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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6

어둠 속의 일격 - 로렌스 블록 / 박산호 : 별점 2점

어둠 속의 일격 - 4점
로렌스 블록 지음, 박산호 옮김/황금가지

9년 전 연쇄 살인을 저질렀던 얼음송곳 살인마가 체포된다. 그러나 7건의 살인 사건 중 한건에 대해서 체포된 피의자 피넬은 강력하게 부인한다. 그가 부인한 바버라 에팅거 사건 피해자의 아버지 찰스 런던은 은퇴한 전직 경찰 매튜 스커더에게 이 사건의 진범을 찾아내 줄 것을 의뢰하는데...

간만에 읽은 로렌스 블록의 매튜 스커더 시리즈 장편.
특이한 점이라면 매튜 스커더가 술독에 빠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냥 마시는 커피조차 버번을 타서 먹는 정도로 중반에는 술에 떡이 되는 묘사까지 등장할 정도에요. 그래서 저는 시리즈 후기작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800만가지 죽는 방법>> 바로 직전인 1981년 작품이더군요. 마지막 장면에서 알콜중독 조각가 재니스가 알콜 중독자 갱생회에 간다고 통보하는데 그 때문에 금주 결심이 서게 된 것이 아닐까 싶네요. 여튼, 세상 다 산것 같은 관록을 보여주는데 -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실 자식들이 손자들을 낳기 전까지는 자신의 아이들에 대해 잘 모른다 (21p) - 의외로 초기작이라는 점에서 놀랐습니다.
또 다른 특이한 점은 작품은 매튜 스커더 시리즈 치고는 짤막한 분량이라는거죠. 260 페이지 정도밖에는 안되니까요.

하지만 짤막한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묘사는 여전히 근사합니다. 특히 특정 상황에 대해 어떤 사물이나 소재를 빗대어 그리는 글들이 눈에 띱니다. 이혼한 아내와 전화 통화를 하면서 오래 키운 반려견이 안락사된다는 것을 듣게되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이 반려견을 통해 그들의 결혼 생활도 서서히 죽어갔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강하게 드러내거든요.
또 작품 내내 선보이는 매튜 스커더의 그야말로 고전적인, 발로 뛰는 수사 역시 인상적입니다. 사건 관계자들을 우직하게 만나 인터뷰하는 것이 수사의 전부인데 그것도 아날로그 시대, 즉 핸드폰과 컴퓨터가 없는 시대가 무대라 공중전화, 전화번호부 및 기억력에 주로 의지한다는 점에서 시대를 느끼게 해 줍니다.

추리적으로는 역시나 별로 대단한 건 없어요. 아니, 밀도는 부족한 편입니다. 진범 버튼 하버메이어를 밝혀낸 과정의 설득력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단지 자신이 살던 집 주소를 정확하게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의심하는 것은 잘못이죠. 자식이 없다고 거짓말 한 것이 드러나는 장면은 괜찮았지만 역시 증거력은 부족해요.
무엇보다도 동기의 설득력이 낮습니다. 버튼이 아내를 죽음을 가장하여 살해하기 위해 예행 연습을 한 것이 진상인데 왜 이혼을 하기 힘들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너무 부족해요. 실제로 범행을 저지르고 나서는 손쉽게 이혼을 한 것으로 볼 때 더더욱 설득력이 낮죠. 아무리 아내가 밉다 하더라도 이혼을 하기 힘든 별다른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닌데 현직 경찰 신분으로 살인을 저지른다? 솔직히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게다가 버튼의 말 대로 매튜 스커더는 경찰도 아니고 어차피 증거도 없기 때문에 절대로 그를 체포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양심을 건드리며 자수하게 만드는데 성공하지만 이건 버튼이 착해서라고 밖에는 설명이 안됩니다. 마지막 버튼 아내에 대한 반전도 놀랍기는 하지만 솔직히 왜 나왔는지 잘 모르겠고요.

그래도 매튜 스커더의 추리법이 설명되는 것 정도는 이채로왔습니다. "사소한 점들을 모으고 여러 사람에게서 받은 인상들을 흡수하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해답이 마음속에 팍 떠오르죠."라는 식으로 논리가 아니라 '직감'에 의존한다고 스스로 밝히거든요. 그런데 전직 형사로 발로 뛰는 수사가 특기라 탐문과 끈기에 의존하는 전형적인 경찰이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일종의 천재형이라는 점이 신기했습니다. 오랜 경험을 토대로 하여 갖춘 추리법도 괜찮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의사의 아내가 살해됐을 땐. 남편이 범인이에요. 증거는 상관없어요. 항상 의사가 범인이에요."라고 말하는 장면이죠.
아울러 얼음 송곳에 대한 이야기도 아주 흥미로왔어요. 80년대지만 모두들 냉장고를 가지고 있고, 얼음 장수가 배달을 해 주는 것도 아니니 얼음 송곳은 살인 말고는 쓸데가 없다!는 논리로 실제로 하나 사러가 보니 아주 가끔 하나씩 팔릴 뿐이라는 증언을 듣는 것이 요지로 사건이 발생했던 9년전 철물점, 잡화점에서 얼음 송곳을 사간 사람을 탐문했어야 하는 논리로 귀결되는데 아주 그럴듯 했어요. 본 편과는 별 상관은 없습니다만.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짧다는 점과 묘사는 좋지만 '매튜 스커더' 시리즈로 보기에도 애매하고 추리적으로도 좋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시리즈의 대표작도 아닌 만큼 권해드리기는 어렵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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