩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점 참고하시길.
<<나비 부인의 커튼콜>>
전직 사회부 기자 박희윤과 퇴출 형사 갈호태, 두 남자가 운영하는 카페 '이기적인 갈 사장' 건너편에 '나비 부인'이라는 카페가 개업한다. 가면을 쓰고 서빙한다는 독특한 컨셉과 인테리어, 커피맛이 입소문을 타 어느새 맛집으로 유명해 진 상황. 기묘한 노인이 '나비 부인'에서 진상을 부린 다음날, '나비 부인'의 사장이 살해된 시체로 발견된다.
최혁곤의 단편. 단편집 <<탐정이 아닌 두 남자의 밤>>에 이어지는 시리즈라고 합니다. 시리즈 캐릭터로 전직 사회부 기자 박희윤과 퇴출 형사 갈호태 콤비가 등장하죠.
전작은 읽어보지 않았지만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유쾌한 분위기의 버디물이더군요.
추리적으로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별로 대단한 트릭이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초반에 나왔던 수상쩍은 노인이 범인으로 체포되는 등 수수께끼의 여지도 없고요. 후더닛 물로는 영 아니올시다입니다.
오히려 인터넷 상에서 사람을 공격하여 죽게 만드는 일종의 '사이버 테러'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사회파적 측면이 강하며, 이것이 동기로 밝혀지는 과정이 이야기의 핵심인 와이더닛물로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좀 가볍고 유머러스한 분위기와 사회파적 설정이 잘 어울리는 것 같지는 않네요. 인터넷의 비방글로 자살을 한다는 것도 와닿지 않고요. 또 고3 수험생 투신 사건도 불필요할 정도로 질질 끄는 느낌입니다.
또 와이더닛 물로서 치명적인 약점인데, 동기를 드러내는 과정이 잘 짜여져 있지 않습니다. 진소담의 가족 관계 증명서 정도만 나름 증거일 뿐 추리가 모두 정황 증거에 기반할 뿐이고요. 아울러 진범 검은 뿔테가 살인을 저지른 이유는 불분명하다는 것 역시 큰 단점입니다. 남자 친구이기 때문에? 설득력이 낮아요.
그래서 제 별점은 2점. 읽는 재미는 있지만 추리적으로는 기대 이하였던 범작이었습니다. 그래도 버디물로서는 충분히 즐길만한 캐릭터가 등장하는 만큼, 단편집은 한번 읽어봐야겠습니다.
<<죽음이 갈라 놓을 때>>
기흥 보리산 자락에 있는 무당의 당집에서 처첨한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완벽한 밀실 안에서 발견된 유홍석이 유력한 용의자로 체포되어 사형이 구형된다. 그러나 판사에게 유홍석의 편지가 도착하는데...
한국에서 보기 드문 본격 추리물들을 발표하고 계신 도진기 판사님 - 현 시점에서 변호사가 되셨지만 - 의 스탠드얼론 단편.
다른건 몰라도 작가가 뼛속까지 고전 본격물 애호가라는 것이 잘 드러나 있는 작품입니다. 1인칭의 수기 형태로 전개된다는 것, 끔찍한 사건이 무언가 초자연적인 현상과 얽혀 일어난다는 점이 완전 고전 스타일이니까요. 비교하자면 코난 도일경의 <
게다가 단지 스타일을 따온 것에 그치지 않고 무당 '인문희' 캐릭터가 압도적인 존재감을 뽐내기에 독특한 한국적 오컬트물로 보아도 손색이 없다는 것도 큰 장점이에요. 특히 그녀가 서상표의 집에 몰래 부적을 붙인 것이 드러나는 장면은 굉장히 섬찟합니다. 만약 영상화한다면 클라이막스로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어요.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문희에 비하면 서상표 캐릭터는 전형적인 한국 쓰레기 남자 캐릭터를 반복하는 것에 불과해 지루합니다. 무엇보다도 진상은 정말이지 어이가 없었어요. 괜찮은 고전 오컬트물이 갑자기 크리쳐 호러로 변질되는 느낌이었어요. 영 안 어울리게 말이죠. 게다가 잘린 목이 경동맥을 물어 뜯었다면 부검으로 밝혀지지 않았을리가 없으며, 유홍석이 현장 문을 잠가 밀실로 만든 이유도 끝까지 설명되지 않는 등 디테일에서 문제가 많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보기 드문, 고전 스타일 오컬트 호러 스릴러임에는 분명합니다. 취향에 따라 호불호를 굉장히 탈 것 같은 작품인데 저한테는 호 쪽에 가까웠어요. 무엇보다도 앞서 말씀드린 부적이 드러나는 장면 하나만으로도 별점 2.5점은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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