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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2

시체가 켜켜이 쌓인 밤 - 마에카와 유타카 / 이선희 : 별점 2.5점

시체가 켜켜이 쌓인 밤 - 6점
마에카와 유타카 지음, 이선희 옮김/창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985년 여름, 한 남자가 여섯 여자와 집단 자살을 했다. 남자는 과거 도쿄대 조교수 출신의 기우라 겐조로 자살 전 무려 10명을 살해한 혐의로 쫓기고 있었다.
사건 당시 정보 누설이 알려져 자살한 이가라시 형사의 조카인 '나'는 이 사건을 추적하는 논픽션을 쓸 것을 결심하고 여러가지 조사와 인터뷰를 통해 사건을 처음부터 차근차근 재구성해 나가는데...


마에카와 유타카의 2015년 작품. 30년 전 벌어진 연쇄 살인, 집단 자살 사건을 현대의 르포 작가가 뒤쫓아 그 진상을 밝혀낸다는 구성으로 과거 시점의 이야기와 현재 시점의 인터뷰가 교차되어 전개되는 구성입니다.

작가의 전작 <<크리피>>는 전에 읽고 리뷰를 올린 적이 있는데 두 작품의 유사성이 눈에 많이 띄네요.
가장 큰 유사점은 주위 사람들을 일종의 세뇌 상태로 만들어 범죄에 끌어들이거나 피해자로 만든다는 기우라 겐조의 독특한 능력입니다. <<크리피>>의 "위장 살인마" 야지마의 능력 - 한 가족에 침입하여 가장 행세를 하며 가족들을 한 명씩 차례로 죽이는 - 과 아주 흡사하죠. 이를 위해 공포, 협박, 좁은 (갇힌) 공간이라는 3가지 요소를 갖춘 마인드 콘트롤이 핵심이라는 것도 같고요.
그러나 <<크리피>> 이후 발표된 덕인지는 몰라도 마인드 콘트롤을 보다 상세하게 묘사하여 설득력을 높이고 있다는 점에서는 확실히 발전했어요. 기우라가 여관 하기노야를 손에 넣기 위해 하기노야의 주인 세이지 일가족을 극한으로 몰아가다가 한명씩 살해하는 부분이 그것으로, 적나라하면서도 세밀한 묘사를 통해 굉장한 흡입력과 설득력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흡입력, 설득력이 당연한 것은 실존했던 일본의 '스미다 미요코 사건'의 배역을 살짝 바꾸어 묘사한 덕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한 가족을 대상으로 이간질 후 범행에 끌어들여 (고이치) 제일 약한 사람부터 (세이지) 한명씩 죽게 만든다는 전개는 스미다 미요코 사건과 같습니다.

이러한 범죄 묘사 외에 추리적인 디테일도 나쁘지 않습니다. 히라가나로 쓰여진 고발 편지와 초밥에 비소를 넣은 사람이 우타라는 것이 밝혀지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별다른 정보가 공정하게 제공되는 것은 아니고 진범이 누구인지가 중요하지는 않지만 나름 의표를 찌르는 맛이 있었어요.
중요하지는 않지만 80년대가 무대답게 마지막을 야쿠시마루 히로코의 노래 <<세일러복과 기관총>>이 장식하는 것도 이채로왔습니다.

하지만 <<크리피>>와 단점 역시 비슷합니다. 조금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설명이 부족하다는 것이 그것이죠. 특히 기우라가 왜 이렇게 잔혹한, 무려 10명이나 살해하는 범행을 저질렀는지를 설명하지 않은 탓이 큽니다. 이성과 잔혹함, 정신병의 경계에 있다는 캐릭터 설정만으로 때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묘사에 따르면 2가구 6명을 포함한 10명을 살해하면서 하기노야를 손에 넣지만 정작 현금 수익은 세이지 가족의 적금 1,500만엔 정도에 불과합니다. 이래서야 수지가 전혀 맞지 않죠. 그 돈도 범행 계획에는 들어있지 않은 공돈이나 마찬가지고요.
물론 하기노야 권리증이 없더라도 시간만 있었더라면 어떻게든 현금화는 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렇게 사람을 죽여가면서 돈을 얻을 필요는 없어요. 3천만엔을 빌려준 것 만큼은 명확한 사실이니 고이치를 사장으로 앉히는 것 만으로도 여관을 손에 넣는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테니까요. 게다가 이렇게까지 여관을 손에 넣을 이유도 사실 없습니다. 단지 매춘업에 끌어들이기 위해서라면 이미 성공하기도 했고요. 마지막 자살 여행에서 여자들에게 현금을 나눠주는 묘사를 보면 대충 1억엔 이상은 현금으로 뿌립니다. 이 정도로 성공한 인물이 왜 이런 범행을 저지른 걸까요? 마지막 묘사 탓에 이유는 더욱 알 수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또 작가의 이상한 묘사로 캐릭터가 모호해져 버린 것도 문제입니다. 이지적인 모습이 보였다, 카리스마가 있는 리더일 뿐 손을 더럽히는 모습은 없었다는 식으로 묘사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마지막 집단 자살 묘사는 그 중에서도 최악이죠. 너무 꿈처럼 그려졌을 뿐더러 지나칠 정도로 신사적이라 모호한 상황을 더욱 극단적으로 만듭니다.
아울러 그가 누나와 근친상간을 통해 우타를 낳았다는 것은 이러한 극단적인 범행과 하등의 상관이 없습니다. 아내가 누나와 굉장히 닮았으며, 아내가 누나와의 관계를 눈치채어 살해했다는 것 역시 마찬가지고요. 완전히 사족에 불과했어요.

이렇게 모호하게 그릴 것이라면 차라리 '돈'이 목적이고 타고난 악인이었다고 설명하는 쪽이 훨씬 나았을 것입니다. 이래서야 한가운데 직구를 넣었다면 깔끔하게 처리했을텐데 괜히 변화구, 변화구를 고집하다가 주자를 쌓아놓고 한방 크게 얻어맞는 것과 다를게 없죠. <<주자가 켜켜이 쌓인 9회말>>이랄까... 좋은 공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에서 더욱 아쉽네요.

그리고 기껏 손해를 보아가면서 까지 도쿄대 출신임을 밀어 붙였다면 이렇게 무식한 야쿠자 스타일 협잡보다는 더 그럴듯한 무언가를 보여주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세이지 일가를 옭아매는 과정은 전형적인 감금, 협박과 다르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범행 중간중간에 걸쳐 허술한 관리로 수많은 위기를 만나게 되는 것을 보면 한숨밖에 나오지 않아요. 그냥 즉흥적으로, 되는대로 사람을 죽이는 묻지마 범죄와 다를게 없어 보일 정도입니다. 중간중간 수사나온 형사를 설득하여 돌려보내는 장면은 그럴싸하지만 기대에 값하는 수준은 아닙니다.

또한 앞서 말씀드린대로 범행 과정의 적나라한 묘사를 통한 생생함은 발군이나 들여다보면 구멍이 많다는 것도 단점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유키가 정상적인 사고를 거두고 매춘까지 끌려나가게 되는 과정입니다. 제대로 설명되지 않거든요. 사부로가 급작스럽게 유키와 가까와진다는 것도 작위적이고요. 하기사 유키를 죽이지 않는 것 부터가 뾰족한 이유가 없네요. 상식적이라면 진작에, 아무리 늦어도 고이치 살해 시점에는 정리했을 것입니다. 더 필요가 없으니깐...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하기노야를 손에 넣는 중후반부까지의 압도적인 묘사는 충분히 흥미롭습니다. 그러나 설득력이 부족한 설정 탓에 감점합니다. <<크리피>>보다는 낫지만 단점은 여전히 동일합니다. 작가의 다음 작품을 읽어봐야 할지 살짝 고민되는군요.

덧붙이자면, 범행의 규모나 희생자 수를 본다면 현실의 '스미다 미요코 사건'이 더 큰 사건이니 그냥 '스미다 미요코 사건'의 논픽션을 쓰는게 더 나았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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